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유럽 좌파는 혹한기를 맞았다.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신규 정당 출범 초기의 희망도 사라졌다.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독일의 좌파당은 힘을 잃었다. 이탈리아의 진보 진영은 1991년 4월 공산당 해체 후 나침반을 잃고 표류 중이다. 좌파는 민중의 열망을 듣지도, 사회 전반에 팽배한 불만을 기회로 삼지도 못한 채 감정과 가식의 담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사여구를 동원해 분열 중인 사회 집단들을 결집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프랑스에서는, 이번에도 좌파가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막상 선거가 닥치면 좌파의 다양한 분파가 단합할 것이라고 가정해보더라도, 좌파 구성원 간에 남아있는 공통분모가 없다. 따라서, 좌파의 패배를 점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세금제도, 퇴직 연령, 유럽연합(EU), 원자력 존속 여부, 국방정책, 미국,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 등 핵심 사안들에서 서로 대립하는 이 다양한 좌파 분파들이 어떻게 연합해 국가를 이끌 수 있겠는가?
극우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직도 좌파를 결집시키는 유일한 공통분모다. 지난 40년간 프랑스에서 ‘좌파’가 집권한 세월은 20년에 달한다(1981~1986, 1988~1993, 1997~2002, 2012~2017). 그런데 그 동안 극우는 꾸준히 입지를 다졌다. 다시 말해 극우의 부상이라는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좌파가 취한 전략은 처참히 실패했다.
“우리는 이미 침몰했다”
다른 국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장뤼크 멜랑숑은 “상처에 소금을 뿌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침몰했다! 모든 국가의 좌파는 소멸됐다”라고 인정했다.(1) 좌파의 선두 후보 멜랑숑은 우파와 극우파의 후보 4명에 밀려나 있다. 2002년 사회민주당은 EU 내 15개 정부 중 13개 정부를 이끌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27개 EU 회원국 중 사회민주당이 집권 중인 국가는 7개국(독일,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몰타)뿐이다.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정부시절에 내무장관을 지낸 장피에르 슈벤느망은 좌파를 몰락시킨 모순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재화, 서비스, 자본,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문제를 제기한 진영은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에 대거 합류한 좌파가 아니라, 소위 ‘포퓰리스트’적인 우파다.”(2)
이 ‘문제제기’는 사실 ‘좌파 중의 좌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급진좌파의 상황도 밝지 않다. 그리스의 채권자들은 시리자(SYRIZA, 급진좌파연합)에 엄격한 경제·금융 정책 실시를 요구했다. 시리자는 이들의 요구에 저항했으나, 결국 굴복했고 실권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와 독일의 좌파당(Die Linke)도 힘을 잃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EU 의회에서 단 한 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영국 노동당을 이끌며 블레어주의의 구습 탈피를 추구했던 제러미 코빈은 현재 무소속이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확립한 민주당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려 했으나, 대통령 선거운동 일주일 만에 몰락했다. 이제 좌파가 희망을 걸 곳은 라틴아메리카가 유일하다.
사회적 전환의 목표가 실현되려면 서민층의 강력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정책 실패, 체제의 부당성을 인식했다고 해서 이를 타파하려는 의지가 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수단이 부족할 경우, 저항과 분노는 현실에 굴복한다. 이런 상황은 보수와 극우의 자양분이 된다. 프랑스와 여타 국가에서 지난 20년간 일어난 대규모 사회적 궐기 대부분이 실패로 끝난 것은 노조의 비효율적인 전략(프랑스국영철도(SNCF)와 파리교통공사(RATP)의 ‘일자별’ 전일 파업) 탓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운행을 강요하는 방식 등으로 운송망 전체를 마비시키는 파업을 막은 정부 정책의 책임도 크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패배를 거울삼아 패배의 원인이 된 수단을 파괴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들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거나 어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은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한다. 철학자 뤼시앵 세브는 “자본주의는 저절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승객을 태운 채 자살하는 비행기 조종사처럼, 자본주의는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힘을 쥐고 있다. 우리가 시급히 조종실을 장악해야 한다.”(3)
좌파는 종종 조종실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오늘날 좌파에게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좌파 집권 시절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억이 좌파에게 다시 조종실을 맡기려는 의지를 꺾기 때문이다. 블레어, 클린턴, 미테랑, 크락시, 곤잘레스, 슈뢰더, 올랑드. 이 이름들은 종종 강한 거부감을 유발한다. ‘좌파’라는 명칭이 여전히 매력적이려면,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뉴딜, 인민전선, (영국의 공공의료 서비스 확립에 기여한)‘1945년의 시대정신’, 사회학자 베르나르 프리오의 표현처럼 사회보장제도 속에 ‘이미 존재하는 공산주의’라는 흑백사진을 뒤적여야 할 정도다. 이 과거의 영광 이후 좌파의 실망스러운 역사, 특히 최근 몇 년간 좌파가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히 해둬야 한다. 첫째, 좌파는 단순히 좌파의 강령 실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파의 강령을 실천했다. 둘째, 좌파가 타협을 최대한 연기하려 할 때마다(프랑수아 올랑드는 취임 첫날부터 그랬다) 좌파를 굴복시킨 것은 쿠데타도 외국 군대도 아닌 재정 질식이었다. 2015년,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아테네의 봄과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것은 탱크가 아니라 은행”이라고 요약했다.
