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도축장의 루마니아 푸주한, 그 헐벗은 노동
낙관적으로 전망하더라도, 대다수 유럽 국가에서 실업률은 다시 올라갈 것이다. 실업률 상승으로 취업 경쟁이 과열되면서 노동자 사이에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경영자가 유럽국 간의 사회보장제도 차이를 활용하며 노동자 간 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를테면 오늘날 브르타뉴 도축공장에 폴란드나 루마니아 출신의 도축기술자가 등장했다.
돼지 수백 마리가 수송 트럭에 빼곡히 실린 채 생브리외와 렌 사이를 질주해 브르타뉴의 대형 도축공장 지대로 향한다. 과거 농촌 마을에서 어느새 프랑스 농산물가공업의 본산으로 변모한 브르타뉴는 오늘날 돼지·소·닭 등에 이르는 육류산업 덕에 먹고살고 있다. 브르타뉴 지방에 위치한 코트다르모르의 작은 소도시 랑발에 가면, ‘코페를 아르크 아틀랑티크’(Cooperl Arc Atlantique) 가공공장 여러 채가 주변 풍경을 압도한다. 협동조합기업 코페를은 직원 4300명을 두고 매년 600만 마리에 달하는 돼지를 가공한다. 로이크 코레 랑발시 시장은 “지역민들은 저마다 농가공업과 농업을 고맙게 여긴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역민이 코페를 덕분에 일자리를 얻고 생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랑발은 노동자 도시의 모든 면면을 갖췄다. 사람들이 지역 덕에 일하고 생활한다는 점에서, 심지어 일이 고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고 부언했다. 이 지역 토박이 노동자들은 서로를 부를 때 ‘코페를’, ‘케르므네’, ‘스탈라방’ 하는 식으로, 30km 간격으로 줄줄이 늘어선 도축공장 이름으로 대신 부른다. 지역민들은 대체로 이 지역 실업률이 낮은 것에 만족스러운 눈치다. 프랑스 전체 실업률은 평균 9.9%에 이르지만, 이 지역 실업률은 경기에 따라 매해 6~7%대에서 맴돈다.
낮은 실업률… 높은 이직률과 산재
반대로 코페를 아르크 아틀랑티크 경영진은 “사람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한다. 쉴 새 없이 외국인 임시직 노동자를 대량 수혈받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임시직 노동자는 아프리카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루마니아·폴란드·슬로바키아·체코 출신 노동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에마뉘엘 코모 사장은 “무려 15개에 달하는 프랑스 인력파견업체와 거래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도축공장 일은 인식이 나빠서 일하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때때로 외국인 노동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많은 수를 고용해도 이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코트다르모르 관할 근로감독관은 “도축공장은 일이 험해 직업병 발병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노동총동맹(CGT) 코트다르모르 지부 조합원들의 표현은 더 원색적이다. 21년간 쿠페를에서 잔뼈가 굵은 조합원 노엘 카레는 “코페를, 케르므네 등은 사람을 먹어치우는 기업이다. 2008년 인력 부족 현상도 더 이상 작업장에서 일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했다. 동료인 프랑수아 르포르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도축공장은 일이 험한데다, 물가 상승에 견줘 급여 수준이 갈수록 형편없는 추세다. 나만 하더라도 이 바닥에서 9년을 일했는데, 초기 임금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나을 정도다.” 요즘은 동유럽 출신 노동자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개 그들은 도축, 부위별 분할, 정형(육류의 지방을 제거하고 모양을 다듬는 작업) 등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외국인 인력 거래의 중심에는 각 노동자 출신 국가에 등록된 인력파견업체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각 노동조합 본부나 지부 사이에 꽤 이름이 알려진 인력파견업체 ‘아르크포르스’(Arcforce)이다. 이 업체의 웹사이트에는 프랑스어와 루마니아어로 ‘30일 내에 파견 가능한’ 인력의 명단이 사진과 함께 게시되어 있다. 발골, 부위별 분할, 도축 분야 기술자는 물론, 취급 및 운반, 요리, 용접작업 기술자까지 인력풀도 다양하다. 인력마다 나이, 학력, 임시직 경력사항 등이 적힌 이력서가 함께 게시된다. 그 밖의 다양한 인력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령 영국에 본사를 둔 인력업체 ‘채용 도우미’(Assistance Recrutement)는 프랑스에 폴란드 노동자를 공급한다. “인력업체가 외국인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지급한다. 고용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사회분담금을 납부하는 것도 모두 인력업체 몫이다. 그러다 보니 임시직 노동자는 일반적으로 프랑스 법률을 준수해야 하면서도, 조세 및 복지 따위는 본국 법률을 따른다. 그 결과 동일한 순임금을 기준으로 볼 때, 사용기업은 실질적으로 고용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일손 달려 동유럽서 노동력 수혈
하지만 현실은 그처럼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10년 3월, 항공국경수비대(PAF)와 근로감독원들이 랑발 코페를 가공공장 한 곳에 들이닥쳤다. 불법 노동으로 루마니아인 13명이 체포됐다. 그 가운데 한 노동자가 익명을 요구하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다른 노동자들과 체포돼 렌에서 하룻밤 구류생활을 했다. 그날 사람들이 생산라인까지 찾아와 우리를 차에 태워 데려갔다. 체류허가증 없이 3개월 이상 일하는 것이 불법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든 절차가 합법적인 줄 알았다. 결국 우리는 서류를 만들기 위해 루마니아로 되돌아가야 했다.”(1) 2008년부터 임시직으로 일하던 이 남자는 그 뒤 법무기관과 근로감독기구의 조처로, 다른 22명의 루마니아인과 함께 코페를사에 정규직으로 다시 입사했다.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인 이 사건은 유럽연합(EU) 새 회원국에서 파견된 노동자들의 복잡한 노동 지위 문제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법률상 외국인 노동자는 프랑스인과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되어 있지만, 실제 노동자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임금은 얼마인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가령 몇몇 파렴치한 인력업체들은 현지 주거 비용에다 본국에서 프랑스까지 가는 데 드는 교통비와 통역비 등 온갖 명목으로 노동자 임금을 ‘공제’한다.
