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식 사회주의의 길, 너무 느리거나 빠르거나

2011-11-11     윌리엄 I. 로빈슨

이제 페루인가? 197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 실험장 노릇을 했던 중남미가 변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중남미 대부분 지역이 ‘좌파 정권’으로 넘어갔다. 이런 현상은 종종 ‘물결’로 묘사된다(연대기 참조). 물결은 이제 우파의 신(新)보루를 집어삼키고 있다. 2011년 6월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좌파 인사, 오얀타 우말라는 그날 저녁 연설에서 “정부는 더 이상 페루의 광물자원을 다국적기업에 팔아먹는 엘리트의 이권을 위해 절대로 봉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엘리트와의) 단절일까? 하지만 우말라는 이 연설에서, 페루의 경제모델엔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란 다짐도 같이 하지 않았던가!

21세기 좌파의 부활, 그러나 한계

비록 진보의 물결이 중남미 전역을 휩쓸었지만 흔히 ‘붉은 장미’로 지칭되는 (좌경화의) 물결, 중남미를 관통하는 이 물결의 성향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서민층을 결집시켜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바 있는 중남미의 일부 정부는 이제 이중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우파의 부활(2010년 칠레의 경우처럼 투표를 통해서, 혹은 2009년 온두라스의 경우처럼 쿠데타를 통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좌절한 일부 국민이 주도하는 항의 시위다. 두 요소가 서로 뒤섞이며 중남미 정치 프로세스의 내외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2010년 9월 30일, 에콰도르 경찰들은 수도 키토 중심가에 위치한 공공건물을 장악한 채 급여감축안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에콰도르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는 이들과 협상을 꾀하려다 이들의 공격을 받고 납치되어 군병원에 감금되었는데, 중무장한 특공대가 구출작전을 펼친 끝에 구조되었다.(1)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쿠데타의 가능성은 배제한 채 일부 경찰의 분노로 촉발된 ‘사회운동’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조직적이었다. 전국 각지의 경찰부대와 군부대가 고속도로는 물론 키토와 과야킬 국제공항을 봉쇄했다.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 국영 ‘에콰도르 TV’ 건물을 습격해 장악했다. 그렇다면 분노한 폭동이든 쿠데타든, 이 운동은 무엇 때문에 무산된 것일까?

코레아 정권 퇴진을 기대한 에콰도르 우파와 워싱턴의 매파들은 이 사건에 놀라지 않았다. 2007년 10월, 대통령은 자국의 영토 만타에 위치한 미 공군 기지를 폐쇄하며 “미국이 마이애미에 에콰도르 기지 설치를 허용하는 날, 비로소 이와 같은 (에콰도르의 미군) 기지의 존재도 고려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정권을 잡은 이후, 코레아는 32억 달러의 해외 부채 부담을 덜었다. 이 부채가 불법계약에 따른 것임을 증명한 것이다. 코레아는 ‘21세기 사회주의’ 건설 약속에 만족하지 않고, 볼리바르 연대, 즉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중남미 통합을 하기 위해 추진한 민중교역협정(ALBA-TCP)에 에콰도르를 가입시켰다.

코레아의 이같은 정책은 엘리트들만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선 이후 대통령은 자신을 권좌에 올려준, 여전히 자신의 텃밭인 원주민 단체를 비롯한 노조와 민중단체 등에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을 지닌 에콰도르원주민연맹(CONAIE)은 2010년 9월 30일의 쿠데타 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그리고 ‘제국주의 세력’과 우파운동단체가 쿠데타를 주도한 것이라 지목하며), 사건 당일 저녁 발표한 성명에서 “변화 프로세스는 그게 아무리 작은 변화라 할지라도 항상 저항에 부딪힐 위험이 있고, 만약 정부가 기존 단체들이나 시민사회와 점진적으로 연대와 유대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우파에게 정권을 넘겨줄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이 단체는 “코레아가 ‘저항이 가장 심한 보수층과 신흥 금융권의 이익’에 지나치게 호의적인 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이들이 현 정부의 전복을 시도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키우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CONAIE가 출범시킨 정당인 파차쿠틱(Pachakutik) 소속 의원 클레베르 히메네즈는 “원주민운동과 사회운동이 단일 국민전선을 형성해 코레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 요컨대, 쿠데타 가담도 불사할 것 같은 비장한 발언이었다.

