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와 프랑스, 과거사를 둘러싼 외교마찰

2021-12-01     아크람 벨카이드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에비앙 협정’ 60주년을 몇 달 앞둔 시점에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외교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식민지 과거사 문제가 논란을 고조시키는 한편, 계속 이어지는 알제리 정권의 재편성으로 프랑스 당국은 혼란에 빠져있다. 통상적으로 외교마찰의 여파에 끄떡없던 양국의 경제·안보 교류도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있다.

 

일시적인 외교마찰일까? 지속적인 관계악화일까? <르몽드>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알제리 양국 관계에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10월 2일 알제리 정부는 ‘협의를 위해’ 프랑스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그리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언’을 거부한다고 발표했다.(1) 

지난 9월 30일, 프랑스 대통령은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에 참전했던 인사들의 후손을 엘리제궁에 초청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알제리는 과거사의 잔재 위에 세워진 국가이며 ‘정치·군사 제도’에 의해 통치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위정자들이 새로 쓴 알제리의 식민지 역사는 프랑스에 대한 증오 담론을 확산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식민지 이전에 알제리가 과연 국가로서 존재했었는지 의문이다”라는 발언으로 현 알제리 정권 반대파를 비롯해, 알제리 국민의 비위를 건드리기도 했다.(2) 이에, 알제리 정부는 프랑스 주재 대사를 소환해 말리에서 바르칸 작전(Operation Barkhane)을 수행하는 프랑스 군용기의 영공 통과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양국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3) 그중 가장 심각했던 갈등 사례는, 1971년 2월 우아리 부메디엔(Houari Boumediene) 대통령의 탄화수소 국유화 결정 때문에 발생한 외교마찰일 것이다. 이후 여러 해에 걸쳐 외교갈등과 프랑스의 보복조치(알제리 와인 수입 중단 등)가 이어졌다. 알제리 국민들은 식민지 시절, 자국의 이민자들이 프랑스에서 겪은 인종차별과 각종 폭력, 살인에 대해 침묵하는 프랑스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4) 1975년 4월, 지스카르 데스탱(Valery Giscard d’Estaing) 프랑스 대통령이 알제리 독립 이래 처음으로 수도 알제를 국빈 방문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5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당선 이후였다. 

 

식민 지배의 긍정적 역할?

하지만 긴장을 놓지 못할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외교적 갈등의 불씨는 주로 프랑스에서 먼저 타올랐다. 일례로 프랑스의 식민 지배 과거사뿐 아니라 2005년 프랑스 의회와 우익 장관들이 제안한 ‘식민 지배의 긍정적인 역할’에 관한 법안 논란을 들 수 있다.(5) 수개월 동안 논란이 이어졌고, 독립전쟁 참전 용사를 비롯해 ‘혁명위원회’ 일원이었던 알제리 인사들이 132년에 걸친 알제리 식민 통치에 대한 공식사과를 프랑스에 요구했다. 

그로부터 10년 전인 1995년 10월 22일, 리아민 제루알(Liamine Zeroual) 알제리 대통령이 “알제리 국민의 존엄과 주권 침해”를 문제 삼아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프랑스 대통령과의 만남을 취소한 일이 일어났다. 이 만남은 뉴욕에서 열린 유엔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것이었다. 왜, 이런 갑작스러운 갈등이 불거진 것일까?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한 말 때문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알제리 대통령을 만나면, 자유롭고 민주적인 총선을 신속히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는 “1991년 12월 총선이 무효가 된 이후, 무력충돌 사태로 수만 명의 희생자가 속출한 알제리가 하루빨리 평화를 찾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때때로, 갈등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양국은 2013년 12월까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불과 11개월 전에 알제리 정부는 프랑스 전투기가 말리 반군을 폭격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영공을 열어줬다. 이런 화해 분위기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올랑드 대통령이 프랑스 유대인 단체 대표자 회의(le Conseil représentatif des institutions juives de France, CRIF) 기념 연설에서 한 농담이 알제리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당시 올랑드 대통령은, 공무를 위해 알제리를 방문한 프랑스 내무장관 마뉘엘 발스(Manuel Valls)가 “무사히 돌아왔다”라면서 “이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알제리 당국은 이 농담을 알제리의 안보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람탄 라마므라(Ramtane Lamamra) 알제리 외교부 장관은 ‘유감스러운 발언’이라고 평가했고, 알제리 언론과 누리꾼들은 분노로 들끓어올랐다. 올랑드 대통령은 결국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사과를 해야 했다.(6)