다국적 송출 업체가 중간에서 착취
에마뉘엘 카레는 “노동자 6~7명이 한 집에 지내는 경우에도 인력업체는 주거비 명목으로 상당액을 떼어간다. 반면 주거비를 지불한 쪽은 인력업체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집세 지불 영수증조차 받아볼 수 없다. 급여명세서도 루마니아에 두고 와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프랑스에 다른 집을 구하려 해도 공식적인 신원 확인 서류가 없어 불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인력업체는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분담금과 관련한 편법이 횡행하는 것도 큰 문제다. 대개 인력업체들은 동유럽에 소재지를 허위 등록한 다음, ‘파견국 원칙’을 적용받아 본국에 사회분담금을 납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코페를사 불법 취업에 연루된 루마니아 노동자를 소개한 인력업체 아르크포르스도 그런 편법을 써온 것으로 확인됐다.
랑발 관할 근로감독원 브누아 르 마송은 “사회분담금을 외국인 노동자의 출신국에 납부하면 프랑스 사용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이지만, 프랑스 국고에는 그만큼 손해”라며 안타까워했다. “사회분담금과 관련한 편법 행태를 감독하기 어려운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사실상 이 시스템에 불만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국인 노동자는 기대한 것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어 좋고, 사용회사들은 능력 있는 인력을 구할 수 있어 만족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 시스템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결국 피해자는 정부가 아닌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한편 이 시스템은 많은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병으로 시름할 만큼 노동조건이 열악한 산업기업에는 많은 이익을 안겨준다. 사용회사가 외국인 임시직 노동자의 의료비를 지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파견법 따라 임금·복지 차별
외국인 노동자가 누리는 사회보장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 사고가 한 번만 발생하면 금세 드러난다. 한 루마니아 노동자가 설명했다. “동료 몇 명이 손가락이나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들은 의료비를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했다. 우리 외국인 노동자들은 민영 의료보험카드를 갖고 있다. 보장 수준을 보면 여행자를 위한 것이지, 결코 도축공장 노동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산재현장을 목격한 프랑스 노조원들도 혼란스러운 심경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노동총연맹(CGT) 랑발 코페를 지회 대의원인 프랑수아 르포르는 한 도축공장에서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아리송했다. 하지만 금세 업체들의 행태를 간파할 수 있었다. 업체는 외국인 파견 노동자에게 항시 본국에서만 사용 가능한 의료보험 카드를 소지하게 했다. 사고가 나서 사용회사가 루마니아에 전화를 하면 당연히 프랑스어를 못하는 사람이 받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를 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일이다.”
