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보통사람들은 전쟁을 멈출 권리가 있다”
노엄 촘스키 인터뷰
촘스키는 최근 미국의 진보적 매거진 <자코뱅(Jacobin)>과의 대담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미국의 제국주의 기조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벌인 전범 행태들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그는 “여전히 보통사람들이 전쟁광들에게 저항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털어놓았다.
- 9·11 사건 이후 20년이 지났다. 이 사건 이후 태어난 미국의 성인들도 꽤 많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이행하면서 전쟁을 끝냈다. 그런데, 이것이 한 시대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지? 미 제국주의의 종식, 아니면 적어도 새로운 대외정책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인지…
“철군이 미제국주의 정책에 영향을 줄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최근 언론의 논조는 천편일률적으로 미국이 쏟아 부은 전쟁비용에 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20년 전을 기억하는 기사들 중 흥미로운 것들이 많지만, 웃기는 이야기들이다. 애당초 전쟁을 일으킬 만한 합리적 근거는 전혀 없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할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은 혐의자였다. 조사하려는 혐의자가 있다면 조용히 경찰력을 동원하는 게 상식이다. 9·11 사건의 배후를 전혀 몰랐던 미국의 경우, 우선 빈 라덴을 구속해 진상조사를 해야 했다. 8개월이나 지나서 열린 첫 FBI 기자회견에서 당시 로버트 뮬러 국장도 인정한 사실이 하나 있다.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수사 가운데, 뮬러는 9·11 배후에 알카에다와 빈 라덴이 있다고 짐작하지만 아직 물증을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우선 폭격부터 하고 나서 증거를 찾는다는 소리다.
이제야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2001년 탈레반은 미국에 항복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어깨에 힘을 꽉 주고 “우리는 항복하는 자들과 협상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항복을 제안하며 탈레반이 요구한 것은, 자신들의 리더가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다. 9·11과 관련된 증거도 없는데, 탈레반에게 격조 있는 삶을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탈레반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거처를 제공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미국은 어떤가? 미국이야말로 우리 시대 최악의 테러범죄자들에게 안전한 거처를 제공해왔다. 이미 FBI가 테러리스트로 인정한 쿠바출신의 오리안도 보쉬와 루이스 파사다에게 신변보장과 플로리다 거처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테러리스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1976년, 73명의 목숨을 앗아간 쿠바나 항공 테러 사건(1976년 10월 6일, 자메이카 바베이도스에서 쿠바 하바나로 향하던 Cubana 455편/DC-8기가 폭탄테러로 인해 조종사와 승객 73명이 사망한 사건)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 이렇게, 미국은 자신들이 하는 짓은 ‘재미난 게임’, 다른 이들이 하는 짓은 ‘테러’라고 해왔다.
영국 매체의 중동 및 중앙아시아 전문기자 아나톨 리에벤이 아프간내의 반(反) 탈레반 저항세력 리더인 압둘 하크를 인터뷰했다. 하크를 비롯해, 다수의 반 탈레반 지도자들은 미국의 침공을 격하게 비난했다. “미국은 세상 사람들을 겁박하며, 힘을 과시하고 우월감에 취해있다. 미국은 아프간 국민들이 당할 고통과, 죽음에는 관심이 없다.” 이 인터뷰 후, 곧 하크는 탈레반에 의해 사살됐다. 당시 미국의 주류언론들은 하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을 비웃다가 이제야 하크가 옳았다고 인정한다. 미국이 제국주의를 끝낸다?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통해 내린 결론은, ‘돈이 너무 많이 들었으니 더 경제적인 방법을 찾자’라는 것이다.”
