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파베르, 밀턴 프리드먼에 도전한 ESG 전도사

2021-09-30     상드라 뤼크베르 l 작가

지난 3월 에비앙, 액티비아 등의 브랜드로 잘 알려진 프랑스 최대 식품기업 ‘다논’(Danone)의 최고경영자(CEO) 에마뉘엘 파베르 회장이 해임된 것은 프랑스 현지 언론은 물론 글로벌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미래 세대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 철학을 뜻함 - 역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다논의 최고책임자가 주주 행동주의 펀드에 의해 해임됐기 때문이다. 다논은 1960년 설립부터 사람 중심 경영을 내세우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책임경영의 모범기업으로 손꼽혀왔다. 파베르 회장도 그런 전통을 물려받아 ‘책임 있는 자본주의 옹호자’로 불리며 주주뿐 아니라 환경·임직원·공급망을 존중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을 선도하는 경영전략을 펼쳐왔다. 탄소감축을 위해 상장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탄소비용을 톤(t)당 35유로로 평가해 순이익에서 공제하는 ‘탄소조정 주당순이익제’를 도입했고, 생산라인을 비롯해 전 사업부를 탄소저감 체계로 전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 경쟁사 대비 부진한 매출실적과 주가 하락에 대한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해임되고 말았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ESG에 주목하고 투자 열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ESG의 대표주자가 투자자들에게 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번 해임을 주도한 ‘블루벨 캐피털 파트너스’(블루벨)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떠오르는 주자다. 블루벨은 다논의 ESG 경영전략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파베르는 주주들의 이익 추구와 다른 이해관계자들과의 책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라고 해임 사유를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단기적 경영실적과 주주 수익성에 우선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과 함께 앞으로 주주 이익과 ESG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충돌 문제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 이 글은 에마뉘엘 파베르가 해임되기 전에 작가 상드라 퀴크베르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블로그에 기고한 것으로, 지난 8월에 출간된 『Le nouveau monde. Tableau de la France néolibérale 새로운 세계. 신자유주의적 프랑스의 모습』에 게재됐다.

 

나는 다논의 CEO 에마뉘엘 파베르의 굉장히 독특한 개성에 매료됐다. 그는 기독교적인 믿음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행동으로 우리를 자본주의의 폐해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별하면서도 진부한 형태의 이 글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에 의한 자본의 자기 조절’을 다룬 지난 20년 동안의 나의 모든 글과 맥을 같이한다. 이 글이 책으로 엮어지는 동안, 다논 CEO로서 파베르의 운명은 끝났으나, 1인칭 화자 형식의 글을 통해 그의 내면의 세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I.

 

1.

많이는 못 보셨겠지만, CEO도 생각이란 걸 합니다. 제게도 생각이 있어요. 저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일은 모든 부분과 관련돼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적 정의 사이의 균형, 최대한의 배당금과 모두의 평등 사이의 균형, 그리고 저와 저 사이의 균형과 같이 말이죠. 저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늘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일신론은 효율적이고 일관적입니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저의 ‘자아 찾기’ 과정에서 두 번의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인내하는 것. 덕분에 저는 유일하고, 다루기 쉽고, 효과적인 저만의 콘셉트를 개발해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절제된 어리석음입니다.

 

2.

당신은 이미 잊었겠지만,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는 것은 수 세기에 걸쳐 증명된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이 방법을 아주 멀리, 저와 성이 같은 그분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제 이름이 괜히 에마뉘엘인 게 아니었어요. 저 에마뉘엘에게는 직감이 있습니다. 제 직감에 따르면 우리는 이번 세기에도, 다음 세기에도 계속해서 자본주의자일 것입니다. 기업에는 선택권이 없다는 교리가 지난 40년 동안 우리를 지배해 왔습니다. “선(善)은 기업과 어울리지 않는다”, “기업은 주주들의 것이다”라는 논리입니다. 자본주의자는 절제를 모르는 염병할 놈이라고, 이 교리는 40년 동안 반복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저는 상업 은행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는 20세였고, 지금은 60세가 다 돼갑니다. 그동안 저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자본주의의 미덕이 재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본주의자에게 ‘염병할 놈’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제 이름의 Faber가 ‘하다’, ‘만들다’라는 뜻이거든요. 

