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점령, 완전한 탈환을 위해
2009년에 등장한 보수단체 ‘티파티’는 공화당 사람들에게 그들의 보수적 입장을 더 확고히 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단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금융세력에 대한 유화책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자본주의 위기는 가난하든 부유하든 상당수 국가에서 항의와 저항 운동, 심지어 혁명 운동을 촉발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예산 삭감과 함께 공공서비스 부문 종사자들이 해고될 위험에 처하자 연초 여러 주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위스콘신주에서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행진했고, 밀워키에 있는 주의회 청사 건물을 점거하기도 했다.(1)
최근에는 더 중요하고 급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 일어났다. 지난 9월 초, 맨해튼 금융지구의 한 작은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WS·Occupy Wall Street) 운동은 수백 개의 미국 도시로 빠르게 확산됐다. 위스콘신의 시위 행렬과는 다르게, OWS는 정부의 특정 조처나 법안, 예산안에 대응하는 것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은 현재 경제·정치에서 행해지는 금융권력의 횡포를 향한 폭넓고 강한 분노의 고발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특정 사안이 아닌 체제를 향한 분노
OWS 활동가들이 작성한 ‘뉴욕시 점령 선언문’은 그들의 민주적·반기업적·국제주의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다국적기업들에 속았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그들의 지지자임을 알리기 위해 (선언문을) 쓴다. 하나로 결속된 민중으로서 다음과 같은 현실을 알리고자 한다. 인류의 미래는 구성원들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 (중략) 민주적 정부는 정당한 권력을 민중에게서 창출해 유지하려 하는데, 다국적기업들은 민중과 전세계를 착취해 부를 쌓는 데 어느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 어떤 진정한 민주주의도 그 절차가 경제권력에 의해 강요될 때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 그렇다. 다국적기업들은 사람보다 이윤을, 정의보다 그들의 이기적 이익을, 평등보다 억압을 우선시한다. 우리는 이런 다국적기업들이 우리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시대에 당신들을 만나러 왔다.”
이와 유사한 슬로건이 적힌 게시물이 미국 금융의 성지에서 얼마 안 떨어진 주코티 공원 사방에 넘쳐나고 있다. “월가는 우리 정부를 점령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러 가자!” “기업들은 민중이 아니다” 등. OWS는 은행과 금융기관을 표적으로 삼고, 경제권력을 ‘99%’ 문제의 근원적 책임자로 본다. 이런 표명은 자본주의에 대한 산발적이고 주변적인 비판 이상의 어떤 것도 없던 나라인 미국에서 분명 평범하지 않은 정치적 사건이다.
엄밀히 말해 뉴욕의 OWS 활동가들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본주의 자체보다는 ‘금융권의 탐욕’을 비난한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적 발상에서 영향받은 것은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OWS는 1999년 시애틀에서 터져나온 ‘전 지구적 정의 운동’(Global Justice Movement), 현재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분노한 시위자들’(the Indignant), 그리고 아테네에서 파리에 이르는 곳곳의 좌파 저항자들과 유사하다. 공공장소의 지속적 점거 전술은 지난 1월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있었던 대중 모임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명백하다.(2) 중요한 것은, OWS가 단순히 실업, 재정 긴축, 부동산 압류, 노조의 자유 제한, 환경파괴, (미국에서 1조 달러에 도달한) 학생들의 빚 또는 돈에 의한 정치권력의 부패에 대항하는 운동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3) OWS는 이 문제들 각각의 원인을 이해하면서도 현 위기의 근원지인 ‘압도적 금융권력’과의 연관성을 잊지 않는다.