- 당신은 “미국인들은 아프간 철군 사태에서 전쟁비용을 떠올리며, 그 돈을 사회복지 등 자신들을 위해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만 빠져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당신은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도덕적 이슈이며 20년 동안 공포 속에서 살아온 아프간 국민들에게 빚을 진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한층 건설적인 진단은 없을까? 철군과 함께 미국이 아프간 국민들에게 진 빚은 무엇인가? 여하튼 일련의 사태는 미국에 의해 자행된 엄청난 파괴행위였다.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당신이 제시한 방향이 맞다. 바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이 미친 전쟁을 위해 무려 7,530억 달러(약 9,300조 원)의 국방예산이 투입됐다. 그 결과 국내경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예산이 절실한 곳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아프간 문제를 떠나 이런 낭비는 심각한 문제다. 미국은 아프간의 붕괴에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붕괴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아프간 난민의 수용이다. 관료제도의 방해 없이 말이다. 그들은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한 각종 제재를 끝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벌할 근거가 없다. 그들에게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굶주리는 이들은 탈레반이 아니라 아프간 국민들이다. 제재는 지도자가 아닌 국민들을 벌하는 행위다. 이라크,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도 똑같았다. 제재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은 60년대 쿠바 카스트로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스트로를 축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불만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쿠바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정부를 전복시키자는 속셈이었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미명 하에 피그만 침공을 개시했고 그 결과 1962년 세계는 일촉즉발의 핵전쟁을 볼 뻔했다. 쿠바 제재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한층 강화됐다. 러시아가 떠난 후 쿠바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클린턴은 보수적인 전임 조지 H.W. 부시보다 한 술 더 떴다. 보란 듯 쿠바 제재 강도를 높인 것이다. 쿠바 국민들을 배고픔에 굴복하게 만들어, 카스트로를 제거하겠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지금 아프간을 상대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제재 형식은 제3자가 부여하지만, 모든 나라가 따라야만 한다. 따르지 않는 나라는 국제금융 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된다. 즉,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야말로 테러국가의 전형이다. 아프가니스탄 제재 역시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또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아프간에 향해 막고 있는 자금줄을 열어야 한다. 이 두 기관은 미국의 의도에 따라 자금줄을 막고 있다. 이제 그만둬야 한다. 우리는 탈레반과 그곳 국민들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1980년대 말, 좋은 해결책이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아프간의 여성을 걱정하고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80년대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아프간의 나지불라 정권은 여권을 보장했다. 당시 아프간 여성들은 대학진학이 가능했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 다녔다. 오히려 여성을 탄압하는 이들은, 미국이 지원하는 걸버딘 헤크마터 등 회교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유로운 복장을 한 여성들의 얼굴에 양잿물을 뿌렸다. 믿을만한 현지 기자들이 이와 관련 기사를 썼고 미국언론에도 전송했지만, 어느 매체에서도 게재하지 않았다. 소련과의 냉전 때문이었다.”
-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을 언급하자 탈레반 치하에서 벌어질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미디어가 갑자기 늘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배운 것들 중 하나는 ‘인도주의적’ 개입이 항상 인도적인 결과를 남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우리가 망쳤으니 우리가 고쳐놔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아무런 권한 없이 아프간에 재앙을 던졌고 따라서 짐 싸서 떠나라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진보주의자들의 일관된 지지를 끌어낼 만한 인도주의적 지원, 즉 제재를 풀고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하는 것 이외에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권신장을 위해 진심으로 일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책을 만들지는 않는다. 첫 번째 인도주의적 개입의 신호는 파괴를 막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파괴와 테러를 막을 수 있다면 바람직한 출발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의 책임자인 조지 W. 부시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었고 두 나라는 파괴됐다. 또 과거에는 문제없었던 소수 민족들간의 충돌이 만연하다.
하지만 부시는 좋은 일도 했다. 아프리카 의료원조가 좋은 예다. 이것이야말로 인도주의적 개입이다. 우리는 당장 라틴 아메리카, 카리비안 국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 백신을 공급해주는 인도주의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바이든은 이런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무상백신을 공급하자는 ‘피플백신 운동’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피플백신은 제약회사의 터무니없는 지적재산권으로부터 특허를 풀어서 전 세계로 무상공급하자는 시민단체다. 빌 클린턴과 WTO내의 신진자유주의 신봉자들이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무역에 대한 급진적 공격이다. 이것이 진심이라면 우리는 많은 국가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백신 제조를 도와야 한다.
쿠바를 다시 보자. 우리 시대 최악의 참극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전 세계가 미국의 대쿠바 경제제재를 반대한다. UN에서 마지막으로 쿠바와 관련해 투표했을 때, 결과는 184대 2로 미국의 경제제재를 풀자는 것이었다. 반대한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 2개 국가뿐이었다. 미국은 지지를 받지 못했고 보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쿠바가 미국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봉쇄라는 응징이 취해진 것이다. 60년대 국무부는 미국에 저항하는 나라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쿠바에서 자행된다는 온갖 종류의 인권 스토리를 양산했다. 쿠바에서 지구상 최악의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쿠바의 남동쪽 코너에 있는 ‘관타나모 베이’에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미국이 무력으로 점령해놓고, 돌려주기를 거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이야말로 역사상 최악의 인권유린이다. 항구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미국이 쿠바로부터 무력으로 탈취한 관타나모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사태는 당장 멈춰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도주의적 개입이다.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런 일들을 보면, 진정한 인도주의적 개입은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무력을 손에 쥔 강대국의 모든 행동을 ‘인도주의’라고 말한다.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다.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을 감행했을 때도 폴란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서기 400년대 중반 훈족 출신으로 유럽을 지배했던 아틸라왕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면 그 역시 인도주의적 전쟁을 일으켰다고 했을 것이다.”