반면, 양국의 격한 갈등이 사전 합의된 작전의 일부일 때도 있다. 그 현장의 장본인이 술회한 바와 같이 2002년 초,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 알제리 대통령에게 4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식민지 과거사를 두둔하는 연설을 할 수도 있다며, 알제리 측의 양해를 구했다. 이에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양해는 하겠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알제리 관료들은 ​​식민지 문제에 민감한 여론을 의식했다. 그리고 “식민 통치국이었던 프랑스에 대한 비난을 금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늘날, 마크롱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양국 간 갈등의 불씨는 널려있을 예정이다. 이 불씨는 언제라도 앞당겨질 수 있다. 알제리 정부는 프랑스 정부가 분명 재차 과거사를 운운하거나 ‘에비앙 협정(1962년 3월 18일 프랑스 정부와 알제리 임시정부가 체결한 휴전협정)’과 1968년의 이주 특혜 협정(알제리 이민자들이 타 국적자들보다 더 쉽게 프랑스에 정착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함)의 특정 조항을 문제 삼을 것이라고 본다. 

알제리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자국이 고립된 시기에 프랑스가 외교 지원을 하지 않았던 점도 유감스럽게 여긴다. 그 밖에도 알제리 당국은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카빌리자결운동(MAK)의 수장 페르하트 메헤니(Ferhat Mehenni)를 비롯한 여러 반대파 인물들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프랑스에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됐다. 한편 프랑스는 불법 이민을 근절하고, 테러에 연루된 이중 국적자들(특히 시리아와 이라크 국적자)의 수용을 알제리로 넘기고자, 향후 알제리와의 더욱 긴밀한 협력을 원한다.(7)

1971년을 제외하고는 양국 갈등이 아무리 첨예해도, 오늘날까지 두 가지 주요 분야는 ‘외교 갈등’의 영향을 거의 항상 비껴갔다. 첫 번째는 안보와 군사 협력 분야다. 양국의 국방과 정보 당국은 상호 협력을 유지해왔고, 외교 관계 기복에 좀체 흔들리지 않았다. 전 알제리 육군 장교의 증언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서로를 비방할 때도 정보국과 군대는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는 경제 분야다. 해마다 규모는 다르지만, 프랑스는 2020년에 알제리 시장 점유율 10.6%를 기록해 16.8%를 차지한 중국에 밀려났다. 하지만, 이탈리아(7.1%)와 독일(6.5%)보다 높은 2위를 유지했다.(8) 프랑스는 이탈리아(14.7%)에 이어 알제리 수출의 13.3%를 차지하는 2위 수출국이다(스페인 10%, 중국 5%). 

이처럼 전혀 다른 두 장면이 겹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일시적인 마찰이나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장안의 화젯거리로 오르내린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군사, 정보기관과 경제계가 묵묵히 자신들의 임무를 이어간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히라크(2019년 알제리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작된 대중시위운동을 의미 – 역주)가 아무리 알제리 정권을 비판해도 프랑스 정부는 긴밀한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던 만큼, 이런 변화는 알제리 현 정권에 대한 마크롱 정부의 낭패감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해볼 수 있게 해준다. 알제리 정권은 예로부터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씨족으로 구성됐으나 체제 영속을 위해 단결해왔다. 

 

알제리와의 연결고리를 놓친 프랑스

하지만 이제는 권력 이동, 가차 없는 배제와 고립, 투옥과 같은 방식으로 정권이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이처럼 누가 결정권을 쥐었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적절한 정치 교섭 상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상대가 과연 약속을 이행할지도 확신할 수도 없다. 2년 전부터 고(故)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감옥에 수용되거나 정권에서 밀려났다. 가장 가까운 고문이었던 그의 형제 사이드 부테플리카(Saïd Bouteflika), 지난 정부의 수뇌부, 영향력 있는 여러 장관, 알제리 기업인협의회(FCE) 회장 알리 하다드(Ali Haddad) 같은 인물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 프랑스는 믿을 만한 중재자와의 동맹을 잃어버렸다.(9) 그리고 조금씩 부상하는 인물들은 프랑스의 이익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알제의 지하철을 운영해온 파리 교통공사(RATP)와 상수도 공급을 맡아온 수에즈(Suez) 같은 프랑스 기업은 사업 수주에서 밀려났다. 프랑스 곡물 생산 업체들은 알제리가 수입하는 밀의 56%를 공급해왔으나, 알제리 정부가 공급업체를 다양화하려는 의향을 보이면서 입지가 크게 줄고 말았다.(10) 

