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승리로 판세가 뒤집힌 아시아 외교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각축장에서 맞붙은 두 진영

2021-12-31     장뤽 라신 l 국립과학연구원(CNRS) 명예원장, 아시아센터 수석연구원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강대국들 사이에 새로운 ‘각축전’이 열렸다. 열강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내 지정학적 정세에 적응하고자 노력 중이다. 인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의 협력관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파키스탄, 중국과의 관계가 이미 분쟁으로 경색돼있다. 이런 인도에 있어,  아프가니스탄은 풀기 어려운 또 하나의 과제다.

 

미군이 철수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 부활했다. 탈레반의 승리로 아프가니스탄의 인도적 위기는 악화일로다. 40년간 계속된 분쟁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이 고통받는 동안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열강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역내 지정학적 정세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아직 탈레반 정권을 공식 정부로 인정한 국가는 없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가 ‘각축전’을 벌일 당시는 중국의 세력이 쇠퇴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각축전이 시작된 지금, 중국은 전례 없이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인도는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과거 많은 국가가 시간이 흐르면서 반군 탈레반의 특사를 공식적인 대화상대로 인정했다. 하지만 인도는 오직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2004~2014),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2014~2021)의 아프가니스탄 공식 정부와 관계를 유지했다.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은 태고적부터 공유한 역사를 지워버릴 수 없다. 하지만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은 위대한 인도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을 끊임없이 규탄하며 이 역사에 분개한다(박스 기사 참조). 양국은 1950년이 돼서야 우호조약을 체결했다. 2011년에 이 조약은 정치적 대화, 경제·문화·과학 협력, 대테러전을 위한 전략적 제휴 협정으로 연장됐다. 현재 1만 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장학생과 130여 명의 사관생도가 인도의 대학과 사관학교에서 수학 중이다.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에 병참 물자를 제공하고 2018년부터는 공격용 헬리콥터도 지원했다. 하지만 인도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한 적은 없다. 아프가니스탄 주재 인도 대사관과 영사관, 몇몇 대규모 인프라 건설현장의 경비는 준군사조직이 담당하고 있다. 

2004~2021년,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에 약 30억 달러(26억 유로)를 투자해 수백 건의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이 중에는 지역 개발 사업이 포함되며 각각 2015년, 2016년 완공된 국회의사당과 아프간 서부의 살마 수력발전댐처럼 상징적인 역사(役事)도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연결되는 지상 수송로를 전면 봉쇄했다. 인도는 이에 맞서 2017년 완공된 이란의 차바하르항을 경유해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해상 수송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아프가니스탄 서부의 칸다하르와 카불, 북부의 헤라트와 쿤두즈와 같은 주요 도시들을 잇는 대순환 도로에 진입할 수 있는 육로도 확보한 인도는 중앙아시아 진출로를 확보했다. 

이로써 인도는 파키스탄의 배후를 공격할 기회를 얻었고,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을 상대로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태다. 함둘라 모히브 아프가니스탄 국가안보보좌관이 정부 붕괴 직전 내놓은 마지막 성명이 관계 악화를 잘 보여준다. “현재 우리의 이웃(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전 세계가 비난하는 목적을 위해, 권력에 목마른 한 단체를 이용해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을 약화시키려 한다.”(1) 

파키스탄은 이 성명에 분노했다. 그러나 인도는 탈레반의 재집권에 대해, 자국에 큰 악재가 될 것으로 본다. 파키스탄에는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말이다. 인도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 전략적 지역에서의 영향력 상실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와 분쟁 중인 파키스탄 지하드 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Lashkar-e-Taiba, LeT)와 자이슈에모하마드(Jaish-e Mohammad, JeM)가 다시금 활발하게 활동을 펼칠 가능성이다. 두 단체는 오래전부터 탈레반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는 탈레반과 공식 교섭에 나섰다. 탈레반의 진군이 명백해졌던 2021년 6월 양측은 도하에서 접촉했고, 9월 1일에도 도하에서 첫 공식 회담을 진행했다. 인도 측에서는 주카타르 인도대사가, 탈레반 측에서는 2020년 2월 탈레반과 미국이 체결한 합의(2)의 협상가 셰르 모하마드 아바스 스타닉자이가 참석했다. 이 회담 직후인 9월 7일, 스타닉자이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임시정부의 외교차관에 임명됐다. 스타닉자이는 이 회담이 성사되기 전부터 “인도와 문화, 경제, 무역 분야에서 관계를 지속”하길 원한다고 밝혔다.(3) 

