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의 나라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강력한 공산당이 존재하고 다양한 비판 이론을 생산해온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유럽 좌파에 영감을 준 나라다. 이탈리아 전국을 돌며 좌파 활동가들을 만나보았다.
고기로 속을 채운 파스타(카소첼리)와 치킨 커리. 브레시아에서 가장 큰 민주당(PD) 서클(1)에서 맛볼 수 있는 ‘색과 맛’ 메뉴 중 하나다. 카운터 뒤편에서는 젊은 세네갈인이 서빙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외국인 혐오주의를 표방하는 북부동맹이 2008년부터 우파 연정에 참여해 시정부와 주정부를 모두 장악한 곳인 만큼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모습이다. 대부분 왕년에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노년의 활동가들이 삼삼오오 테이블에 둘러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루비 게이트’(2)에서부터 피아트 공장의 노동조건까지 최근 사건들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지난 25년간 외국인 이민자들은 이 서민 지역과 도심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살아왔다. 이들은 롬바르디아주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중공업과 서비스산업, 목축업 분야도 모두 이들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민주당에 이탈리아 북부의 외국인 이민자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다. 민주당은 국회에 진출한 유일한 중도좌파 정당인데 기존 좌·우파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여기는 ‘가치 있는 이탈리아당’과 이탈리아 급진당의 지원을 받고 있다. <<원문 보기>>
소외계층과 멀어지는 민주당
2007년 좌파 진보주의 연합과 가톨릭 민주당의 합작으로 탄생한 이탈리아 민주당은 4년 뒤 당원 70만 명과 7천 개가 넘는 서클을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다. 민주당의 당 강령은 중도좌파의 개혁주의 노선을 따르며 유럽 통합에 찬성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당원들조차 민주당의 정치적 색깔이 모호하고 너무 타협적이며, 논쟁만 일삼으면서 소외계층의 처지에 무관심하다고 비판한다. 한마디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68살의 퇴직 노동자 우고 제치니가 말한다. “나 역시 이민자 출신이다. 토스카나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 나는 남부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다. 내가 나 자신을 북부에서 일하는 외국인처럼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북부동맹의 차별 정책이 초래하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좌파는 잘 모르고 있다.”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민주당 서기장은 북부동맹에 대화를 제안하면서 비판의 수위를 낮추는 듯한 인상을 줬다. “나는 북부동맹이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다. 사람들을 자극하다 보면 인종차별주의를 양산할 수도 있다.”(3)
예전에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지금은 민주당원으로서 개혁적 좌파로 활동하는 제치니는 이런 식의 무지함이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지난 몇 년간 상당수 노동자들이 북부동맹에 표를 던진 것은 좌파가 소외계층과 점점 소원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장은 우리 지역 출신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포퓰리즘 전략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에게 먹힌 것이다. “예전에는 좌파가 지금 같지 않았다. 전후의 폐허 위에서 좌파는 사회 통합을 위해 일했다.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를 국가 재건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공장에 취업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대부분 노조에 가입하는 동시에 당원이 되었다. 우리에겐 공장이 곧 대학이었다. 노조 총회에 참석하면서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노동하고 바깥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현장 활동을 통해 우리는 비참함과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더는 정치 학습장이 될 수 없는 정당
그러나 1980년대부터 브레시아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대규모 산업들이 작은 기업으로 쪼개지고, 노동조합은 분열을 거듭하며 정당들과 멀어졌다. 분열된 노동운동은 더 이상 예전처럼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세계화 과정에서 양산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외되고 고립됐다. “1년 동안 이곳저곳에 입사원서를 내봤지만 아무 답변도 얻지 못했다.” 문학을 전공한 27살의 토마조 갈리아의 말이다. 그는 문화활동(‘시네포럼’, 다문화 음식 파티, 콘서트 등)을 통해 민주당 서클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애쓰고 있다. 그가 말을 잇는다. “젊은이들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개인주의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제치니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길을 탐색해왔다.” 정당이 정치 학습의 장으로 기능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기회를 누렸다. 편한 환경에서 공부하며 젊음을 누렸지만, 어떤 정치적 훈련도 받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젊은이들과 만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젊은이들에 다가가려 해보지만
민주당 서클의 위층에 위치한 넓은 당 사무실은 활동가들과 당 지도부가 만나는 장소다. 피에트로 비시넬라(45)도 그중 한 명이다. 그녀는 민주당 지역 위원장이자 한 코뮌의 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코뮌은 현지 출신 주민과 인도·파키스탄 등에서 온 이민자가 사이좋게 농장에서 일하는 공존의 상징이 됐다. 미첼레 오를란도(35)는 좌파 성향이 강한 한 도시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당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젊은 당원- ‘고철 장수’(Rottamatori)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중 한 명이다. 당내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글로리아 바르지지아(29)는 당내 세대교체가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사회주의자인 부모의 정치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내가 외국인처럼 느껴진다. 내 나이의 젊은이들 중 당원으로 등록해 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치활동은 여전히 구세대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정치 전단을 계속 나눠주었다.