프랑스의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은 정부와 외교 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랍어를 구사하고 자국에서 교육받은 알제리 엘리트들은 원로 세대처럼 불어를 쓰지도 않고, 프랑스 문화에 친숙하지도 않다. 한편, 프랑스 외교관이나 마크롱 정부의 고문들은 원로들보다 더 유럽 문화에 친숙하고 서구화됐지만, 프랑스-알제리 관계의 특정 역사에는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권력의 주축인 알제리 인민해방군(ANP, 정부군) 역시 이런 인식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거의 모든 알제리 고위 장교들은 프랑스군을 거쳤지만, 이제는 아니다. 

프랑스는 이제 라르비 벨크헤이르(Larbi Belkheïr) 알제리 전 내무장관이나 칼레드 네자르(Khaled Nezzar) 전 국방부 장관 같은 과거의 동맹이나 교섭 상대에게 의지할 수 없다. 국가정보기관인 정보보안이사회(DRS) 전 수장 모하메드 라민 메디엔(Mohamed Lamine Mediène, 일명 투피크 Toufik) 장군과 전 내부 보안국장을 지냈으나 현재는 투옥돼 부사관 계급으로 강등된 와시니 부아자(Wassini Bouazza)는 모두 파직됐다. 그 후임들은 국가의 진정한 권력자로 통하는 현 참모총장 사이드 첸그리하(Said Chengriha)의 전철을 밟아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지만 과거 식민지배국에 대한 의구심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알제리 군인들은 서부 사하라 문제에 관해 모로코를 꾸준히 지지하는 프랑스를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 8월 24일, 알제리는 모로코가 이스라엘의 협조를 받아 “적대행위를 일삼았다”라고 주장하며 모로코와의 국교를 단절했다. 모로코는 지난 2020년 12월에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바 있다. 2019년까지 부테플리카 대통령과 측근들은 모로코를 편파적으로 지지하는 프랑스를 이해하는 관대한 태도를 보였지만, 오늘날의 정치, 군사 관계자들은 아무도 이런 프랑스를 나서서 두둔하지 않는다. 압델마지드 테분(Abdelmadjid Tebboune) 알제리 대통령은 이웃 국가 모로코와의 갈등 심화를 원하는 강경파 편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알제리 군대는 말리에서 철수 예정인 프랑스군을 대신해 말리에 개입하는 것을 몹시 꺼린다. 물론, 1월에 개정된 알제리 헌법은 영토 밖 인민해방군 파병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내부의 거부감이 적지 않아서 프랑스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느 외교관의 설명처럼 알제리 내부에서는 ‘자율적인 외교’로 회귀하자는 담론이 양산되고 있다. 말리 반군에 대한 프랑스의 비판에 알제리가 동조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알제리가 ‘지지와 내정 불간섭’을 약속한 튀니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Kaïs Saïed) 대통령이 의회 기능을 정지시키고 새 총리를 임명했으나, 프랑스를 필두로 여러 서방 국가에서는 이런 사이에드 대통령의 강권 행사를 선뜻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과거와의 화해’, ‘이와 동시에’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학살(1961년 10월 17일 알제리인에 대한 통행금지령에 항의하는 2만5천 명의 시위대를 파리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한 사건)’ 60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다. 프랑스 대통령의 이런 행보에 알제리 정부는 전적으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의지를 보인 만큼, 긴장감이 차차 누그러들고 모하메드 안타르 다우두(Mohamed-Antar Daoud) 대사도 파리로 복귀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알제리 독립 60주년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 대통령은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알제리인은 이런 접근방식을 경계한다. 압델마지드 테분 대통령은 “사형집행인과 희생자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가당치 않다”라고 말했다. 여러 정부 관계자들이 마크롱 대통령의 유일한 목표는 대통령 대선을 몇 달 앞두고 우익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모으는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상호 우호 조약 사업을 완수했다면 식민지 과거사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었을 테지만, 2005년에 이후로 이 사업이 중단돼버린 점을 뒤늦게 애석히 여길 것이라고 평가한다. 알제리 언론인 바샤르는 마크롱 대통령의 어떤 발언을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한다. 2017년 2월 대통령 후보 시절에 식민지화가 ‘반인륜적 범죄’라고 했던 말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1830년 프랑스 알제리 침공 이전에 알제리가 국가로 존재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던 말을 믿어야 할까?

