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고셰, 무늬만 사회주의자 혹은 신자유주의자
<사상가 사교 카페>(1)에서 마르셀 고셰는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이를테면 그는 카운터에 앉아 허세를 부리는 얼굴로 잘 알려진 단골손님이기보다는 오히려 인망 높은 교수에 가깝다. 그저 홀 안 구석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치 노대가에게 고견을 물으러 오듯 사람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2007년 3월 <철학 매거진>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오랫동안 마르셀 고셰의 목소리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다른 철학가들에 비해 자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중의 앙코르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현 시류를 논해달라며 그를 초대하는 토론이나 대담은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이 사상가의 최근 저술 활동은 상당히 활발한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민주주의의 도래>(일종의 20세기 개념사)에 관한 야심찬 4부작 가운데 제3권이 출간되기도 했다.(2) 하지만 이제는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불러대며 추앙하는 통에 언론에서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나가는 일마저 힘들어졌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연금 개혁, 뵈르트-베탕쿠르 스캔들, 경제위기, 사회당의 위기 등에 이르기까지 현안마다 돌아가며 그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그러면 그는 마치 신탁 예언자처럼 모든 문제에 척척 해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막상 그가 내놓은 답변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기막히다고 할 만한 구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령 그는 “우리는 긴축재정의 비용이 엄청날 것이며,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든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은 사회가 함께 지탱하게 해준다. 정치적인 것은 원래부터 줄곧 존재해왔다”는 식으로 말한다. 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혁명사상의 쇠퇴와 소멸”을 선언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3)
그럼에도 고셰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피에르 부르디외가 종종 비판하는 언론에 나대는 사이비 지식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국립고등사회과학원(EHESS) 연구주임교수이며, 단독 혹은 공저로 20여 편의 책을 저술한 작가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정신의학, 사상사, 종교, 정치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저술 장르만 해도 광범위하다. 더욱이 그는 지금은 고전이 된 17세기 ‘국가이성론’(Raison d’Etat)에 관한 깊이 있고 신선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4) 아쉽게도 이 논문의 명성이 학계 내에만 머물렀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 연구논문이 고셰 작품의 핵심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가 더욱 심취한 것은 거대한 역사적 개관과 정치철학이었다. 이것이 그의 이름을 학계 밖까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고셰가 쓴 철학사는 아무리 심도 깊고 어려운 내용도 일반론이나 추상적 관념으로 채워진 거대한 인상주의적 묘사 속으로 녹아드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역사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주체가 된다. 거기에는 주인공도, 투쟁도, 행동도 없다. 이 형이상학적 주체를 움직이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 자유주의, 전체주의처럼) 각각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를 구분짓는 굵직굵직한 관념들이다.
고셰의 역작 <세계의 환멸>(갈리마르 출판사·1985)은 이와 같이 보편적 역사를 다시 쓰려는 저자의 대담한 시도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고셰는 종교를 세계의 운명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인식하며, 기독교(고셰는 기독교를 ‘탈종교의 종교’라고 표현했다)를 신의 초월성을 무너뜨리는 탈종교, 더 나아가 정치적 현대성(Political Modernity)의 원흉으로 지목했다. 그러니까 종교는 더 이상 우리 삶이나 사회를 인도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며, 이런 상황으로 인해 민주주의 해방은 실현됐지만 반면 무의미와 혼란이 초래됐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인 셈이다. 고셰의 이 연구서는 기독교가 허무주의와 ‘신의 죽음’이 도래하는 데 미친 영향에 관해 논한 니체의 좀더 활력 있는 분석을 떠올리게 한다. 또 더 멀게는 작품 제목에 영감을 준 막스 베버도 생각나게 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형이상학자라기보다는 엄격한 사회학자에 가까웠던 베버는 과학기술적 합리성이 거둔 승리, 자본주의, 현대 관료주의 국가 등과 연관해 이 ‘환멸’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 바 있다.(5)
정치적으로 고셰는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에 홀린 자도, 1968년 5월 혁명의 적도, 개인주의 가치들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회과학을 공격하는 불굴의 적도 아니다. 그는 ‘민중’과 ‘엘리트층’ 간 격차(6)를 지적하는 한편, 시장의 절대권력을 비판했다. 또한 최근 단행된 대학 개혁에 반기를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때때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넘어선 좌파까지 매혹할 수 있는 이유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사회 격차’라는 표현을 처음 만들어냈다고 해서 그를 극좌파의 대변인이라고 오인해서는 안된다. 반마르크스주의자인 고셰는 피에르 노라와 함께 잡지 <르데바>를 공동 창간한 인물이다. <르데바>는 1980년대에 많은 좌파 지식인들을 시장주의자로 변절하도록 만든 최고의 공신으로 활약했다. 한편 고셰가 가깝게 지내는 인사들을 보면, 좌측에는 자유주의 지식인 피에르 마낭이, 좌중간에는 생시몽재단의 전 사무총장 피에르 로장 발롱이, 그리고 맞은편에는 뤼크 페리가 포진하고 있다.