내부의 적
적은 종종 내부에 존재한다. 민간분야로 전향한 노동당 출신 전직 총리(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바클레이 은행과 JP모건의 고문을 맡아 큰돈을 벌었다. 사회당 출신 전직 재무장관(프랑스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은 (좌파가 우파의 전위부대라고 비판해온) 국제통화기금(IMF)의 총재가 됐다. 최근까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 세계화의 동력인 금융규제 완화를 설계한 이들은 프랑수아 미테랑의 측근인 프랑스 사회당원 3인방이었다. 자크 들로르는 EU 집행위원장, 앙리 샤브란스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요직, 미셸 캉드쉬는 IMF 총재를 역임했다.
결국, 민영화는 좌파가 주도한 경우가 많았다. 단일유럽의정서, 민관제휴, 언론 등 각계의 민영화가 좌파의 작품이다. 사회당이 배출한 총리 리오넬 조스팽은 2002년 프랑스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직원들의 이익을 고려하면 프랑스텔레콤과 에어프랑스를 민영화한 정부의 결정은 정당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좌파 유권자를 결집시킬 것인가? 그렇다면, 집권 좌파가 우파 정책의 관리자 역할을 거부하면 상황이 개선될까? 문제는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약 100년 전 사회당 당수 레옹 블룸은 총선 전날 좌파 카르텔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우려를 표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핵심 원칙이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현 사회의 대표와 지도자가 합법성을 무시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4)
당시 블룸은 실력행사를 우려했다.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실력행사를 하거나 합법성을 무시해도 소용없다. 해당 국가의 국민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상관없다. 그리스 총선에서 좌파가 승리를 거둔지 4일 만에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좌파에 경고했다. “유럽 조약에 반하는 민주주의적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이 구조상의 빗장, 그리고 불가능에 대한 공포가 통치자의 정책과 뇌리에 너무나 깊이 박혔다. 지난 11월 프랑스 국민 90%가 기본 생필품 50종에 대한 부가가치세 폐지를 요구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제 공공회계부 장관은 “EU 집행위원회와 수년간 논의를 거쳐야 한다. 현행 규정상 부가가치세 0% 부과는 불가능하다”라고 답변했다.(5)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이제는 너무 지쳤다.
이 반복된 무력감은 정치 토론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40년 전 약 20만 명에 달했던 사회당 당원은 2021년 현재 약 2만 2,000명에 불과하다. 당원이 빠져나간 정당은, 변화의 도구로 비치지 않는다. ‘끼리끼리’ 행태만 남는다. 생존 경쟁에 처한 정당들은 이제 자아와의 갈등을 부추기는 선거 도구로 전락한다. 정당은 부패했다고 판단한 많은 활동가들은 수평적, 포괄적, 참여적인 다른 형태의 투쟁으로 눈을 돌렸다.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 밤샘(Nuit Debout) 또는 노란 조끼(Gilet Jaune)시위가 그 결과다. 이 시위 모두 (시위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 지도자 선출, (권위주의를 방지하기 위해) 위계적 조직 구성, (회유당하지 않기 위해) 정당이나 노조와 연맹 결성 혹은 (음모와 타협의 세계로 간주되는) 선거 입후보를 거부했다.
효율성을 희생시킨 순수성
순수성의 추구는 효율성을 희생시켰다. 2011년 10월 15일, 점령(Occupy)운동은 82개국 952개 도시에서 수백만 명을 결집시켰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 세계적 시위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노란 조끼 운동은 매주 토요일 시위를 벌이며 프랑스 시위 역사에서 최장기간 시위를 지속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했다. 아랍의 봄은 어떤가? 타흐리르 광장 시위 후 10년이 지난 지금, 압델 파타 알시시 대통령이 통치하는 이집트는 2011년 실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보다 더 가혹한 독재에 억압받고 있다.
