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당이 원하지 않았던 기회

독일의 새로운 연립 정부

2021-12-31     라헬 크네벨 l 기자

지난 12월 8일, 독일 사회민주당(SPD) 소속 올라프 숄츠가 총리로 취임했다. 신임 총리 올라프 숄츠의 성향은 우파에 가깝다. 반면, 지난 몇 년의 좌절을 깨고 제1당으로 등극한 사회민주당의 지지기반과 공약은 좌파에 가깝다. 과거에는 중요시되지 않았던 이 차이가,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이 기대하는 연립정부 구성을 가로막을 것인가?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에 챙 없는 모자를 쓴 그녀는 유리로 된 연방의회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우리를 인적 없는 복도로 안내했다. 그녀가 임시 사무실로 쓰고 있는 복도 끝의 공간에는 9월 26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가 된 올라프 슐츠의 초상화가 그려진 머그잔과 가방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27세의 안나 카사우츠키는 이번 총선에서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녀는 “사회민주당 내에서 나는 좌파”라고 말했다.

몇 개월 전부터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약 15%에 그친 반면, 실제 선거에서는 25.7%의 득표율로 연방의회의 총 736석 중 206석을 확보하며 제 1당이 됐다. 이중 절반은 초선 의원이다. 그리고 카사우츠키를 포함해 50명 정도는 사양길로 접어든 사회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사회민주당의 청년 조직 유조스(Jusos) 출신이다. 

 

지지율 급락, 총선 패배…원인은?

15년 전부터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2005년에 34%에 달했던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앙겔라 메르켈과 첫 번째 연정을 구성한 4년 뒤에는 11%포인트나 하락했고, 2017년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20.5%에 그쳤다. 그로부터 2년 뒤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득표율 15.8%를 기록하며 녹색당보다도 크게 뒤졌다. 게다가 당원 수도 감소하는 추세로, 1990년에는 90만 명이었던 당원이 2000년에는 73만 명으로 줄었고, 오늘날에는 41만 명에 불과하다.(1) 그 중에서 유조스에 소속된 당원이 약 7만 명이다. 지역 차원에서 보면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주(Land) 별로 편차가 크다. 예를 들어 라인란트팔츠 주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에서는 최근 지방 선거에서 각각 35% 이상과 39%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작센 주와 바이에른 주에서는 10%도 채 넘지 못했다.

“2009년, 2013년, 2017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패배한 이유는, 전통적인 지지층이었던 노동자들이 기권하거나 기독민주당(CDU, 우파)과 독일대안당(AfD, 극우파) 등 다른 정당에 투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조 운동을 지지하면서 1994~2017년 사회민주당 의원을 지낸 클라우스 바틀이 분석했다. 1998년에는 노동자의 48%와 무직자의 44%가 사회민주당에 투표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이 비율이 각각 23%와 22%로 줄었다.(2)

그 사이의 기간인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사회민주당은 2개의 정부를 이끌었다. 바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회민주당 총리가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아젠다 2010’이라 불리는 개혁을 단행한 시기다. 실업 혜택 축소, 노동 시장의 규제 완화, 사회보장금 수혜자의 관리 및 제재를 위한 광범위한 시스템 마련 등이 이 개혁의 주요 골자였다.(3) 

수많은 노동자들이 격분했고, 최저임금을 뜻하는 ‘하르츠 IV’는 이후 오랫동안 사회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2009년 선거기간에는 우리가 포스터를 붙일 때마다 사람들이 야유할 정도였습니다.” 33세의 세바스티안 랑거가 말했다. 의사인 그는 17세부터 독일 북동부의 소도시 파르힘에서 사회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사회민주당 유조스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극우파를 처단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저는 아젠다 2010, 실업자들에 대한 제재, 실업자들을 향한 불신에 모두 반대합니다. 사실 유조스는 언제나 그것에 반대해왔습니다.”