이처럼 마크롱 대통령이 즐겨 쓰는 ‘이와 동시에(En même temps)’라는 수사적 도식은, 프랑스 정부의 발언에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으리라 믿는 알제리인들을 당황하게 한다. 프랑스 정부가 대통령과 알제리 청년들과의 만남을 취재할 인물로 <르몽드> 기자 무스타파 케수(Mustapha Kessous)를 지명한다는 사실도, 알제리인들의 추측을 부채질한다. 알제리의 청년상을 다룬 케수 기자의 다큐멘터리가 2020년 5월 26일에 <France 5>를 통해 방영되자마자 거센 비난이 빗발쳤고, 다우드 대사가 처음 본국에 소환되는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11) 

알제리인들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과거 식민지였던 알제리와의 관계에서 사소한 사안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고 확신하기에, 이런 선택 또한 예사롭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Mustapha Kessous, ‘Le dialogue inédit entre Emmanuel Macron et les ‘‘petits-enfants’’ de la guerre d’Algérie 에마뉘엘 마크롱과 알제리 전쟁의 증손들 간의 전례 없는 대화’, <르몽드>, 2021년 10월 2일.
(2) ‘Emmanuel Macron et l’Algérie: révisionnisme néocolonial et ingérence 에마뉘엘 마크롱과 알제리: 신식민지 수정주의와 내정간섭’, <Algeria-Watch>, 2021년 10월 11일.
(3) Naoufel Brahimi El Mili, 『France-Algérie: 50 ans d’histoires secrètes 프랑스-알제리: 숨겨진 50년 역사』, 제1권 2017, 제2권 2019, Fayard, Paris.
(4) Pierre Judet, ‘La détérioration des relations entre la France et l’Algérie 악화된 프랑스와 알제리 관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76년 2월호.
(5) Claude Liauzu, ‘Une loi contre l’histoire 역사에 맞서는 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5년 4월호 / Sandrine Lemaire, ‘Une loi qui vient de loin 먼 곳에서 온 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6년 1월호.
(6) ‘Hollande exprime ses “regrets pour l’interprétation de ses propos” sur l’Algérie 올랑드 대통령 알제리에 대한 자신의 발언, 잘못했다고 인정 ’, <France 24>, 2013년 12월 22일.
(7) ‘Accusé d’un « gros mensonge » par le président Tebboune, Gérald Darmanin maintient ses chiffres sur les clandestins algériens 압델마지드 테분 알제리 대통령이 ‘순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지만, 제랄드 다르마냉 장관은 알제리 불법 이민자 숫자를 고수함’, <르몽드>, 2021년 10월 11일.
(8) ‘Algérie : relations économiques bilatérales 알제리: 양자 경제 관계’, 프랑스 재정경제부 재무총국(Ministère de l’économie, des finances et de la relance, Direction générale du Trésor), Paris, 2021년 10월 10일.
(9) Adlène Meddi, ‘Contrats bloqués, “ French bashing “, visas... Au-delà des enjeux mémoriels, les vraies raisons de la brouille 계약 배제. ‘프랑스 때리기’, 비자 등. 과거사 너머이 있는 진짜 갈등의 이유’, <Le Point>, 2021년 10월 10일.
(10) Nathalie Wisotzki, ‘L’Algérie restera-t-elle encore longtemps le premier client du blé français ? 프랑스 밀 최대 수입국 알제리, 얼마나 오래 이어질 것인가? ’ <Terre-net>, 2020년 2월 19일, www.terre-net.fr
(11) Tewfik Hakem, ‘Algérie mon amour, le documentaire qui déchaîne les passions 내 사랑 알제리, 그 열정에 관한 다큐멘터리 ’, <Franceculture.fr>, 2020년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