히샴 엘 알라위는 아랍의 봄에 대해 “이 시위를 이끌었던 청년들은 (...) 그 어떤 수직적 형태의 조직도 거부했다. 수세기에 걸쳐 부패를 목도한 그들은 정치 체제를 불신했고 불결하고 부패한 체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상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순수성을 유지해야 했다. (...) 하지만 아무리 거리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압력을 가해도 소용없다. 이 압력이 정치체제에 반영되지 않으면 당신은 주변인에 불과하다”(6)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방정식은 간단하다. 조직이 없으면 영향력도 없다. 영향력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따라서 숙명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체념의 분위기가 감돈다. 이들은 다른 지대에서 투쟁을 모색한다. 수백만 인파가 거리로 나오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이제 많은 운동가들은 자신들이 비판하는 사회조직을 전복시킬 수 있는 지역사회의 대안들과 구체적인 행동들을 우위에 둔다. 예를 들어 보호구역(ZAD, Zones à défendre), 자치공동체, 순회법원 등과 같은 제도들이 활발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에서 떨어져 나와 산다는 것은, 결국 본질을 바꿀 수 없으므로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돼버린다.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사회관계란 몇몇 관계에서 벗어난다고 바뀌지 않는다. 반자본주의의 섬이라고 해서 자본주의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은 아니다. 섬에는 ‘본토 주민들’(자본주의자)을 남겨둔다”라고 말한다. 또 그는 “그러나 섬은 유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본토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는 조건, 즉 본토 실정에 맞춰 ‘보편화’될 준비를 한다는 조건에서만 그러하다”라고 덧붙인다.(7) 그러나 주로 중산층 출신의 젊은 대학 졸업자들이 주도하는 이런 보호구역 유형의 운동들이 대중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까?
그러나 좌파의 실패를 제대로 성찰하려면 20세기 내내 사회의 신뢰를 얻고 사회에 변화를 선사한 계층 간 연대를 돌아봐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산산조각 났다. 이 사회를 재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할까? 진보 성향의 중산층과 서민층이 결집한 통합전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두 집단은 공간적, 학력적 분리가 확산됨에 따라 이제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게 됐다. 현재 정당에는 대부분 부르주아 대학 졸업자들과 은퇴자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이들은 더 이상 함께 활동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같은 목표로 결집하는 일도 없다.
왜? 좌파는 대중의 마음을 잃었는가
지난 30년 동안, 좌파와 대중 유권자들이 멀어진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서 비롯됐다. 정치적으로는 공약 불이행에 대한 배신감, 경제적으로는 3차 산업의 확대, 자본화, 세계화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사회학적으로는 교육받은 계급들의 능력주의 찬양, 인류학적으로는 계산적이고 상업적인 합리주의로 인한 삶의 다양성 와해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의 주변 지역 잠식, 문화적으로는 사회 투쟁에 대한 상류층의 투쟁 때문이다.
이런 고전적인 방식으로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 두 가지 원인을 둘 다 고려할 때만 일관성 있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한 가지 요인은 ‘소비에트의 위협’이 자본주의적 ‘자유세계’의 지도자들에게 행사해온 중재의 미덕이고, 또 한 가지는 서민층과 제도정치의 관계가 악화된 것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완강히 반대하는 토마 피케티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세기에 나타난 불평등의 감소는 공산주의 역모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이 모델은 자본주의 국가의 엘리트 소유주들에게 압력과 위협을 행사함으로써 권력관계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조세제도와 사회체제, 그리고 이 역모델이 없었다면 매우 어려웠을 사회보장제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데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8)
사실상 소련은 희망을 대변해왔다. 수십 년간 서구의 노동계급에서도 특히 가장 열성적인 분파에서 또 다른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가능성을 제시해온 것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 없이는, 정치도 없다. 그것은 정확히 1980년대에 사라진 욕망, 환상, 희망의 혼합물이다. 바로 이 시기에 정부가 좌파 성향과 자유주의로 전향함으로써, 어떤 면에서 산업적 보루를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1930년대 이후 사회를 장악한 집단에 반칙을 선언하는 결과를 낳았다.(9) 정치 평론가들과 여론조사원들은 ‘정치적 무관심’의 책임을 민중에게 돌렸다. 그러나, 이는 경기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어서 기권한 그들의 구실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 물러나면,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독차지한다. 전쟁 직후 5% 미만이었던 고학력자 비율이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고학력자들은 선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미 기득권층인 그들은, 정치적 승리를 위한 연대가 절실하지 않다. 즉, 다른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1950~1960년대에는 부유층과 고학력자들이 우파에, 빈곤층과 저학력자들이 좌파를 지지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전문직업인이나 기업 간부들이 좌파에 투표한다. 이들은 부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을, 종종 반대방향으로 이끈다.(10)
‘미국식 모델’은 유럽의 곳곳에 널려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부유한 도시에 사는 고학력자들은 민주당에 투표한다. 웨스트버지니아나 미시시피 등 가난한 시골 주민들은 공화당에 투표한다. 그러나 30~40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사회당, 노동당, 민주당, 생태주의 정당 등 중도좌파 정당들은, 서민층 유권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도 선거에서 이길 것을 자신한다. 특히 서민층이 거의 참여하지 않는 선거의 경우 그렇다. 따라서 이들이 고학력 부르주아 중심의 문화적·사회적 자유주의를 우선시할 수도 있다. 실제로 프랑수아 올랑드는 “노동자 표를 잃어도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올랑드의 이 말에 동의하듯, 2016년 7월 뉴욕 주 상원의원인 찰스 슈머는 “펜실베이니아 서부에서 우리가 잃은 민주당 노동자 한 명당 두 명의 온건파 공화당 지지자를 필라델피아 교외에서 데려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달 후, 펜실베이니아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이겼다.
