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가격 폭등의 원인은?

전력과 가스 시장 규제 철폐, 그 후 25년

2021-12-01     오렐리앙 베르니에 | 환경학자 겸 언론인

유럽연합은 전력과 가스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면 에너지 가격이 하락해 기업 및 가정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2000년대 실제 상황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물론 현재 코로나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았던 경제가 회복국면에 들어서면서 가격이 급등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심각한 구조적인 가격 상승을 유발한 주범은. 다름 아닌 ‘규제 철폐’다.

 

2021년 여름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1월 1일 이후 프랑스 가정용 가스 요금이 57%나 증가했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MWh(메가와트시)당 120유로에서 190유로로 대폭 급등했으며 2022년에도 요금 상승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 에너지 위기 때문에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200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연간 3.4%) 저소득 계층과 기업들은 시름에 빠졌다. 현재 에너지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대부분 경기 상황을 지목하고 있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유럽연합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1996년 12월 19일 유럽연합은 ‘전기 내부시장을 위한 공동 규제’에 관한 지침을 채택했다. 당시 대부분 회원국에서는 공기업이 독점적으로 에너지 생산, 운송, 공급을 관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경쟁력을 갖춘 전력 경쟁시장’을 구축하기로 결정했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가스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한 지침을 채택했다. 칠레와 영국에서 활동했던 시카고학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이 지침의 이행방안을 수립했는데 이때 세운 원칙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업무 분장’이다. 즉 하나의 공기업 안에 통합돼 있던 활동들을 분리해서 각각 독립적인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급망 관리 업무를 회계, 법률적으로 분리해 모든 생산자와 공급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규제가 없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2000년대에 송전 및 계통 운영회사(RTE)와 배전회사(ERDF, Enedis의 전신)가 프랑스 전력공사(EDF)에서 독립했다. 프랑스 가스공사 Gaz de France(민영화 이후 GDF Suez가 됐고 이후 Engie로 사명이 바뀌었다.)도 마찬가지로 고압가스배송망은 GRTGaz로, 가스 배급은 GRDF로 업무를 분리시켰다.

 

가스와 전력, ‘가격의 신자유화’

신자유주의 모델의 두 번째 원칙은 바로 가스, 전기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거래시장을 개설하는 것이었다. 이제 정부가 규제하는 요금제 대신에 시장가격을 따르겠다는 의도다. 프랑스 전력거래소 ‘파워넥스트(Powernext)’는 2001년 전력 시장을 개설한데 이어 2008년에는 가스 시장을 개설했고 이후 프랑스의 에너지 시장은 점진적으로 유럽 시장으로 편입됐다. 이 거래소에서 전력 공급사는 여러 종류의 계약서를 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물 계약’은 미리 체결한 계약 가격으로 다음 주나 혹은 월, 분기, 년 단위로 미뤄 운송하는 것이며 ‘스팟 계약’은 실시간 구매를 하고 바로 다음날 또는 며칠 이내에 운송하는 것이다. 

가스와 전력의 자유화는 정책적 쟁점도, 어려운 부분도 달랐다. 프랑스는 가스를 거의 생산하지 않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2020년 주요 가스 공급 국가는 프랑스 수입량의 36%를 차지하는 노르웨이, 17%를 차지하는 러시아, 그리고 각각 8%를 차지하는 네덜란드와 알제리, 7%를 차지하는 나이지리아였다.(1) 

그런데 가스 시장의 자유화로 배관망이 공기업의 독점 관리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자 가스 공급사들은 생산국에서 가스를 구매한 다음 프랑스의 인프라 사용료만 지불하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가스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공급사는 최저가로 가스를 확보하거나 최대한 운영비용을 감축하는 곳이었다. 