동유럽 노동자 지위에 관한 질문을 받은 코모 사장은 “기업마다 어느 정도 불투명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청기업에 몇 차례 감사를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도 실제 하청기업을 꾸준히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함께 일하는 기업들의 내부 프로세스까지 일일이 통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생브리외 관할 근로감독기구는 그렇게 하는 것이 기업의 법적 의무라고 반박한다. 르 가이야르는 “사용기업은 어떤 종류의 서비스를 이용하든 거래 중인 기업이 노동자 신고를 마쳤는지, 규정은 잘 준수하는지 꼼꼼히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브르타뉴 도축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루마니아나 폴란드 노동자 수가 정확히 몇 명인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브르타뉴 콜레주 코오페라티프(사회복지 관련 평생고등교육기관)에서 2년간 이 문제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나딘 수샤르는 “비정규직으로, 브르타뉴 농촌 지대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히 ‘투명인간’에 가깝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지역을 수시로 들고 나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자가 비로소 그들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곳은 사내 휴게실이다. 동료들과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순간, 외국인 노동자들과는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조직력이 약하고 순응적인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하며, 혹여 자신의 노동권마저 점차 약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팔 잘리고도 병원비 자비 부담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 소속 육류산업 전문가 바네사 페로탱은 외국인 파견 노동자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노동 조건이나 강도, 시간 등에 신경 쓸 여력이 안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함께 일하는 프랑스 노동자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외국인 파견 노동자의 취약성은 노동권 약화를 부추긴다. 특히 임시직이나, 흔히 ‘날품팔이’ 또는 ‘서비스 제공’ 고용계약 등으로 불리며 생산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분야일수록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학자 나딘 수샤르는 “이미 벌레가 과일 속에 들어 있었다. 육류가공 부문을 산업화하면서 옛날 푸주한 역할을 대신할 고숙련 인력을 날품팔이 인력업체를 통해 대량으로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미 날품팔이 인력업체 때부터 임금과 관련한 편법이 횡행했다. 그들은 (날품팔이로 일하는) 프리랜서 도축기술자를 임금노동자로 채용했지만, 정작 임금은 작업량에 따라 지급했다. 날품팔이 인력업체들의 편법 관행은 이제 동유럽 노동자를 공급하는 임시직 인력업체가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동유럽 노동자를 공급하는 인력업체는 노동자 투입 수를 수요에 맞춰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EU 차원에서 볼 때, 인력업체 사이에 이런 편법이 횡행하는 것은 허술한 법 제도 탓이 크다. 애초 ‘볼케스테인 지침’(프리츠 볼케스테인 내수시장 담당 EU 집행위원의 이름을 딴 EU 지침)(3)을 작성할 당시에는 임시직이 역내 서비스 자유화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이던 임시직 부문은 결국 목록에서 빠졌다. 볼케스테인 지침 작성에 참여한 에블린 게르하르트 독일 사민당 의원이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원래 본안에서는 각 나라의 사회복지제도 사이에 불공정한 경쟁이 초래되더라도 노동시장 규제를 완전히 해체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큰 타격이 우려됐다. 결국 난상토론 끝에 의회 통과된 역내 서비스 자유화 지침에서 공공 부문, 임시직과 같은 특수 부문, 출신국 원칙(4) 등의 조항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유럽 통합, 노동만은 열외
2008년 EU는 모든 유럽 노동자에게 평등한 처우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임시직에 관한 특별지침을 채택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모든 유럽 노동자가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아야 하며, 임금뿐 아니라 복지 규정 및 노동법 전반을 모두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또 다른 법, 다시 말해 노동자 파견에 관한 법률이 이 지침에 우선한다는 점이다. EU사법재판소의 최근 판결 경향도 외국인 파견 규정을 근거로 해 노동자에게는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다.”(5) 최근 몇 년 동안 바이킹(핀란드에서 기업의 해외 이전을 방해한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처벌한 판결), 라발(스웨덴에서 소셜덤핑에 반대한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처벌한 판결), 루퍼트(폴란드 건축회사에 대해 최저임금과 관련한 독일의 단체협약 적용을 거부한 판결), 룩셈부르크 판결(해외에서 파견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노동국의 최저임금 적용을 거부한 판결) 등 거의 대동소이한 판결이 내려졌다. 접수국의 단체협약이 외국인 파견 노동자에게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노동자 처우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한편 접수국의 사법 체계가 좀더 유연할수록 법을 남용하는 확률이 높았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독일에서는 도축공장 저임금 인력의 상당수를 동유럽 출신의 이른바 ‘파견’ 노동자가 차지한다(독일 기업 직원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9~15유로인 반면, 동유럽 노동자는 3~7유로를 받고 있다).
유럽노동조합연맹(EGB) 사무총장의 고문 볼프강 코발스키에 따르면, “EU 확대를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노동법 통일을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일단 유럽이 확대되고 나자, 노동자의 평등한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단체협약이나 제도적 장치를 공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글. 마틸드 고아네크 Mathilde Goanec (언론인)
번역. 허보미 jinougy@naver.com
(1) 루마니아 노동자는 불가리아 노동자와는 비슷하지만, 폴란드 노동자와는 달리, 2014년까지로 예정된 과도기간 동안 특수규정을 따르게 되어 있다. 해외 파견의 경우 3개월 넘게 프랑스에 머무르며 일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루마니아 파견 노동자가 본국과 노동국 사이를 수시로 오가야 하는 처지다.
(2) 참고로 루마니아 최저임금은 약 150유로, 폴란드는 약 330유로이다.
(3) 볼케스테인 지침은 2006년 7월 24일 유럽이사회에서, 같은 해 11월 15일 유럽의회에서 통과됐다.
(4) 파견 원칙 규정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에게는 본국의 임금과 법률을 적용한다.
(5) 서비스 제공 계약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노동자 파견에 관한 96/71/CE 유럽의회 지침 및 1996년 11월 16일자 유럽이사회 지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