특권층의 저항과 미국의 공작

2010년 총선 때, 베네수엘라 야당은 약 50%를 득표하며 극적인 돌파구를 찾았다. 비록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이끄는 집권당 베네수엘라사회주의연합당(PSUV)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여대야소는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여당이 국회에서 3분의 2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우파의 성공은 미국이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끊임없이 펼치는 (정국) 불안 조성 캠페인과 무관하지 않다. 언론인 제러미 빅우드는 “2007~2009년 미 국무부가 중남미 기자들, 특히 베네수엘라 기자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주었다”고 최근 폭로했다.(3) 2010년 선거 결과는 ‘볼리바르 혁명’ 지지자들 중 일부의 이탈을 보여주기도 했다. 혁명세력의 이탈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적인 어려움, 특히 석유 수입 감소에 따른 어려움과 불안,(4) 만성적인 부패, ‘혁신적’ 엘리트들 간에 만연된 기회주의, 사회변화 프로세스 지체에 따른 어려움 등. 지난 6월 30일 차베스 대통령이 암투병 중이라는 공식 발표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 프로세스의 또 다른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가원수에게 권력이 편중된데다 후계자를 키운 적 없는 좌파로서는 현 지도자를 계승할 후계자 문제로 혼란에 빠진 것이다.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는 지난해 초반부터 노조와 원주민 공동체, 그리고 다양한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주도하는 파업 물결에 직면해 있다. 가장 최근에는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 위치한 국립공원 한복판에서 도로 건설을 규탄하는 파업이 있었다. 지난 9월에는 경찰들이 이 파업을 강경진압한 데 책임을 지고 많은 정부 관계자들이 사임했다. 이들은 주로 임금, 긴축정책, 정부의 관심 부족, 특히 천연자원 개발 등의 문제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볼리비아의 유명한 신자유주의적 지식인 로베르토 라세르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라고 농담조로 자문했다. 그는 “단기적 전망 속에서 담론적 또는 상징적 측면에서 관찰해보면 변한 게 많지만, 장기적 전망으로 경제적·사회적 또는 구조적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5) 그렇다면 정부의 변화 프로세스는 단지 도발에 불과한 것일까?

다른 많은 사례도 인용할 수 있다. 중남미 지역의 진보 정부가 하나둘 자신의 선택, 즉 자국에 딱 맞는 것처럼 보여 선택한 자본주의 틀 안에서의 재분배(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분배는 더욱 어려워졌다)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느린 개혁에 민중도 분노 폭발

우리가 중남미 국가들의 ‘배신의 가능성’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우리가 이들을 현재 시장경제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진 국가들과 동일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시장경제로부터 자유로운 국가가 존재할까? 일각에서는 경제의 전면적 국유화를 통해 시장경제로부터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해외 모기업의 기술에 의탁해 중남미에 자리한 자회사를 성장시켜야 하고, (국유화 과정에서) 해고된 기업 경영자들을 대체할 만한 능력 있는 임원들에게 의탁해야 한다.(6) 하지만 현재 이 국가들의 단체나 집권당에는 그런 인물이 없어 임원 육성에 애를 먹고 있다. 게다가 중남미 사건은 워싱턴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젝트들 때문에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에 당선되고 몇 주 뒤,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어떤 나라가 단지 그 국민이 무분별하다고 해서, 우리가 왜 그 나라를 마르크스주의 국가로 전락하도록 가만 놔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7)

(가만 놔두지 않은) 결과는? 2010년, 비록 많은 중남미 국가가 독립 200주년 축하행사를 가졌지만, 이 국가들 또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결국 1492년 중남미 정복 때부터 현재 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경제 및 정치 발전을 주도한 것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인 것이다. 공산품, 농산품, 은행, 여행, 소매무역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지배를 받았다. 광물 수출로만 수익을 내던 중남미 국가들이 21세기 초부터 세계 시스템의 ‘중심’과 연계한 수출을 늘리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 대형 슈퍼마켓 체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남미 지역 무역의 10~20%를 장악했지만,(8) 현재는 70%를 장악한 상태다.

