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프랑스 장군의 황당한 횡설수설

드 라트르 장군의 고백

2021-12-01     에릭 뷔야르 | 작가, 영화감독

1951년 장 드 라트르 그 타시니 장군은 미국으로 향했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전쟁에서 공산주의 세력과 싸우고 있었고 미국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에릭 뷔야르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다룬 최근 저서’영예로운 외출’(Actes Sud, 2022년 1월 출간)에서 이 방문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매일 인생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하지만 매번 재미없는 페이지를 읽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베트남 카오벵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프랑스 원정군은, 드 라트르 타시니 장군을 인도차이나 고등 판무관겸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유능한 군인 한 명이 전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드 라트르는 1950년 사이공에 도착하자마자, 베트남 국민군 조직을 확대하고 대규모 군대와 네이팜탄으로 집중공격을 펼치며 승리를 이어갔다. 그리고 드 라트르는 자유를 이룩하기 위한 인도차이나 전쟁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미국 워싱턴에서는 트루먼 대통령을, 로마에서는 교황을 만났다.

그러나 드 라트르의 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백악관도, 바티칸도 아닌, 방송국이었다. 당시 시청률이 매우 높았던 미국 NBC의 시사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드 라트르가 방송국에 도착하자, 헨리 캐벗 로지 상원의원이 완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친절하고 세련된 태도로 드 라트르 장군을 맞이한다.(1) 드 라트르는 자신이 영어를 잘 못하고, 방송출연은 처음이라며 걱정한다. 

캐벗은 그를 안심시킨다. 드 라트르에게 불편한 질문은 자제하기로 이미 조율한 상태다. 드 라트르는 한숨을 내쉰다. 메이크업을 받을 차례다. 드 라트르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다. 드 라트르는 넓은 팔걸이에 팔을 내리고 머리를 떨군다. 장군님! 순간, 작렬하는 태양의 뜨거움 같은 것을 느낀 그는 한쪽 눈을 뜬다. 눈부신 조명 불빛들과 마주한 그를 쳐다보며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땀이 흐르는 그의 목에 화장지를 가져다 댄다. 

 

“인도차이나가 왜 미국에 중요한지요?”

잠시 후, 사회자 마사 라운트리가 분장실 안으로 불쑥 들어온다. 이 저명한 인사는 미리 준비한 프랑스어 인사말로 정중하게 드 라트르를 환대했지만, 정작 드 라트르는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사람들이 통역을 해 주자 드 라트르는 허둥지둥 일어난다. 그는 머리를 어색하게 끄덕거리며 연거푸 말한다. “I am very pleased to be here.”(2) 여유로운 태도의 미국인 사회자 옆, 드 라트르의 경직된 태도가 대조적이다. 잠시 후 라운트리가 그를 무대로 데리고 가서 친절하게 옆자리에 앉힌다. 타이틀뮤직이 시작된다. 

조명 아래에서 초대석을 본 드 라트르는 땀을 흘렸다. 배가 아프고 바지는 답답하다. 떨리는 손으로 넥타이를 만진다. 캐벗은 그에게, 이 방송을 수천만 명이 볼 것이며, 미 국방부의 요청으로 40여 개 TV채널에서 재방송 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40여 개 채널! 드 라트르는 입이 바짝 마른다.  

 

라운트리 : “시청자 여러분, 기자 패널 여러분,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드 라트르 장군을 환영해 주십시오. 프랑스어에 서툰 저를 위해, 로지 의원님께서 통역을 해주실 겁니다.” 

 

마사 라운트리는 상냥하게 방송을 시작한다. 성공, 합리성, 저널리즘의 거짓 투명성을 구현하며 깔끔하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 본론으로 들어간다. 

 

라운트리: “지금부터 스피박에게 첫 번째 질문을 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3)

스피박: “장군님, 미국으로 오시는 여정이 꽤나 피곤했을 줄로 압니다. 장군님께서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시는지요?”