- 조지 W. 부시에 대해 말했는데, 진보주의자들에게 그는 요즘 새롭게 거듭난 사람처럼 보인다. 부시가 악마의 화신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시작부터 정당성이 없는 두 번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무기력한 바보였고 장막 뒤에서 전쟁을 기획한 딕 체니의 하수인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부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는 미셸 오바마의 친한 동네 화가로 변신했다. 언론은 바이든의 아프간 철군을 ‘실패한 작전’으로 보도했다. 그들은 바이든이 벗어나기 힘든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며 연말 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를 예상한다. 반면 부시는 전쟁범죄자라는 불명예를 벗은 듯 보이는데, 현대사에서 미디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말해달라.
“헨리 키신저도 있다. 현대사에 있어서 최악의 전쟁 범죄자이지만 여기저기에서 셀럽 대우를 받고 있다. 1970년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부하였다. 내가 아는 한, 미국 역사상 그 정도로 상급자에게 아부한 사람은 드물다. 미 공군에 보낸 명령을 보면 ‘무자비한 캄보디아 폭격… 날아다니거나 움직이는 모든 것을 상대로…’라고 적혀있다.
역사적으로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는 일이다. 말에서 그친 게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소름끼치는 폭격이다. 인도 지역에서 벌어진 일을 보자. 헨리 키신저는 파키스탄의 벵갈 동부지역 파괴 공격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수백만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키신저는 인도를 향해, ‘이 작전을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협박했다. 이유는 단지 중국의 마오쩌둥과 약속한 사진촬영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키신저와 마오쩌둥이 만나 악수하고 데탕트 선언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파키스탄을 통해 이뤄진 일이었다. 뱅갈에서의 살상은, 순전히 키신저의 사진촬영을 위한 것이었다.
칠레는 또 어떤가? 키신저는 칠레 국민의 지지를 받던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두 가지 방법으로 거사를 도모했다. 하나는 군사쿠데타 지원, 다른 하나는 칠레 국민들의 삶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키신저는 1973년 9월 11일 사상 유례없이 포악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정부의 출현을 성공시켰다. 이 사건이 최초의 ‘9·11’이다. 2001년은 두 번째 9·11인 셈이다.
칠레 버전의 첫 번째 9·11은 언급하기조차 힘든 사건이다. 피노체트 치하에서 3만 명의 사람이 죽고 50만 명이 고문을 당했다. 아옌데 정부가 군사쿠데타로 전복되고 극악무도한 독재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테러와 고문, 공포 정치가 시작됐다.
미국은 환호했고 칠레의 군부독재 정부를 위해 돈줄을 풀었다. 아옌데 정부에 금융제재를 걸었던 수많은 국제 금융회사들도 미국처럼 자금을 대주기 시작했다. 지난 40년 동안 세상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자들은 신이 났다. 그리고 독재정부의 자문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신자유주의의 대부이자 독재를 찬양해온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칠레를 방문했다. 그는 피노체트 치하의 ‘자유’를 찬양하며, ‘칠레 국민 중 아옌데 시절보다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라고 떠들었다. 고문실의 신음소리, 칠레 국민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하이에크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2001년, 두 번째 9·11이 일어났다. 이때 춤을 춘 지하드 세력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만, 실상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쁜 짓을 했다. 9·11 20주년 때 첫 번째 9·11을 언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첫 번째 9·11은 두 번째 9·11 보다 더 잔혹한, 최악의 사태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우리 자신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자주 등장하는 ‘항구적 전쟁(Forever wars)’이란 용어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바이든 대통령이 항구적 전쟁을 끝냈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도대체 언제 이 항구적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인가? 영국이 미국에서 완전히 철군했던 1783년부터인가. 당시 영국은 서쪽의 아팔레치안 산맥을 경계로 하는 소위 ‘인디언 국가(Indian Country)’에 대한 식민지 주민들의 침입을 금지했고, 지금 그곳은 ‘인디언 네이션(Indian Nation)’으로 불린다. 영국은 미국의 확장을 봉쇄했지만, 미국은 확장을 멈출 의사가 전혀 없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부동산 투기업자였던 미국 대통령들은 공개적으로 인디언 멸종을 원했다.