아무리 애써도 글로벌 경제 체제 내부

이런 변화는 아마 다른 곳에서보다 중남미 지역에 더 많은 흔적을 남겼다. 1980~2004년 , 빈민층이 1억2천만 명에서 약 2억1천만 명으로 2배 증가했다. 이처럼 세계 최대 불평등 대륙에서 사는 상류층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변화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유발했는가 하면, 구조조정 정책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약속한 세력의 정권 창출에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상황이 변했다. 1988~2003년, 중남미 국가들은 900억 달러의 공공자산을 헐값에 매각처분한 반면, ‘붉은 장미 물결’은 민영화를 중단시켰다. 공공지출이 늘어났다.(9) 1999~2008년, 베네수엘라의 주민 1인당 공공지출은 3배나 뛰었다. 또한 (정부로부터) 자금 수혜를 받는 야심찬 사회복지 프로그램들, 이를테면 우루과이의 ‘긴급 사회복지 계획’, 브라질의 ‘가족수당’(10), 아르헨티나의 ‘보편적인 아동수당’(11) 등이 선보였다. 중남미 전역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향상되고, 최저임금이 상승했다. 그러는 동안 주택 및 교육 예산이 늘어나고, 중남미 전역의 문맹률도 감소했다.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퇴직 연령을 연장한 데 반해, 볼리비아는 퇴직 연령을 65살에서 58살로 낮췄다. 또 다른 예도 있다. 1999~2009년, 브라질에서는 임금에 부과되던 소득세 비율이 3.6%에서 43.6%로 폭등했다.(12) 그러나 같은 시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소득세가 감소했다. 따라서 브라질이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중남미 좌파 정권이 전반적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최근의 경제위기와 함께 부활하기 시작한 우파에 의해 약화되기 전에 서민층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물론 진보 정부는 원료 수출로 얻은 소득 중 일부를 가장 취약한 서민 소외계층을 위해 쓰며 서민정책을 폈다. 볼리비아의 광산 및 환경장관을 역임한 경제학자 알베르토 아코스타는 “구조적인 변화가 눈에 띄지 않지만, 광산과 석유 채굴에서 발생한 이익의 대부분을 국가가 공제해주던 옛 (자금) 축적 방식을 재정비한 다음, 다국적기업의 활동을 일부 통제하며 수출로 벌어들이는 이익의 대부분을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재분배하고 있다”고 했다.(13) 전 볼리비아 부통령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는 “부족한 도로·보건소·학교 등을 건설하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14)

세계경제 위기도 새로운 도전

이런 일부 견해에도 불구하고, 세제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평등한 부의 재분배 시스템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중남미 국가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현저히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36.2%에 달하지만, 중남미 국가의 조세부담률은 평균 22.9%에 불과하다. 경제학자 피에르 살라마는 2006~2007년 브라질에서 “100만 달러 이상 금융 자산을 소유한 개인 수가 19.1% 늘었다”고 했다.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정부(2003~2010)는 유산계급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룰라 정부 때 전례 없이 번성했다. 브라질의 금융기관과 산업체 수가 룰라 정부 지지자 수만큼 많았다. 브라질 주식시장은 세계 최고의 실적을 냈다. 저소득층 생계 지원 프로그램인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에 쓰인 지원금은 GDP의 0.5%에 불과했지만, 공공부채는 6%에서 7%로 증가했고, 조세부담률은 답보 상태거나 감소했다”고 했다.(15)  

좌파 국가로 분류된 다른 국가들처럼 브라질도 가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근절시킬 만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생활 여건이 개선되었지만 중단될 수도, 혹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는 정부 프로그램에 기댄 것이어서 위태위태했다. 정권 교체나 경제 불황으로 ‘불가피하게’ 긴축정책을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룰라 행정부가 추방한 단어 ‘민영화’가 그의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의 연설에 재등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가의 야심찬 변화 프로젝트 안에 개혁안을 포함시켜 더욱 심도 깊은 개혁을 단행했다. 사유자산의 개념과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중의 참여를 확대하는 문제를 재검토한 것이다. 아울러 베네수엘라를 이른바 ‘21세기 사회주의’ 노선으로 안내했던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부터 쿠바와 연대해 반자유주의 블록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일부 인접국들, 특히 볼리비아 대통령 모랄레스와 에콰도르 대통령 코레아를 자신의 교리(21세기 사회주의 독트린)에 합류시켰다. 이 3개국(베네수엘라·볼리비아·에콰도르)에선 국민투표로 선정된 국회의원들이 서민층에게 유리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최대 쟁점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하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투자하기 위해 에너지 부문과 천연자원의 재국유화를 연구하는 모임을 열었다.

