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성장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자
빈곤에는 풍요를, 낭비에는 절제를
세계 경제가 반등하면서 언론을 비롯한 투자자와 결정권자들은 안도했다. 그러나 어제의 성장을 되찾는다고 인류의 미래를 영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역성장’ 개념에 대한 논쟁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1) 이미 완성된 세계에서 ‘무한성장’의 가능성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생산제일주의적이며, 소비자운동이 활발하고, 불평등한 세상에서 ‘항상 더 많이’는 한계에 도달했다. 역성장 지지자들은 역성장이 삶의 기쁨, 사회정의, 해방의 전망을 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오늘날 부가가치의 상승으로 기록되는 성장은 물리적 착시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성장은 생산, 소비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성장이 녹색이든, 붉은색이든 지속가능하든 포괄적이든 무한성장의 추구는 터무니없다. 연간 3%씩 성장한다면 24년 후 우리의 생산과 소비는 2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한 세기동안 우리는 현재보다 18배의 생산을 이뤄내야 한다. 이런 식의 성장은 어제의 소득을 고갈시킨다.(2) 현재의 우리가, 50년 전에 비해 행복해졌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성장의 신화, ‘디커플링’의 신화 깨기
역성장은 역행과는 다른 개념이다. 역성장의 핵심은, 성장의 신화를 깨자는 것이다.(3) 양적 접근에서 벗어나 질적 성찰, 우리 삶의 의미를 찾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제와는 다른 질문을 하고 다른 경험을 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해, 지속가능하며 친숙하고 도덕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성장의 신화는 좌우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생태환경운동가들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기후변화 대응 논리는 이제 ‘디커플링’에 근거를 둔다. ‘디커플링’은, 자원 발굴과 환경적인 여파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재화와 용역의 생산은 계속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디커플링은 가능할지 몰라도,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디커플링이 일어난 적은 없다.(4)
디커플링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물리의 법칙을 통과하지 않는 한, 우리 소비의 84%를 감당하는 화석연료(석유, 가스, 석탄)의 대체는 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로서는 화석연료만큼 발굴-보관-이동-압축이 수월한 에너지는 없다. 최근 막대한 투자가 있었음에도, 풍력과 태양력은 전 세계 1차 에너지의 3%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에 필요한 재료(구리 등) 공급 및 장소와 관련한 갈등이 이미 존재한다.
결국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활동을 줄이고, 그와 동시에 에너지 전환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역성장을 위해 화석 연료에 대한 대안을 실행하는 것은 서로 연대하고, 개방적이며, 검소하고, 재지역화된 경제 속에서만 방향을 찾을 수 있다.(5) 오늘날, 신기술 경제 규모만이 기술 발전의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 역성장은 공생, 자율, 삶의 기쁨, 생태여성주의, 공동, 자유시간, 저차원기술, 영속농업, 상호성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서비스에 대한 혁신을 유도한다.(6) 기술혁신이 사회적, 문화적 성찰 속에 뿌리내린다면, 그 누구도 기술혁신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 추구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는 에너지의 무한 증대만큼 무익하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교육의 기회가 넓어지면 인류는 자녀출산을 자제한다. 이는 역사가 알려준 사실이다. 거의 모든 대륙에서, 100여 개 국가에서는 이미 세대를 교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출산율을 기록 중이다.(7) 설혹 수십 년 후 전세계 인구수가 100억을 넘긴다고 해도, 산아제한은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에나 해당될 과제일 것이다. 인구 문제는 식량과 물의 공유에 대한 문제이자, 생산과 소비 방식에 대한 문제다. 인구 고령화는 건강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만든다. 나아가, 더욱 친환경적이고 품질 좋은 재화와 용역(서비스)의 생산을 위해 투자하게 한다.
자본주의에서 탈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산성제일주의와 소비자 운동을 벗어나고, ‘경제’라는 단일 프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성찰과 더불어 과학기술만능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개발에 대한 비판 언저리에서 역성장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구 문명화의 모델은 탄생지의 국민들에게 강요된 것이다. 영국은 16세기에는 인클로저 운동,(8) 19세기에는 산업혁명 그리고 식민 지배를 통해 전세계로 서구 문명화 모델을 확장시켰다.
