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북관계, 출구는 있는가

2008-12-30     양문수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부'기다림의 전략'… 국내외 환경과 엇박자
'인식의 감옥'에 고립 우려,'대북정책 재검토'필요

주 보고 달리는 기차'. '치킨 게임'. 2002년 2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한과 미국의 행태를 빗댄 이 같은 표현들이 이제는 남북한 사이에 자주 사용된다.
 지난해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때 최고조에 달했던 남북관계는 남한의 신정부 출범 이후 바닥을 모르는 주가처럼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남북간 대화의 줄은 툭 끊겼고, 남과 북은 상대방에게 사실상의 항복을 강요하면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고, 남북간 긴장의 수위는 점점 높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부터 우려되었던 상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엄연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속타는 민간, 느긋한 정부
 남한은 새로운 정책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민초들의 몫이 되고 있다. 남측의 이산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금강산의 면회소는 공사를 끝내 놓고도 준공식을 개최하지도 못했고, 남측은 이산가족 문제를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7월부터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데 이어 12월부터 개성관광 중단이라는 유탄을 맞게된 현대아산, 그리고 협력업체들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두 지역의 관광사업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연말까지 865억원, 협력업체들은 210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현대아산은 또다시 '눈물의 구조 조정' 시기를 맞게 되었고, 급기야 정부에 대해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북측이 공단의 폐쇄 가능성을 시사하기 시작한 10월부터 불안감을 느낀 바이어들의 이탈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으며 원부자재 제공을 망설이는 협력업체들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이른바 12·1 조치로 개성공단 통행에 대한 제약이 더 커지면서 물류 차질로 인한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상황은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사태는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북측은 12·1 조치에 대해 '1단계 조치'라고 밝히고 있어 추가적인 압박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이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입주업체들은 언제 사형 선고가 내려질지 몰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남한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오늘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전적으로 북측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면서 "의연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이 변화할 수 있도록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느닷없이 "개성공단 같은 것은 국내에도 수없이 많다"며 개성공단을 굳이 평가절하하려는 발언도 나오고 있으며, 통일부는 공단 폐쇄도 감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더라도 현재의 정책 기조를 바꿀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논란 끊이지 않는 정부의 대북인식
 물론 남북관계가 위기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남북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어느 일방만의 책임이 아님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것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정책의 근저에 있는 대북 인식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남북관계와 남북경협을 보는 이명박 정부의 인식을 둘러싼 논점은 크게 보아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포용정책 지지와 비판의 입장, 둘째, 남북경협에 대한 경제주의적 접근에 대한 찬반 입장, 셋째, 남북관계 교정론 및 성장통론에 대한 찬반 입장이다.
 첫 번째인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 혹은 비판의 문제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이슈이다.
 김대중 정부에 의해 주창되었고, 노무현 정부가 계승한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지겹도록 논란에 논란을 거듭했다. 남북 교류협력을 주된 수단으로 한 포용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이는 결국 포용정책의 유용성 문제에 대한 대논쟁을 낳았다.
 물론 양측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못한 채 감정의 골만 깊어진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계승되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용정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연속과 단절이라는 두 가지 측면 중에 단절의 측면을 더 크게 부각시키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부시 행정부 1기의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을 연상시키는 ABR(Anything But Roh)정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북한이 그토록 목을 매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모호한 태도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물론 이는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북문제에 대한 정파적 접근이라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두 번째인 남북경협에 대한 경제주의적 접근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의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는 경제협력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상당히 낮다. 당근보다 채찍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다. 어차피 포용정책이라는 게 교류협력을 통한 북한의 변화 유도 및 관계 개선이 핵심인 만큼, 포용이라는 정책기조를 바꾸면 교류협력의 지위도 격하하게 마련이다.