2010년, 비록 민간 부문이 국부생산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차베스가 정권을 잡은 이후 정부는 에너지·통신·광물채굴·식품·건설·은행 부문의 많은 기업을 국유화했다. 또한 수천 개의 소규모 협동조합 창설을 장려하고, 수백만ha의 토지를 농부들에게 분배했다(볼리비아와 에콰도르는 아직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함).

온건자유주의 성향의 비판가들로부터 ‘급진적’이란 비난을 받고 있는 이 3개국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이들은 그동안 부패하고, 인기영합주의적이고, 관료적이고, 과두정치적이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투표가 거듭될수록, 이들 정부 안에서 파열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어쩌면 우파가 아니라 권력집단의 ‘내부’였다. 고정 임금을 받는 성직자, 족벌주의, 지방토호 등이 문제였다. ‘혁신적 기업인들’은 능력 있는 임원이 필요할 때면 (기득권층인) 저들 중에서 사람을 뽑아 썼다. 기업인들은 자신을 신특권층으로 만들어준 이런 상황을 변화시킬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일부 국민은 삶의 수준이 향상돼감에 따라 사회 변화의 긴급성을 다른 방식으로 검토했다.

2010년 말과 2011년 초반, 수천 명의 노조원과 좌파 당원, 시민단체 대표 등이 ‘자본과 관료주의가 아닌, 더 많은 사회주의와 혁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베네수엘라의 주요 도시를 행진하며 노동법 강화와 전략 산업의 국유화 프로세스 지속,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 특히 최근 국유화된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강화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국적 자본주의는 그리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일부 다국적기업들은, 최소한 지금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걸로 만족하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2008년의 경제위기로 입은 손실을 만회하고 국제 자본을 유치해 이익을 낼 목적으로, 에콰도르 대통령은 2009년 다국적기업들이 지역사회와 사전 협의 없이 광물자원을 개발할 수 있게 하는 광물채굴법에 서명했다. 이 법안에 따라 지역사회가 타격받을 수 있어, 결국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법률은 광산·석유·농산물 업체에 물 접근권을 우선적으로 부여하며, 정부가 유통 네트워크의 민영화를 준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원주민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런 정책 방향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질 때면, 군경이 나서서 진압했다. 원주민의 기반인 환경도 보호하고, 전 국민의 삶의 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내부 분열도 차츰 커져

에콰도르 야수니 국립공원 안에 있는 이테테(ITT, Ishping-Pambococha-Tiputini) 광구의 유전 개발, 이른바 에콰도르 야수니이테테(Yasuni-ITT) 프로젝트(유전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신탁기금을 받아 국가 기간사업을 확충하려는 프로젝트)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천연자원의 개발, 특히 생물 다양성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게 될 구역 안에서의 천연자원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약속한 기부금이 걷히지 않고 있다. 키토(에콰도르 정부) 혼자서 ‘어머니 대지’를 지킬 수 있을까? 일부 사회단체, 특히 원주민 단체들은 그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작가 벤자민 당글은 ‘붉은 장미’ 물결이 몰아친 국가들의 ‘역동성’을 세계경제 위기가 악화될수록 사회운동과 국가 간에 격렬해지는 ‘파드되’(Pas de deux·둘이서 하는 무용)에 비유했다.(16)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관점에서, 공권력을 편들고 있는 시민 사회단체 출신 단체장들은 (현 정권에) 협력할 것인지, (현 정권을) 교체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만약 국민의 기본적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이 자신의 소임을 잊는다면, 국가의 정책 결정 방향에 미치는 이들의 역량도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감소될 것이다.