2017년에 사회민주당 유조스는 사회민주당과 보수당의 연정 구성에 반대했다. “사회민주당의 모든 지역 지부에서 연정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제출했습니다.” 27세의 변호사인 요하네스 바르쉬도 자신이 소속된 그라이프스발트 지부에서 결의문에 서명했다. 그라이프스발트는 카사우츠키 의원이 2021년에 당선된 선거구다. “오늘날 유조스에 소속된 50여 명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전역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할 수 있도록 권력을 나누어달라고 요구한 덕분이었습니다.” 

그 이듬해에 사회민주당은 프로그램 ‘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아틀리에가 곳곳에서 열리면서 14세부터 7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활동가들이 얼굴을 맞대고 앉아 공개적으로 토론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카사우츠키 의원이 말했다. 2019년 초에 사회민주당은 하르츠 IV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실업급여 수혜 기간을 늘리고 최저임금을 시간당 12유로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사회국가를 위한 콘셉트’를 발표했다. 이전 총선의 선거 공약을 구체화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은 좌파 성향의 노르베르트 발터-보르얀스와 자스키아 에스켄을 공동 대표로 하는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했다. 이제 변화는 완성된 듯이 보였다. 

 

숄츠의 역설, 그리고 영향

그런데 몇 개월 뒤, 갑자기 올라프 숄츠가 총리 후보가 됐다. 그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메르켈 총리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으로 일했고 슈뢰더 정부에서는 사회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아젠다 10 개혁을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회민주당과 숄츠는 올해 선거에서 이전보다 더 좌파 성향을 띠는 프로그램을 내세웠고, 결국 기독민주연합 지지자 약 2백만 명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좌파당(Die Linke) 지지자 80만 명과 녹색당 지지자 70만 명도 이번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4) 숄츠라는 인물, 이전 정부에서의 경험, 중도적인 성향이, 골수 보수파는 아니지만 안정성을 추구하는 메르켈 지지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또한 사회민주당의 새로운 시도는 슈뢰더 정부에 실망했던 과거의 사회민주당 지지자들이 되돌아오는 요인이 됐다. 게다가 사회민주당은 젊은 의원들을 하원에 과감하게 입성시키기는 했지만 높은 연령대의 유권자들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2017년 이후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60세 이상에서 9포인트 상승했고 18-24세 연령대에서는 3.4포인트 하락했다. 한 마디로, 사회민주당의 승리는 대대적인 변화의 결과가 아닌 여러 개의 상황이 맞물려 나타난 결과였다.

“올라프 숄츠는 자신과 정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사회민주당을 성공적으로 통합시켰습니다.” 한국인 혈통의 이예원 의원이 숄츠의 편을 들었다. 34세의 그녀는 올해 9월 총선에서 독일 서부 아헨시의 의원으로 선출됐다. “아젠다 2010 정책이 사회민주당을 오랫동안 힘들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슈뢰더 법안의 다른 면, 즉 국적법 개혁도 기억해야 합니다.” 

적녹 정부는 2000년대 초에 혈통주의 원칙을 속지주의 원칙으로 바꾸면서, 독일에 거주하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시민권을 주기 시작했다. 이 개혁이 없었더라면 1986년에 독일로 이민 온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예원은 의회에 입성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10월 초에 새로운 의원 명단이 공개되자, 우리 중 몇몇이 “나는 2000년 즈음에 독일 국적을 얻었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이민자 가정 출신도 많습니다. 사회 통합, LGBT, 기후에도 관심이 많은데, 이것들이 다름 아닌 정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신세대 의원들은 사회민주당의 전 총리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풍자하던 방송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한 젊은 여성 의원이 말했다. “슈뢰더가 언론에 등장하던 모습,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던 개그맨이 생각납니다.” 로스토크 시의 유조스에 소속돼 있는 톰 루트가 덧붙였다. “슈뢰더 전 총리의 정책들을 보면 사회민주당이 좌파 정당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르츠 IV를 폐지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사회민주당이 내린 결정들은 독일 국민 대부분의 일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좌파 정당의 핵심은, 소수의 사람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조금씩 더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고 혼자 힘으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동독에서 교사로 일하던 어머니와 건설 노동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루트는 정치학 고등 교육을 받았고 현재는 지역 의회의 사회민주당 의원 밑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의회에 입성한 젊은 의원들은 대부분 사회학이나 법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의원을 보좌했거나, 정당 내 기관 및 행정부에서 일한 적이 있는 등 학력과 경력이 비슷하다. 