과거 프랑스 가스공사(Gaz de France)는 통상적으로 10~15년 장기계약을 체결해 계약기간 내내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했다. 또한 가스관, LNG선, LNG터미널 등 인프라에 예산을 배정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가스공사 민영화 초기만 해도 가스 공급사 대부분은 가스 생산자와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자, ‘스팟 계약’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에너지 가격 전문 사회학자 토마스 르베르디는 “기업들의 기회주의적 태도와 연관이 깊다”라고 지적했다. 스팟 계약 가격이 폭락하면 대규모 소비자는 공급사에게 가격이 하락한 만큼 혜택을 달라고 요청했고 이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공급사는 장기계약을 하는 대신 스팟 계약으로 가스를 매수했다. 그러자 스팟 시장이 가격 결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2) 게다가 이런 경향은 LNG 가스 가격 급등으로 시장 유동성과 변동성이 증가하자 더욱 굳어졌다. 2015년 이후 장기 공급 계약 거래는 유럽 전 지역 거래 중 단 1/3 뿐이다. 

그런데 가스 가격은 경제상황, 기온 등 여러 정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격 거품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시장가격 변동은 소비자가 내는 요금에 직접적으로 전가된다. 전력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프랑스의 전기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력공사 EDF가 전력 생산의 핵심 인프라인 원자력 발전소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 원자력 발전소의 민영화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유럽연합은 이런 프랑스 상황을 고려해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적용했다.

유럽연합은 EDF의 독과점 구조를 흔들기 위해 재생에너지 민간 개발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새로운 보조금 지급 제도를 만들었는데 평균 전기 생산비용보다 훨씬 높은 구매가격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이 보조금 제도를 2000년 2월 10일 ‘전기 공공 서비스의 현대화 및 개발에 관한 법’으로 제정하고 프랑스에서 시행했다. 소비자가 내는 소비세로 보조금의 비용을 충당하며, 보조금은 생산한 에너지양에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에 민간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했다. 

게다가 아시아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설비 생산량이 늘어나자 2010년대 초부터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의 가격이 급락했고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 거래가격이 지정가격보다 낮은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Feed in tariff) 덕분에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수익률이 높아졌으며 재생에너지 붐이 일어났다. 물론 이 때문에 관련 인프라가 난립하는 부작용도 일어났다. 에너지규제위원회(CRE)는 2002~2013년 지급한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740만 유로로 추산했다.

 2020년 민간이 생산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설치용량은 28GW(기가와트)였으며 EDF의 원자력 발전 설치용량은 93GW였다. 물론 이 정도 재생에너지의 성과도 인정해야 할 것이나 연간 에너지 생산 시설 사용률을 고려하면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2020년 태양광은 불과 14.4%였으며 지열 23%, 풍력 26.5%, 수력은 29%이었던 반면 원자력은 61%로 훨씬 높았다.

 

변동요금제, 변동된 것은 요금뿐만이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EDF는 전력 생산에서 고지에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전력 판매 경쟁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경우, 민간 판매사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가격’이다. 결국 프랑스와 유럽연합은 2010년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우선 ‘규제 가격을 적용하기 위한 기존 원자력 에너지 규제 접근(ARENA)’제도를 마련했는데 요지는 EDF가 매년 원자력 발전량 중 25%를 정부가 정한 상한가로 경쟁 판매사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가 EDF의 생산비용을 반영해 책정하는 규제가격 대신 시장가격으로 거래하기로 했다. 비주거용의 경우 2016년 도입한 중소기업용 옐로요금제와 산업용 그린요금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가정용 블루요금제는 유럽 전력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전기 가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산정방식을 수정했다. 그래서 이제 시장요금의 상승에 따라, 생산비용과 무관하게 EDF의 전기요금도 상승한다.(3)

최근 유럽연합은 ‘변동요금제’를 추가 도입했다. 이 제도는 전기사용량과 요금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미터 ‘Linky’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실시간 시장가격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다(한 시간마다 요금이 변한다). 2019년 6월 15일 유럽 지침은 최종 사용자가 2만을 초과하는 판매사에게 변동요금제 적용을 의무화 했고 이후 가정, 지자체, 기업 모두 시장가격에 따라 변동하는 요금을 납부해야 하게 됐다.