탈레반의 이런 의지는 2021년 10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한 압둘 살람 하나피 탈레반 부총리와 인도 외교부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담당 고위급 관료가 진행한 양자회담에서도 확인됐다. 인도는 이 양자회담의 명분으로 인도적 지원 수립 필요성을 내세웠지만 사실 인도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카슈미르 지역의 미래였다. 탈레반은 원칙적으로 타국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카슈미르 지역의 반(反)인도 지하드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담에 참석한 탈레반 대표들은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인도에 자행된 공격의 책임은 하카니 네트워크(Haqqani Network, 수천 명의 병사를 보유한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에 있으며, 하카니 네트워크가 LeT와 JeM과 협력하고 있다는 비난은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4) 반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군사작전에 참여하지는 않겠지만 “카슈미르 지역에서 무슬림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탈레반도 있다.(5) 탈레반 내부적으로 입장이 명확하게 통일되지 않은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탈레반의 재집권을 반기는 파키스탄의 그림자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베나지르 부토(1988~1990년, 1993~1996년 두 차례 파키스탄 총리 역임) 시절 이념적인 이유보다 지정학적 이유에서 탈레반을 후원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시켜 파키스탄의 영향력을 보장하는 한편 인도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파키스탄은 1997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인정한 세 국가 중 하나다.

2001년 10월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자, 파키스탄은 탈레반 지도자들을 수용했다. 그리고 전투원들에게는 아프가니스탄 국경과 맞닿은 부족 지역에 후방기지를 제공했다. 최근 탈레반과 미국의 도하 협상 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파키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정부뿐만 아니라 2019년 잠무카슈미르주의 자치권을 박탈한(6)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와도 곪아 터진 관계를 유지했던 파키스탄의 주목할 만한 행보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담화는 미묘한 뉘앙스를 품고 있다.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차관 도입 협상 중이지만 여전히 테러 자금 지원을 감시하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회색국가명단’에 올라있다. 이처럼 경제적 압박감이 높은 상황에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이중적인 입장을 선택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에 동조해 탈레반에게 포괄적인 정부 구성과 인권, 특히 여성의 권리 존중을 촉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이 국제 테러리즘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 국가들에 아프가니스탄을 고립시키지 말고 새 정권이 개방 약속을 이행할 시간을 줄 것을 촉구한다. 또한 미국과 유럽에 아프가니스탄 중앙은행 자산 동결 해제를 촉구하고 세계은행(WB)과 IMF가 가니 정부와 협상했던 차관을 예정대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자산과 차관을 합치면 총 100억 달러 이상이다. 

파키스탄의 담화 이면에는 파키스탄의 두 주요 관심사가 숨겨져 있다. 첫째, 아프가니스탄의 현 상황이 새로운 난민 행렬 발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파키스탄은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국경을 봉쇄한 상태다). 둘째,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파슈툰족 형제 단체인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Tehrik-e Taliban Pakistan, TTP)의 세력 확산을 저지해 주는 것이다. TTP는 2020년부터 파키스탄 군대와 소수 시아파를 겨냥한 테러를 재개하며 5년 전 파키스탄의 탄압 이후 힘을 회복했음을 입증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TTP와 칸 총리의 특사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휴전협정, 더 나아가 TTP의 사면 가능성을 모색했다. TTP 사면 중재는 파키스탄 국내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7) 

아프가니스탄 새 지도부는 거듭되는 살상 테러에도 불구하고 IS-K를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파키스탄은 TTP외에 IS-K의 위협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아프가니스탄 정부 구성 발표 2일 전인 9월 5일 파키스탄 첩보부 수장의 카불 방문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굳건한 관계를 보여준다. 친 파키스탄 성향의 하카니 네트워크가 아프간 새 정부에 포함된 사실이 그 증거다. 일부 탈레반 지도자들은 파키스탄의 영향력에서 조금은 벗어나길 원한다. 그러나, 현재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2010년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하나의 전략적 무대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아프팩(Af-Pak)’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파키스탄은 지금도 미국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국가다.(8) 미국의 주축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로써 인도가 유리한 입지를 점했으며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의 역할은 여전히 필수 불가결하다.

주요 외부 주체들은 아프가니스탄 새 정권에 같은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국제중재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2011년 발족 이후 ‘아시아의 심장’으로 명칭을 바꾼 ‘이스탄불 프로세스’도, 탈레반 대표들이 참석한 모스크바 회의도, 도하 협정 체결 시 탈레반의 주요 약속 중 하나였던 아프가니스탄 내 진정한 대화 체계 수립에 성공하지 못했다. 모두가 포괄적 정부와 인권 존중을 촉구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더 큰 관심사는 안보다. 모든 주체들은 테러리즘 재확산을 우려하며 각각의 방식으로 연합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접경국과 러시아의 관심사는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UIM)을 비롯한 현존 이슬람주의 단체를 통한 IS-K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막는 것이다.

