‘혼란’을 뒤로 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이집트

이집트 혁명 뒤에 이어진 고난의 10년

2021-09-30     아크람 벨카이드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미국 국무부는 이집트에 이번 회계년도에 제공하기로 한 해외군사 지원 중 1억 3,000만 달러(1,500억 원)를 인권문제를 이유로 보류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보류지원액이 3억 달러 전액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이를 강력히 비판하는 분위기다. 이집트는 이웃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군사원조를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받고 있다. 

인권탄압으로 악명 높은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지역외교에서 이집트의 위상을 높이려 고군분투 중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및 새로운 미 행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리비아 내전에도 개입한 이집트는 나일강에 에티오피아 댐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저지하고자 동맹국을 찾고 있다.

 

3월 3일은 이집트에 특별한 날, 이집트 정보기관이 압델 파타 알시시 정권 반대시위를 탄압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날이다. 3년 전 이집트 최고헌법재판소가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맺은 티란 섬과 사나피르 섬의 양도협약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홍해 아카바만 입구의 두 무인도에 대한 이집트의 주권상실을 의미하는 이 협약이 2016년 카이로에서 체결되자, 많은 이집트 국민들은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브 왕국에 굴복하는 처사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알시시 대통령의 ‘정당성 입증 프로젝트’

알시시 대통령의 반대파는 2016년부터 2017년 봄까지 벌였던 시위만큼이나 대대적인 시위를 이번에도 벌였다. 모든 형태의 반정부 행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기로 유명한 알시시 대통령은, 이집트의 영토를 헐값에 팔아넘긴 것을 규탄하는 시위에 분노했다.(1)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집트의 유명한 표현인 ‘Misr, oum el-dounya(이집트, 세계의 어머니)’이야말로 국수주의적이고 복수심이 강한 현 이집트 정부의 공식 입장에 정확히 부합한다.

이집트 정부는 이번 협약을 통해 이 지역의 중심자리를 꿰차고 2011년 혁명 이후 약해졌던 국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심산이다. 알시시 대통령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에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표하지는 않지만, 2012년 이슬람 진영의 모하메드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집트가 경제적, 지정학적으로 활력을 잃었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2) 

사실 이집트 혁명 6개월 전만 해도 세계은행은, 이집트 기업들의 노사분쟁과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에는 눈을 감은 채, 이집트가 자유주의적 근대화 계획을 성공으로 실행한 덕분에 ‘최고의 개혁국가들’에 포함됐다고 발표했었다.(3) 외교 분야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6개월 전(2009년 6월 4일) 카이로 대학교에서 미국과 이슬람권 간의 관계 재정립을 주제로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 것 때문에 이집트는 한껏 의기양양한 상태였다.

즉, 알시시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혼란과 폭력으로 심각하게 훼손된 국가적 위상을 회복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최근 알시시 대통령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미래의 지도’ 계획을 발표했다. 카이로 동쪽에 신도시와 10개 공항을 신설하는 방안이 포함된 인프라 구축 계획인데, 결국 군부에 충성하는 기업들만 이익을 독식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4) 국제적 차원에서 이집트의 외교적 기조는 뚜렷하다. 사우디아라비아든, 터키든, 이란이든, 이스라엘이든, 이 지역의 어느 국가에도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티란 섬과 사나피르 섬은 이스라엘 에일랏 항구의 출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전략적 요지인 만큼, 이집트가 국가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 두 섬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집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두 섬의 양도는 대통령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사우드 왕이 사우디아라비아군은 이스라엘 해군에 대항할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1940년 말부터 이집트에 두 섬의 점령을 요청했었다는 그럴듯한 주장도 있지만, 섬 양도의 주 목적은 무엇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모하메드 빈 살만(MBS) 왕세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다.

 

사우디, 카타르, 미국 그리고 프랑스

이집트군에 매년 15억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미국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집트에 필수적인 파트너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불화가 계속되자, 알시시 대통령은 양국 간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티란 섬과 사나피르 섬을 사실상 ‘상납’했고, 그 어떤 이집트 지식인도 아라비아 반도의 혁명을 입에 올릴 수 없었으며, 그 어떤 알아즈하르대학교의 고위 인사도 와하브주의를 ‘극단주의적 교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일례로, 2016년 8월 체첸 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에서 열린 국제이슬람회의(World Muslim Congress)에서 이런 맥락의 발언을 한 종교단체들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에 사과를 해야 했다.

