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과 변신, 역사가 되다

2011-11-11     로랑 보넬리

좌파 정당, 좌파 의원, 나아가 일련의 ‘좌파’ 정책의 분류는 그냥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나름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분류되었는지는 정치 논쟁에 의해 끊임없이 재정의된다.

좌파’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순진해 보인다. 좌파라는 꼬리표는 ‘좌파 국회’, ‘좌파 시의회’와 같은 정치조직의 정체성뿐 아니라 ‘좌파 지식인’에서 ‘좌파 민중’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가치도 규정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불변하는 것도 아니며, 필요한 것도 아닐지 모른다. 

18세기 사회에 나타난 갈등관계는 프랑스에서 정치권력을 지닌 지주귀족세력과 출자자의 역할로 전락한 상인부르주아 간의 충돌이었다. 상인부르주아들이 프랑스혁명 후 시장 독점권을 장악하자, 19세기 공화주의자들이 투표권을 확대시키며 이들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공화주의자들은 집단적 형태의 조직인 정당과 당시 유력자였던 상인부르주아들의 사적인 사회적 위신을 대비시킨다. 투표철에 상인부르주아들이 돈과 음료, 식사를 제공하는 행태에 맞서 공화주의자들은 정강 개발과 이념의 주창으로 대응한다. 이런 게임의 법칙은 조금씩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

이념의 오랜 상대성

이 게임의 법칙은 좌파 ‘정체성’을 세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역사는 정치적 부침이 많은 법이다. 정권을 잡은 공화주의자들은 ‘기회주의자’로 불리며 강경파와 급진파들의 분노를 산다. 1906년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조르주 클레망소가 그해 파업을 진압하도록 한 다음부터, 급진파는 사회주의자들의 표적이 된다. 1906년 사회당 지도자 장 조레스는 “미래에 대한 구상이 소멸돼버린 어제의 비평은 군사력과 경찰력을 대거 동원하는 악의의 세력에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후 장 조레스를 당수로 한 국제노동자동맹 프랑스지부(SFIO)란 통합사회당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으며, 1920년 SFIO 투르전당대회에서 결국 SFIO는 공중분해되다시피 했다. ‘좌파란 무엇인가’라는 좌파 정의에 대한 논쟁은 좌파가 표방하는 가치를 상시적으로 개혁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좌파 공화주의자들이 내세운 민족주의가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보수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 그 예이다.

좌파가 고정된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정치게임에서 취하는 상대적인 정치적 입장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좌파정당’에 대해 굳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좌파란 꼬리표를 내세운 정당들은 산업혁명과 의회정치제도 태동 시기에 나타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산업의 비약적 발전은 생산(부가가치)의 결과인 부의 분배 문제, 즉 노동과 자본 간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한다. 좌파는 노동자의 편(특히 육체노동자)에 결연하게 선다. 영국(그리고 영국 식민지에서)의 노동당, 스페인의 노동사회당(PSOE), 독일의 사회노동당(Sozialistische Arbeiterpartei·사회민주당의 전신), 이탈리아의 노동자당 등 당시 창당된 당의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반교권주의 논쟁의 강도에 따라 국가 간 차이는 있지만, 좌파 정당들이 추구한 목적은 이런 방향이었다. SFIO는 1905년 1월 채택된 ‘당 규정’에서 “생산과 교환 수단의 국유화, 즉 자본주적 사회를 집단주의 사회, 다시 말해 공산주의 사회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프롤레타리아 경제·정치 조직을 수단으로 삼는 정당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영국의 노동당은 의회에서 노조의 요구를 대변하는 노동자 대표 위원회를 결성했다.

기존 정치기구와 관련한 전략은 변화하고 있다. 혁명주의자들에게는, 부유층을 대변하는 의회제도는 끊임없는 투쟁의 대상인 반면, 다른 이들은 의회제도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1) 좌파 조직들이 정권을 획득하면서 이런 긴장관계가 고조된다. 러시아 혁명의 결과로 나타난 정치체제로 소유체제가 전복되고, 소득이 유급노동 활동과 분리되었다. 이 새로운 정치체제는 시장규칙과 관계없는 경제를 만들며 평등을 외쳤다. 다른 국가들은 다양한 혁신적 시도를 통해 예전보다 덜 부당한 부의 분배를 이룩함으로써 자본과 노동 간 적대관계를 완화하려 했다. 이는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이다. 사회민주주의 정권은 노동자와 노조의 조직적 압력을 받아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퇴직연금, 의료보험, 유급휴가)을 확대시켰으며, 재분배적 재정 개혁을 추진했다.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지표들이 임금 수준에 비해 ‘예사롭지 않게 높은’ 이윤을 달성하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에서, 부의 재분배가 좌파의 구상과 계획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소유체제의 논쟁이 거의 사라진 점은 의외이다.

   
<라르센 오페라의 작은 쥐>, 2008-도로시슈즈

정당의 전문화·과두화 경향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으로 시장경제 대안에 대한 논의는 실제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자본주의(금융화, 초국가화)의 변형과 노동자계급의 변화 또한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치활동의 전문화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2) 역설적이게도 초기에는 정치활동의 전문화는 민주화의 필요조건으로 나타났다. 정치를 ‘위해’ 사는 것은 수입이 충분한 기존 유력자들에는 간단한 것이었다. 반면, 정치 신인들은 정치로 살 수 있어야만 했다. 이로써 조금씩 목적이 수단과 혼동된 것이다. 정당이 기능하기 위해 의원이 필요하고, 의원들은 전문화된 활동을 추구하기 위해 정당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정치활동의 전문화 메커니즘은 빠른 속도로 사회적 선택과 맞물리게 된다. 독자적 신분상승 정책(프랑스 공산당이 수십 년 동안 추진해왔지만)의 부재로, 극빈층은 정치 고위층에서 배제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국회에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공장노동자, 사무직노동자, 서비스 직종 종사자 출신의 의원은 전체의 7%에 불과하다.

정치권은 ‘정치적’ 전문인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치권은 유권자들을 선거전에 잠시 동원하는 세력으로 인식할 뿐이며, 유권자들은 점점 더 추상적이고 난해해 보이는 정치게임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예를 들어 최근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 1차 선거에서 아르노 몽부르와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는 브누아 아몽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의견이 상이한 마르틴 오브리를 지지하고, 아르노 몽부르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견을 보이는 프랑수아 올랑드와 연대한 것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지식이 필요했다. 일반 국민들이 선거에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듯하다.

사회학자로서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민주당을 연구한 로베르트 미헬스는, 좌파가 자신을 선출한 국민의 권위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통치하는 과두정치로 귀착되었다고 지적했다.(3)


글. 로랑 보넬리 Laurent Bonell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전지연 junjiyun@y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한프랑스대사관 산업부 과장과 통번역대학원 강사로 있다.

(1) 1900년, 줄 게드와 장 조레스 간 토론은 이런 상반되는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막스 보나푸스가 책임 편집한 <장 조레스의 저작 VI: 사회주의연구 II, 1897~1901>(Rieder 출판사·파리·1933) 참조.
(2) 델핀 뒤롱, <정치계의 구축>, Presses universitaires de Rennes 출판사, 2010 참조.
(3) 로베르트 미헬스, <정당들>, Flammarion 출판사, 파리, 197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