정부가 지정했던 규제요금을 시장요금으로 대체하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과거 전력생산과 공급을 관장했던 정부는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EDF가 송전망 관리에 필요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요금을 책정했다. 이를 위해 EDF는 수익성에 따른 전력 생산방식을 선택했다. 즉 발전 비용이 저렴한 시설(풍력, 태양광, 수력, 원자력)부터 사용하고 발전 단가가 비싼 시설(화력)을 나중에 사용했다. 그 다음 정부는 전부원가(Full costing)를 고려해 소비자가 최종 납부할 요금을 산정했으며 에너지믹스를 최적화했다.

그런데 전력시장 체제를 도입하자,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메가와트시(MWh)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종일 변한다. 특히 전력소비 피크시간대에 수요에 맞춰 전력을 생산하는 화력발전과 수력발전의 수익은 높아진다. 이 때문에, 탐욕스런 공급자는 더 높은 수익을 거두고자 전기 가격이 최고치일 때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고 더 높은 가격 상승을 유도하기도 한다.

가스 발전은 유럽 총 발전량의 20%를 차지하며(2020년) 전력소비량이 최고점일 가장 많은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가스의 가격 변동이 전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게다가 탄소 가격 상승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 인증, 재생에너지 발전 인증, 발전 용량 인증 거래를 위해 만든 각종 거래소에서 형성되는 가격도 전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전기 가격은 여러 거래소의 메커니즘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최종 결정된다.

2021년 가을 전기요금이 폭등하자 정부가 개입하려 했으나 이미 경쟁의 원칙을 수용하면서 가격조정 수단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물론 요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에너지세금을 감축했고 프랑스는 저소득 600만 가구에 난방비용을 보조해주기 위해 ‘에너지 수표’를 지급할 뿐만 아니라 가스요금 인상은 2021년 10월 이후로, 전기요금 인상은 2022년 2월 이후로 미뤘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후 시장가격이 하락하거나 대선이 끝나면 이런 혜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소비자 연맹은 에너지 시장가격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전력 사용량이 많은 기업들도 생산비용이 폭등하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노동조합도 에너지를 다시 정부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에너지 분야 노조단체 쉬드 에너지(Sud Energie)는 “더 이상 에너지를 시장에 맡기지 말고, 과거와 같이 투자를 계획하고 안정적이고 투명하며 공정한 요금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4) 그리고 또 다른 단체 FNME-CGT는 에너지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혁신적 공공기관을 설립을 위한 ‘점진적 에너지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5)

가격 폭등으로 EDF의 분할과 민영화를 위한 ‘헤라클레스 프로젝트’는 연기됐다.(6) 그러나 여전히 규제철폐와 민영화를 추구하는 유럽연합의 태도는 확고부동하다. 결국 에너지를 시장의 논리에서 분리하는 것은, 한층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정부에게 강요하는 유럽의 극자유주의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글·오렐리앙 베르니에 Aurélien Bernier
환경학자 겸 언론인.『에너지 약탈자. 전기, 가스, 석유 독과점과 민영화』, Utopia, 2018, 『로컬리스트의 환상』, Utopia, 2020의 저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Chiffre clés de l’énergie, Edition 2021 에너지 주요 통계, 2021년 판’, 프랑스 생태전환분, 2021년 9월. 
(2) Thomas Reverdy, 『La construction politique du prix de l’énergie 에너지 가격 정책 수립』, 시앙스포 출판사, 파리, 2014년.  
(3) Aurélien Bernier, ‘Electricité, le prix de la concurrence 전기, 경쟁의 가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5월. 
(4) ‘Augmentation des prix de l’électricité : dossier d’analyse 전기 가격 상승 : 분석 자료’, SUD-Energie, 2021년 9월 16일. 
(5) ‘Programme progressiste de l’énergie de la FNME CGT FNME CGT의 점진적 에너지 계획’, www.energie-servicepublic.com 
(6) Anne Debrégeas, David Garcia ‘Qui veut la mort d’EDF? 누가 EDF의 죽음을 원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