OWS 출현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 벌써 승리를 자랑해도 좋은 것일까? 이론의 여지 없이 이 운동의 시위자들은 온 나라에, 지금까지 공개 토론의 장에서 쉽게 허용되지 않던 주제들에 대해 활기찬 토론의 물결을 일게 했다. OWS는 뉴욕과 그 외곽 지역에 늘어나는 시위행진과 모임, 그리고 정치적 발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것은 미디어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특정한 요구를 내거는 다양한 색깔의 집단(노동조합, 지역 협회, 학생, 반전주의자, 환경보호론자)을 동원하는 데 유리하고 상징적인 장소로서 구심점을 제공한 덕이다. 이제 우리는 이 모두가 함께하는 하나의 느슨한 ‘OWS 연대’라고 말할 수 있다.
조직 없는 분노, 조직 기회주의 넘을까
그럼에도 이 운동의 핵심적 문제는 남아 있다. 분출해낸 분노와 열정을 적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의 정치적 힘으로 어떻게 성공적으로 전환시키느냐는 것이다. OWS 활동가들 대부분은 그들이 웅변조로 규탄하고 있는 은행과 기업들 관점에서 보면 어떤 전략적 역할도 하지 못하는 학생이거나 젊은 실업자(또는 임시 직원)이다. 힘겨루기에서 이기려면, 이 운동은 노동조합을 위시해 저항 능력을 더 갖춘 공동체운동 조직과 학생운동 조직에 의존해야 하고, 이미 이들은 OWS를 중심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전에 이미 약해져 있던 노동조합과 운동조직이 지금 더 약해졌고, 방어적이다. 더욱이 대규모 노조연합들의 지도자들은(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중의 불만에 대해 수긍하면서도, OWS의 전투적 전술과 반기업적 입장을 공유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런 부담도 지지 않으려는 미온적인 태도다. 다국적기업들의 경영자들조차 시위자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고발을 시스템 남용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시키면서 자신들도 이 운동에 연대한다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웰스파고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존 스텀프는 “시위자들의 불안감과 분노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제너럴일렉트릭의 CEO 제프 이멀트는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4)
월가 은행가들의 흥을 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위협은 선거에 이익이 되도록 이들의 운동 방향을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을 민주당이다. 빌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가 최근 다시 상기시킨 것처럼, 민주당이 갑자기 은행과 다국적기업에 반대하는 것을 보기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은 그들과 등지기에는 지나치게 많이 그들의 돈, 미디어 그리고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내년 선거에서 몇몇 민주당 후보들이 이 논쟁이 주는 이익을 얻으려고 유권자에게 자신을 금융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자라고 소개하는 일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0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의 연설에서 “그들(월가의 은행가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내버려둘 것”을 바라는 공화당원들을 비난한 것처럼.
OWS 운동은 이런 전략적 회유에 굴복할 것인가? 전통적 정치 행위를 거부하는 강경한 핵심 활동가들은 그럴 것 같지 않다. 그중 한 명은 “OWS는 정당들의 한계(실패)를 넘어서려는 탈정치 운동이다. 아래로부터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 월가와 정치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운동이다”라고 했다. 확실히 월가 없이 ‘상황을 변화시키자’는 것인데, 그것을 ‘조직 없이’ 하겠다는 말인가?
넓은 범위의 OWS 연대 세력(노조와 학생단체)이 민주당의 유혹에 냉담하게 대응하지만은 않을 것이기에 상황은 그만큼 더 어려워 보인다. 현재의 열성적 시위자들 중에서 몇몇은 선거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그들의 입장을 바꾸려 할 것이다.
글. 제프 구드윈 Jeff Goodwin (미국 뉴욕대학 교수·사회학)
미국 뉴욕대학 사회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No Other Way Out: States and Revolutionary Movements, 1945∼91>(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2001) 등이 있다.
번역. 채미서 yarche@hanmail.net
(1) 릭 판타지아, ‘노조권 탄압, 미국 사회운동을 깨우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4월.
(2) 막스 루소, ‘움직이지 않으리라, 모두의 공간을 되찾으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
(3) Tim Mak, <Unpaid student loan top $1 trillion>, Politico, 2011월 10월 19일, www.politico.com.
(4) Shannon Bond & Jeremy Lemer, ‘Corporate leaders say they understand protests’, <Financial Times>, 런던, 2011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