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스칸의 마초 친구들

2011-11-11     모나 숄레

“당신은 책에서 ‘비록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치유돼가는 중’이라고 쓰고 있다. 그 상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철철 넘치는 이 말은 지난 10월 6일,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의 프로그램 <콤 옹 누 파를>(Comme on nous parle)에서 파스칼 클라르크가 동료 이반 르바이를 인터뷰할 때 그 첫머리를 장식한 말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베테랑이자 저널리스트이며 공영방송의 주간 신문기사 요약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이반 르바이는 최근 <집행 일지>(셰르슈 미디 출판사)라는 수수한 제목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사건에 관한 책을 썼다. 안 생클레르의 전남편인 르바이는 자기 아이들의 새아버지가 된 스트로스칸을 성폭행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는 스트로스칸과 “내가 알지 못하는 공공의 적”이 비극적으로 뒤섞여 있다면서, 그가 보기에 스트로스칸은 단지 “한 걸음 잘못 내디딘 희생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저널리즘 강의로 변질되고- 그것도 변질의 극치에 가깝다-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 루이 아라공의 표현들로 덧칠된 그의 의견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과 그 측근들의 체면에 대한 기나긴 항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르바이는 어느 누구도 쉽게 정계에 근접하지 못했던 시절, 대중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정치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비난받아 마땅한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미디어의 단두대나 종교재판정에 불려갈 걱정 없이 어느 정도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고 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펼쳐 보인다. <유럽1> 방송사의 중심 인물이던 그는 1970∼80년대, 레스토랑 ‘푸케’(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유명한 레스토랑. 2007년 5월,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 축하파티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에서 자주 만찬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음을 은근히 뽐냈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때는 어느 누구도 특정 인물의 행복한 생활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그의 이런 의견에 대해 (친구 클라르크가)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텐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트로스칸의 성폭행 피해자로 추정되는 나피사투 디알로의 병원 보고서를 실었던 <엑스프레스>는 뒤죽박죽 편지 같은 이 책을 두고 “정교하고 양심적인 책,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수준 높은 성찰”(2011년 10월 5일)이라고 평했다. 파스칼 클라르크는 서정적 표현을 써가며 청취자가 자기 프로그램의 게스트와 일심동체가 되어 스트로스칸이 뉴욕에서 체포되던 날로 돌아가도록 부추긴다. “어슴푸레 서늘하게 밝아오는 아침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식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몇몇 동료들의 배려 덕에 르바이는 권력자들도 변덕을 부릴 수 있고 자기중심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상식에 어긋나는 당혹스러운 말들을 내뱉을 수 있었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밤에만 일하는 아프리카 창녀”에 관한 모호한 생각들은 이미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프랑스 앵테르>에서 그는 “성폭행이란 반드시 칼이나 총이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어떤 수사관도 감히 그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누가 누구에게 먼저 접근했나?”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정상적 수준을 넘어섰다.

<라디오프랑스>의 장뤼크 이스 사장은 자신의 측근들이 관계된 최근의 사건에 대한 관심과 기존 입장에 대해 언급하며 이반 르바이에게 ‘아주 우아하게’ 방송사에 남거나 잠정 은퇴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르바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첫 번째 안을 택했다. 최근 스트로스칸의 이름이 또다시 성매매 사건에 거론되자, 그는 지난 10월 16일의 기사 소개 프로그램에서 “로베스피에르는 순수했지만 공포정치의 장본인들 중 한 명이었다”라는 작가 필리프 포레스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투명성 사회’를 가볍게 비꼬았다.


글. 모나 숄레  Mona Choll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