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아파트 로망’ 정치는 다시 도래할까

2011-10-10     박해천

중산층의 성장담은 20세기 후반기의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버팀목 중 하나였다. 번듯한 직장과 30평형대 아파트와 중형 승용차를 후경으로 삼아 행복한 미소를 짓는 4인 가구의 가족사진은 산업화가 가져다준 물질적 풍요의 구체적인 표상이었다. 하지만 지난 세기의 끝자락,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인해 이 이미지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자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동안 힘겹게 버티고 있던 중산층의 강고한 대오는 치명타를 맞고 허물어졌다. 그 결과 두 부류의 종족이 출현했는데, ‘40대의 하우스푸어(House Poor )’와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Baby Boomer)’다.

하우스푸어와 베이비부머의 공통점

각종 언론이 기사화한 이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먼저 하우스푸어의 경우를 살펴보자. 성실한 직장인이자 중산층 가장인 40대 김아무개씨. 그는 6천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아내와 딸 둘과 함께 신도시의 30평형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외견상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 있다. 그가 아파트를 구입한 시기는 부동산 열풍이 휩쓸던 2006년이었다. 모두가 대세 상승을 외치던 터라 구입 비용의 절반을 대출로 충당했다. 집값만 오르면 별 문제 없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집값은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렸고, 월급의 상당 부분은 금융비용으로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적자 가계부뿐이었지만, 그렇다고 중산층의 씀씀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들 교육비는 계속 올라가고, 내년에는 큰딸의 대학 등록금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의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유명 기업에서 평생 일한 ‘58년 개띠’ 박아무개씨. 지방 명문고와 서울 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1980년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금 은퇴를 앞둔 그의 자산은 서울 목동의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부모를 공양하고 자녀 교육비로 월급을 써온 탓에 40대 초반 이후 현상 유지에 급급한 삶을 살아왔다. 지금 박씨는 퇴직 뒤의 삶이 걱정이다. 그의 책상 맨 아래 서랍에는 각종 프랜차이즈 외식업 창업 안내 브로슈어들로 가득 차 있다.

두 종족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전자는 빚내서 마련한 아파트 때문에 난리고, 후자는 손에 움켜쥔 것이라곤 달랑 아파트 한 채뿐이라서 문제다. 작가 박민규가 단편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표현한 대로,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는 생의 반복, 그 속에서 아득함을 느낀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을 꿈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마련이다.(1) 그런데 두 종족의 문제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 이들이 갑작스럽게 출현한 까닭은 무엇일까? 1946년생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최근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적절한 출발점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인생에서만 버블을 네 번이나 보았다.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 이후, 80년대 레이건 대통령 때, 90년대 말 인터넷과 함께 찾아온 버블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가 2008년의 부동산 버블이다.”(2) 올리버 스톤과 같은 또래의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만 버블을 네 번 정도 경험했다. 2차 오일쇼크가 오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직전인 197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의 198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했던 90년대 중반이다. 그리고 네 번째가 ‘바이 코리아 열풍-카드 대란-아파트 버블’의 2000년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네 차례에 걸친 버블의 시기야말로 자신의 삶이 “산수에서 끝장”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던 때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간단한 사칙연산으로 모은 목돈을 판돈으로 내걸고 자신만의 수학을 고안하려고 애썼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의 수학은 당시 새로 건설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고도성장으로 인해 시장 내부에 유동성이 증대되면서, 그 돈의 상당 부분은 빠른 속도로 아파트 건설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앞에서 언급한 세 번의 버블이 각각 1970년대의 서울 강남, 1980년대의 경기도 과천, 서울 목동, 상계·중계, 그리고 1990년대의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들과 짝을 이룬 것도 그 때문이었다. 버블의 순환 과정을 눈여겨본 이들이라면, 고도성장의 과실이 예비 중산층의 호주머니를 거쳐 분양대금으로 흘러갔다가, 부동산 시장의 가파른 오름세에 따라 몸집을 불려 다시 아파트 소유자의 호주머니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아파트를 매개물로 삼는 이 두 번의 교환 과정을 눈여겨본 뒤, 자신만의 고차 방정식을 도출해냈다. 지리학과 경제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약간의 배짱과 뚝심을 뒤섞어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엄격한 확률의 세계, 그것이 바로 그들의 수학이었다. 따라서 과감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중산층을 꿈꾸던 사회 구성원 상당수는 이 버블의 시기를 몇 차례 경험했느냐에 따라, 그 버블에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집’이, 그리고 그들의 ‘계층’이 결정됐다고 말이다.

네 차례 버블이 만든 ‘집’과 ‘계층’

