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손익계산에서 빠진 것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이안 골딘은 이제 윤리적인 면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경제학 교수인 그는 “경제적·윤리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국경 개방”을 주장한다. 자유로운 국가 간 인구 이동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국가나 이민을 떠나온 국가 모두에 유익하며,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이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향후 수십 년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중략) 세계화와 이민은 서로 얽혀 진행되며, 인류를 범세계적인 미래로 인도해 사람과 상품, 자본과 아이디어가 국가 간 경계를 더욱 자유롭게 넘나들게 할 것이다.”(1)
그러나 저자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간접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며, 정작 이민노동력이 유입 국가의 임금수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했다. “고용시장에서 이민노동력과 직접적 경쟁관계에 있는 하위 노동자층에게 약간의 임금 하락을 유발하더라도, 노동자 전체가 재화 및 서비스 가격 하락에 따른 혜택을 받는다. 1980~90년대 이민자 유입률이 높던 미국 대도시들에서 가사도우미, 육아도우미, 정원사, 페인트공 등 많은 노동인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의 서비스 가격이 하락했다.” 가사도우미를 조금 싸게 쓸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임금 하락을 겪은 노동자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까?
송출 국가에 대한 논리는 순전히 재정적 측면만 고려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송출 국가들은 자국 노동력의 해외 이민으로 엄청난 혜택을 본다. 미국의 이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2010년 3250억 달러)으로 본국의 경제가 지탱된다는 것이다. 또한 ‘두뇌 유출’은 유출이 아닌 ‘인력 순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본국에서 기술 및 교육수준에 맞는 직장을 구할 수 없게 되면서 고급 인력들은 만족스러운 성취를 위해 자신을 받아줄 나라를 찾아 떠나지만, 일단 해외에서 충분히 교육받고 사회·경제적 자본을 축적하고 나면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논리다.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교육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당수가 이민을 떠나지 못하고 본국에 남는데, 이는 본국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리핀은 “간호사들에게 이민 기회가 많아지면서 필리핀의 빈곤층 여성을 대상으로 정교한 사교육 체계가 발달하게 되었다. 간호 교육을 받은 이들 중 상당수가 교육받은 뒤 필리핀에 남았다. 그 결과 오늘날 필리핀은 인구 1명당 간호 교육을 받은 인력이 타이·말레이시아·영국 등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국가들보다 많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산업별 인력 수요 부족분에 따라 인력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실질적 인력 수요에 맞춰 국민 교육을 설계했어야 한다.
골딘은 이민자를 ‘경제행위자’라는 냉정한 시각에서 다루는데, “이들의 자유로운 이동이 24년 안에 세계경제에 39조 달러의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는 외국인이 겪는 실향의 아픔, 떠나온 조국과 정착한 국가 양쪽 모두에서 받는 이중 소외,(3) 이들의 생활 및 노동여건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을 서구사회의 인구 부족 현상을 메우기 위한 ‘인적자원 창고’쯤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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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브누아 브레빌 Benoït Bréville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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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안 골딘·제오프리 카메론·미라 발라라한, <예외적 인간: 이민이 현시대에 미친 영향, 그리고 이민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미국 프린스턴대학 출판부, 프린스턴, 2011.
(2) 알랭 모리스·스와니 포토, <이민노동자에서 불법노동자까지: 임금제 현대화와 외국인들>(De l’ouvrier immigré au travailleur sans papiers: Les étrangers dans la mondernisation du salariat), 카탈라, 파리, 2010.
(3) 압델말렉 사야드, <이중 부재: 입국 이민자들의 아픔과 출국 이민자들의 환상>(Des illusions de l’émigré aux souffrances de l’immigré)>, 르쇠이, 파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