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경험으로서의 수영

2021-12-31     크리스토프 고비 l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 속 주인공인 라자르와 폴린은 함께 바다 수영을 할 때마다 공범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바다는 영불해협이었고, 그들에게 수영은 물의 에로티시즘과 결합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거친 호흡과 얼음처럼 차가운 파도를 사랑했다. 바다에 완전히 몸을 내맡기고, 맨살에 부딪히는 거대한 물결을 느끼며 행복해했다.” 시인이 파도 속에서 수영을 해본 후, 문학과 수영은 연결됐다. 바다 수영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고독한 경험이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바다뿐이다.

수 세기 동안 영국인들은 바다에서 수영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항해했고 다른 것들을 바다 위에 띄우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기독교의 등장을 기점으로 유럽은 바다와의 접촉을 잃어버렸다. “미신에 반감이 없는 이들만이 자유롭게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1) 교회는 물의 ‘에로티시즘’을 차단하고자, 바다를 ‘괴물의 서식지’로 묘사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최초의 수영 개론서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지식인 에버라드 딕비에 의해 라틴어로 출간됐다. 

시인은 낭만적인 세이렌의 부름을 놓치지 않았다. 바이런은 친구들과 함께 피레우스 항을 가로질러 수영했다. 푸시킨은 매일 아침 냉수에 몸을 담갔다고 한다(푸틴은 시인도 아닌데 이렇게 한다고 한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신경이 예민해질 때면 수영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바이런이 수영한 모든 장소는 거의 성스러운 곳이 됐다. 바이런은 이탈리아의 리도섬에서 베네치아까지, 무려 3시간 45분에 걸쳐 대운하를 수영해 거슬러 올라갔다. 베네치아를 방문하기에는 곤돌라보다 좋은 이동수단이었다. 그리고 바이런은 이렇게 썼다. “나는 아드리아해에서 한 시간 동안 수영을 한 후 이 편지를 쓴다. 지금 내 앞에는 검은 눈동자의 베네치아 소녀가 앉아서 보카치오의 소설을 읽고 있다.” 

바다에서 위험을 무릅쓴 이들도 있었다. 코르시카 출신의 모험가이자 낭만파 시인들과 교류했던 에드워드 존 트렐로니는 친구인 퍼시 비시 셸리에게 수영을 배우던 중, 타고 있던 요트가 전복돼 친구, 셸리를 잃었다.(2) 1933년에 트렐로니는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를 수영으로 횡단했다. 매슈 웹은 발광하는 파도, 미역, 돌고래, 따끔따끔 찌르는 메두사를 가르며 영불해협을 22시간 만에 수영으로 건너면서 유명해졌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수영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3) (참고문헌: 에블린 피에예, ‘바이런, 셸리 그리고 사회적 반란(Byron, Shelley et l‘insurrection socia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7월호)

 

사고의 심연

보들레르에 대한 애정으로 그의 작품을 번역까지 했었던 에드거 앨런 포는, 바이런이 헬레스폰트를 수영했듯, 1810년 6마일에 달하는 제임스 강을 수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물의 시인’ 바이런도 물살이 세기로 악명 높은 이 해협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그 어떤 정치적이고, 시적이고, 수사학적인 투쟁에서 승리한 것보다 나는 이번 성공이 더 자랑스럽다.” 그리스 독립전쟁에도 투신했던 바이런에게, 이 모험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다 수영은 신체 활동이자, 정신활동이기도 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수영을 하다 보면 금세 지쳐버렸다.” 바이런은 말했다. 『풀잎(Leaves of Grass)』을 쓴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강과 바다에서 수영하곤 했다. 영국에서는 수영이 엘리트 스포츠이자 유행거리였던 만큼, 화가들도 수영을 즐겼다. 찰스 킹슬리와 터너는 동료 화가 레앙드르가 파도를 가르는 모습을 그렸다. 19세기 말에는 스웨덴의 화가 유젠느 얀손이 스칸디나비아의 다이빙 선수, 체조 선수, 어두운 집을 그렸다. 이 기사에 인용된 문구가 다수 포함된, 시적이면서 물과 관련된 작품(1992)을 남긴 영국의 작가 찰스 스프로슨은 바이런처럼 포르투갈의 타구스강을 횡단하려고 했으나, 그 깊이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공포에 질려 포기했다.

독일에서는 수영과 자연주의가 호수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체조는 나폴레옹 시대에 프로이센이 나폴레옹 군대에 패배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그리고 발트해에서 훈련을 하고 다이빙을 즐기는 것으로 발전했다. 강물에서 목욕하는 군인들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특히 좋아했던 괴테는, 수영이야말로 그리스 신화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스위스에서 깨달았다. “수영은 가장 탁월한 이완 형태다.” 군국주의는 수영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쳐, 독일 수영은 정확성과 힘의 표본이 됐다. 군대식 평형은 독일인들의 다리에 힘을 선사했다.