흔히 ‘세대론’의 주창자들은 개별 세대의 경험 구조를 파악하는 좌표축으로, 거의 10년을 주기로 벌어진 주요한 정치적 사건을 내세운다. 이를테면 4·19 혁명, 10월 유신, 1980년 광주 등. 그에 맞춰 개별 세대들을 호명한다. 이를테면 4·19 세대, 유신 세대, 광주 세대 등. 하지만 이런 관점은 그 세대에 속한 이들의 과잉된 정치의식의 산물일 뿐이다. 개별 세대론의 발명가들은 자신이 청년 시절에 경험한 정치권력과의 물리적 마찰을 표나게 강조하면서, 자신이 속한 세대의 독특한 면모를 은근히 부각한다. 여기서 오이디푸스의 서사가 반복적으로 가동되는 것은 기본이다. 독재자는 폭군 아버지의 위치를 점유하고, 뜨거운 가슴의 청춘들이 그 대척점에 놓인다. 젊은 그들은 자신의 진정성을 확신하며 ‘민주주의’와 ‘인간 가치’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아버지-죽이기’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상상하는 ‘가족 로망스’의 제1막에 불과하다. 이제 그들은 나이가 들어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아야 한다. 즉,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 가족 로망스의 제2막이 시작된다. 2막의 사건 전개가 극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체제가 이들 일부에게 경제성장의 성과급을 배분하며 아버지가 될 기회를 제공하면서부터였다. 이를테면 4·19 세대를 보자. 그들이 30대 중·후반의 연령대를 지나칠 무렵,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의 성과가 가시화됐고, 뒤이어 강남 일대의 아파트 붐이 일어났다. 생물학적 아버지에서 경제적 아버지가 될 기회, 덧셈만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목돈마련 재형저축’의 삶에서 벗어나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세상 이치에 밝은 이들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산수를 건네주고 아파트를 받았다. 동시에 오이디푸스를 건네주고 아버지를 받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직후 제2차 오일쇼크가 닥쳤고, 폭군 아버지는 총 맞아 죽었다.

아파트가 살해한 오이디푸스

이런 ‘아버지-되기’의 제2막은 다음 세대에서도 반복된다. 이제 유신 세대의 차례다. 그들이 30대 중·후반을 지나칠 무렵,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넥타이 부대’로 나서 서울 시청광장이나 명동성당 인근을 서성거리기도 했지만, 그전에 이미 ‘3저’(저물가·저금리·저환율) 호황의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들의 나라는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 호황’을 거쳐 중진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다. 그와 동시에 과천, 목동, 상계·중계에 아파트가 솟아올랐고, 주식시장은 폭등세를 이어갔다. ‘주택청약통장’의 삶에서 벗어나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의 기회가 그들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들 역시 산수를 건네주고 아파트를 받았고, 오이디푸스를 건네주고 아버지를 받았다. 그 직후 경제성장세는 주춤거렸고, 또 다른 폭군 아버지는 백담사로 귀양을 떠났다. 또다시 시간은 흘러 이윽고 광주 세대, 즉 386세대의 차례가 왔다. 그들이 30대 중·후반을 지나칠 무렵,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당도했다. 바야흐로 신도시와 대형할인점과 미시족의 시대다. 그들 역시 주저 없이 산수를 건네주고 아파트를 받았고, 오이디푸스를 건네주고 아버지를 받았다. 그 직후 IMF가 한반도에 당도했고, 전라도 출신 사내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와 같이 10년 주기로 세 차례에 걸쳐 오이디푸스들은 광장에서 아파트로 무대를 옮기면서 중산층 아버지로 변모했다. 이 화려한 변신의 무대에서 그들 중 첫 세대는 근로소득을 능가하는 자산소득의 중요성에 눈떴고, 두 번째 세대는 전세를 지렛대 삼아 아파트 한 채를 더 분양받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세 번째 세대는 수도권 지도를 펼쳐보며 자신이 이런 자산 증식의 기회가 주어진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고 조바심쳤다. 이런 편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수학에서 변치 않는 공리는, ‘실패하지 않은 건 끊임없이 지어지는 아파트뿐’(3)이라는 명제였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철폐와 함께 네 번째 버블은 이전과는 다르게 전개됐다. 개별 세대들은 ‘바이 코리아’부터 ‘카드 대란’을 거쳐 아파트값 폭등세까지 폭주를 거듭하면서 이른바 ‘투기적 과열 상태’ 삼부작을 완성해냈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주상복합과 재건축의 투전판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학을 발명해냄으로써, 중산층으로의 진입 경로를 차단한 채 자산 불패의 신화를 완성하려고 했다. 이런 변화 앞에서 어떤 사람은 즐겼고, 어떤 사람은 모른 척했고, 어떤 사람은 견뎠고, 어떤 사람은 쫓겨났다. ‘40대의 하우스푸어’와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는 견디는 축에 속했다. 1천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부채를 어깨에 짊어진 채 부동의 기마 자세로, 그렇게. 그리고 이른바 ‘88만원 세대’가 두 종족의 뒤를 따랐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를 부모로 둔 그들은 취업·연애·결혼을 포기한 채, 달리 말하자면 가족 로망스의 무대에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알바’와 ‘김밥의 천국’에서 청춘을 소진해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파국, 그리고 파시스트의 그림자

한편, 그 사이 예상치 못한 비극적 사건도 일어났다. 취임 직전 자신의 아파트를 팔아버린 1946년생 전임 대통령이 자살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는 자신 세대의 다른 법조인들과는 달리 자식에게 아파트 한 채 증여해줄 능력이 없었고,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던 어머니는 지방 토호에게서 수상한 돈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느 날 새벽,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혹시 이 비극은, 스스로 아파트가 되지 못했던 아버지들이 어떤 파국을 맞이할지 예언하며 중산층의 무의식 깊숙이 몰락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킨 외상적 사건이 아니었을까? 이제 가족 로망스의 제3막이 펼쳐질 차례가 온 것일까? 그렇다면 적어도 이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 무대에서 ‘정치’가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발명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파트가 주인공 행세를 한다면, 세상은 파시스트들의 그림자 아래 허덕이게 되리라는 점이다. 그들은 대중의 공포로부터 쾌락의 평등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을 아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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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홍익대 BK연구교수. 저서로는 <인터페이스 연대기>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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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
(2) ‘영화 <월스트리트 2>로 부산영화제 찾은 올리버 스톤’, <경향신문>, 2010년 10월 15일.
(3) 김사과, ‘매장’, <O2>, 창비,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