이런 모순적 상황에서 중남미가 흔들리는 조짐도 보인다. 미국과 중남미 우파들은 자신을 가로막는 좌파를 제거하려고 대반격에 나서고 있다. 중남미 진보 정부들은 지역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쿠데타에 직면해 있다. 예들 들어, 온두라스의 마누엘 셀라야 진보 정부는 워싱턴의 암묵적 동의 아래 2009년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로 전복됐다. 게다가 미국은 중남미에 새로운 군사기지를 건설하며 군을 파견해 주둔시켰다.


중남미 국가의 극빈층 수치 변화

아르헨티나  1990~99년 : 수치 확인 불가 / 1999~2009년 : 42.4% 감소
볼리비아  1990~99년 : 58% 상승 / 1999~2007년(확인 가능한 가장 최근의 수치) : 14% 감소
브라질  1990~99년 : 44% 감소 / 1999~2009년 : 45% 감소
에콰도르  1990~99년 : 19% 상승 / 1999~2009년 : 82% 감소
베네수엘라  1990~99년 : 50% 상승 / 1999~2009년 :  54% 감소

자료출처: 중남미 및 카리브해 지역 국가연합 경제위원회(CEPALC)


대통령 당선 연표

1998년 12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2000년 7월 차베스 재선 2002년 10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2003년 5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2004년 10월 타바레 바스케스, 우루과이 2005년 11월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2005년 12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2006년 7월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십중팔구 대규모 선거부정 때문임 2006년 10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2006년 11월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2006년 11월 오르테가, 니카라과 2006년 12월 차베스 3선 2007년 10월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네스토르 키르츠네르의 부인), 아르헨티나 2008년 4월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2009년 4월 코레아 재선 2009년 11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2009년 12월 모랄레스 재선 2010년 10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2011년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의 재당선


글. 윌리엄 로빈슨 William I. Robinson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 및 국제학부 교수)
주요 저서로 <미국과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관점>(Latin America and Global Capitalism: A Critical Globalization Perspective·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Baltimore·2008) 등이 있다.
 
번역. 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모리스 르무안, ‘에콰도르의 예외적인 주(州)’, 외교잡지 <외교가방>, 2010년 10월 1일.
(2) 르노 랑베르, ‘베네수엘라 총선, 역전패’, 외교잡지 <외교가방>, 2010년 10월 1일.
(3) Jeremy Bigwood, ‘Buying Venezuela’s press with U.S. tax dollars’, <Report on the Americas>, New York,  2010년 9~10월.
(4) 모리스 르무안, ‘총질 난무하는 카라카스, 차베스는 과연 가해자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8월.
(5) Roberto Laserna, <El Cambio que no cambia>, Pulso, 2010년 8월 8일.
(6)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보편성과 개별성, 볼리비아 혁명의 변증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9월.
(7) Grace Livingstone, <America’s backyard: The United States and Latin America from the Monroe doctrine to the war on terror>, Zed Books, New York, 2009.
(8) Thomas Reardon과 Julio A. Berdegué, ‘The Rapid Rise of Supermarkets in Latin America;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for Development’, <Development policy review>, n°20 volume 4, Blackwell publishers, Malden, 2002.
(9) Carlos Aguiar de Medeiros, ‘Asset-stripping the state’, 잡지 <New Left review>, 런던,  2009년 1~2월.
(10) 게이사 마리아 로차, ‘룰라의 집권 8년, 브라질은 정말 나아진 걸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9월.
(11) 세실 랭보, ‘페론 그림자 속 아르헨티나 부부 대통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0월.
(12) 브라질 정부 산하 응용경제연구소(IPEA)의 공보 제47호, 2010년 5월.
(13) Carmelo Ruiz Marrero, ‘The New latin American ‘Progressismo’ and the Extractivism of the 21st Century’, <Americas program>, 2011년 2월 17일.
(14)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앞의 글 참조.
(15) Perry Anderson, ‘Lula’s Brazil’, <London review of Books>, 33(7), 2011년 3월 31일.
(16) Benjamin Dangl, <dancing with Dynamite: Social Movements ans States in Latin America>, AK Press, Baltimore,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