 

3.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은 이렇습니다. 저는 당신이 크리스마스를 위해 주문한 CEO입니다. 저는 자의론(Egodicy, 나 자신은 바르고 의로운 존재라는 이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시스템을 신뢰하고, 저의 시스템도 저를 신뢰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문제는 저로부터 시작되므로, 문제의 해결도 저로부터 가능할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보세요. 제 자신이 제 논리의 핵심적인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논리에 당신의 안위가 달려있습니다. 

 

4.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CEO는 높고 고귀한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CEO에게 좋은 생각은 없지요. 자의론은 라이프니츠의 신의론(Theodicy)을 본떠서 제가 만든 어리석은 개념입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저 같은 CEO는 라이프니츠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이 선하고 전능한 완벽한 존재라면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와 같은 좋은 질문을 던진 사람입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이 질문을 현대화시켜 봅니다. ‘CAC 40’(프랑스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40개 우량 종목)에 포함되는 우수한 기업을 이끄는 저 같은 CEO가 사회적 정의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데도,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악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저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해악을 부리는 순간을 경험할 일이 없지요.

최고로 어리석은 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모든 것은 관대하고 친절합니다. 만약 모든 것이 선하고 전능한 존재에 의해 이미 결정돼 있다면, 악은 곧 지나갈 일시적인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있다면 악독한 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밀턴 프리드먼이 있습니다.

 

5.

자본주의자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밀턴 프리드먼이 등장한 이후부터입니다. 매력적인 교리, 타락한 소명, 모두 밀턴 프리드먼의 소행입니다. 모두가 연필의 기적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협력하게 만드는 가격 시스템, 심지어는 서로 증오하는 사람들까지 연필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을 찬양하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프리드먼은 도덕적 타락을 주동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릅니다.

저는 자본의 수도자이고, 다논(Danone)을 경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반대 의견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냈습니다. 밀턴의 이론에 반박할 수 있는 생각들입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얼마나 자본주의와 가깝고도 먼지, 어떻게 자본주의에 찬성하는 동시에 반대하는지, 그리고 왜 자본주의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탑 위에서 고행하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6.

저는 미덕의 꼭대기에 앉아 있습니다. CAC 40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청렴하고, 절제력 있고, 예민한 저는 욕구를 억누르는 편입니다. 저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고, 어떠한 의심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저 혼자 남들과는 다른 말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본주의 사회에 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구원받을 방법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는 쉽게 속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이미 부러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도덕뿐입니다. 제 손은 눈에 잘 보이고, 제 팔은 도덕적으로 잘 움직입니다.

 

7.

생각의 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제 마음속에는 두 개의 별이 있습니다. 바로 칸트와 그리스도입니다. 제 이름은 에마뉘엘입니다. 비록 칸트는 자신의 성인 can’t(할 수 없다)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저의 성인 Faber는 라틴어로 ‘하다’라는 뜻입니다. ‘할 수 있다’는 제가 종종 되뇌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에마뉘엘입니다. 제 손은 프리드먼의 보이지 않는 손과는 다릅니다.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에마뉘엘입니다. 저의 소명은 시장 경제 속에서 도덕적 법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열정적이었습니다. 내면의 정신적 연결선들이 붙잡고 있는 자의론을 날마다 점검했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손으로 일일이 조정했습니다. 

 

8.

당연한 말이지만, 몇 번의 위기를 거쳐야만 그처럼 흔들리지 않는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있던 높고 견고한 고행의 탑을 공격하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어떤 행복한 순간을 기점으로, 저는 통합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떤 불행한 순간을 기점으로, 저는 정신분열증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두 개를 합하자 저는 해방됐습니다. 그 이후에 저는 현실 속에서 엄격한 선택을 했습니다. 제 안의 희망은 남겨두고, 분리는 지워버렸습니다. 더는 갈등과 지배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결핍도 도덕적인 능력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누군가가 질문을 했을 때 저는 진지하게 답했습니다. 그런 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9.