그는 2007년 11월 <피가로 매거진> 지면을 빌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최대 국정 사업 가운데 하나를 강력히 지지하기도 했다. 그는 “공무원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무원 지위를 누리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고셰의 공개발언은 주로 적극적인 사회투쟁 그룹보다는, 파리정치대학이나 사회당을 향하고 있다. 그가 내놓는 예견들은 마치 그런 놀라운 예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다듬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가 내놓는 예견을 통해, “나치주의와 공산주의는 얼굴만 다를 뿐이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전체주의는 과거사에 속한다든지, 혹은 자유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하고, 민주주의는 “제 성공이 원인이 되어 무기력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화가 어느 정도 민주주의의 성공을 보여주는 예”이므로, 민주주의를 더 선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7)
이와 같이 고셰의 작의적인 불손한 태도는 요리조리 대답을 회피하거나,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중도의 수사학을 구사하는 그의 어법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런 식으로 고셰는 큰 위험을 감수하지도, 다수를 화나게 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극단을 거부하는 태도는 보수주의적 현 시류나, 개인주의, ‘의미상실’ 등으로 쇠약해져 잘 돌아가지 않는 현 세계에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지식인 고셰가 그토록 좋아하는, 약간은 숙명론자처럼 세상에 환멸을 표현하는 태도는 결국 우리도 잘 아는 그 재앙을 일으킨 경제·사회·이념적 메커니즘을 둘러싼 비평과 거의 다를 바 없다.
고셰는 말한다. “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라 해야 옳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현상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도록 만들거나, 혹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방향 등으로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8)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고셰는 다소 모호한 이 주장을 한 경제 월간지에서 좀더 명확하게 설명했다. “시장이 필요 불가결한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만사를 해결해주는 도구는 아니다. 시장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돌아가느냐는 시장이 작동하는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교환이 상업적 성격을 띠어야만 한다.”(9)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약탈이나 포식과 구분되는 경쟁시장을 위해서는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나 법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고전적으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그리 다를 것도 없지 않은가.
글. 아르노 스코르니키 Arnault Skornicki (파리 낭테르대학 정치학 부교수)
주요 저서로 <경제학자, 수업 그리고 조국: 계몽주의 프랑스의 정치경제학(L’économiste, la cour et la patrie: L’économie politique dans la France des lumières)>(CNRS 출판사·파리·2011) 등이 있다.
번역. 허보미 jinougy@naver.com
(1) 루이 핀토, <사상가 사교 카페: 지적 억견에 관하여>, 크로캉 출판사, 벨콩브 엉 보주, 2009.
(2) <전체주의의 시련 1914~1974년>, 갈리마르 출판사, 파리, 2010.
(3) 2010년 7월 19일자 <르몽드>와 2007년 3월자 www.philomag.com 및 http://gauchet.blogspot.com 기사 참조.
(4) <국가이성의 거울에 비친 국가>, 이브 샤를 자르카(엮음), ‘국가 이성과 비이성: 16~18세기 국가이성의 이론과 이론가들>, PUF 출판사, 파리, 1994.
(5) 앙드레 토젤, ‘동시대를 사유하다: 마르셀 고셰의 정치역사 구조. 도식화 경향에서 불확실성까지’, <Revues internationales des livres et des id?es>, 제8호, 파리, 2008년 11월.
(6) ‘소수 과두집단이 엘리트층을 대체하다’, www.marianne2.fr., 2010년 10월 22일.
(7) <누벨 옵세르바퇴르>(파리), <르포앵>(파리), 2010년 10월 21일 고셰와의 3쪽짜리 동일한 인터뷰 기사가 두 잡지에 동시 게재됨.
(8) 마르셀 고셰, <역사의 조건>, 폴리오 출판사, 342~343쪽, 파리, 2003.
(9) ‘은행의 인질로 잡힌 국가’, <렉스팡시옹>, 파리, 2009년 5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