모두에게 ‘친환경’ 빵과 장미를
서구는 난관에 봉착한 소비자운동을 다른 국가들이 뒤따르는 것을 금지할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서구에는 두 가지 의무가 있다. 우선 현재와 미래의 재해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하고, 다음으로 저개발국에서의 채굴을 중지해야 한다. 즉, 역성장은 정치적, 경제적 간섭을 야기하는 자원개발을 끊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녹색성장 또한 식민지의 역동성 위에서 유지된다. 일례로 콩고는 신기술과 디지털에 필요한 코발트 탄광을, 볼리비아는 전자 배터리 원료인 리튬을 위한 전략국가다. 중국, 인도, 브라질의 중산층이 서구의 생활방식을 따른다고 해서, 이들 지역이 받은 엄청난 피해나 개발에 대한 비판을 외면하면 안 된다. 서구를 위한 생산 때문에 발생한 오염의 첫 피해자들은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온실 가스 배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선진국(9)의 역사적 책임 인정 여부에 대한 저개발국, 신흥국들과의 대화로 인해 지구 전체가 곤경에 빠져있다.
핵심은 성장 중단이 아니라, ‘공유’다. 역성장은 기본 소득, 무상 교역 시스템에 대한 개념을 환기시킨다. 이 지점에서, 자립을 위한 조건 없는 지원금을 제안한다. 이 지원금에는 기본소득, 공공서비스의 무료 접근, 생필품 재화가 연결돼 있다.(10) 이 지원금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별적이고 무조건적인 방식으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들을 보장해준다. 생활에 필요한 자원들과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지역화폐 등 새로운 비투기성 교환 시스템에 의해 주어질 것이다. 지원금은 소득증대 및 부의 재분배(불평등의 주요 원인)와 연관이 깊다. 지원금 계획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공공과 민간의 채무 감사 및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비다.
또한, 의결권을 지닌 직접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생산할 것인가? 지난 세기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은 노동운동의 찬가가 된 ‘빵과 장미’를 주장했다. 빵은 우선 맛있어야 한다. 현지에서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한 재료를 활용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미는 우선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겉모습이 화려하더라도 아프리카에서 인권과 환경을 침해하며 길러진 장미는 안된다. 그런 장미를 냉장해 비행기로 옮겨도 안된다.(11)
역성장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에 대해 질문한다. 역성장은 선진국부터 저개발국까지, 불평등하고 무질서한 사회를 만드는 언론과 광고 조작에서 벗어난, 새로운 계획을 단언한다. 말리 출신의 탈세계통합주의자인 아미나타 트라오레는 상상력을 파괴해 세운 성장중심 사회에서 신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12)
빈곤이 심각한 곳에는 풍요를, 낭비가 만연한 곳에는 절제를 선사하며 성장중심 사회에서 해방돼야 한다.(13)
글·뱅상 리에제 Vincent Liegey
엔지니어, 부다페스트의 Cargomia 사회 협동조합 공동코디네이터. Anitra Nelson과 공저 『Exploring Degrowth : A Critical Guide』, Pluto Press, 2020년. Isabelle Brockman과 공저 『La Décroissance, fake or not』, Tana Éditions, 2021년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Rémi Noyon, Sébastien Billard, ‘Faut-il avoir peur de la décroissance? 역성장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L'Obs>, Paris, 2012년 5월 13일.
(2) Timothée Parrique, Giorgos Kallis, ‘La décroissance : le socialisme sans la croissance역성장, 성장 없는 사회주의’, <Terrestres>, 2021년 2월 18일, www.terrestres.org
(3) Serge Latouche, 『La décroissance ou le sens des limites역성장 또는 한계의 의미』, <Manuel d'économie critique du Monde diplomatique>, 2016년.
