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표를 던질 수 없는 니카라과 대통령 선거

2021-12-01     가브리엘 헤틀랜드 l 알바니 뉴욕주립대학교 부교수

중미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76세) 대통령이 4연임이자 통산 5선에 성공했다. 좌파 여당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후보로 나선 오르테가 대통령은 74.99%의 득표율을 기록해 2027년 2월까지 5년 더 임기를 연장했다. 그는 1979년 FSLN을 이끌고 친미 소모사 정권을 축출한 후 1985∼1990년, 이어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집권 중이다. 2017년부터 부통령으로 함께 한 영부인 로사리오 무리요(70세) 여사도 부통령 임기를 5년 연장하게 된다. 야권과 국제사회는 ‘사기 선거’라며, “오르테가 정권 독재로 가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11월 7일, 다니엘 오르테가의 당선을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산디니스타 수장인 그를 반제국주의 혁명가로 여기는 이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2021년 9월 26일 뉴욕 교외에서 조직된 양국 ‘연대’ 회의에서 데니스 몬카다 외무부 장관이 강조했듯, 오르테가는 미국에 맞섰다. 그리고 나아가, ‘빈자들을 위한 선택’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르테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통령과 로사리오 무리요 영부인의 정권은 독재정권이며, 이들 때문에 니카라과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억압과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의 산디니스타는 1970년대 후반 혁명을 승리로 이끈 산디니스타와 다르다는 것이다.

 

오르테가는 독재자인가, 혁명가인가?

오르테가를 라틴아메리카의 위대한 혁명 전통의 대표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1979년 7월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독재정권을 전복하던 시기 오르테가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사무총장을 맡았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소모사 정권 붕괴 이후 국가를 이끌게 된 ‘국가재건 혁명 정부’는 은행, 보험사, 광업·임업 자원을 국유화했다. 또한, 식품 수출입을 정부 통제하에 뒀고, 1979년 8월 21일에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법령을 발표해 사형제를 폐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했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주도하에 미국은 산디니스타를 전복하려는 무장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며 니카라과에 공포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미국은 심지어 당시 이란이 무기 금수 조치 제재하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니카라과에 개입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란과의 무기 밀매를 조직하기도 했다. 국가 경제를 황폐화한 내전이 계속된 1981~1990년 사이에 약 3만 명의 니카라과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오르테가는 1990년 투표에서 패했고, 보수파인 비올레타 차모로가 집권하며 니카라과에는 16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기가 펼쳐졌다.

오르테가는 2006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재집권했다. 지지자들은 그의 재집권을 혁명에 헌신한 산디니스타 정신의 재확인이라 생각했다. 최근 한 기사에서 연구원 요리스 가브리엘라 루나는 이들의 생각을 자세히 설명한다.(1) 오르테가 정부는 10년간 경제 성장을 이어가며 국가 빈곤율을 30% 낮추고, 니카라과를 중앙아메리카에서 살인 범죄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만들었다. 초·중등 교육은 무료로, 최빈곤층에는 의료서비스를 무료 제공했다. ‘역사를 통틀어 이 나라에서 늘 부족했던’ 기본 인프라 시설(도로, 하수도, 식수 공급)도 건설했다. 이 정도면 혁명이라 할 수 있을까? 나아가 니카라과에 사회주의를 수립하는 데 충분했을까? 

지지자들은 오르테가가 불리한 역사적 상황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 승리는 여러 세력(민간 부문, 보수파, 콘트라 반군, 가톨릭교회)과 타협한 덕에 거둘 수 있었다. 즉, 오르테가 대통령은 권력 균형을 맞추는 감각을 발휘해 노동자와 빈자에게 순수한 혁명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제공한 실용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니카라과와 미국 관계가 악화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이런 상황이 더욱 잘 이해된다. 2018년 오르테가 행정부는 사회 보장 분담금을 인상하고 보장은 축소하는 개혁을 발표했다. 법안이 발표되자 수천 명의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이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시위대 중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부상자와 체포된 사람은 더 많았다.

오르테가는 이 사건이 중앙아메리카를 향한 미국의 개입주의로 인해 발생한 또 다른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다시 말해 ‘정권 교체’를 달성하기 위한 캠페인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니카라과에서는 과거 쿠바,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볼리비아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사회를 불안정화하려는 시도가 관찰된다.(2)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처럼, 미국은 2018년부터 니카라과 투자 제한법(Nica Act)을 이용해 니카라과의 여러 기관과 정치 지도자에 제재를 가했다. 2021년 8월 6일, 미국 의회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정부와 대통령 가족의 부패 행위, 니카라과 보안군이 자행하는 인권침해 등을 관찰하고 문서화해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인 니카라과 선거개혁 조건 준수 강화법(Renacer Act)을 승인했다.(3) 오르테가의 지지자들은 이를 새로운 ‘콘트라 전쟁’이라 여겼다.

 

들썩이는 니카라과 현대사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으로 니카라과가 전례 없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진보를 이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때와 마찬가지로 오르테가는 재집권 이후 빈곤을 줄이고 최빈곤층에 혜택을 주는 인구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미국이 니카라과와 중앙아메리카의 사회주의 계획에 항상 반대해 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1954년 과테말라가, 2009년 온두라스가 소심하게 사회민주주의적 로드맵을 그릴 때도 미국은 극우 쿠데타를 지원하거나 쿠데타 세력에 동기를 부여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니카라과 현대사는 여전히 들썩인다. 일찍이 1995년, 오르테가 대통령과 세르히오 라미레즈 당시 부대통령을 비롯해 우고 토레스, 도라 마리아 텔레즈(1979~1990년 보건부 장관) 등 유명한 게릴라와 이들의 여러 동지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과 결별하고 산디니스타혁신운동(MRS)을 수립했다. 이들은 옛 동지 오르테가의 전제주의적이고 우파적인 일탈을 방치했다. 1998년에는 오르테가의 양녀가 12세 때부터 10년에 걸쳐 그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앙녀는 2013년부터 망명국 코스타리카에서 살고 있다). 오르테가의 권위는 더욱 실추됐다.