중국의 목적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지방에 근거지를 둔 위구르 분리주의 운동 기구 투르키스탄 이슬람당(TIP)을 섬멸하는 것이다. 이란은 IS-K의 위협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시스탄-발루치스탄 지방의 수니파 과격단체 준둘라(Jundullah)의 위협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미국의 관심사는 IS의 테러 위협 저지다. 

아편 밀매 근절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리튬을 포함한)아프가니스탄의 풍부한 광물자원에 대한 접근성 확보를 위해서도 안보가 중요하다. 아프가니스탄 안보를 추구하는 각국의 노력은 다양한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지난 10월에 열린 다양한 회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0월 20일, 러시아는 중국, 파키스탄,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대표와 함께 탈레반과 회담을 진행했다.(9) 

미국은 참석을 거부했지만 인도는 이 회담에 참석해 인도적 지원 제공을 약속했다. 반면 이란의 주최로 10월 27일 열린 ‘아프가니스탄 이웃국가’(이란, 중국,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및 러시아) 회담의 경우 인도는 초대받지 못했다.(10) 그러나, 며칠 전인 10월 12일 아프가니스탄을 특별 의제로 다룬 G20 정상회의에서는 인도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모디 인도 총리는 8월 30일 (인도가 의장국인)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 2593호에 의거해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발생하는 위협에 맞서 “국제사회의 통일된 대응 구축”을 촉구했다. 이 결의안은 통상적인 주제(테러리즘 배척, 포괄적인 정부, 인권 존중...)를 답습했지만 테러의 위협을 강조해 인도의 입장을 충족시켰다. 인도의 시각에서는 파키스탄도 테러의 위협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들 외교적인 논평들을 내놓으면서도, 중국이 결국 아프가니스탄 투자에 가장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통과하는 신실크로드와 ‘중국-파키스탄 경제 통로’에 아프가니스탄을 포함시키기를 원한다. 이 계획을 실현할 자금력을 보유한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풍부한 광물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탈레반은 카불을 장악하기 전부터 중국의 국내문제(신장 지구 위구르족 문제를 의미)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중국을 안심시켰다.(11) 7월 말, 탈레반 공동 창시자로 당시 정치 수장을 맡고 있던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중국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했다. 두 사람은 바라다르가 부총리가 된 후인 10월 도하에서 다시 한 번 만남을 가졌다. 

2020년 국경지대에서 벌어진 심각한 충돌 사태 이후 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경색됐다(동 히말라야 인근 국경에서 인도군 20명 사망). 인도는 중국 외에 또 다른 주요 협력국인 러시아와 이란과의 관계 변화도 검토 중이다. 1971년 소련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인도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와 굳건한 관계를 유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하의 러시아는 인도와 외교·군사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 중이다. 비록 인도의 러시아 무기 수입량은 상대적으로 감소했지만(2016~2010년 인도가 수입한 무기의 49%가 러시아산) 러시아는 여전히 인도의 핵심 무기 공급국이다. 인도가 미국과 가까워지는 동안 러시아는 파키스탄과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와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끝났다고 믿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12) 

양국은 최초로 2+2(국방장관, 외교장관) 형태의 양자회담을 개최했으며 푸틴은 12월 초 뉴델리를 방문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 철회 이후 차바하르항 개발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란과 인도가 공동투자한 이 사업은 아프가니스탄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으로 인도의 이란산 석유와 가스 수입은 현저히 감소했다. 이란은 탈레반이 주창하는 이슬람 국가주의를 차악으로 용인한다. IS-K의 국제 지하드 저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란은 표면적으로는 시아파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지만, 실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하자라족 탄압에 침묵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제외하면, 상황의 가변성이 구조적인 연합 결성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2021년 3월, 중국과 이란은 향후 25년간 유효한 협력조약을 체결하며 전략적 동반자에 버금가는 관계를 구축했다. 이로써 이란은 시진핑이 그토록 공들이는 신실크로드에 포함됐다. 카불 함락 며칠 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취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중국과 체결한 조약에 얽매이지 않고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에게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고 아프가니스탄 정세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외교적 담화가 어디까지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 주요 관련국이 구축한 연합 구도가 인도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9월 24일 워싱턴에 모인 쿼드(Quad, 4자 안보 대화) 참여국(미국, 일본, 인도, 호주) 정상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입장 통일을 재확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로써 이 인도태평양 동맹이 더욱 공고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도 아직은 비공식적이지만 CRIP라는 명칭의 또 다른 쿼드를 구상 중이다. 반미주의로 뭉친(파키스탄의 경우 동기가 훨씬 모호하다) 이 4개국은 서구 국가, IMF, WB에 아프가니스탄 새 정권에 예정대로 자금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이들은 모두 IS-K 격퇴를 위한 역내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IS는 물론, IS와 다양한 수준으로 연합할 가능성이 있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주의 운동단체들의 위협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했다. CRIP 참여 4개국은 9월 17일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 참가했다(인도도 참가). 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도 포함된)이 국가들은 분쟁 후 아프가니스탄의 사회·경제 재건에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하며 즉시 아프가니스탄에 인도적,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특히 테러리즘과 마약 밀매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13)