인간의 조건에 관한 이런 엄격한 선택을 통해, 저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지적 개념들을 완전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확신과, 장애물과, 외부의 압력을 거부하고, 경제 및 정치 기관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핵심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리석음은 고행이고, 영적인 수행입니다. 자발적으로 머리를 비우고, 안 된다는 생각을 멀리하고, 오직 ‘선’을 위해서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도덕적 비약을 이룰 수 있습니다. 프리드먼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들을 추상화하고, 비도덕적인 말로 우리의 물욕을 자극했습니다. 그것도 오직 말로만 말입니다.

 

10.

밀턴 프리드먼은 우리에 대해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해방시키러 왔노라.” 그리고 또 말했습니다. “기업에는 주주들의 수익을 최대로 만드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의무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렇게 연필은 조립되고, 사람들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 마법처럼 서로 협력하게 됩니다. 그는 우리를 속였습니다. 지금 저는 잘못된 것이 무엇이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렇게 연필은 계속해서 만들어졌지만, 그만큼 불화도 계속해서 생겨났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불화. 사람과 자연 간의 불화. 불화 속에서 연필을 만들어낸 대가로,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화하는 상태에 직면했습니다.

 

11.

이와 같은 재앙이 닥친 것은 그 가짜 설교자 때문입니다. 바로 그가 자본주의자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욕보였고, 그들을 어리석은 자로 만들었습니다. 염병할 놈들 때문에 자본주의는 폭력적으로 변했고, 우리의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염병할 교리는 우리를 정신분열증에 빠뜨렸고, 우리를 사회적 정의와 선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분리됐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고, 우리를 강요하고 속였습니다. 자본주의의 어리석은 핵심을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했습니다. 절제된 어리석음은 밀턴 프리드먼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벌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평온한 얼굴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정신분열증은 사라질 것입니다.

 

II.

 

1.

오늘날의 세계가 처해있는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위기라고 하지만, 저는 혁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저에게는 직감이 있거든요. 

 

2.

우리가 직면한 재앙 같은 상황 때문에 울지는 마세요. 다논의 CEO로서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사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있고, 제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두 개가 분리돼 있으면 편리하지요. 밤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임감을 더 느끼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책임감을 덜 느낄 테니까요.

 

3.

모든 것은 전략과 관련돼 있습니다. 저의 경제적 행동력을 생각해 봅니다. 당신들을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 것은 CAC 40 이후부터였습니다. 다논은 세계 1위의 플라스틱 소비 기업이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잘못된 분유를 판매해 인도네시아 아기들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으며, 자원을 고갈시킵니다. 여기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계 1위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말했습니다. “나에게 지렛대를 달라, 그러면 내가 세상을 들어 올릴 것이다.” 제가 바로 그 지렛대입니다.

 

4.

대기업들은 우리의 일상을 좌지우지합니다. 그들은 그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선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어리석게 생각한다는 것은, 선이 전권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5.

다논에는 이를 증명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1972년 당시 다논의 경영자였던 앙투안 리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에 유익하지 않은 기업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이후에 저는 영어로 된 슬로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One planet, One health (하나의 지구, 하나의 건강)’. 다논은 전 세계 곳곳에 9억 명의 소비자, 30만 명의 주주, 10만 명의 직원, 20만 명의 농부와 연결돼 있습니다.

 

6.

저는 당신들에게 이야기하듯이 그들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해야 할 선과 하지 말아야 할 악에 관해서요. 세력을 점점 넓혀가는 그 악에 관해서 말입니다. 식료품의 생산 및 공급 과정은 위생 문제를 초래합니다. 식수 부족은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용해 엘리트들은 돈을 법니다. 그런 세상은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다음을 봅니다.

 

7.

어리석은 경영자는 마치 치료사와 같습니다. 다른 에마뉘엘이 눈이 먼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악마에 쓰인 사람, 마비 환자,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말을 못 하는 사람, 간질 환자를 만났습니다. 에마뉘엘이 말을 하자, 그들은 치료됐습니다.