레니 리펜슈탈은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Olympia)>(1946)에서 다이빙을 향한 열정을 표현했다. 영국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인 베오울프는 수영을 하지 못했다. “네가 바로 오만함과 광기 어린 대담함으로 브레카에게 도전해서 바다 수영 시합을 했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 베오울프냐? 너희에게는 바다 수영처럼 불행한 모험에 나서는 것을 막아줄 만한 친구도 적도 아무도 없었구나.” (참고문헌: 브누아 브레빌, ‘왜 물에 몸을 담그는가?(Pourquoi se baigner?), ’바다, 역사, 쟁점, 위협(La mer, histoire, enjeux, menaces) <마니에르 드 부아르> 제178호, 2021년 8-9월호)

 

물의 시

“우리는 물놀이가 아니라 수영을 했다.” 이르마 플라탕은 1970년대에 피르미니의 한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겼다.(4) 그녀는 수영장 입장료가 80상팀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당시 피르미니의 시장이 전설적인 공산주의자였던 테오 비알 마사였기 때문이었다. “시청에는 언제나 저항의 기운이 감돌았다.” 테오 비알 마사 이전에는 마르셀 콩브, 과거 MUR(저항연합운동) 소속이자 무정부주의 성향의 가톨릭 신자인 외젠 클로디우스 프티가 피르미니의 시장이었다. 

“어렸을 때 수영을 참 많이 했다. 스포츠는 우리에게 문화, 여가, 가치, 유대의 역할을 해주었다.”(5) 이르마 플라탕은 육체와 정신이 구분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신체 단련을 경험했다. “나는 수영을 하면서 물의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플라탕은 수영을 통해 스포츠의 공정함과 고귀함, 그리고 도덕을 배웠으며, 일주일에 세 번, 저녁에 수영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녀는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서, 바다, 그 무한성,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꿈꿨다. 그러나 루아르강은 지중해가 아니었다. “우리 안에 바다, 그냥 바다가 아니라 지중해가 살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에게도 수영은 자유가 아니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피르미니 수영장은 사실 앙드레 보겐스키의 작품이다. “크로노미터와 키판을 성체현시대와 부재하는 신을 향한 청원서나 되듯 손에 쥐고, 기도하듯 수영을 한다.”

곰치가 수영장 물 한가운데서 이야기를 한다.(6) 팔을 잃은 한 젊은 남성이 수영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첫 장애인 스포츠 협회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수백 페이지의 분량뿐만 아니라, 수영을 통해 장애를 극복한다는 내용은 이 소설에 깊이를 더해준다. 화재가 주인공의 삶을 파괴했을 때, 각종 갈등과 고된 업무로 상심에 빠진 이들의 연대성이 이 팔이 없는 남성을 물로 이끈다. 그런데 팔이 없으면 어떻게 수영을 할까? “그는 팔다리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수영에만 집중한다. 일단 수영장에 들어가면 유연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젊은 노동자, 프랑수아 상드르는 1956년에 사고로 두 팔을 잃는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는 등산을 하다가 산 중턱의 호수를 보고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리고 프랑스 장애인 스포츠 친목회와 만나면서 수영을 시작하고, 스토크맨더빌 경기대회에 관해 듣게 된다. 스토크맨더빌은 영국 남동부의 도시이자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가 일하던 곳으로, 이 대회는 후에 장애인 올림픽의 시초가 된다. 친목회는 1954년에 설립됐다.

20년 전부터 수천 명의 수영인이 마르세유로 모여들어 바다 수영에 도전하고 있다. 에드몽 당테스의 모험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에드몽 당테스는 장래가 유망한 선원이었지만, 나폴레옹이 쓴 편지 한 통을 비밀리에 배달하는 임무를 맡았다가 이프 성에 갇히는 신세가 돼 버린다. 당테스가 이프 성을 탈출할 때 시신이 든 자루 속에 몸을 숨기고 바다로 던져졌던 것처럼 강제로 바닷속에 던져질 일은 없겠지만, 당신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로 유명해진 마르세유의 이프 섬을 가로질러 수영하고 싶을 것이 분명하다. 

 

 

글·크리스토프 고비 Christophe Goby
작가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Charles Sprawson, 『Héros et nageurs 영웅과 수영하는 사람』. Guillaume Villeneuve의 번역본(영국). Nevicata, Bruxelles, 2019, 288 pages, 22유로, 별도의 언급이 없는 경우 이 기사의 모든 인용 문구는 이 책에서 발췌함.
(2) Edward John Trelawny, 『Mémoires d’un gentilhomme corsaire 코르시카 출신 젠틀맨에 대한 기억』. 1831. 『Les derniers jours de Shelley et Byron. Souvenirs 셸리와 바이런의 말년. 기억들』, José Corti, Paris, 1995.
(3) Kathy Wilson, 『The crossing』, Headline Book Publishing, 2000. 2020년 8월 16일자 Le Monde. fr의 Olivier Villepreux 기사 참조.
(4),(5) Irma Pelatan, 『L’odeur de chlore 염소의 냄새』, La contre allée, Lille, 2019.
(6) Valentine Goby, 『Murène 곰치』, Actes Sud, Arles,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