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세계도 잘 모르는 지하드의 두 얼굴

2021-10-29     올리비에 루아 l 정치학자

알카에다와 IS를 비롯한 테러 집단들은 사헬 지역에서 민병대가 큰 활약을 보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승리한 것을 반겼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갈등은 전 세계적인 차원의 성전이 아닌 특정 지역의 논리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결국,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테러리즘’은 오늘날 이슬람 세계와 관련해 종종 언급되는 개념이다. 2021년 8월 카불 함락 이후, 서구 언론 등은 탈레반의 권력 장악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에 의한 테러로 이어질지 분석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를 질문하는 이들은 드물다. 탈레반은 총 한 번 쏘지 않고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까? 아프가니스탄 외의 지역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에 탈레반이 직접 가담한 적은 없을까?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했고, 그 때문에 여러 주에 걸쳐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미국의 공격을 받은 적은 없다.

 

지하디즘은 테러리즘인가?

표면적인 무장폭력에만 집중하면,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극단화 현상이 무엇인지, 어떻게 테러행위로 이어지는지를 말이다. 무장폭력은 종교적 극단화, 지하드의 강요, 국제 테러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1~3단계로 순차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국제 테러가 현지의 지하디즘을 자극하기도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믿음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샤리아(이슬람의 법 체계)에 대한 복종과 성전(聖戰)의 선동이 모두 국제 테러의 전조증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 속에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구권의 정책은 ‘테러리즘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이 ‘거리’의 기준은 폭력성보다는 종교성에 기반한다. 즉, 샤리아에 대해 많이 언급할수록 강대국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이슬람 단체들의 테러 위협도 높다는 관점이다. 상대가 행동하기도 전에 선제공격을 가하는, ‘예방 전쟁’의 명분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영토 분쟁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은 쓸모가 없을뿐더러, 최악의 경우 일부 지역의 갈등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모든 문제를 지하디즘과 연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테러리즘의 악순환을 끊고 무장단체를 게임 안으로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접근을 차단한다. 

여기서 무장단체 개입의 중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답은 단순하다. 지하디스트 운동이 사회적 기반과 시민 동원력을 갖추고 있다면, 반테러주의와 군사적 행동만으로는 그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말리의 경우를 보면, 군대 중심의 패러다임에 기반한 반봉기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정적인 법치주의, 민주주의, 견고한 거버넌스를 갖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극단주의 세력을 배척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유형의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음에도,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문화주의적인 담론만 늘어놓는다. 법치 국가는 서구권의 모델이기 때문에 이슬람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식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많은 이슬람 사회는 사실상 제대로 국가를 통치해 본 역사가 없다.

테러리즘은 분명 존재한다. 알카에다가 실행에 옮겼고, IS가 이를 지하드와 체계적으로 접목시켰다. 그러나 이론적인 측면(폭력을 규제하는 법적 전통)에서 봐도, 정치적인 측면(아프가니스탄의 반군 게릴라 단체인 무자헤딘은 소련을 겨냥한 국제 테러를 일으킨 적이 없음)에서 봐도 지하드와 테러는 별개임을 알 수 있다. 알카에다의 지속적인 주장, 즉 ‘테러리즘은 서구권의 중동 개입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는 논리는 완전히 틀리지도, 맞지도 않는다. 몇몇 전쟁의 상반된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2012년부터 프랑스군이 참전해온 사헬 전쟁보다 서구권이 개입하지 않았던 체첸 전쟁과 NATO가 이슬람 편에 서서 싸웠던 보스니아 전쟁이, 왜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유럽 청년들의 연대를 더 강하게 만들었을까?

따라서 우리는 더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현지 지하드와 국제 테러 간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 앞서 언급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외의 지역에서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지난 20년의 미군 주둔 기간에 카불에서 일어난 민간인 또는 시아파를 향한 무작위 테러 사건은 대부분 지하디스트 단체, 최근에는 IS의 지부에 의해 주도됐다.

