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서민층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
유류가격은 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지만, 좌파 단체의 요구사항이었던 적은 없었다. 서민층은 정당도, 노동조합도 유류가격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계급투쟁을 촉발한 유류가격과 연료가격’. 초기 노란 조끼 운동의 요구사항과 관련해, 친 ‘프랑스반자본주의신당(NPA)’파 잡지에 실린 어떤 기사의 부제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이란의 민중봉기’였다.(1) 2019년 봄에 이란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프랑스 노동조합과 정치 좌파들은 잇달아 연대 성명을 내놓았다. 그보다 몇 주 전 에콰도르 수도인 키토에서 유류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진압 과정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를 냈을 때도 마찬가지로 여러 단체에서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몇몇은 그보다 한 해 전인 2018년에 수단에서 있었던 가두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유류가격은 좌파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시위자들 중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2018년 가두시위에 앞서 2012년 6월과 2013년 9월에 수단 시민들이 봉기했던 사실, 그리고 그 봉기의 발단이 유류가격 급등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이렇듯 봉기는 여러 번 일어났지만, 달력에 기록되지 못한 채 좌파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1989년 2월 27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시민 3,000명이 사망했다. ‘카라카소’라 불리는 이 민중봉기의 첫 번째 이유도 유류가격 급등이었다. ‘카라카소’는 훗날 우고 차베스의 집권 계기가 됐다.
정치·노조 좌파가 유류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은, 단지 본인들이 해당 논쟁에서 자유롭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2018년 11월 17일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 수십만 명이 분노에 차서 거리로 나온 것도 이란 시위와 같은 이유에서지만, 당시만 해도 프랑스반자본주의신당의 눈초리는 오히려 이란에서 있었던 시위를 볼 때보다 곱지 않았다. “대부분 운송회사의 사장들이 지지하고 우파와 극우파가 전달하는 이번 사태가 현재 서민층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2) 노조 단체들도 국제적으로 연대를 호소하는 공식 성명을 내보낼 관련 조직들을 찾았으나 헛수고였다. “노란 조끼 운동은 (…) 반드시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반드시 올바른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말은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의 사무총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3)
하지만 노란 조끼 운동에서 거론하지 않아도, 유류가격으로 인한 시민들의 분노는 10년 넘게 쌓여 폭발 직전이었다. 프랑스 시골 카페에만 가봐도 그런 분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레이더, 휘발유, 디젤, 기술 통제, 납세필증 등 자동차가 핵심 주제였다. 하지만 노조, 정치 좌파가 시골에 살까? 시골지역 카페를 자주 갈까? 만일 그렇더라도, 그들이 과연 ‘영리목적의 카페(Cafés du commerce)’에서 오가는 말 속에서 ‘시시한 농담’이 아닌 다른 요소를 인지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차기 대선을 위해 정당들이 내놓는 공약을 보면 알 수 있다. “개인의 이동수단에 대해 재고하자”(4)라거나, “자동차에 필요한 공간을 줄이자”(5), “무공해 이동수단을 더 많이 사용하자”(6) 등 오염을 유발하는 자동차라는 운송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 뿐, 높은 자동차 관련 비용에 대한 언급은 없다.
서민층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통비 외에, 서민층의 정치적 관심은 어디를 향할까? 확실한 것은 ‘정치인의 정치’(권력 투쟁, 선거 전략 등)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극소수라는 점이다.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선거 때마다 기권율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여러 단체가 서민층을 대변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서민층의 관심사와 고충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가정부, 보모, 공장 라인 노동자, 배관공, 타일공 등 서민층 3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자의 성별은 여성이 대부분이었고, 연령대는 청년층부터 은퇴한 노년층까지 다양했다. 직업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다양한 배경(도시, 시골, 도시 외곽)을 가지고 있었다.
조사를 실시하면서 놀랐던 점은 크게 두 가지다. 그 첫째는 조사 대상자들 중 급여 인상(좌파 단체가 집착하는)을 원하는 이들은 극소수라는 점이다. 그들이 집착하는 것은 비용, 오르는 생활비였다. 우리가 만난 가구들에서 가계부를 관리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었다. 회계사들이 부끄러워할 만큼 꼼꼼하게 가계부를 챙기는 그들은, 대형마켓이든 구멍가게든 가격을 비교하고 과장 없이 사실을 기록했다.