저는 금융 자본주의를 마주합니다. 탐욕, 불평등, 자신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는 경영자들. 저는 무너지는 식료품 모델을 마주합니다. 당뇨병, 비만, 소금, 설탕, 플라스틱, 탄소, 그리고 혹사당하는 땅. 저는 최악을 위해 포장된 시장과 마주합니다. 

 

8.

식료품은 우리 모두와 지구 사이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집을 관리하는 것처럼, 경제는 우리 모두를 가깝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제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에는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식료품과 경제는 거래이기 이전에 관계입니다.

 

9.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제가 자꾸 추상적으로 돼갑니다. 말 안 했던가요? 제가 요즘 철학서를 읽고 있거든요.

 

10.

저도 그렇지만, 관계 속에서 비로소 올바른 삶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교리는 우리를 거래의 유혹에 빠뜨렸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서로를 공격합니다. 자본주의는 거래의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거래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시장 경제와 식료품 생산 과정은 우리를 단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분리했습니다.

 

11.

우리는 울타리 없는 세상에 고립됐습니다. 대기업들은 의심의 대상이 됐고, 통치자들의 신용은 떨어졌습니다. 시민들은 노란 조끼, 즉 안전 조끼를 입고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밤에 길을 잃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람들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손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12.

교회가 파괴된 사실을 알게 된 유대 민족은 망연자실했습니다. 유대 민족은 암흑 속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밤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모든 것은 새로 시작합니다. 2014년 다논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저도 어쩔 수 없이 조직의 관행에 따랐습니다. CEO가 되자 저는 세 종류의 사람들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겁에 질린 세 종류의 사람들, 직원, 소비자, 주주는 서로를 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못마땅해 하겠지만요.

 

13.

하나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통합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시장의 전략적 균형을 고려해서, 저는 세 개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주주들에게는 거래의 언어를 사용하여 관계의 중요성을 피력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관계와 신뢰의 언어를 사용하여 거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직원들과 협력업체들에게는 충성심을 강조하여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14.

저는 그들에게 새로운 동맹 관계를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15.

프리드먼이 만들어 놓은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는 주주들을 변질시켰습니다. 주주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들이 마치 거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모든 악은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역할을 한정 짓는 데서 모든 악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저 호모 ‘파베르’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도구를 찾았습니다. 

 

16.

교리에 사로잡힌 다논의 주주들이 저의 ‘어리석은’ 말을 듣고 질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파베르, 그건 말도 안 돼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아무리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해도 굳이 다논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을까요? 돈을 더 벌 수 있는데도 왜 덜 벌기를 원하는 거죠? 당신이 원하는 왕국은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해요. 결국 배당금에 손을 대고 말 거예요. 

 

17.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주세요. 제 말이 당황스러우셨을 거예요. 당신은 이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당신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나요? 사실 어리석음은 미래에도 계속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화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집약 농업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요. 부디 제가 하자는 대로 따라 주세요. 우리가 선구자가 될 겁니다.

 

18.

과거의 독은 사라질 것입니다. 살충제, GMO, 오염, 혹사당한 땅, 이 모든 것은 이제 끝났습니다. 저는 시장을 연구하고, 시장 깊숙한 곳의 흐름을 읽습니다. 시장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시장의 지표들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표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저의 약속입니다. 하나의 지구, 하나의 건강. 

건강은 값을 매길 수 없다고 했나요? 제가 상대하는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들의 호의, 저희의 현금 흐름, 그리고 당신의 이익. 다들 잘 듣고 계시죠?

혁신의 다논, 품질의 다논, 경쟁 우위의 다논. 이미 그것들은 실현되고 있고, 저도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유일한 목표는 어리석은 품질 혁신입니다.

 

19.

그들은 저를 따랐습니다. 우리는 함께 암흑 속을 통과했습니다. 미국에서는 GMO 제품 15억 개의 판매를 중단했고, 2020년에는 병의 탄소 중립을 달성했습니다. 우리와 거래하는 농부들은 매년 3,000유로를 더 벌게 됐습니다. 다논은 비콥(B-corp)이 됐고,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다논의 CEO인 저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다논의 어리석은 품질 복음서를 들고 다닙니다. 성서의 마케팅입니다. 

