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자본주의적 독법

2011-10-10     베르나르 움브레흐트

독일 문화의 상징적 걸작인 <파우스트>는 세월을 거치며 호기심과 함께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과거 서독에서는 다소 저평가됐으나, 동독에서는 신사회 건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오늘날에는 세계경제 위기에 비춰 또 다른 차원의 해석이 등장한다. 즉 세계화를 최초로 시도한 파우스트로, 부정적 세계화의 영웅이 되었다.

괴테는 18세기 말∼19세기 초 유럽 사회를 뒤흔든 정치·산업 혁명의 시대에 <파우스트>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평생에 걸친 작업이었다. 파우스트는 독일 중세시대의 전설에 나오는 인물로 전지전능의 욕망에 사로잡힌 연금술사이자 학자이며, 16세기 말 영국 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의 작품을 통해 구체화된다. 괴테는 파우스트 박사를 다시 이야기하는 데 20여 년을 쏟았다. 1775년 초고를 마무리해 1808년 1부를 출간했다. 그리고 반세기 이상이 지난 뒤 ‘1830년 파리의 7월 혁명 영향을 받아’ 1831년 작품을 완성했다고 문학 교수 미카엘 자에게르(1)는 설명한다. 괴테가 1832년(그의 나이 82살) 죽기 전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2부는, 이후 오랫동안 독일 평론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재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스위스 생갈대학의 경제학 및 생태학 명예교수인 한스 크리스토프 빈스반게(2)의 해석처럼, 오늘날 <파우스트>는 놀랍게도 현재 자본주의 위기와 그 동력을 이해하려는 의지와 맞물려 반향을 일으킨다.

방대한 학식을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던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와 내기를 하게 된다. 파우스트는 악마가 이 지상의 행복을 알게 해준다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내놓겠다고 한다.

“내가 그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 그렇게 된다면 자네가 나를 결박해도 좋고, / 그렇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파멸하겠고, / 그렇게 된다면 조종이 울려도 좋을 것이다.”(3)

괴테, 근대성의 한계에 던진 질문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주인공은 연구실을 떠나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그의 욕망을 불태운다. 괴테는 과학, 기술, 경제에 식견과 관심이 높았다. 이 분야에 능력이 있었기에 바이마르공국의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재정 분야뿐 아니라 공공근로와 산업, 광산업, 섬유업 분야에 구체적으로 관여했다. 예산 면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군대 예산을 거의 삭감한 것은 그의 덕분이다. 행동하는 자인 그는 <파우스트>를 통해 행위의 의미, 진보를 추구하며 양산되는 문제, ‘근대성’의 한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특히 경제 분야와 관련해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 예로 국고가 텅텅 빈 황제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돈’을 창조한다. 빈스반게에 따르면, 돈은 근대의 기적이자 또 다른 방식의 연금술을 지속하는 것이다. 더 이상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이 아닌, 무가치한 어떤 물질을 유가치한 것으로 바꾸는 것, 즉 종이를 돈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더 이상 초자연에 기댈 필요가 없다. 기적은 자연적인 것이다. 실제 18세기 오를레앙 공작은 은행가인 존 로를 고용한 뒤, 데리고 있던 천문학자들을 해고했다. 작품에서 화폐 창조 행위(다소 마술적이기도 한 화학기술)는 가면극과도 논리적으로 상통한다. 횃불의 빛 아래에서 은행 지폐의 원본에 서명할 때 황제의 모습은 땅속 부유한 지옥의 신, 플루투스로 바뀐다.

안식 없는 삶의 공포와 불안

화폐 사용에 앞선 중국과 달리(4) 유럽에서 화폐 발행권은 국가에 있지 않고 국가가 권한을 준 민간 은행이 갖고 있었다. 괴테는 1692년 영국의 중앙은행 설립에 영감을 받았다. 영국의 중앙은행은 기업인들 주도로 설립된 뒤 왕에 의해 발행가치를 금으로 태환할 필요 없는 지폐 발행권을 부여받았다. 이것이 현재 화폐 시스템의 출발점이다. 즉, 신용을 창안해 이후 ‘파우스트메피스토펠레스식’의 화폐 생성을 다른 방식으로 지속하는 것이다.

연금술 과정의 두 번째 단계는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괴테는 화폐의 금 본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했다. 돈은 하나의 자본으로서 투자돼야 한다. 산업혁명을 지켜본 이들에게 이런 변환은 익숙하다. 한 예로 산업혁명 때 맨체스터에 관해 알렉시 드 토크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더러운 하수구로 순금이 휩쓸려간다.” 돈은 경제 분야에서 행위와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파우스트는 “내가 쟁취하려는 것은 힘이자 소유다. 행위가 전부다. 영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파우스트는 마지막 도전을 시작하며 스스로 ‘지혜의 결론’이라며 이렇게 괴물 같은 말을 한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 그래서 위험에 둘러싸여도 여기에선 / 남녀노소 모두 값진(활기찬)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 나는 이러한 군중을 지켜보며,  /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 그러면 그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 ‘멈추어라, 너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것이 그의 이상향이다. 만물을 계속 움직이게 하고, 사회 전체가 쉼도 방해도 없이 지속적으로 노동을 통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항구적 불안 속에 놓여 있던 사회는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고, 이제는 공포의 사회가 된다. 지금의 말로 하면 이런 세계는 은퇴도 교육도 없고, 일요일에도 일한다. 파우스트에게 휴식은 영영 없다. 그러나 영원히 안식 없는 삶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지속시키려면 마녀들이 부뚜막에서 파우스트를 위해 만든 묘약과 같은 일탈이 필수적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데려가기 전 그에게 속삭인다. “자, 삼켜라. 두려움 없이 삼켜라. 어서 나가자. 쉬면 안 된다.”