 동시에 남북경협에서 시장경제 논리의 색채가 강해지고 있다. 남북경협은 기본적으로 민간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지, 정부가 나설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경협의 순수한, 그리고 가시적인 경제적 효과에만 주목한다.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경협이 가져다주는 남북관계 개선 효과, 한반도 평화 정착 효과,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한국의 발언권과 역할 확보 기능 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신정부 입장에서는 한국과 북한의 경제교류협력은 한국과 동남아 국가와의 경제교류협력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인 셈이다. 물론 현 정부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성공이 이전 정부의 과도한 지원에 기인하며, 기존의 방식으로는 곤란하다고 주장하는 현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결여라는 비판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세 번째인 남북관계 교정론 및 성장통론에 대한 찬반 논란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핵심 이슈이다.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 남북경협에 대한 경제주의적 접근은 백번 양보하는 사람들도 남북관계 교정론에 대해서는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잘못된 것, 특히 북한의 잘못된 행동은 바로 잡겠다"는 생각이다. 남북관계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냉각기간, 즉 성장을 위한 아픔의 기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다리면 결국 북한이 백기를 들고 나올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이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북한 경제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남한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북한이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다.
 과연 그러한가.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경제 사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해서 북한이 백기를 드는 것은 북한 체제의 속성상 상상하기 어렵다. 경제적인 이유 하나만 놓고 본다면, 북한은 이미 오래전에 체제 전환을 하고도 남았다. 북한으로서는 남한에게 한번 밀리게 되면 영원히 밀리게 될 것이며, 특히 자신들이 남한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체제 유지에 커다란 부담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둘째, 최근의 북한 경제 여건은 오히려 소폭 개선되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북한의 올해 곡물 수확량은 작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래서 제2의 고난의 행군, 대규모 아사 발생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남한으로부터의 경협 축소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중국 및 미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일정 정도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고, 이 계산이 빗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한은 올해 들어 중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중국도 이에 화답하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 말기에 북미관계는 상당히 진전되었고, 오바마 후보의 당선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열을 올릴 뿐, 남한에 대해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상황이 예고되고 있다.
 결국 남한 정부의 의도와 희망대로 북한이 경제적 곤란을 견디다 못해 남한에 대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낼 가능성은 점점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다운 정책의 부재(不在)
 또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큰 방향성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 중에서도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장은 대북정책의 목표는 있으나 수단은 없다는 점, 달리 말하면 정책다운 정책이 없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사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구상과 제안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물론 구상이나 제안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구상이나 제안은 그 자체로 보면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현재의 여건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문제이다. 북한이 콧방귀를 뀌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들만 모아 놓았다. 아마추어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대표 주자인 '비핵·개방·3000' 구상의 경우, 이 구상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이명박 정부의 임기 내에 착수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우려한다. 달리 보면 목표는 거창하게 세웠으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비전은 있으나 전략은 없고, 과정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다. 그저 북한에게 '너희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칠 뿐이다.
 북한이 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데는 관심이 없으며 변화를 유도하고 견인하는 데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압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보는 것인지도, 북한의 변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도 그렇거니와, 더욱이 북한의 개방은 매우 긴 여정이 될 수 밖에 없다.
 대북정책은 상대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상대를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상대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연구하는 것이 정책을 정책답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신정부의 철학을 바꾸라는 주문이 아니다.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과, 상대의 생각과 행동에 찬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진정으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과 수단에 대해 보다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정책기조 수정 가능성 열어놓아야
 '기다리는 전략'은 "시간이 곧 내 편"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남한 정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점점 소멸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스스로 설정한 '인식의 감옥'에 갇혀 있진 않은 지를 다시 한번 곰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출발점은 자신의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대북 인식에 대한 재점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해가 바뀌었다. 집권 2년차를 맞이하게 됐다. "그동안 도대체 한 게 뭐 있느냐"는 비판에 떳떳하게 맞받아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기간 동안 정책다운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일정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 정책 기조를 수정할 가능성을 지금부터 열어두어야 한다. 스스로 만든 '언어의 감옥'에 갇히지 않는 지혜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