 

질문이 직설적이다. 장군의 입이 마른다. 긴장해서 입술은 이에 달라붙고 붙고 목은 조이고 배가 꽉 조이는 느낌이다. 드 라트르는 겨우 입을 뗀다. “I shall answer in one minute. But before will you allow me to say something? My english is poor, very poor”.(4) 드 라트르를 직접 봤다면, 그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불안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You know, I came here in the spirit of a chief, military chief, as I told you, the responsibility of the great battle...” 그 다음은 말줄임표다. 드 라트르의 말도, 몸짓도 통하지 않는다. 그는 의미를 전혀 전달하지 못하는 기표들만 나열하며 영어의 망망대해에 빠졌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는다. 다행히 중요한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참모들과 여러 번 연습했고, 캐벗 의원도 정확한 발음을 알려준 문장이다. 지금이 그 문장을 발음할 적절한 순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잊어버리느니 말하고 보는 것이 낫다. 그래서 드 라트르는 주먹을 내밀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한다. “I did not come to ask American soldiers.” 미국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장난인가, 농담인가? 드 라트르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 자신뿐이다. 그가 수천만 미국인에게 전한 말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러분, 저는 수장으로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군의 수장이지요. 말씀드렸듯, 저는 대규모 전쟁을 이끄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명과 그에 따른 병사들의 생사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말의 요지를 파악할 수 없다. 그야말로 ‘난센스의 향연’이다. 발성기관을 사용해서 내뱉는 의미 없는 개인사일 뿐이다. 그러나 수많은 해설자들이 드 라트르의 의중을 해석해줬기에, 시청자들은 그가 물질적 지원을 요청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드 라트르에게 호감이 간다. 그는 우리 아이들을 군대로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인터뷰는 계속된다. 스피박은 단호하게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모두가 던지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을 하려는 듯하다. 역시 그는 내공이 있다. 단도직입적인 태도로 상대를 압도할 줄 알며, 눈빛은 공명정대함을 보장하는 듯하다. 그가 질문한다. 

 

“인도차이나가 우리 미국인에게 왜 중요한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미리 준비한 예리한 질문이다. 아마 군 홍보부에서 작성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 라트르는 다시 적절한 단어들을 찾느라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언어의 사막에서 전진하기 시작한다. 단어의 모래 속에 발이 푹푹 빠지고 의미는 바람처럼 날아다닌다. 고요한 폭풍 속,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캐벗 로지가 그토록 열심히 알려준, 대기실 화장대 앞에서 그토록 열심히 연습한 문장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드 라트르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떠올리려 애쓰지만, 스프레이 때문에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만 닿을 뿐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물에서 불쑥 솟아나듯 드 라트르가 숨을 고르고 입을 뗀다. “인도차이나는 동남아시아의 요지입니다. 그런데 이 요지가 갇혀 있습니다...”

이런! 이번에는 말이 똑똑하게 들린다. 방송기자들은 안도한다. 수많은 이목이 집중된 이 대형 방송이 이제 제대로 흘러갈 듯하다. 그런데, 드 라트르가 다시 허우적거린다. 왜 그는 계속 힘겹게 말을 할까? 이상하다. 스피박은 상황을 정리하고자, 드 라트르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준다. 

 

스피박: “인도차이나가 무너지면 동남아시아 전체를 잃게 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드 라트르 : “네 그렇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하지만 촬영기사들이 움직임을 멈췄다가 살며시 앞으로 나간다. 스피박은 혼자서 마술을 부릴 수 없다.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때 캐벗 로지가 등장한다. 방송에서 그의 역할은 통역사다. 즉, 이해관계가 없는 중립적인 역할만 가능하다. 캐벗 로지는 마치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처럼 그의 친구에게 질문을 던진다. 

 

캐벗: “그렇다면, 인도차이나가 한국만큼 미국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드 라트르는 예기치 못한 질문에 매우 당황스럽다. 그러나,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한다. 

 

드 라트르 : “저는 한국과 인도차이나가 단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박식한 말투로) “완전히 같습니다.” 

 

이 순간 드 라트르는 쉬운 단어로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한다. 다소 뻣뻣하지만 상대를 설득하려는 듯 이상하고 큰 제스처를 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듯, “한국에서 미국은 공산주의자들과 싸웁니다. 인도차이나에서 우리도 공산주의자들과 싸웁니다.”라고 말을 이어간다. 때로 가장 단순한 비교가 가장 이해하기 쉽다. 그는 명쾌하게 “한국 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은 같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연합국에 독립을 선사했습니다”

TV방송은 너무 길다. NBC 스튜디오 안에는 열기가 가득하다. 엔지니어들도 쉴 틈이 없다. 드 라트르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긴장한 상태다. 전구는 타는 듯 뜨겁다. 조명은 흔들리는 불빛 같다. 드디어 맥다니엘이 질문을 할 차례다.(5) 그는 드 라트르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 