좌파의 가격은 얼마?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IMF 총재는 “우리나라 중류층에서 일어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려면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서민 표를 포기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뛰어난 전략가인 그는 2002년 대선 직전, 후보에서 탈락한 뒤 이런 선택에 대해 설명했다. “신중한 고학력 임금 노동자들로 구성된, 거대한 중류집단 구성원들은 우리 사회의 뼈대이며, 사회의 안정성을 책임진다. 반면, 최빈곤층 중에는 투표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그들은 폭력적으로 선거판에 등장하기도 한다.”(11)
20년 전, 사회당은 파리 시장 선거에서 우파를 꺾었으나 20여 개의 다른 도시에서는 완패했다. 사회당 지도부 중 한 명인 앙리 에마뉘엘리는 당시 ‘좌파, ㎡당 얼마일까?’(12)라는 냉소적인 제목의 기사를 썼다. 기사에서 그는 “과거 좌파연합의 영향력은 전통적으로 ㎡당 가치에 반비례했으나, 이제는 그 가치에 비례하는 추세”라고 일갈했다.
1983년과 1989년, 자크 시라크는 파리 20개 구에서 승리를 거뒀다. 사회당 출신의 두 시장이 연달아 파리 시청에 입성했고, ㎡당 가치는 3배로 뛰었다. 이와 대칭적으로 극우파는 198년 대선 당시 파리에서 13.38%(파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필적하는 득표율)를 얻었으나, 2017년에는 4.99%에 그쳤다. 그럼에도 그해 마린 르펜은 노동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21.3%를 얻었다. 이런 사회학적 역전 현상을 보면, 좌파를 주도하고 좌파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계층은 상류층과 고학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쪽에 중요한 것이 다른 쪽에도 반드시 중요하지는 않다. 이들이 같은 당을 지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2017년, 민주당에 투표한 미국의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최우선시하는 5가지를 말해보라고 하자, 그들은 의료비, 연금 총액, 고용주가 의료비를 부담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위험, 경제활동 수준, 그리고 실업 문제를 꼽았다. 진보 성향의 대학 졸업자들, 즉 기자, 예술가, 교사, 여론조사원, 선출직 공무원, 교수, <뉴욕타임스> 구독자, 블로거, 공영라디오 청취자 등 ‘창조적 계층’은 환경, 기후변화, 의료비, 교육, 인종적 정의(正義) 순으로 5가지를 꼽았다.(13)
이런 불협화음이 중도파와 급진파를 가르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례로 2019년 영국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은 (그를 싫어하는) 블레어파 의원들과 (그를 지지하는) 급진적 학생들이 가하는 이중의 압박에 굴복해, 자신이 승리하면 두 번째 브렉시트 찬반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해 선거에서 크게 패했다.