63년간의 좌파 시대 끝난 프라토
도심 대학가의 한 문학 카페 안에 소규모 학생 조직 ‘시니스트라 페르’(‘~를 위한 좌파’라는 뜻)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모두 확신에 가득 찬 표정이다. 그들은 독일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깨끗한 손’ 캠페인- 잇따라 벌어진 소송 사건으로 기존 정당정치에 위기가 찾아오고 제2공화국이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을 지나, ‘베를루스코니즘’(Berlusconism)(4)의 시대를 거치며 성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좌파의 근본 가치를 되살리겠다는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페데리코 미첼리가 말했다. “마리아스텔라 제미니 교육부 장관도 이곳 브레시아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가 추진하는 대학 개혁은 공공지출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장학금을 삭감하고 기숙사와 학생식당 등을 위한 재정을 감축하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능력에 대한 보상 원칙을 어떻게 실현하겠는가?” 현 우파 정부가 문화를 경시한다고 비판하는 미첼리는 좌파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콘서트, 사진 강좌, 페스티벌, 토론회, 대학신문, 페이스북 등을 이용한다. “공공의 이익을 방어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는 젊은이들을 보면 기운이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저항할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처럼 ‘나는 무관심한 자들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중부의 중심 도시 프라토에는 이틀 전부터 지중해의 북풍이 몰려오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이 바람은, 한때는 반파시즘의 저항 기지였고 그 뒤 토스카나주의 ‘붉은 도시’(5)로서 좌파의 진지 역할을 했던 이 도시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섬유산업 단지가 있는 프라토는 2009년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63년간의 좌파 정부 시대를 마감하고 중도우파에 자리를 내주었다. 지난 6년간 섬유산업 분야에서만 1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전통적으로 좌파 성향을 보여온 이탈리아 노동총연맹(CGIL)의 570만 조합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CGIL을 이끌고 있는 마누엘레 마리골리가 말한다. “1970년대 처음 노조 간부가 됐을 때 순진하게도 나는 정치활동을 통해 더 좋은 세상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집단행동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버텨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에 대한 소속감은 투쟁에서 확인되는 힘에 의존한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갈수록 노동자의 권리가 위협받는 지금, 정치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 정치 무관심은 깊어지고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잠들지 않는 도시’ 프라토의 공장들은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의 경쟁기업들이 몰려오고 공정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면서 고용이 줄고 거의 모든 공장에서 야간작업이 사라졌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중국인들이 ‘음성적으로’ 만든 작업장이 불법거래와 불법노동의 온상이 되었다(6)고 공격하기 바빴다. 중도우파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치안과 평등 문제를 부각시켰다. “프라토의 경제위기는 이곳에 사는 2만5천 명의 중국인 탓이 아니다.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마리골리가 과장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모두 거짓말투성이다. 중국인들은 섬유산업이 아니라 의류산업에 종사한다. 따라서 그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잠재적 고객이다. 현재의 위기는 시너지효과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섬유는 우리가 만들고 대신 의류 생산은 루마니아 같은 나라 말고 중국인에게 맡기면 된다.” 