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끈을 묶을 줄 모르는 남자

2021-12-01     마크 리봇 l 기타리스트

신발 끈을 묶을 줄 모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해리’라는 이름의 그는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여러 분야에서 해리는 예리한 지적 능력과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그는 로켓과학자였고 실제로 로켓을 여러 대 설계했다. 그러나 신발 끈을 묶는 일이 ‘로켓과학’처럼 고도의 지능을 요하는 일이 아님에도, 그는 신발 끈을 묶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해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신발 끈을 잘 묶지 않으면 발을 헛디딜 수 있고, 잘못하면 목이 부러질 수도 있다는 걸 그도 잘 알았다. 사람들은 그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즉각 알려줬다. 평상시에는 타인에게 쉽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사회적 금기도, 상대방의 신발 끈이 풀려 있을 때는 허물어졌다. 이는 인간사회 내 기이한 현상이다. 해리는 이 현상에서는 소심함이 대담함으로, 온순함이 공격성으로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평소 사랑스러운 사람도 이때는 증오를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증오는 흔히 사랑을 구실로 삼지만, 이는 실상 어떤 이가 신발 끈을 묶지 않았을 때 ‘발을 헛디뎌 낙상할 수 있기에 걱정돼서’라는 말로 합리화되는 적나라한 증오였다.

해리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문화적 규범 속에 존재하는 무한한 변수들 중에 ‘신발 끈’이라는 예외가 존재함을 알아냈다. 그는 세네갈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신발을 신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신발 끈을 묶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초면의 인물과 대화할 때 존재하는 보편적인 금기도, 풀린 신발 끈 앞에서는 반 금기(Antitaboo)로 변해버렸다. 팔에 주사기를 꽂은 채, 혹은 머리에 도끼가 박힌 채 돌아다니는 사람 앞에서도 무신경하던 사람들이, 풀린 신발 끈에는 반응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이 일어나도, 대낮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남의 일에 말려들기 싫다’라고 말하는 도시인들 사이에서도, 풀린 신발 끈이라는 반 금기는 작동했다. 사람들은 해리의 어깨를 거칠게 두드리거나 그의 팔을 잡고 흔들거나 혼잡한 공항 통로에서 큰 소리로 말을 던졌다.

 

“이봐요, 신발 끈 풀린 것 알고 있어요?”

“저기요, 신발 끈이 풀렸어요!”

“신발 끈 잘 묶어요. 넘어져서 죽을 수도 있다고!”

 

해리는 카페로 향하면서 편안한 자리에 앉기도 전에 종종 튀어나오는 위험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애썼다. 신발 끈을 묶으려면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는 전에 연골이 찢어져 고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릎을 꿇을 때 약간 아팠다. 그에게는 상처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발을 헛디뎌 낙상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애를 쓰고 아픔을 참아 봐도 해리는 신발 끈을 묶을 수 없었다. 신발 끈을 나무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엄지와 검지로 붙잡고 있는 것까지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작은 뱀이 나무 주위로 돌아가는 부분도 이해했다. 그러나 다음 단계, 즉 작은 오소리가 작은 뱀을 잡아 구멍 속으로 집어넣는 부분에서 항상 뭔가가 어긋났다. 몇 분만 걸어도 매듭이 풀릴 것 같았다.     

해리는 신발 끈 묶는 법을 아버지한테 배웠지만,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해리의 아버지도 로켓과학자였다. 해리보다 훨씬 유능하고 유명하며 보수도 많이 받는 로켓과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지정학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로켓을 만들었다. 즉 해리의 아버지는 ‘현대 로켓과학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해리가 어른이 됐을 때, 로켓과학의 위대한 원칙과 공식들은 이미 발견됐거나 발명된 후였다. 만일 해리가 그의 아버지 같은 야망을 품고, 그가 통신회사 대신 나사(NASA)나 펜타곤에 들어가려 했다 해도, 해리가 그의 아버지만큼 열정적으로 ‘포스트모던 로켓과학의 아버지’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 해리가 신발 끈 묶기 같은 간단한 일을 해내지 못하자, 해리의 가족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해리의 아버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일 때문에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해리는 57세가 됐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나 지났다. 즉, 대체 그 작은 오소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버지에게 묻기에는 너무 늦었다. 