 

20.

그 덕분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마음이 생겨났고, 그 덕분에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마음을 바꾼 주주들은 우리의 소비자, 직원, 협력업체가 됐습니다. 제가 계획한 하나의 행동, 하나의 목소리 프로그램이 우리의 공동체를 다시 세웠습니다. 

 

21.

저는 진지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III.

 

1.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제 인생은 잠시 멈췄습니다.

 

2.

저는 살아오면서 제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무언가를 경험해 본 적이 네 번 있습니다. 첫 번째 경험은 제가 어렸을 때, 10살이었을 때 알프스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3.

아래쪽은 아직 밤이었고, 위쪽은 벌써 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비탈길과 눈과 저는 서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이 반짝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됐습니다. 어두운 계곡의 바닥에서 저의 삶에 후광이 비췄습니다. 그 특별한 순간이 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간절히 바랐던 양지로 당신이 저를 인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길을 찾는데 자그마치 40년이 걸렸습니다.

 

4.

왜냐하면 저는 오랫동안 길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저는 어두운 계곡의 바닥을 지났습니다. 15살이 되자 어둠이 저를 덮쳤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의 폭력에 의해 구석진 곳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약한 자 대 강한 자. 최초의 통합은 실패했습니다. 제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집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에마뉘엘 파베르라고 쓸 건지 아니면 아무것도 쓰지 않을 건지를 고민합니다. 결국 저는 아무것도 쓰지 않습니다.

 

5.

이런 무의미한 시간들을 거쳐 오늘날의 제가 됐습니다. 저의 일부분은 무너졌고, 저의 이름은 잊혔습니다. 에마뉘엘은 히브리어로 ‘신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에마뉘엘은 길을 잃었습니다. HEC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파베르가 됐고, 에마뉘엘을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6.

우리는 이렇게 자문하곤 합니다. ‘세상의 근심을 없애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어떻게 나는 오늘날의 내가 됐을까?’ 

 

7.

저에게는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 받는 남동생이었지요. 남동생은 농학도였고, 치즈 장인이고, 선의 제공자였습니다. 남동생은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의 정신분열증을 함께 가져갔습니다.

 

8.

오늘날의 저를 있게 한 것은 바로 남동생입니다.

 

9.

2016년에 저는 HEC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마치 앞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듯이 저는 강연을 했습니다. 당신들은 지렛대(Lever)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렛대를 어떻게 사용할 건가요? 저는 저의 이야기, 다른 이의 이야기를 하러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10.

제가 비즈니스 그랑제콜인 HEC에서 보낸 3년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밤 9시, C동. “파베르, 네 전화야.” 전화기 너머로 저의 남동생이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1.

저의 막내동생은 모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세상의 양지에 살면서 신과 접촉했습니다. 얼굴은 완전히 지쳐 있었습니다. 도로 청소부에게 커피를 가져다주고 간호사 모자를 쓰고 다니는, 바위 위에서 기도하는 성자. 초자연적으로 지쳐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짓눌려 있던 동생. 동생은 농업을 공부했지만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이후로는 학업도 일도 전부 다 그만두었습니다. 파베르, 네가 나설 차례야. 동생은 이 세상을 놓아버렸습니다.

 

12.

파베르가 나섭니다. 이제 “내가 할게”라고요. 저는 주식공개매입을 개시하고, 전용기를 타고, 어마어마한 돈을 법니다. 저 파베르는 권력자들을 위해 일하고, 경제에 돈이 돌게 하고, 인류의 앞날을 두고 밤새 협상을 벌입니다. 

자기 마음의 어느 부분에 어둠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어떤 날은 싱가포르에서, 어떤 날은 시드니에서, 저는 매일매일 동생의 전화를 받습니다. 자동응답기에서는 말은 들리지 않고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립니다.