과연, 선택지가 남아있을까
그러나 중도파든 급진파든 중산층 대학 졸업자들은 유럽연합 탈퇴에 격렬하게 반대했고, 노동당을 지지하는 가장 서민적인 지역에서는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유럽연합을 선택한 코빈은 수십 명의 유권자를 보수당으로 넘겨준 셈이다. 이 사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좌파가 잃어버린 유권자를 되찾고자 한다면, 유권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민감한 주제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우파는 트위터와 언론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힘든 시기일수록 좋은 소식을 듣고 싶어하는 법이다. 그러나 보건 위기와 함께 공격적인 좌파에 결집을 알리는 신호는 더욱 줄어들었다. 위축된 개인, ‘과거의 세계’에 대한 멜랑콜리, 극우의 정체성 강박에 초점을 맞추는 공론은 늘어났다. 좌파가 ‘공포의 정치’에 무릎을 꿇는다면, 좌파는 공포의 정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로 인해 과거에 쟁취한 것을 지키거나,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선거용 미봉책밖에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바리케이드’가 세워진 기존 질서와는 단절될 것이다. 장뤼크 멜랑숑보다 올랑드(2012년)와 마크롱(2017년)이 그랬고, 버니 샌더스보다 힐러러 클린턴(2016년)과 조 바이든(2020년)이 그랬다.
전후(戰後) 사회주의에 맞서 방어전만 치르는 데 신물이 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자유주의의 건설자들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들은 지지자들이 ‘지적 모험’ ‘용기 있는 행동’ ‘진정한 급진주의’를 중시하도록 유도했다. 오늘날 이런 지침은 좌파에게 더 유용할 것이다. 지난 30년간 세워진 경제적·정치적 게임의 규칙들을 우파가 '양심적으로' 지킴으로써, 이제 또 한 번 좌파가 실패할 것은 확실하다. 반대로 생태적, 사회적, 민주주의적 측면에서 벌어지는 3중의 긴급 상황은 진정한 ’자유주의적 급진주의‘에 맞서 전도된 급진성을 내세우라고 요구한다. 이 자유주적 급진주의는 승리를 앞두고 있고, 그것의 추구는 사회의 파괴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지적이고 능력을 중시하는 좌파가 평등하지도, 대중적이지도, 승리하지도 않을 것이란 게 확실하다.
칠레의 새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는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 것이고, 자신은 행동으로 공약을 지킬 것이라면서 앞으로 추구할 목표를 제시했다. 그가 가야 할 길이 험난할 거라는 말은 순화한 표현이다. 그러나 언젠가 노암 촘스키는 자신의 확고한 낙관주의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당신은 ‘나는 비관주의자야.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야. 나는 포기하겠어. 분명히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면 가능성의 존재, 희망의 빛줄기를 붙잡고 어쩌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진실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글·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브누아 브레빌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편집장
번역·김은희, 조민영
번역위원
(1) ‘Questions politiques 정치적 문제’, <France Inter>, 2021년 3월 21일.
(2) Jean-Pierre Chevènement, 『Qui veut risquer sa vie la sauvera 삶의 위험을 무릅쓰는 자가 삶을 구하리라』, Robert Laffont, Paris, 2020.
(3) 2019년 11월 8일 <L’Humanité>와의 인터뷰, 사망 직후인 2020년 3월 24일 재출간.
(4) Léon Blum, ‘L’idéal socialiste 사회주의의 이상’, <La Revue de Paris>, 1924년 5월. 장 라쿠튀르가 인용. 『Léon Blum 레옹 블룸』, Seuil, Paris, 1977.
(5) M. Gerald Darmanin, <Le Journal du dimanche>, 2019년 4월 7일.
(6) ‘A dissent’s view of the Arab Spring’, 히샴 엘 알라위와의 인터뷰, <The Harvard Gazette>, 2019년 12월 23일, www.news.harvard.edu.
(7) ‘Frédéric Lordon: “Rouler sur le capital(자본에 대해 말하다)”, <Ballast>, 2018년 11월 21일, www.revue-ballast.fr.
(8) ‘Amis de l’Huma’ 학회, 2020년 1월 31일.
(9) Stéphane Beaud & Michel Pialoux, ‘Pourquoi la gauche a-t-elle perdu les classes populaires? 왜 좌파는 민중의 지지를 잃었는가?’, <Savoir/Agir>, Vulaines-sur-Seine, n°34, 2015년 12월.
(10) Amory Gethin, Clara Martinez-Toledano & Thomas Piketty (sous la dir.), 『Clivages politiques et inégalités sociales 정치적 분열과 사회 불평등』, Seuil-Gallimard-Éditions de l’EHESS, Paris, 2020.
(11) Dominique Strauss-Kahn, 『La Flamme et la Cendre 불꽃과 재』, Grasset, Paris, 2002.
(12) <Libération>, Paris, 2001년 3월 27일.
(13) ‘Placing priority. How issues mattered more than demographics in the 2016 Election’, Democracy Fund Voter Study Group, Washington DC., 201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