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으로 미국에 맞서는 중국

미국 투자자들의 대(對)중국 투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서다

2021-10-29     필립 S. 골럽 l 파리 아메리칸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

2001년, 미국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운 것은, 중국의 경제 자유화가 ‘정치적 개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규제를 완화한 중국은 미국 다국적기업을 내세워 백악관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의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으로 불리는 보아오 포럼 개막 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선포했다. 시 주석은 미국을 겨냥해 “냉전시대 및 패권경쟁(식 사고방식)을 거부한다”라고 밝힌 후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우리는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와 촉진을 장려하고, 역내 경제통합을 강화하고, 공급망을 강화해, 개방된 세계경제를 건설해야 한다. (...) 경제 세계화 시대에 개방과 통합은 막을 수 없는 역사적 추세다. 벽 쌓기 또는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로 번역되며, 일국의 경제가 인접국이나 세계경제의 흐름과는 달리 독자적인 흐름을 보이는 현상-역주)은 경제 논리와 시장 규칙에 어긋난다.”(1)

이 경제 자유주의 찬가는 중국 공식 담화의 신조가 됐다. 미국은 초국가적 공급망을 재정비하고 민감한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 중국은 자유무역과 세계 금융의 일인자를 자처하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의 유한한 애국심과 무한한 욕망을 알아차린 중국은 자산관리, 채권, 보험, 신용평가 등 국내 자본시장 일부를 개방했다. 그리고 특수시장에 진출하는 미국 대기업이 지분의 전부 또는 과반을 소유한 자회사를 수립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은행이 2019년과 2020년 골드만삭스, 블랙록, JP모건체이스, 시티뱅크, 모건스탠리, 아메리칸익스프레스, 페이팔, 마스터카드, S&P글로벌, 피치레이팅스 등에 내준 허가를 언급하며, “미국이 문을 걸어 잠그는 동안 중국은 문을 열고 있다”라고 보도했다(2020년 6월 14일). <차이나데일리>는 “월가(街)는 결국에는 자신들의 장기, 즉 이윤 창출을 추구할 것이다”라고 평가하며 만족감을 표했다(2021년 3월 18일). 

<이코노미스트>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2020년 9월 5일). “중국은 (외국 자본이)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기회들이다. 많은 관망자들이 미중 간 탈동조화에 집중한다. 그렇지만 매일 세계시장에 유통되는 수조 달러를 관리하는 이들의 눈에 비친 양국관계의 주요 흐름은 오히려 동조화에 가깝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돈벌이 문제에 있어서라면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절대 진리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밀어내는 힘보다 크다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2021년 2월 4일).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절 중국으로 유입된 미국 자본은 공식적으로 총 6,200억 달러로 추정된다.(2) 그런데 이 외에도 미국에 증시에 상장된 수십 개의 중국 기업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투자가가 보유한 중국 주식과 채권은 2016년 3,680억 달러에서 2019년 말 8,130억 달러 이상으로 늘었고, 현재는 1조 1,000억 달러에 달한다. 2020년, 외국인이 보유한 중국 주식과 채권은 전년 대비 각각 50%, 28% 증가했다. 이 또한 자본 유입 규모를 과소평가한 수치다. 주식을 발행하는 많은 중국 기업들이 해외 조세회피처에 세운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맨 제도에만 이런 자회사가 73개 존재한다. 2021년 7월 실시된 한 조사는 “미국, 영국, 대만을 제외한 다른 그 어느 국가보다 많은 수”라고 설명하며 “2017년, 미국, 영국, 유로존 국가 투자자들은 조세회피처를 통해 8,300억 달러의 중국 기업 주식을 보유했다. 이 중 7,050억 달러가 케이맨 제도를 통해서였다”라고 덧붙였다.(3) 한 최신 보고서는 “중국의 세계 금융시장 편입이 속도를 내고 있다”라고 평가했다.(4) 

 

중국은 ‘제 2의 미국’?