 

맥다니엘: “1, 2년 전만 해도, 인도차이나 전쟁이 프랑스에서도 그리 지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드 라트르 :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에 전혀 이득이 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합국에 독립을 선사했습니다. 저의 충성심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말로만 외치는 독립이 아니라 실질적인 독립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드디어 드 라트르는 ‘독립’이라는 핵심 단어를 적절히 사용했다. 식민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말이다. 이때 캐벗 로지는 기회를 포착한다. 그는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드 라트르의 대답을 질문의 형태로 바꿔 확인하기로 한다. 캐벗 일가 특유의 단호하고 오만한 말투로 신중하게 질문을 한다.

 

“인도차이나 정부는 그들의 독립을 보장받고 있다, 이 말씀인지요?”

캐벗 가문 사람들은 언변이 좋다. 선조들이 몇 대에 걸쳐 안락하게 살 수 있을 만큼 부를 쌓고 상류층이 된 이후 언변이 늘었다. 헨리 캐벗 로지가 UN에서 했던 일장연설을 들어보면, ‘우세한 언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불쌍한 드 라트르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그리고 중국어는 단지 지방 사투리처럼 느껴질 것이다.

드디어 노련한 마사 라운트리가 짧지만 강렬하게 비통한 개인사를 꺼낸다.  

 

라운트리: “장군님, 아드님이 전사했지요?” 

드 라트르: 네.

라운트리: 얼마 되지 않았지요?

드 라트르: 5월 30일 밤이었습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사이공의 비 같다. 드 라트르 장군은 강가에 버려진 작은 보트에 홀로 남아있다. 스튜디오 안에 뿌연 김이 서리고 수증기가 반사경에 흘러내린다. 드 라트르는 멍하니 눈을 고정한다. 하지만 방송은 계속된다. 드 라트르의 인생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리고 여러 질문이 이어진다. 드 라트르는 대답했다가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대답했다가 또다시 영어 속에서 헤맨다. 마치 열대림 속에서 방황하는 느낌이다. 

베트남 국민군에 관한 주제가 나오자, 캐벗은 드 라트르가 지휘관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캐벗: “그들은 훌륭한 군인들이고, 당신이 이 원주민들을 공수부대로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드 라트르: “공수부대요? 이 청년들만큼 빨리 공수부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색한 칭찬에 뒤이어 그는 인도차이나 사람들은 너무 가벼워서 착륙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웃지 못할 농담을 덧붙인다. 이때 얼핏 군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3년 전 발루이 장군의 보고서에서 드 라트르가 기록한 내용이 떠오른다. 그는 “라오스인이나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의 안남인들과 달리 허약합니다. 그것이 인도차이나의 문제입니다”라고 했다.

다시 여러 질문이 이어지고 방송은 끝난다. 장군은 말을 더 이어가고 싶어 했지만 라운트리는 적절한 순간에 결론을 내리고 장군의 말을 막는다. 그녀는 아주 공손하게 드 라트르 장군과 캐벗 의원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드 라트르에게 영어가 유창하다는 칭찬도 잊지 않는다. 

 

 

글·에릭 뷔야르 Éric Vuillard
작가, 영화감독. 대학에서 자크 데리다에게 철학과 인류학을 배웠다. 1999년 첫 저서 『Le Chasseur 사냥꾼』(Éditions Michalon, 1999)을 출간했고, 2002년부터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 2017년 2차 대전 전야를 다룬 소설 『L'Ordre du jour  그날의 비밀』(Actes Sud, 2017)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헨리 로지 캐벗(Henry Lodge Cabot, 1902~1985)는 1936~1953년 메사추세츠 상원의원을, 1963~1967년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2) “Je suis très content d’être ici(제가 여기에 온 것이 정말 기쁩니다).”
(3) 로렌스 E. 스피박(Lawrence E. Spivak, 1900~1994)은 <Meet the Press(미트 더 프레스)>의 창립자이자 프로듀서로, 약 30년간 진행을 맡았다. 
(4) “Je vais répondre dans une minute. Mais avant, m’autorisez-vous à dire quelque chose ? Mon anglais est très très pauvre(1분 내에 대답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될지요?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5) 예츠 맥다니엘(Yates McDaniel, 1906~1983)은 AP(Associated Press) 통신의 대표적인 종군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