곧바로 미국은 인디언 네이션을 상대로 잔인한 전쟁을 시작했다.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인디언 멸종정책, 분산정책이 시작됐다. 인디언과의 협정은 깨기 위해 존재했다.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영토확장을 위해 신이 부여했다는 ‘운명론(Manifest Destiny)’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인디언 멸종정책을 한층 거세게 밀어붙였다.
인생 말기에 그는 ‘우리는 배신을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냉혹함으로 그들(인디언들)을 몰살시켰다… 불운한 종족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그의 탄식은 이미 오래전 자신이 시작한 전쟁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은 그 이후에 나타났다. 인디언을 향한 범죄는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졌다. ‘인종대학살’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았다. 토머스 베일리는 이를 ‘방어적 전쟁’이라고 명명하며, ‘식민지 주민들이 자유를 확보한 이후 나무와 인디언을 없애고 영토확장을 도모했다’라고 저술했다. 그런 과정에서 멕시코의 절반과 하와이를 강탈했다.
미국은 건국 이후 매년 전쟁을 치렀다. 희생자가 속출했다. 아무도 이 전쟁들의 대가를 묻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묻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비용이 많이 드는 항구적 전쟁만을 생각한다.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에 게재된 좋은 기사가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 아프간 전쟁으로 발생한 심각한 대가에 관한 기사다. 하지만 건국 이후 250년 동안, 우리가 살상하고 공격하고 파괴한 사실에 대해 반성하자는 언론은 없다.
<뉴욕타임스>의 사뮈엘 모인 기자의 글도 있다. 그는 미국이 ‘인도주의적 전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전쟁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지만, 이전보다는 ‘인도주의적’이라고 평한다. 그는 ‘인도주의적 전쟁’의 예로 조지 H. W. 부시의 쿠웨이트 침공을 거론했다. 그는 이 침공이, 과거에 비해 매우 인도주의적 전쟁이라고 묘사한다. 정말 그럴까? 농부 출신의 이라크 병사가 쿠웨이트에서 후퇴할 때 미군은 불도저를 동원해 그들을 땅에 파묻어 죽였다. 공군은 군사시설이 아닌 이라크의 사회기반시설을 모두 파괴했다.
쿠웨이트 침공이야말로 싸울 이유가 없었던 전쟁이었다. 외교적 해결책들이 무수히 있었음에도,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은 외교적 해결책들을 무시해버렸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실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보다 두 달 전 일어난 미국의 파나마 침공과 다를 바 없었다. 역사가 모두 기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어떤가? 역시,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비애국자라고 한다. 달라진 게 없다. 똑같은 언론사들, 똑같은 기사들, 똑같은 믿음이 지배하고 있다. 물론 세상은 조금은 달라졌다. 우선, 인구에 변화가 생겼다. 오늘날의 전쟁이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인도주의적이긴 하다. 당신들 같은 사람들 덕이다. 60년대 이후 미국에는 시민운동가들이 늘어나면서 사회가 좀 더 문명화됐다. 관련 근거도 많지만, 이런 점들은 안타깝게도 기삿거리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 중남미에서의 전쟁 역시 잔혹하기 그지없다. 고문과 학살로 수십만 사람들이 사망했다. 미국이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전쟁을 피해보려고 시도했지만 반대가 너무 강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그도 케네디가 시도했던 일을 고려했다. 그러나, 반대급부가 컸다. 미국 사람들은 ‘평화적 시도’를 수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남미에서 벌어진 일은 제국주의 역사 속에서 매우 새로운 사건이었다. 국민들이 적대세력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며 피해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중남미의 성당을 방문해 보니, 일반인들이 학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프랑스인들도 알제리에 가서 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없었다. 미국인들도 베트남에 가서 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중남미에 가서 살면서 미국을 변화시켰다. 학자들이 한 일이 아니다. 시민운동가들이 해낸 것이다. 그들의 행동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베트남전 이래 당신은 반전운동을 해왔다. 아프간 전쟁이 시작되고 이라크 침공 전까지 반전운동이 있었지만, 전쟁을 막거나 늦추지 못했다. 당시로 돌아가서 반전운동이 좀 더 효력을 발휘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우선 자신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동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모두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다는 사실을 독일 고위층으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미국인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에서도 제국주의의 새로운 현상이 발견됐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 개시 전에 대규모 반전운동을 전개했다. 사실 1998년 빌 클린턴이 이라크 폭격을 감행했고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의 반전운동으로 2003년에서야 침공이 시작됐다.