이런 변화는 호전적인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와 비타협적인 ‘국익’ 주장(아시아 내 영토 주장, 강제적 경제 조치 또는 신장지구와 홍콩 관련 인권 문제로 중국을 비판하는 국가 및 개인에 대한 제재 부과 등)을 동반한다. 세계주의와 주권주의를 결합한 중국의 태도는 보기만큼 역설적이지 않다. 중국의 부상은 국가가 세계시장 편입을 감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제화는 중국을 의존적인 발전에 가두지 않고 중국의 국력 강화에 기여했다. 

중국의 경우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9세기, 세계 여러 지역이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에 편입했을 때, 침몰하는 지역도 있었지만 경제력과 정치력이 발전한 지역도 있었다. 자본의 유입은 영국 식민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미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은 자본 유입 덕택에 유럽 경제권에 편입돼, 대규모 산업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유럽(주로 영국)은 미국의 해외무역에 자금을 조달하고 토지, 농업, 목축, 국가·지방 행정, 상업은행, 사회기반시설(도로, 수로, 철도)에 투자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5년부터 1900년까지, 영국이 전 세계에 투자한 자본 중 대(對)미 투자 비중은 평균 22%에 달했다. 1913년, ‘신생 산업’ 보호와 미국의 반복된 금융공황에도 불구하고 대(對)미 투자 비중은 “영국의 국외 투자 총액의 1/3을 훨씬 상회”(5)했다. 이 투자금은 미국의 자본 형성에 중요한,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최초의 지역 간 운송 체계의 급속한 발전”과 “미국 서부의 발전과 국가 경제, (특히) 동부 해안 산업 경제로의 편입”(6)에 기여했다.

메이지 시대(1868-1912) 일본의 집중적인 산업 및 군사 현대화 노력 역시 영국과 미국 투자자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역사학자 허버트 파이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은 무기를 갖추고, 전쟁을 벌이고, 효율적인 국가 행정 체계로 철도를 단일화하고, 대규모 산업을 장려하고, 한국과 만주를 정복 및 개발하고, 자국 도시에 공공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투자가 필요했다. 전쟁(러일전쟁, 1904년 2월~1905년 9월)을 앞둔 몇 년간 일본 국채의 절반가량을 외채가 차지했다. 일본은 전 세계의 기술과 장비를 도입했지만, 자본만큼은 주로 영국 자본을 도입했다. 일본은 영국을 향한 정치적 충성 못지않게 영국의 자본 덕분에 강대국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7)

중국의 경우 국가가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단계적으로 개방을 실시했다. 국가가 외국 자본의 종류와 규모를 통제했으며, 합작회사 설립 시 일반적으로 외국인에게 소수지분 보유만 허락해 기술 이전을 감독했다. 국가가 핵심 산업 분야의 조건을 설정하고 화웨이처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국가 대표’ 기업의 부상을 장려했다.(8) 2000년대 말, 투자 체제 자유화와 일부 공기업의 주식 매각 과정에서도 국가는 통제를 잃지 않았다. 국가는 “핵심 자산의 소유권, 인사권, 견고한 후원 체제의 토대, 당과 국가의 핵심 기구에 대한 완벽한 통제와 계획화”(9)를 유지했다. 국가의 영향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너무 거대하고 자율적이라고 판단한 금융 서비스 분야 인터넷 대기업 알리바바, 텐센트와 그 외 다수의 기업을 무릎 꿇린 최근 사건이 이를 입증한다.

외국 금융기업은 중국 시장 접근에 상대적으로 제한이 있고 국가차원 규제의 영향도 감수해야 한다. 이는 대형 국영 상업 은행들이 금융 분야를 지배하는 중국으로서는 위험을 줄여주는 요소다. 국가가 개방을 감독하면 잠재적 이점이 많다. 중국을 금융 중심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진 금융 주체들을 시장에 받아들여 위안화의 세계화를 꾀할 수 있다. 동시에 중국의 경제적 성공이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민간영역을 강화 및 확대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은 경쟁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적 대응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역행하는 초국적 자본을 동원한다. 주요 금융 주체들은 과거 초국적 산업체들이 그랬듯 중국의 국가건설 사업에 편입됐다. 일부 금융 주체들은 의식적으로 동조한다.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이사는 “제국은 생산적이고, 금융이 건전하고, 지출보다 수입이 많을 때... (그리고) 국민이 교육을 잘 받고, 근면히 일하고, 문명화된 태도로 행동할 때 발전한다”라고 열띤 목소리로 설명했다.(10)