그에겐 이것이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이다. “중국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미등록 노동자의 체류 문제를 해결해주고, 노예 같은 노동환경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프라토를 다시 활력 있는 도시로 만들려면 모든 이들의 해방을 지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휴대전화 벨이 계속 울려대는 중에도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좌파가 너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파가 집권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들은 투표장에 가지도 않았다.” 1970년대 말부터 투표를 거부하는 사람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2008년 총선 당시 기권율 19.5%)에서- 2011년 6월 12~13일 치른 국민투표는 최소 투표율을 넘겼다- 민주당 토스카나주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50대의 일라리아 부제티는 좌파의 존재 이유를 “학교와 공공의료, 기본 공공서비스 접근권, 이민자 사회 통합”이라는 말로 분명하게 정의했다. “1990년대 우리는 대대적인 정치적 지각변동을 경험했고, 지금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쇠퇴하고 정당정치는 위기를 맞았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에 올랐다. 그는 새로운 사회모델을 고안했고, 인물 중심의 정치를 도입했다. 정책보다 리더 자신이 주목받는 시대가 왔다.”
부제티는 도심의 한 카페에 앉아 과거의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회상하며 감동에 사로잡혔다. 1972∼8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탈리아 공산당(PCI)을 이끈 엔리코 베를링구에르. 그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추앙받는 좌파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이미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지난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는 신중한 성격임에도 비전과 정치적 열정, 도덕성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프라토 내 좌파활동의 중심지인 코이아노 ‘인민의 집’에는 그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550여 명의 활동가를 거느린 이 지역 공산당 서클의 70대 지도자 마리오 벤시는 이렇게 말했다. “1975년 나도 이 건물을 세우는 일에 참여했다. 정치활동이 어려운 시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토론에 열중하던 ‘동지’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엔 정당들이 사람들과 직접 만나지 않는다. 사라진 것은 이데올로기뿐만이 아니다. 연대 같은 가치 역시 자취를 감췄다. 각자 자신을 돌보는 데 여념이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베를루스코니즘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제멋대로 법을 뜯어고치고, 방송을 장악하는 식의 정책을 써서 비판 여론을 입막음하는 데 성공했다. 환멸을 느낀 활동가들은 ‘결국엔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불평하면서 무관심 속으로 도피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좌파가 집권 당시 이익 다툼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베를루스코니에게 집권의 기회를 열어줬다고 생각한다.
좌파 지도자들의 족벌주의
베를루스코니즘은 겉모습과 웰빙에 대한 집착, 삶의 스펙터클화, 텔레비전 방송 팬들을 닮은 지지자들로 특징짓는다. 이런 경향은 어떤 의미에서는 좌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족벌주의를 지향하는 60대가량의 지도자들이 자신보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몰아냈다. 오늘날 우파에 대항할 만한 강력한 지도자가 없는 이유다.” 이 주제로 두 권의 저서를 낸 좌파 활동가, 세르지오 푸젤리(7)의 지적이다. 날이 어두워지는 동안, 커다란 산장 같은 분위기의 실내에 10여 명의 활동가 출신 노인들이 둘러앉아 카드놀이를 했다. 어떤 이들은 당구를 치고, 동네 젊은이들은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보고 있다. 저녁 식사 뒤 나치 강제수용소에 관한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내일은 장애인 300여 명을 초청해 식사를 제공할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인민의 집은 여전히 중요한 만남의 장소로 남아 있다. 이민자들의 결혼식도 자주 열린다. 북부동맹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 아지오네 지오바니와 카사 파운드의 극우파가 출현한 이 지역 좌파들에게 여전히 희망을 주는 곳이다.