알시시 대통령은 예산 부족분을 충당하고, 이집트 근대화와 수에즈 운하 확장공사 자금을 조달하고, 카이로의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유리와 철강으로 된 신도시를 건설하고자 일단 사우디아라비아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후 이집트의 야심은 수정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과정을 두고 비판이 일기는 했지만, 여하튼 이집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 내 무슬림형제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나일강 주변에서 생활하는 예멘 난민들이 후티(Houthis, 예멘의 시아파 무장단체)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적 개입을 묵인하는 것에 동의했다.(5) 

예멘을 지지했던 가말 압델 나세르 시대를 뒤로 하고, 이집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 군사적 개입을 시작한 2015년 3월부터 군사를 파견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측 군대와 연합해 예멘 반군에 맞섰다. 그러나 이집트가 육군은 없이 해군만 파견한 것 때문에 2015년 양측 간에 불화가 일기도 했다. 알시시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면, 지원군을 파견하겠다고 계속 강조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외교부 장관 사메 추크리(Sameh Choukry)는 ‘예멘 내전은 정치적 해결책일 뿐’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도 잘 알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집트가 독단적인 외교적 행보를 보일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의 분노를 살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2017년 불거진 카타르 단교 사태나 올해 1월 임시 단교 해지만 봐도, 이집트는 걸프만 상황에 대해 독자적으로 행동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7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부다비는 이집트와 바레인에 카타르와의 외교관계를 끊으라고 종용했다.(6) 알시시 대통령으로서는, 무르시 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고 무슬림형제단의 기반을 제공하던 카타르를 응징할 수 있게 된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손해였다. 카타르가 약속한 수십만 달러의 지원금을 포기해야 했고, 카타르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이집트 교민들의 안위도 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그보다 가벼운 조치를 원한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3년 반이나 계속된 외교단절은 분명 이집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카타르의 한 외교관이 말했다. 카타르 단교는 전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와 아부다비의 모하메드 빈 자이드(MBZ) 왕세제가 주도했다. 발언권이 없었던 이집트는 카타르가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주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양보할 생각이 없었던 카타르는 알자지라 뉴스 채널의 폐쇄 등 아랍권 국가들이 2017년 여름에 제시한 13개 요구사항을 모두 거부했다. 이에 새로운 위기가 촉발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부다비는 카타르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집트는 미국의 행보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백악관 퇴거 몇 주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동지역에서 역사적인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셰이크(Cheikh, 우두머리)들을 화해시키려는 미국의 어설픈 노력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파 위험을 높였고, 이런 상황은 이집트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란이 복수의 칼을 뽑는다면, 그 칼날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걸프만 국가들일 것이다. 그럴 경우 이집트는 그들 국가를 돕기 위해 파병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는 에티오피아와의 갈등, 리비아 내전, 미국과의 관계 이 3가지 사안 외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집트는 조 바이든이 부통령이던 당시의 미 정부가 무바라크의 퇴진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쿠데타가 일어난 후인 2013년 가을, 미국이 이집트에 대한 경제적 원조를 일시 중단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집트의 언론은 이를 일제히 반겼고, 학계에서는 ‘아랍의 봄’이 이슬람 세력이 집권하도록 CIA와 민주당이 조작한 사건이라는 주장이 확산됐다.(7) 

이제 알시시 대통령은 트럼프와 그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보다 어려운 상대인 민주당 대통령과 협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알시시 대통령에게 은밀하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한 것을 보면, 이집트가 프랑스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8) 이집트에 프랑스는 매우 협조적인 무기 공급처로, 마크롱 대통령은 이집트의 인권침해 논란이 양국 간의 파트너십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9)

 

설 곳을 잃어가는 이집트의 위기

이집트의 무기는 주로 시나이 반도의 이슬람 반군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리비아 내전에서도 사용된다.(10) 리비아에서 칼리파 하프타의 세력이 트리폴리를 장악하고 있는 리비아 임시정부(GNA, Government of National Accord)와 터키군에게 패배한 이후, 이집트의 근심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2019년까지 이집트 정부는 하프타 세력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물류적·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하프타가 결국 GNA 처단에 실패하고 새로운 국가들까지 내전에 개입하면서, 이집트는 본의 아니게 리비아 내전에 점점 더 깊이 휘말리게 됐다(터키가 리비아 정부 측에, 아랍에미리트와 러시아가 하프타르 측에 섰다). 