 

세계 자본주의의 두 거점, 중국과 미국

중국과 미국이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두 거점은 (무역, 금융, 기술 분야에서)극도로 상호 의존적이지만 치열하고 지속적인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다. 중국은 “정치적 힘으로 경제 법칙을 수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하지만 미국은 국가 권력의 당위성을 회복중이다. 국가 안보 수단의 전략적 이해와 초국적 금융의 이해, 이 둘 사이의 모순이 커질수록 미국은 내몰리고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대외 경제 정책의 핵심목표로 삼아온 ‘세계적 자유화’를 포기하고, 보호무역주의와 개입주의 국가로 회귀해야 하는 상황으로 말이다.

지난 6월 3일,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이 복합체와 관련된 중국인 또는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범죄로 규정한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 13959호를 갱신 및 확대하기로 결정했다.(11) 이보다 앞선 2021년 4월 8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미국의 국내 안보와 대외정책의 이해에 반하는 활동을 벌인” 단체 목록에 중국 슈퍼컴퓨팅 기업들을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공급망’에 대한 백악관의 한 보고서는 “반도체 생산과 어드밴스드 패키징(Advanced packaging, 칩의 구성을 최적화해 면적을 줄이거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역주),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같은 대용량 배터리, 필수 광물 및 물질, 의약품 및 원료의약품(API)”분야에 대한 미국의 취약성을 평가했다.(12)  

이 보고서는 “미국의 경제 및 국내 안보의 기반을 이루는 6개 산업분야 즉 방위산업, 공공의료, 생물학적 제제(생물체 유래 물질이나 생물체를 이용해 생성시킨 물질을 함유한 의약품-역주), 정보통신기술, 에너지, 농업용 원자재 및 식료품 생산을 위한 운송 및 공급망 분야”에 주목했다. 2021년 6월 8일, 미 상원은 ‘미국 혁신경쟁법’을 가결했다. 미 양당이 공동 지지한 이 법은 5년에 걸쳐 첨단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에 2,500억 달러 지원을 예고한다. 

자본의 논리와 국가의 논리의 대립. 이 상황은 19세기 말 최초의 자본주의 세계화를 막은 조건들을 상기시킨다. 

 

 

글·필립 S. 골럽 Philip S. Golub 
파리 아메리칸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동아시아의 재부상』(Polity Press, Cambridge, 2016)의 저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Xi Jinping , ‘Pulling together through adversity and toward a shared future for all’, 중국 외교부, 2021년 4월 20일, www.fmprc.gov.cn
(2) Hudson Lockett & Thomas Hale, ‘Global investors place Rmb1tn bet on China breakthrough’, <Financial Times>, London, 2020년 12월 14일.
(3) Ben van der Merwe, ‘How low-tax jurisdictions hide the vulnerability of Emerging Economies’, Investment Monitor, 2021년 7월 13일. 
(4) Nicholas R. Lardy & Tianlei Huang, ‘China’s Financial Opening Accelerates’,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Policy Brief 20/17, Washington D.C., 2020년 12월.
(5),(7) Herbert Feis, 『Europe: The World’s Banker, 1870-1914』. Augustus M. Kelley Publishers, Clifton (New Jersey), 1930.
(6) Lance E. Davis & Robert J. Cull, 『International Capital Markets and American Economic Growth (1820-1914)』,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8) Philip S. Golub, ‘Comment l’État chinois a su exploiter la mondialisation, 중국은 어떻게 세계화를 낚아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2월호, 한국어판 2018년 1월호.
(9) Margaret Pearson, ‘Governing the Chinese Economy: Regulatory Reform in the Service of the State’, 『Public Administration Review, 67』(4), Washington D.C., 2007.
(10) Heng Weili, 위의 책 인용.
(11) ‘Executive order addressing the threat from securities investments that finance certain companie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백악관, Washington DC, 2021년 6월 3일, www.whitehouse.gov
(12) ‘Building Resilient Supply Chains Revitalizing American Manufacturing, and Fostering Broad-Based Growth’, the White House, Washington D.C., 2021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