2006년, 오르테가는 가톨릭교회와 보수파인 아르놀도 알레만 전 대통령(1997~2002)의 지원 덕에 대선에서 승리했다. 몇 년 후 2009년 1월 16일, 니카라과 대법원은 국가 사기, 자금세탁, 범죄단체 결사 혐의로 2003년 20년 형을 선고받은 알레만 전 대통령의 혐의를 벗겨줬다. 많은 이들은 알레만과 오르테가 간의 ‘계약’에 따라 최종판결이 내려졌다고, 즉 국회에 있는 알레만 지지자들이 판결을 지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미국 연구원 윌리엄 I. 로빈슨은 집권 이후 오르테가가 “시위대의 물결에 사기업 최고위원회(Cosep)가 무너지기 전까지 위원회와 국가를 공동 통치했다”라고 설명한다.(4) 그런 한편, 오르테가가 “보건·교육 부문 재국유화, 사회지출 증대, 지속적인 기반시설 투자”를 계속했다는 사실도 명시한다. 

오르테가와 그의 협력자들에게 비난의 목소리는 2018년 시위 이후 커졌다. 로빈슨 등 일부 분석가들은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국민 600만 명 중 10만 명 이상이 니카라과를 떠났다고 본다.(5) 스티브 엘너 등 다른 분석가들은 “평화시위를 하는 젊은 이상주의자들과, 경찰관을 죽이는 대가로 돈을 받는 폭력시위대가 공존하는 시위의 이중적 특징”에 주목한다.(6) 그들에 의하면, 시위대의 목적은 오르테가를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탄압의 구실, ‘미제국주의의 위협’

또한 스티브 엘너는 미국이 여러 반정부 조직에 넉넉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의 제재 때문에 니카라과 국민이 겪는 고통이 심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니카라과를 향한 미국의 개입주의는 멈추지 않았으며 니카라과가 2018년 전까지는 미국으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시위대의 분노를 막지는 못한다.

오르테가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2021년 6월부터 반대파 탄압을 새롭게 전개하면서, ‘미제국주의의 위협’을 들어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오르테가 정부는 대통령 선거 후보 7명과 수십 명의 반대파, 언론인, 학생 지도자, 인권운동가를 체포했다. 우고 토레스와 도라 마리아 텔레즈는 열악한 처우로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아온 엘 치포테 교도소에 수용돼 있다. 

정부를 향한 비판은 사건 직후 쏟아졌다. 과거 니카라과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좌파의 상징적인 인물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지난 7월에는 1980년대 산디니스타 정부와 함께(때로는 정부를 위해) 일했고 니카라과-미국 간 연대를 추구하는 조직에도 몸담았던 500여 명이 ‘니카라과 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7) 

노암 촘스키, 앨리스 워커, 대니얼 엘즈버그도 서명에 동참하며 산디니스타 혁명을 지지하고 미국의 개입주의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 정부의 범죄가 오르테가 정부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라는 주장을 덧붙인다. 오르테가 대통령이 재집권하자, 그의 지지자들은 “니카라과의 반제국주의 체제가 아직 살아있다”라며 기뻐한다. 그러나 니카라과의 현 상황을 보면, 이들의 기쁨은 신기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글·가브리엘 헤틀랜드 Gabriel Hetland
알바니 뉴욕주립대학교 부교수

번역·문수혜
번역위원


(1) Yorlis Gabriela Luna, « The Other Nicaragua », Council on Hemispheric Affairs, Washington, 2019년 10월 2일, www.coha.org
(2) ‘Cuba, ouragan sur le siècle 쿠바, 세기에 걸친 태풍’, <마니에르 드 부아르>, 155호, 2017년 10~11월; Alexander Main, ‘Où va l’opposition à Nicolás Maduro ? 니콜라스 마두로의 반대파는 어디로 가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3월호 / Maurice Lemoine, ‘En Amérique latine, l’ère des coups d’État en douce 라틴아메리카, 은밀한 쿠데타의 시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8월호 / Renaud Lambert, ‘En Bolivie, un coup d’État trop facile 볼리비아의 너무나 쉬운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호.
(3) ‘Senate approves bipartisan legislation to bolster U.S. engagement in Nicaragua as crisis deepens’, 미국 상원 성명, 2021년 8월 6일, www.foreign.senate.gov
(4),(5) William I. Robinson, ‘Crisis in Nicaragua: Is the Ortega-Murillo Government Leftist (Part I)?’, The North American Congress on Latin America (Nacla), New York, 2021년 8월 19일, https://nacla.org
(6) Steve Ellner, ‘Commentary, The Nicaraguan Crisis and the Challenge to the International Left’, <Latin American Perspectives>, vol. 48, no. 6, Thousand Oaks (Californie), 2021년 11월호.
(7) ‘Open Letter to the Nicaraguan Government From U.S. Solidarity Workers, 1979-1990’, 2021년 7월 4일, zcom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