이라크 침공 전날 나의 MIT 학생들은 수업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대규모 반전시위를 위해서였다. 제국주의 역사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을 때 양상은 더 악화될 수 있었다. 럼스펠드와 체니, 그 추종세력들이 멋대로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반전운동가들의 존재가 그들을 조심하게 만들었다.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당시에는 기사화될 수 없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반전운동은 효과가 없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반전운동은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우리가 목도한 폭력과, 테러에 가까운 파괴행위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전운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기, 핵무기의 위협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같은 대외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1980년대 초반 서독의 근거리 미사일 배치를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10분 만에 모스코바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이었다. 때문에 유럽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그런 시위가 영향을 미쳤다.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쵸프의 중장거리 핵무기 협정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협정은 평화를 향한 큰 발걸음이었다. 핵전쟁 발발 위험을 상당 부분 해소하는 협정이었다.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파괴한다’는 트럼프에 의해 이 협정은 깨졌다. 히로시마 원폭 기념일 직후 트럼프는 이 협정을 위반하는 미사일 테스트를 시도했다. 80년대 반전시위는 정책에 제약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는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교훈이다. 미친 군비경쟁을 멈출 방법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파괴도 마찬가지다. 보통사람들, 대다수의 젊은 세대들의 압력이 커질수록 바이든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물론 충분한 것은 아닐지라도 과거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지난 8월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력 패널은 최신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냉혹한 현실을 시사하고 있었지만, 미국언론들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발표당일은 월요일이었는데 수요일이 되자 바이든은 중동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석유생산 증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높은 가스 가격으로 인해 선거에 불리해지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시민운동이 왜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선라이즈 운동가들은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원의 사무실에 진입해 협의를 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쫓겨나지 않았던 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원의 지지 덕분이었다. 이 협의는 결국 하원성명서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현재 의회에서 논의 중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와 에드 마키 하원의원은 성명서를 준비했다. 모두가 수용할 만한 수준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는 심각한 환경파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아이디어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성명서’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명서 이후 법제정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공화당은 100% 반대할 것이다. 오직 기업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들은, 이미 쫓겨난 트럼프에 아부하면서 지지자들의 분노를 무마하고 있다. 그게 공화당의 실체다. 그들은 자국이나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무엇이든 반대하려 드는 일부 민주당의원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 그래서 할 일이 많다.”
- 대외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우리가 어떻게 진보적 대외정책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못된 연기자들에 의한 장밋빛 약속이 쌓이는 가운데, 어떻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을까?
“비밀은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인기 있는 모든 시민운동, 명분 있는 메이저 운동은 지난 세기를 통해 계속해서 나타났으며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실현됐다. 60년대 민권운동이 좋은 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리더십은 정말 가치 있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킹 목사라고 해도 이름 모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파도가 없이는, 행동할 수 없었다. 앨라배마에서 프리덤 버스를 탔던 운동가들, 인종차별주의자로 가득한 투표소에 용기를 내 들어간 흑인 농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의 오랜 친구가 전해준 말이 떠오른다. “정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작은 행위가 모여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보통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도 해외에서도 이름 모를 보통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참담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악전고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도울 여러 방법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도 해왔고 미래에는 더 많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많지 않다. 문제는 과거보다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20년 내에 기후변화를 위해 뭔가 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내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2024년이 될 수도 있다.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우려스런 일이다. 바이든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을 더욱 압박해야 한다. 젊은 공화당 의원도 압박해야 한다. 젊은 의원들은 대개 연장자들보다는 덜 비겁하고, 덜 기업 친화적이다.”
글·노엄 촘스키 Noam Chomsky
MIT 공대에서 언어학 교수를 역임하며 우수한 이론들을 내놓았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지배질서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쓰면서 세계적으로 ‘저항 지식인’의 상징이 됐다. 저서로는 『테러리즘의 해부. 9·11 테러와 세계질서』,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비밀, 거짓말, 그리고 민주주의』 등이 있다.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관련 저서 『면책 시대의 종식(An Era of Impunity is Over)』을 출간할 예정이다.
번역·이정필
번역위원
출처: <자코뱅(Jaco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