해리는 평생 신발 끈을 묶지 않고 걸었지만, 단 한 번도 낙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번 발을 헛디딘 적은 있었어도 신발 끈에 걸린 적은 없었다. 그는 왜 풀린 신발 끈 하나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켓과학자로서 해리는 위험을 계산하는 일도 했다. 통신회사의 위성 부서에 있는 그의 상관은 툭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로켓 발사에 위험 요소가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임무는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해리는 신발 끈을 묶는 비율을, 신발 끈과 관련한 부상 및 사망률과 비교 측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이 데이터를 주요 보험사의 보험 통계표 및 작업현장 안전에 관한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의 연구와 상호 참조했다. 옛 대학원 친구를 통해 최근에 기밀 해제된 군사 통계도 입수할 수 있었다. 이 통계는 제강소나 고층건물 건설현장을 제외한 비군사적 상황에서, 풀린 신발 끈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실제로 해리는 묶지 않은 신발 끈이 심각한 부상이나 죽음의 부수적 요인이 될 통계적 확률은, 술집에 당구대를 설치하는 것이나 바비큐 그릴을 놓는 것과 비슷한 수준임을 알아냈다. 

사람들은 당구대를 술집에 갖다 놓은 바텐더에게 이렇게 윽박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치워요! 게임에서 진 손님들이 총질을 할 수도 있다는 거 몰라요?” 

술집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 미쳤어? 뭐 하는 거야? 그릴이 폭발해서 화상을 입으면 어쩌려고?”

또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위해 촛불을 켜놓은 이들에게 이렇게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맙소사! 촛불에 대한 통계를 본 적 있어요? 촛불이 로맨틱하다고요? 당신의 집과 아이들이 홀랑 타버려도 로맨틱하다는 소리가 나올까요?”

해리는 ‘풀린 신발 끈이라는 반 금기’에 불합리하고 부당한 점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는 신발 끈을 묶을 수 없는 것만큼 불가사의한 이유로, 이제부터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신발 끈을 묶을 수 없거나 묶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대표해 이 상황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의 신발 끈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고개를 꼿꼿이 들고 그들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그는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하다가 점점 호전적인 태도를 취했다. “신발 끈을 묶지 않는 건 나도 알고 하는 선택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해 이제는 “당신의 사소한 공격이 불쾌하군요. 당장 그만둬요” 혹은 “내 발에 신경 꺼, 이 신발 끈 묶는 평범한 돼지야!”라고 말했다. 해리가 평범하게 신발 끈을 묶는 특권에 도전했을 때 불러일으킨 분노는, 그가 아무리 강하게 대응해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는 얻어맞았고, 그에게 침을 뱉거나 역겨운 말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피를 흘릴지언정 굽히지 않고, 해리는 자랑스럽게 신발 끈을 묶지 않은 채 당당하게 걸었다.

그는 신발 끈을 묶지 않고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맹세했다. 비록 미주리 주 밖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 무렵에는 뉴스매체에서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이 그와 함께 걷기 시작했고, 그는 곧 자신이 어떤 세계적 운동의 리더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퀴어 신발 끈 관행(Queer Shoelace Practices)’ ‘신발 끈 불순응, 인종, 젠더: 교차적 접근’ ‘전후 영국에서 스니커헤드(운동화 수집광) 청소년 문화’ ‘신발 끈 저항 세계투쟁공동체’가 주최하는 토론의 패널로 초청받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의회에 계류 중인 ‘신발 끈으로 창피 주기’에 반대하는 법안도 등장했다. 그러나 그때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로켓 발사에 위험이 없을 수 없다고 한 해리의 전임 상관의 예측이 좀 더 평범한 일들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 해리가 신발 끈에 걸렸고, 결국 넘어져 죽은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해리의 부고에는, 해리의 이웃 로버트 쇼세트의 말이 인용됐다.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글·마크 리봇 Marc Ribot
기타리스트, 『Unstrung: Rants and Stories of a Noise Guitarist 느슨해진 줄: 한 시끄러운 기타리스트의 불평과 이야기』(Akashic Books, New York, 2021)의 저자. 이 글은 이 책에서 발췌한 것임.

번역·조민영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