(4) Timothée Parrique et al., 『Decoupling debunked : Evidence and arguments against green growth as a sole strategy for sustainability』, Bureau européen de l'environnement, 브뤼셀, 2019년 7월.
(5) Vincent Liegey, Stéphane Madelaine, Christophe Ondet, Anne-Isabelle Veillot, 『Ni portectionnisme, ni néolibéralisme mais une "relocalisation ouverte", base d'une nouvelle internationale 보호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아닌, 열린 재지역화가 새로운 세계의 토대다』, Bastamag, 2015년 11월 4일, www.bastamag.net
(6) 『Les précuseurs de la décroissance 역성장의 선구자』 aux éditions Le Passager clandestin 에 수많은 개념과 성찰들에 대한 깊이 분석이 담겨있다.
(7) 『La bombe humaine. Pression démographique sur la planète 인간 폭탄, 지구에 대한 인구의 압박』, <마니에르 드 부아르>, n˚167, 2019년 10-11월.
(8) Karl Polanyi, 『La Grande Transformation. Aux origines politiques et économiques de notre temps 우리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원의 거대한 변화』, Gallimard, coll. 『Bibliothèque des sciences humaines 인문학 도서관』, Paris, 1983년(초판: 1944년).
(9) Jason Hickel, 『Quantifying national responsibility for climate breakdown : an equality-based attribution approch for carbon dioxide emissions in excess of the planetary boudary』, The Lancet, vol.4, n˚9, London, 2020년 9월 1일.
(10) Vincent Liegey, Stéphane Madelaine, Christophe Ondet, Anne-Isabelle Veillot, 『Un projet de décroissance. Manifeste pour une dotation inconditionnelle d'autonomie역성장 계획, 자립을 위한 조건 없는 지원금 선언』, Éditions Utopia, Paris, 2013년.
(11) Zulma Ramirez, Geoffroy Valadon, 『Allons voir si la rose... 장미가 피었는지 보러 갈까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2월호, 한국어판 2020년 3월호.
(12) Aminata Traoré, 『Le Viol de l'imaginaire 상상력의 침해』, Fayard-Actes Sud, , Paris-Arles, 2002년.
(13) Jean-Baptiste de Foucauld, 『L'Abondance frugale. Pour une nouvelle solidarité 새로운 연대를 위한 검소한 풍요.』, Odile Jacob, Paris, 2010년.
녹색당의 금기어는 ‘역성장’
유럽생태녹색당(EELV)의 ‘2022년 생태환경주의 공화국을 위한 계획’은 절대적인 성장 추구 모델을 계속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 후보 프로그램 관련 자료 총 83페이지에서 ‘역성장’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9월 8일, LCI 방송국에서 열린 경선 2차 토론에서 유럽생태녹색당(EELV)의 세 후보는 이 주제를 기피했다. 우선 에릭 피올레는 “이 주제에 열광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야닉 자도는 “우왕좌왕하는 국민들 앞에서 냉철한 토론을 하기를 원치 않는다”라고 했다. 산드린 루소는 “이것은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의 분배다”라고 했다. 유일하게 ‘역성장’을 기조로 삼은 후보는 델핀 바토다. 그녀는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역성장을 생태환경주의의 모토로 삼아야 한다. 역성장만이 실패로 가지 않는 유일한 방향’이라고 말했다.(1) 이 덕분에 그녀는 3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그녀의 정당이었던 사회당과 현재 정당인 생태환경세대는 자유주의 정책과 연합하고, 더 나아가 ‘녹색 성장’과 결합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2/3는 ‘역성장’ 개념에 긍정적(매우 긍정적 13%, 긍정적 54%)이었다. 역성장의 정의는 인류의 안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재화와 용역의 생산을 감소시키는 것이다.(2) 조사에서 유럽생태녹색당(EELV)의 지지자 중 79%, 불복하는 프랑스당의 지지자의 86%, 공화당 지지자의 50%가 긍정적이라고 대답했다.
글·뱅상 리에제 Vincent Liegey (1) La Décroissance역성장, n˚182, 2021년 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