지난해부터 이집트는 리비아 정부뿐만 아니라 터키를 포함한 ‘침략자’들을 상대로 연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0년 7월 20일 이집트 의회는 ‘이집트의 국가안보를 위해 국경 밖 전투에 이집트군을 파견하는 것’을 승인하면서 리비아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후 10월 GNA와 하프타르 세력이 휴전협정에 서명하면서 긴장은 완화됐으나 이집트의 입장은 명확하다. 만약 내전이 재개돼 리비아의 주요 원유 수출항들이 위치한 시르테 시를 GNA가 장악하려 들면, 이집트는 45만 군대를 동원해 하프타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외교관들이 ‘최우선 과제’로 드는 것은 에티오피아가 나일강 상류에 건설하려고 계획 중인 초대형 수력발전댐이 초래할 위협을 막는 일이다.(11) 이집트는 높이 145m, 용량 740억㎥의 이 댐에 신속히 물이 채워질 경우 이집트의 농경지가 모두 망가질 것을 우려한다.(12) ‘나일강의 선물’이라고도 불리는 이집트는 현재 국내 수자원의 98%를 나일강에서 얻는다. 1929년과 1959년 두 번의 국제 협약을 통해 이집트는 나일강에 대한 역사적인 권리를 인정받아 나일강 수자원 사용에 대한 우선권을 보장받았지만, 오늘날 에티오피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이 르네상스 댐을 이용해 에티오피아 전역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1990년대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댐의 착공 전에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었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협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에티오피아는 앞으로 7년 안에 르네상스 댐을 가득 채우겠다고 하고, 이집트는 댐 운영 상황을 지켜보면서 21년에 걸쳐 서서히 물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이미 댐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댐 공사 현장을 주도하는 프랑스와 중국의 거센 반대로 군사적 행동에는 나서지 못하고, 아프리카 주변국들을 동원해 에티오피아를 저지하려 하지만 큰 성과는 없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이집트가 기댈 곳은 두 국가밖에 없다. 합의 전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고 에티오피아를 비판한 미국과, 최근 동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장 중인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에 있어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중요한 파트너다. 이집트는 외교적으로 파타와 하마스의 화해 시도를 지지하는 입장이며, 이집트의 정부기관도 가자지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랍 국가들 중 이스라엘의 유일한 교섭상대는 아니다.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다른 걸프만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이스라엘과 직접 대화하기 시작하면서, 이집트가 굳이 중재자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13) 물론 이집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이스라엘에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걸프만 국가들뿐만 아니라 수단, 사헬 지역 국가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집트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Égypte : Une répression croissante qui perdure 이집트, 계속해서 이어지는 극심한 탄압’, Human Rights Watch, 2021년 1월 13일, hrw.org
(2) Esam Al-Amin, ‘Égypte : dialectique entre révolution et contre-révolution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변증법’, <Middle East Eye>, 2015년 9월 10일, www.middleeasteye.net
(3) ‘Réformer en période difficile 어려운 시기의 혁명’, Doing Business 2010, https://francais.doingbusiness.org
(4) Jamal Bukhari & Ariane Lavrilleux, ‘Voracité de l’armée égyptienne 돈벌이에 급급한 이집트 군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7월호.
(5) Pierre Bernin, ‘Fiasco saoudien au Yémen 예멘에서 완전히 실패한 사우디아라비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1월호.
(6) Angélique Mounier-Kuhn, ‘Sous blocus, la presqu’île du Qatar prend le large ‘세계 최고 부국’, 카타르의 생존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10월호, 한국어판 12월호.
(7) ‘A Western plot to dish the Arabs’, <The Economist>, 런던, 2013년 11월 12일.
(8) Mehdi Chebil, ‘Une légion d’honneur au maréchal Sissi en catimini… qui finit par faire du bruit 이집트의 알시시 대통령에게 은밀하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수여된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고 있다’, <France 24>, 2020년 12월 15일.
(9) <AFP>, 2020년 12월 7일.
(10) Allison McManus, ‘The Egyptian military’s terrorism containment campaign in North Sinai’, 카네기국제평화기금, Washington, DC, 2020년 6월 30일.
(11) Habib Ayeb, ‘Qui captera les eaux du Nil? 누가 나일강의 물을 차지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7월호.
(12) “Means our death” : Egyptian farmers fear effect of Ethiopia dam, Al-Jazira, 2020년 8월 20일, www.aljazeera.com
(13) Sarra Grira, ‘Émirats-Israël. Mohamed Ben Zayed creuse son sillon au Proche-Orient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 중동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모하메드 빈 자이드’, <Orient XXI>, 2020년 8월 18일, https://orientxxi.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