10월 18일, 미국, 인도,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가 또 다른 쿼드 구성을 공식 발표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은 “이 쿼드가 해상 안보와 포괄적 문제도 다루는 경제 포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명망 높은 인도 일간지 <더힌두(The Hindu)>는 신중함을 촉구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인도는 중동의 수많은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이 새로운 진영과 이란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팽배하다.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에 동조하는 인도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악화된 중앙아시아의 안보 부재에 대응해야 한다. 또한, 인도는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란 등의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14)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관계의 긴장감 고조로 발생한 지정학적 지각 변동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와 미국이 지휘하는 인도태평양 사이의 양극성이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미국 공화당은 “중국 남부를 지척에서 감시할 수 있는 유일한 협력국”인 인도와 동맹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5) 이에 대해 중국은 “인도가 미국에 동조한다면 지금의 프랑스와 같은 상황에 놓이고 말 것이다”라는 조롱으로 응수했다.(16) 많은 논란을 일으킨 오커스(Aukus, 호주, 영국, 미국의 3자 안보동맹체) 결성을 겨냥한 발언이다. 새로운 협약으로 꽤나 곤란한 입장에 처한 인도는 모두 인도의 협력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특정 국가의 편에 서길 꺼리고 있다.

오커스로 불거진 문제들 외에도 몇몇 분쟁 요소(무역, 러시아 무기 수입)가 존재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워싱턴과 뉴델리를 오가며 다수의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으며 9월 바이든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회담 후 발표한 장문의 공동성명(17)에 언급된 ‘동반자’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인도는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도는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앙아시아와도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 중이다. 지난 9월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은 인도의 군사 시설이 있는 타지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와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 회의(CICA)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다수의 양자 회담을 진행하며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이란의 외교장관과도 만남을 가졌다. 10월 뉴델리에서는 인도-키르기스스탄 전략적 정상회의가 최초로 개최됐다. 

인도는 또한 11월 10일 뉴델리에서 제3차 ‘지역안보대화’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러시아, 이란, 중앙아시아 5개국의 국가안보고문(또는 이에 상응하는 직책)이 모여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논의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에 동조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이유로 초대에 불응했다. 중국은 일정상의 이유를 내세워 불참했다. 그런데 중국은 그다음 날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트로이카 플러스’(미국, 중국, 러시아 3개국이 주도하고 파키스탄도 참여, 인도는 제외)형태의 회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담 역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물라 아미르 칸 무타키 아프가니스탄 외교장관은 당시 파키스탄의 초청으로 이슬라바드에 3일간 체류 중이었다. 덕분에 그는 미국,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모두와 양자 회담을 진행했다. 