프라토를 떠나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의 바리로 향한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좌파 세력이 약한 곳이었지만, 2005년 니콜라 벤돌라(니키)의 당선으로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그는 현재 두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자 가톨릭 신자인 그는 이탈리아에서 인기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벤돌라는 재건공산당(PRC)을 떠나 2010년 ‘이탈리아와 유럽의 새로운 좌파연합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환경자유좌익당(SEL)을 창당했다. 이 신당의 당원은 같은 해 11월 이미 4만5천 명을 넘어섰고, ‘공장’이라고 불리는 500개가 넘는 지역 위원회가 꾸려졌다. 평화와 비폭력, 노동과 사회정의, 지식과 경제·사회의 생태주의적 전환 등 몇 개의 개념 쌍들이 SEL의 기본 원칙을 구성한다. 앞으로 집권에 성공하면 민주당과 어떤 방식의 연합을 시도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SEL은 힘을 잃은 재건공산당의 잔여 세력, 민주당이 중도 가톨릭 세력과 손잡는 것에 반대했던 민주당 좌파, 대안세계화주의자, 급진 좌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새 좌파정당의 스타 마케팅
벤돌라를 추종하는 세력의 본거지가 된 풀리아주의 주도 바리의 분위기는 민주당 서클의 분위기와 상당히 다르다. 브레시아에서는 자기비판의 분위기가 강한 반면, 이곳의 활동가들은 지도자에게 열광한다. 특히 ‘니키의 공장’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니콜라 벤돌라의 애칭을 딴 이 그룹은 처음엔 작은 모임에 불과했지만 3년도 채 안 돼 이탈리아 전역, 심지어 해외로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이곳에서는 다음 총선에서 총리 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이는 벤돌라의 출현이 새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리의 공장’에서 그래픽디자인을 담당하는 32살의 캐나다인 에드 테스타는 자신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을 위한 조직’(8)에서 영감을 받은 니키를 위한 선거지원 조직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30대의 로베르토 코볼로가 덧붙인다. “니키가 재선에 성공한 뒤 우리는 활동가들을 위한 새로운 실험센터로 거듭났다.” 이 ‘공장’은 자원활동가들에 의해 운영되고, 당에 가입할 의무도 없다. 밝은 조명과 다양한 색상으로 칠해진 공장 내부는 친근한 인상을 준다. 종이상자 수납장, 석유통 조명, 우유통 의자 등 필요한 가구들은 모두 재활용된 재료로 만들었다. 대부분 30대로 보이는 20명 남짓한 젊은이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다른 ‘공장’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우리가 만든 팬 사이트는 팔로어가 8만 명쯤 된다. 니키의 팬 사이트는 40만 명이나 된다. 하지만 바리 공장의 뉴스레터 수신 등록을 한 사람은 100여 명에 불과하다.” 코볼로는 ‘니키’라는 라벨 없이 활동가들을 모집하는 게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티셔츠, 비치타올 등 온갖 제품들에 ‘니키’의 로고가 찍혀 있다.