돈, 재산, 에너지와 기계, 우리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 속에서 살고 있다. 빈스반게는 “예전 인간은 종교에서 초월을 추구했지만 이제는 경제가 이를 대신한다”(5)고 지적한다. 발터 베냐민은 “옛날에는 종교가 그 답을 주던 근심과 걱정에 대해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안심시킨다”라고 했지만,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행위와 진보 등에 대한 욕망은 스스로 진정될 수 없다. <파우스트>는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상연되면 제격일 것이다. 그러나 괴테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이같은 강박적 진보가 갖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빈스반게는 파우스트의 비극에 대해 그런 과도함이라고 본다. ‘끝없는 진보에 대한 비전에 눈멀어’ 파우스트는 ‘자신의 경제 계획의 근간조차 파괴하고 세상을 탕진해버린다’. 진보의 결과물은 활기찰 수 있지만, 또한 독을 품고 있다. 빈스반게는 파우스트가 자신의 ‘마지막이자 최대의 업적’을 위해 ‘이미 쟁취한 모든 것’을 망치는 늪지를 간척하면서 환영에 사로잡힌 희생자가 되었다고 본다. 이 간척사업은 <파우스트>(연금술의 관점에서)의 완성이 아니다. 결국 그 자신이 이전에 벌인 운하 공사가 가져온 부정적 외형(Externality)을 어쩔 수 없이 수정하는 작업일 뿐이다. 괴테는 이런 문제가 불거졌던 수에즈, 파나마, 라인 다뉴브 운하 공사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쉼없는 움직임은 영적으로 ‘활력을 띤 독’이다. ‘소르게’(Sorge), 즉 ‘근심’이라는 이름(독일어로 ‘관심’ ‘주의’라는 뜻도 있다)의 우의적 인물에 의해 눈이 먼 파우스트는 자신이 원한 삽과 곡괭이가 늪지를 변모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 곡괭이는 파우스트의 무덤을 판다. 곡괭이를 조종하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유일하게 남은 레무르(떠돌이 망령들)다. 그처럼 마거릿 대처의 꿈은 이루어졌다. 사회가 파괴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도르노의 제자이자 하버마스의 동료로, 대부분 노조 연구에 헌신했던 오스카르 네그트(6)는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에 기초해 노동에 대한 칼뱅주의 윤리관을 중심으로 괴테를 해석한다.

“나는 움직인다, 고로 나는 역시 존재한다. / 나는 즉시 소매를 걷어올리고 일하기 원한다.”

남은 건 인간 아닌 망령뿐

노동이 ‘중독’이 될 정도로 일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본질인가? 파우스트는 끝내 노역장을 지휘하기에 이르고 오스카르 네그트는 이 장면에서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와 가까운 부셴발트 포로수용소(7)의 전조를 볼 수밖에 없다. 파우스트는 하느님의 말씀과 권능을 지운 뒤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라고 말한다. 경제에서 행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이 지상에서 불멸에 대한 광적인 추구를 드러낸다. 죽은 시간을 좇으며 죽음의 시간을 죽인다. 그러나 시간을 쟁취하기 원했던 파우스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시간이 주인이 된다”고 말한다. 무한을 추구하며 시도한 연금술 작업이 실패했고, 파우스트 앞에 세상은 끝났다. 작품을 읽다 보면 이 극적인 시가 종국엔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를 생각하게 한 괴테의 시도인 듯하다.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결과를 시험해본 것이 아닐까 싶다. 자유주의의 근간이 된 멘더빌의 유명한 말, “개인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항상 악을 원하면서 선도 창조하는 힘의 일부”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외침과 일치한다. 그러나 결국 악마의 ‘힘’에 기댄 파우스트가 무엇을 했는가? 그는 그저 그의 충동을 분출하고 ‘그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 모든 것을 점차 제거’(8) 해버렸을 뿐이다. 이것이 신성한 시장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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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나르 움브레흐트 Bernard Umbrecht 언론인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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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문학 교수. 저서로 <Global Player faust oderdas Verschwinden der Gegenwart>(사라진 현재·WJS Verlag·2010년 재판) 등이 있다.
(2) <Geld und Magie>(돈과 마술,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경제적 관점의 해석), Murmann Verlang, Hambourg, 2010년(1985년 초판).
(3) 여기서 인용한 번역은 장라코스테와 자크 르 히더의 해설 번역인 <초고 파우스트> <파우스트 1, 2부>의 새로운 편집판이다. Edtions Bertillat, Paris, 2009. 한국 번역문은 민음사의 번역문 참조.
(4) 중국 황제는 편리한 화폐 이용을 담당하는 기관을 창설했다.
(5) 다음에 출간될 책은 경제학자들을 다루는데, 경제학자들을 ‘신도 집단’으로 묘사한다.
(6) <Die faust Karriere, vom verzweiflten Intellektuellen zum gescheiterten Unternehmer>(파우스트의 경력, 회의에 사로잡힌 지식인에서 실패한 경영자까지), Steidl Verlag Gottingen, 2006.
(7) 1937년 설립.
(8) <Le divin marche>(신성한 시장), Denoel, Pari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