즉,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은 모순적인 세계 질서의 확대경처럼 보인다. 진실성의 차이는 있지만, 각국은 아프가니스탄 국내 안정을 보장하는 ‘포괄적인’ 정부 구성을 촉구한다. 하지만 현재 아프간 새 정권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각국은 또한 테러리즘 부활 위험도 우려한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미국의 세계무대 퇴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익 다툼, 역내 긴장감 고조 그리고 미국, 중국, 러시아를 필두로 한 강대국들의 야심으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에서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에서는 다자주의가 저물고 경쟁적인 다극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글·장뤽 라신 Jean-Luc Racine
국립과학연구원(CNRS) 명예원장, 아시아센터 수석연구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Qureishi Strongly Reacts to Afghan NSA Mohib’s Remarks’, <Tolo News>, Kaboul, 2021년 6월 6일.
(2) Georges Lefeuvre, ‘Débandade américaine en 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주한 미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4월호.
(3) ‘Want to continue our political, trade ties with India : Taliban leader Stanekzai’, <The Hindustan Times>, New Delhi, 2021년 8월 29일. 
(4) ‘Haqqani Network Scion Anas Haqqani says Taliban Won’t ‘Interfere’ in Kashmir, Clarifies Pakistan Connection’, <CCN News 18>, New Delhi, 2021년 9월 1일, www.news18.com
(5) ‘Afghanistan : Taliban says it will ‘raise its voice’ for Kashmir Muslims’, <BBC Hindi>, London, 2021년 9월 3일. 
(6) Vaiju Naravane, ‘Au Cachemire, l’hindouisme sabre au clair 카슈미르에서 드러난 힌두이즘의 민낯’,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0월호.
(7) ‘Govt reaches understanding with TTP for temporary truce’, <Dawn>, Karachi, 2021년 11월 5일.
(8) Daniel S. Markey, 『No Exit from Pakistan. America’s Tortured Relationship with Islamabad』,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 Zahid Hussain, 『No Win War. The Paradox of US-Pakistan Relations in Afghanistan’s Shadow』,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9) ‘Joint Statement of the Participants in the Moscow Format Consultations on Afghanistan’, 러시아 외교부, Moscow, 2021년 10월 20일.
(10) ‘Joint Ministerial Statement of Meeting of Foreign Ministers of Afghanistan Neighboring Countries + Russia’, 이란 외교부, Téhéran, 2021년 10월 27일. 
(11) ‘Afghanistan’s Taliban, Now on China’s Border, Seek to Reassure Beijing’,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21년 7월 8일. 
(12) Rajeswari Pillai Rajagopalan, ‘Why Russia is no longer a strategic ally for India  in a new bipolar world led by US and China’, <ThePrint>, New Delhi, 2021년 4월 9일.
(13) ‘Joint Statement on the Results of the Meeting of Russia, China, Pakistan and Iran on the Margins of the SCO and CSTO Summits in Dushanbe’, 중국 외교부, 2021년 9월 17일. 
(14) ‘The other Quad’, <The Hindu>, Chennai, 2021년 10월 20일. 
(15) Nikki Haley & Mike Waltz, ‘It is time to formalize an Alliance with India’, <Foreign Policy>, Washington, 2021년 10월 25일.
(16) Qiang Feng, ‘Alliance with US will crush India’s great power fantasies’, <The Global Times>, Beijing, 2021년 11월 1일.
(17) ‘US-India Joint Leaders’ Statement : A Partnership for Global Good’, 백악관, Washington, 2021년 9월 24일, www.whitehouse.gov

 

 

알렉산더 대왕 이래

 

현대의 격변으로 인해, 알렉산더 대왕 이래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이 공유한 유구한 역사가 묻힌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4세기 인더스강까지 진출했다. 한 세기 후,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부에 해당하는 박트리아에서는 매우 수준 높은 문화가 꽃피었다. 갠지스강 평원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이어진 마우리아 제국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 불교 문화다. 이 역사를 지워버리고 싶은 탈레반은 2001년 3월 상징적으로  바미얀 석불을 파괴했다.

인도, 그리스, 페르시아 문명의 교차로인 아프가니스탄은 7세기부터 이슬람을 수용했다. 가즈나 왕조의 마후무드(971-1030)는 인도를 향해 무자비한 원정에 나섰고 13세기부터 인도에는 술탄국들이 들어섰다. 오늘날 인도의 힌두교인은 무슬림의 인도 지배가 이때 시작된 것으로 본다. 카불을 점령한 티무르 제국의 후예 바부르가 1526년 화려한 무굴제국을 세우면서 이슬람의 인도 지배는 절정에 달했다. 이후 ‘영국의 지배(British Raj)’라 불린 영국령 인도제국의 세력 확장은 세 차례의 앵글로-아프간 전쟁(1839~1842, 1878~1880, 1919) 끝에 아프가니스탄의 실지회복주의(irredentism)에 가로막혔다. ‘제국의 무덤’으로 불리게 된 아프가니스탄은 1919년 완전히 독립했다.

이어 인도도 영국에서 독립하자 1950년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와 우호조약을 체결했다. 개혁을 추구한 아프가니스탄 국왕 자히르 샤가 1973년 쿠데타로 폐위되기 전까지 양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인도 정부는 1979년 아프가니스탄 공산주의 정권을 돕기 위한 소련 개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10년 뒤 소련군이 철수하자 인도는 마수드 사령관의 북부 연맹을 지지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1996년 탈레반 정권이 수립되자 인도는 파키스탄에 밀려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에서 소외됐다. 2001년 미국의 개입이 시작되고, 인도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하미드 카르자이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으로 집권했다. 비로소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은 개발협력계획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1년 8월 탈레반 재집권으로 인도는 다시금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글·장뤽 라신 Jean-Luc Racine
번역·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