 

모두가 좌파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젊은 사회민주당 의원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전 유조스 대표로 9월 26일에 선출된 의원 중 한 명이자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케빈 쿠너트가 대표적인 예다. “유조스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좌파는 아닙니다.” 독일 남서부 콘스탄츠 시 선거구에서 당선된 32세 리나 세이츨 의원이 지적했다. “저는 시 중심의 정책과 실용주의를 표방합니다.” 교사이자 연구원인 이 젊은 여성이 말했다. 이번에 새롭게 사회민주당 의원이 된 이들 중에는 간호사, 유초중고 교사, 전기기술자, 스타트업 창업자, 영유아 교사, 장교, 공군 중위, 경찰 공무원, 세관원, 소방관도 있다.

카트린 미헬은 58세로, 의원이 되기 전에 한 화학 기업의 영업부 임원으로 일했다. 그녀는 노조 활동을 하다가 2012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했다. “어느 순간 저는 노조 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이야말로 노동자들의 상황과 사회 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센 주의 사회민주당 지부 공동 대표로 임명된 미헬은 노조와 협력하며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협력업체들에 최고의 근무 환경과 임금 조건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주당 근무 시간이 서구 평균 시간보다 길고 업무 대비 임금이 낮은 독일, 특히 우리 지역에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사회민주당은 전통적인 파트너인 노조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우리 당의 프로그램과 숄츠의 공약이 사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슈뢰더 전 총리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클라우스 바틀이 설명했다. “아젠다 2010과 같은 유형의 새로운 정책은 현재의 사회민주당에는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유권자 다수를 확보하려면 자유민주당(FDP)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민주당은 자유주의와 엄격한 긴축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9월 26일 총선에서 11.5%의 득표율을 얻은 자유민주당은 연정을 구성해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좌파당은 득표율이 4.9%에 그치면서, 사회민주당이 좌파당과 녹색당과 함께 좌파 연정을 수립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은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10월부터 협상 중에 있다. “자유민주당의 경우, 사회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와 입장이 같지만 부의 재분배, 세금, 사회 정책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우리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틀이 설명했다.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은 대마초의 합법화, 선거 연령을 16세로 하향하는 안, 디지털 자유에 관해서는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은 사회민주당 프로그램의 핵심 중 하나인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하면 우리 당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라이프스발트 지부의 요하네스 바르쉬가 한탄했다. “유조스 측에서 실망이 클 겁니다. 우리가 숄츠에게 준 신뢰가 부디 타당한 것이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의회에 진출한 사회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초선인 만큼, 슈뢰더 때와는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의 동료 의원이자 아직 대학생인 마빈 뮐러는 “최근 몇 년 동안 활발하던 당내 토론을 지속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21세의 청년은, 냉소적인 어투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형식적이고 전략적인 협상에만 몰두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정당의 절반이 탈당하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고, 결국 사회민주당은 일개 퇴직자 집단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글·라헬 크네벨 Rachel Knaebel
기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Oskar Niedermayer, ‘Parteimitglieder in Deutschland: Version 2020’, Arbeitshefte aus dem Otto-Stammer-Zentrum, n° 31, Berlin, 2020. 
(2) Deutscher Bundestag, ‘Wahlen zum Deutschen Bundestag, Kapitel 1.11 Stimmabgabe nach Beruf und Konfession - Zweitstimme’, 2021. 
(3) Olivier Cyran, ‘L’enfer du miracle allemand(한국어판 제목: 마크롱의 경제모델, 지옥 같은 ‘독일 기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9월호, 한국어판 2017년 12월호.
(4) Florian Diekmann & Marcel Pauly, ‘An wen die Union besonders viele Stimmen verlor’, <Der Spiegel>, Hambourg, 2021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