정책보다는 홍보에 치중
많은 사람들이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민주당 서기장이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벤돌라를 ‘포퓰리스트’로 규정하고 ‘붉은 베를루스코니’(9)라고 비판한다. ‘공장’의 활동가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리는 정치의 개인화 현상에서 긍정적 측면을 살리려 노력한다. 벤돌라가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지금은 문화적 성향보다 한 개인에 대한 정치적 동일시가 더 쉬운 시대다.” 활동가들은 벤돌라의 입담에 탄복한다. 벤돌라는 정치에 대해 얘기할 때도 친근하고 시적인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 그의 표현은 난해하면서도 바로크적이다. 벤돌라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자신이 민주당원들에 비해 더 종교중립적이고 생태주의적이며 노동자의 권리를 중요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대부분 홍보에 치중된다. ‘더 나은 이탈리아는 존재한다’라는 슬로건을 주문처럼 반복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광고회사에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공장’의 활동가들은 벤돌라를 좌파의 공백을 깨고 출현한 새로운 인물로 묘사하면서도, 내용 면에서는 변화와 발전을 위한 정책이나 전략을 고안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이 점을 더 확인해보고 싶어 SEL 지역당 사무실을 찾았다. ‘공장’들에 비해 덜 활기찬 분위기다. 아날리자 파나랄레(35) 지역당 위원장은 나이 든 마초들이 지배하는 이탈리아의 정치 무대에 여성과 젊은이가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을 성과로 꼽는다. 파나랄레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수출되는 풀리아주의 재생에너지 산업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풀리아주의 거버넌스는 마피아의 재산 몰수와 관광산업 발전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적·예술적 경관을 보유한 이 지역은 몇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재 바리 검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의료 시스템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10) 주정부가 18개 병원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양질의 의료시설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상당수의 계약직 의사들은 제대로 된 보수도 받지 못한 채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응급실은 늘 환자로 넘쳐나고,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줄을 잇는다. 풍력발전 개발도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생태주의자들의 비판에 가로막혀 있다. 농업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라를 떠나려는 젊은이들
벤돌라가 젊은이들을 생각하는 정책을 펼친다고는 하지만 치솟는 실업률을 막을 도리는 없어 보인다. 15~24살의 실업률은 현재 34%에 이른다. 이곳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벤돌라에게 별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했다. “벤돌라를 알고 있다. 나는 우파지만 말을 잘하는 벤돌라가 마음에 든다.” 시내의 한 바에서 친구들과 앉아 있던 한 청년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나 북부 지역이나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외국에 가서 살 생각이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바리 구시가지 입구에서 한때 이곳에서 장사했다는 사람을 만났다. “이처럼 지붕으로 덮인 시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남부 사람들은 거리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게 습관이 돼 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항구의 시멘트로 만든 생선 진열대는 텅 비어 있다. 그곳에서 2m쯤 떨어진 곳에서 늙은 어부가 나무상자에 생선을 담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을 지나던 한 행인이 말했다. “주민들은 정치인들이 언제부턴가 추진하기 시작한 이런 식의 현대화가 생활환경을 변질시킨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보면 ‘니키’를 추종하는 활동가들은 참으로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글. 프란체스카 란치니 Francesca Lancini (언론인·이탈리아 밀라노)
번역.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서클’(Cerchio)은 이탈리아 민주당의 지구당을 일컫는 말이다.
(2) 2011년 1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돈을 주고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혐의로 스캔들에 휩싸였다.
(3) <La Padania>, 밀라노, 2011년 2월 15일.
(4) ‘베를루스코니즘’은 베를루스코니 개인이 정치·경제·언론에 권력을 행사하고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5) ‘붉은 지역’, 즉 좌파 성향이 강한 지역은 에밀리아로마냐주, 마르케주, 움브리아주, 토스카나주 등이다.
(6) 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프라토에서 체류증을 발급받은 중국인은 1만3천 명에 이른다. ‘불법체류자’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서 체류증을 받은 중국인은 포함되지 않은 수다. 이 지역의 한 정보통에 따르면, 프라토 거주 중국인은 대략 2만5천 명으로 추정된다.
(7) <Militanza di base: La metamorfosi della Sinistra tra anfitrioni et camaleonti>, Bastogi, 포지아, 2010. <Oltre i portroni: La caduta, annunciata, del cetrosinistra>, Bastogi, 2010.
(8) Organizing for America, 오바마 집권 직후 대통령의 입법 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지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구성된 온라인 커뮤니티.
(9) Ernesto Galli Della Loggia, ‘L’orecchino populista’, <Corriere della Sera>, 밀라노, 2010년 12월 21일. Marco Travaglio, ‘Il Berlusconi rosso’, <antefatto.it>, 2009년 8월 8일 참조.
(10) 풀리아주 의료계에서 벌어진 부정행위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벤돌라 정부 역시 타격을 입었다. 특히 민주당 소속의 전 지방의회 의장 산드로 프리술로와 전 보건부 차장 알베르토 테데스코가 표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