동생은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동생이 떠나자 저만 홀로 세상에 남았습니다. 마치 동생이 제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에마뉘엘이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파베르에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13.

임무 수행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그 임무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14.

저는 프리드먼을 위협했습니다. 저는 정신분열적인 경제를 부인했습니다. 저는 한 자선 단체로 몸을 피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고, 에마뉘엘을 다시 만나기 위한 준비였지요. 마태에게 제 의도를 내비쳤습니다. 마태가 저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네 자신에게 물어보라. 만약 네가 자본주의를 버린다면, 너의 재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15.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40일을 광야에서 보내면서 세 차례 시험에 들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CAC 40에서 제 능력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자본주의 안에 있으면서도 그 폐해를 답습하지 않는 것. 저는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16.

그러나 의심 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제게 물었습니다. “지금 광야에서 전도하시나요, 에마뉘엘 파베르씨?”, “일개 경영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17.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다른 대기업 경영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법 개정을 요청합니다. 기업의 목표는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는 내용이 민법에 포함됐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기업 소유주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18.

저는 이런 말을 해야 했습니다. “주주들의 수익 최대화.” 제가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말하고, 말하고, 또 반복했었는지요? 저는 거의 명령했습니다. 그것은 저를 분열시켰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 공동 담론을 수정하겠습니다.

 

19.

당신이 퇴직 후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혜택들을 거부한다고 칩시다. 어떤 반응을 기대하시는 건가요? 상징적이라는 것 말고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단 한 번만 움직이면 당신은 여기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황금 낙하산 없이도요. 하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직원들은 어떨까요?

 

20.

제가 물건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금속 고리입니다. 등산가들은 이 금속 고리를 기점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추락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본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기점부터는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출구는 저 위쪽에 있으니까요.

 

21.  

돌을 빵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주들을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정말로 생각하시나요? 당신의 약속을 증명할 방법이 있나요?

 

22.

저에 관한 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목은 ‘과거의 거품 뿜는 말을 잊지 말라’입니다.

저는 다음 문구를 읽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뉴욕의 밤길을 걷다 보면, 이로쿼이족의 성스러운 숲에서 어떤 소리가 들린다.” 알곤킨족은 뉴욕의 마천루들을 ‘천 개의 언덕이 있는 섬’으로 표현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그저 겉모습에 불과합니다. 저는 눈앞에 보이는 것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면 그 이면을 보아야 합니다.

 

23.

기업이 배당금을 위해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어딘가에 쓰여 있기를.

 

24.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대담 프로그램의 진행자 살라메가 저에게 묻습니다. “에마뉘엘 파베르씨, 코로나19 보건 위기의 초기에는 다논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대량 해고를 결정하셨어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다른 경영자들과 마찬가지가 된 건가요? 사회적 경영자를 표방하셨지만 결국에는 주주들의 압력에 무릎을 꿇으신 건가요?”

 

25.

우리에게는 유토피아를 건설할 의무가 있다고 제가 일전에 말했지요. 하지만 동시에 실용주의를 실천할 절대적인 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논의 주주들은 중요합니다. 마태는 공화주의자였지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주들은 고통을 받고 있고, CEO로서의 저의 역할은 균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26.

에마뉘엘 파베르씨, 수많은 기업이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배당금 지급을 중단했습니다. 다논만 그러지 않았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러면서도 코로나 19로 인한 다논의 손실은 없었습니다. 다논은 소위 말해 코로나19의 승리자 중 하나로 꼽힙니다.

 

27.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주주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고객의 욕구도 만족시켜야 할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연결해주는 약속입니다. 배고픈 자와 목마른 자 모두 우리에게 오라.

 

28.

하지만 직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약속 같은데요, 에마뉘엘 파베르씨. 배당금의 의미가 결국 그것 아닌가요?

 

29.

당황스럽네요.

 

30.

지금의 위치가 두려우십니까?

 

31.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글·상드라 뤼크베르 Sandra Lucbert 
작가, 일드프랑스의 지원을 받으며, 현재 프랑스국립현대예술출판센터 (CNEAI)에서 거주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번역·김소연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