말리의 경우는 더욱더 모순적이다. 프랑스가 최전선에서 사헬 단체들을 공격하고,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승전보를 올리며(최근에는 대사하라 이슬람국가(EIGS) 단체의 우두머리인 아난 아부 왈리드 알 사라우이를 생포했다), 말리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과거에는 말리를 지배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프랑스의 말리 주둔으로 인해 발생한 테러가 단 한 건도 없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 사건에 관한 재판에서 주동자 중 한 명인 살라 압데슬람이 그랬듯이) 시리아와 이라크가 아니면, 프랑스의 일간지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캐리커처를 게재한 이후 시작된 <샤를리 엡도>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테러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물론, 프랑스 내 말리 이민자들은 소수이며, 지하드와 무관한 종족 출신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팔루자나 모술에서 온 이민자들도 소수다. 그런데도 마그레브 출신의 이민 2세 청년들은 왜 시리아와 이라크의 일에는 분노하면서, 부모님의 나라와 물리적으로 더 가까운 사헬에는 무관심할까? 노르망디, 브르타뉴, 레위니옹의 개종자들은 말리 전쟁에는 침묵하면서, 프랑스군이 조연 역할만 했던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전쟁에는 민감하게 반응할까? 프랑스군이 말리 전쟁에 개입한 지 8년이 지났지만, 그 때문에 프랑스에서 테러가 발생한 적은 아직 없다.

 

현지 지하드 vs. 국제 지하드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현지 지하드와 국제 지하드부터 구별해야 한다. 물론 이 둘이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우선, 현지 지하드는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이슬람 국가를 특정 지역에 건설하고 국왕을 두기를 원한다. 현재는 IS만이 칼리프를 내세우고 있다. 칼리프란 전 세계 이슬람교 신자들을 아우르는 이슬람 공동체 움마(Oumma)를 이끄는 종교적 지도자를 뜻한다. 현지 지하드 단체들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부족으로 구성된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1) 

그러나 이는 해당 지역의 긴장 상황과 각종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특권 계층에 대한 소수 집단의 복수, 물과 땅을 둘러싼 갈등, 부정부패와 폭력에 대한 정부의 무능함, ‘문화적 동질성이 적은’, 즉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과는 거리가 먼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이 그 예다. 또한 지역을 뛰어넘고 정부와 기타 단체(족장 관할구역, 부족, 종교적 집단)를 불신하라는 이슬람 교리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나이지리아 북부에서부터 말리, 차드, 수단,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부족 구역을 거쳐 모잠비크까지, 그리고 시리아 북동부부터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 예멘까지, 지하디스트 단체는 언제나 해당 사회의 정치인류학에 뿌리를 두고 만들어졌다.

현지 지하드가 형성되던 무렵 또는 그 이전, 알카에다와 IS라는 두 개의 국제조직이 급성장했다. 후에 갈라지기는 했지만, 초반에 이 두 조직은 같은 의도와 목표로 결성됐다. ‘승리는 지역 차원에 국한돼서는 안된다’, ‘해방된 영토는 곧 재점령당할 것이다’, ‘새로운 국가는 강대국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국제 지하드를 멀리할 것이다’ 등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대표가 이끄는 이슬람 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우선 서구권부터 처단해야 한다는 입장이 같았다. 

현지 지하드는 자신의 성전을 전 세계로 확대할지의 갈림길에 서서, 독립성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알카에다의 수장 또는 IS의 칼리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두 조직 중 하나의 산하로 들어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탈레반은 전자를, 알카에다 마그레브 지부(AQMI)와 시나이 반도의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디스(Ansar Bait al-Maqdis)는 후자를 택했다. 후자에는 장단점이 있다. 조직이 국제화되면 현지에서만 활동할 때보다 정당성을 더 인정받게 돼 해외 자원자들의 모집에 유리해지고,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외부의 군사적 개입으로 인한 위험은 더 커진다.

