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를 바라보는 눈

클라우스 모딕의 소설 『이끼』

2021-09-30     파스칼 코라자 l 기자

클라우스 모딕의 첫 소설 『이끼』가 독일에 출판된 1984년. 독일인들은 원전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일의 녹색당이 막 창당된 시점이었다. 현재  『이끼』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 출간됐다. 체르노빌, 허리케인 카트리나, 후쿠시마, 코로나19 사태는 『이끼』의 메시지를 재조명해준다.

『이끼』의 장르는 무엇일까? 생태소설? 생태시? 생태픽션? 전문용어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핵심을 보자는 것이 소설 속 나레이터 루카스 올버그의 생각이다. 식물학자 루카스는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글을 새로운 눈으로 살펴보고자 암머랜더 숲 속에 틀어박혀 생활한다. 『식물 용어와 이름에 대한 비판』은 루카스가 유언처럼 쓰는 원고다. 74세의 루카스 올버그는 마음이 지친 상태로 자신이 점점 죽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루카스는 ‘식물이 살아있는 생명체 중에서도 인간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또한 루카스는 식물이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는 만큼 인간이 식물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진작 이곳에 왔어야 했어. 나는 이곳에 대한 어떤 기억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루카스가 어린 시절 휴가를 보낸 집에서 생각한다. 그는 주변에 있는 흰색이나 녹색의 이끼를 관찰한다. 물, 땅, 공기, 빛이 결합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마법 같은 결합!” 루카스의 스승 만델바움의 말이다. 만델바움 교수는 클로버를 살리기 위해 선원들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준 인물이다. “이해가 되는지요, 루카스 올버그? 순환.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 모든 것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루카스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수록 수염이 얼굴을 덮는다. 마치 이끼가 조금씩 지붕을 덮는 것처럼. 지붕이 이끼로 덮이는 모습에 아버지는 짜증을 내며 루카스와 다른 자녀들에게 솔로 이끼를 없애라고 했다. “축축한 것은 불길해.” 아버지는 불쾌한 듯 중얼거렸다. 그 불길함은 다른 방식으로 강하게 독일에 엄습했다.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자, 루카스 일가는 아리안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런던으로 이주해야 했다. 그러나 농부 빌헬름 헨팅 덕분에 루카스 가족은 망명기간에도 가족의 이름으로 재산을 지킬 수 있다. 루카스가 빌헬름의 집을 다시 찾았을 때는 늙고 쇠약한 몸이 돼 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맑았던 루카스는 물푸레나무와 참나무를 구별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있는 녹색당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녹색당의 정치인들이야말로 신화와 종교가 나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이다. ‘교회’를 뜻하는 독일어 ‘키르헤(Kirche)’는 ‘참나무’를 뜻하는 라틴어 ‘쿠에르쿠스(Quercus)’인 참나무에서 나왔다. 그리고 ‘참나무’를 뜻하는 독일어 ‘에쉬(Esche)’는 ‘인간’을 뜻하는 북유럽어 ‘아스카(Aska)’에서 나왔다. 

루카스는 집안일을 봐주던 마죠리를 떠올린다. 마죠리는 뮌헨이 ‘갈색’으로 변하자 하이랜즈의 녹색 덤불 속으로 돌아갔다. 루카스는 마죠리의 모습, 마죠리와 함께했던 호수 근처의 피크닉을 추억한다. 이제, 루카스의 곁에 남은 사람은 형 프란츠가 유일하다. 스포흘 선술집에서 두 형제가 함께 맥주를 마실 때, 프란츠는 루카스에게 세상과 너무 떨어진 은둔생활은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루카스는 이 은둔생활을 통해 삶을 더 깊게 느낀다. 훗날 프란츠는 이끼에 덮인 채 묘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루카스와, 루카스의 원고를 발견한다.  

『이끼』를 읽는 즐거움을 아직 맛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끝으로 이 글을 쓴다. 선원들은 바다에서 죽고, 과부가 된 그들의 아내들은 고양이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고양이는 숲에 사는 들쥐를 잡아먹고, 들쥐들은 뒝벌집을 공격한다. 다윈에 따르면, 클로버꽃에서 꿀을 모으는 유일한 존재가 뒝벌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돼있다. 

 

 

글·파스칼 코라자 Pascal Corazza
기자. 저서로 『이탈리아 기행(Voyage en italique)』(Transboréal, Paris, 2012)이 있다.

번역‧이주영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