알카에다와 IS 사이에서의 선택은 개인의 인맥에 따라 결정되기도 했지만(예를 들어, 현지 지하드의 대표가 과거에 전쟁에 참여한 이력), 이슬람과 영토 간의 관계에 대해 두 조직이 가진 다른 관점 때문에 갈리기도 했다. 알카에다는 한결같이 영토에 욕심을 내지 않았고, 단지 은신할 수 있는 장소만을 원했다. 알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은 탈레반의 수장인 몰라 오마르에게도 충성을 다짐했다. 또한 알카에다 조직은 탈레반이 수립한 정치 체제에 관여하지 않았고, 탈레반의 국제 테러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탈레반의 주적이었던 마수드 사령관의 암살(2001년 9월 9일)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빈 라덴에게는 국지적인 활동보다 광범위한 국제 지하드 운동이 더 중요했다. 빈 라덴과 후에 빈 라덴의 후임이 된 아이만 알 자와히리 보좌관은, 이라크와 레반트 지역에 IS를 설립하려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에게 이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알카에다의 지도자들은 국지적인 활동은 막강한 공군력을 갖춘 전문 군대의 대규모 공격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예상은 사실이 됐다. IS는 영토와 국제화를 동시에 원하는 유일한 조직으로서, 자폭 테러를 통해 현지 전통과 알카에다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6월에 선포된 칼리파 제국은 현지화와 국제화를 모두 추구했다. 칼리파는 영토 확장에 힘쓰는 동시에 서구권에서 테러 활동을 지속하면서, 자신을 향한 군사적 개입을 중단하라는 쪽으로 여론몰이를 했다. 또한 중동 지역에서는 기존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전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런 전략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영토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국경선을 무시하고,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추방과 숙청을 일삼고, 결국에는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현지 부족들과도 등을 지게 되면서, 칼리파는 빠르게 몰락했다. 게다가 칼리파의 장기적인 계산에서도 오류가 발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와는 달리 미군은 시리아에 오래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칼리파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미군은 시아파 민병대와 쿠르드군에게 열쇠를 넘기고는 철수해버렸다.

서구권에서 테러의 위험은 여전히 크지만, 국제 테러는 20년이 넘도록 전 세계를 지배하다가 지금은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습이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서구권에서 활동한 테러리스트들의 프로필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1995년 프랑스 연쇄 테러 사건을 주도한 칼레드 켈칼부터 압데슬람까지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모두 2세대 무슬림이자 개종자들이다.(2) 2016년 이후에는 테러리스트들의 프로필이 좀 더 다양화돼, 테러는 개별적인 양상을 띠고 테러 동기도 거대한 전략적 문제와는 상관없이 모호해졌다. 이런 변화는 국제 지하드의 사회적 뿌리가 깊지 않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사회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의 연속성이 사실상 끊겼다. 검경 협력의 강화, 보안 기술이 발달, 그리고 그들의 자포자기적인 태도가 더해지면서 예상보다 쉽게 제압됐다. 

국제 지하드는 쇠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지 지하드는 아직 아니다. 탈레반의 승리와 현재 말리에서 프랑스가 고전 중인 상황만 보아도 그렇다. 이제는 이와 같은 영토 관련 갈등을 국제화된 이슬람 성전의 일부가 아니라, 해당 사회에 기반한 지하디스트 운동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약간의 정치인류학적 해석이 필요하다. 모든 현지 지하드가 테러를 일으켜 대상을 죽이고 지배하는 데서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은 땅, 물, 복수와 같은 작은 규모의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했다.(3) 

따라서 사헬의 지하디스트들은 국가가 땅, 물, 목축업, 민족적 사회적 긴장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처럼 지역적 특수성에 기반한 문제는 해외 자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결국 알카에다와 IS와 같은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다. 즉, 사회와 단절돼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젊은 국제주의자들을 새로운 세계의 영웅으로 만드는 대서사를 구성할 수 없다.

알카에다에 반대하는 시리아 내 세력(Hatesh)과 탈레반의 역사는, 현지 지하드도 정치적 제약 사항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하고, 국경선을 준수하고 국제 테러는 지양하는 등 국제 사회에서 요구하는 적정선을 지키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탈레반은 그렇게 했고, 다른 지하디스트 단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적들에게도 어떤 교훈을 남겼다. 비록 군사적 승리는 없었지만 정치적 승리는 있었다. 

 

 

글·올리비에 루아 Olivier Roy
정치학자, 피렌체 유럽대학연구소(EUI) 교수, 『Le Djihad et la mort 지하드와 죽음』, Le Seuil, coll. ‘essais’, Paris, 2016의 저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이슬람 토후국 The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1) 1985년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누리스탄주 캄데시의 ‘이슬람 국가’를 관찰하면서, 토후국(emirates)의 특성을 분석했다.  Virginie Colombier & Olivier Roy (지도), Tribes and Global Jihad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18년.
(2) Olivier Roy, 『Le Djihad et la mort 지하드와 죽음』, Éditions Points, coll. ‘essais’, Paris, 2019년.
(3) Adam Baczko et Gilles Dorronsoro, ‘Comment les talibans ont vaincu l’Occident(한국어판 제목: 중앙정부의 ‘결함’을 파고든 탈레반의 ‘해결사’ 전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