그들은 당장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 매일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들에 분노했다. 그들의 요구는 분명했다. 생활필수품 가격의 엄격한 규제다. 몇 시간씩 가격을 비교하고 고민하지 않고도 냉장고를 채울 수 있기를 원했다. 급여 인상은? “급여가 오르면 물가도 오를 것이고, 결국 마찬가지죠!” 1987년부터 프랑스에서는 가격이 자유롭게 책정됐다. 조사 대상자들은 필수품 가격 규제와 함께, 공과금(가스요금, 전기세, 상호보험 등)에 상한선이 그어지기를 원했다.
두 번째로 놀랐던 점은 교육이다. 노동조합과 정치 단체들은 일반적으로 공공 서비스에 어떤 재원이 부족한가를 중심으로 담론을 펼친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모두 학교에 드는 비용에 크게 분노했다. 보육과 문화회관, 구내식당, 학용품, 소풍 등에 드는 비용은 그들의 예산을 짓눌렀다. 그 비용은 대개 방과후 활동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그들은 ‘학교’ 관련 지출 항목에 이 비용을 포함시키고 있었다.
“50세면 은퇴해요. 망한 거죠”
하지만 국가 교육에 할당되는 재원에 대한 담론은 거의 없었다. 보통 좌파측이 제시하는 담론에는 “우리는 미국식 학교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경고가 수반된다. 그러나, 서민층 자녀들은 이미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상급교육 과정에 절대 진학하지 않을 겁니다. 학비를 감당 못할 테니까요.” 서민층 자녀들도 여가활동을 한다. 물론, 문제는 비용이다. 스포츠, 영화, 공연 등 여가활동은 비싸다. 고민 끝에 내리는 결론은 대부분 게임과 넷플릭스다.
조사 대상자들의 또 다른 요구사항을 보면, 이들은 좌파 단체가 수행해야 마땅한 정책들이 부재한 데 불만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동에 대한 질문은 근골격계 질환, 관절염, 요통, 추간판 탈출증, 석회화, 급성요통, 부분 또는 영구 장애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조사 대상자는 임금노동자들로, 이 중 육체노동자는 몸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일하기 힘들다. “정신노동자들은 60세에 은퇴합니다. 그건 괜찮죠. 그런데 우린 50세에 은퇴해요. 이미 망한 거죠.” 이때 ‘좌파 단체가 펼쳐야 하는 정책’이란, 예를 들어, 고된 직업에 연금수급에 필요한 의무기간을 아주 짧게 부과해서 육체노동의 보수를 지적노동의 보수에 맞추는 프로그램 등이다. 이는 실제로 군대나 경찰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
조사 대상자들이 줄이기 원하는 것은 일이 아니다. 그들의 일상을 옥죄는 복잡한 행정절차다. 그들은 매일 복잡한 사회복지제도에서 자신들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다른 요구사항은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일과 관련 있었다. 그들은 그들 가족의 계좌에 연체금이 있더라도 모든 종류의 ‘사회복지지원’이 자동으로 할당되기를 요구했다. 사회복지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가구 중 1가구는 사회복지제도의 보장을 받지 못하고 그 손실액이 100억 유로에 달한다(7)는 점을 고려하면 조사 대상자들의 생각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치는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여론 조사 결과와 달리 불안정과 이민은 조사 대상자들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정계에서는 불안정이나 이민 관련 지원을 남발하지만 다른 지원은 없다. 우리는 실제로 정치적으로나 노동조합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 걱정거리에 대해 질문했다. 위와 같은 제안을 수행하려면 여러 조직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어야 할까? 좌파 조직들은 대중에게 평판이 좋지 않다. 복잡하고 난해한 좌파 조직의 언어는 대중의 언어와 딴판이다. “좌파 조직들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은 없이, 미사여구만 늘어놓는다. 좌파 조직의 형태도 자아와 돈, 명예, 지위를 부추기는 영구적인 시스템으로 보인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입을 위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정치는 당신의 삶을 바꾸지 않는다.” 이 말은, 한 젊은 미용사가 대중의 생각과 느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그녀는 시인 랭보가 말한 “삶을 바꾸자”라는 야심이 사실은 단절을 찬미하는 좌파의 슬로건임을 알지 못했다. 그 이후 실용적이고 이론적인 대안의 부재는 목적을 달성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항상 약자들만 손해를 보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쓸모없어졌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여기에 달렸다.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좌파 조직을 둘러싼 전반적인 불신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이해당사자들 자신이 한 말에서 실마리에서 찾을 수 있다. 좌파 진영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기’를 원했다. 여기에서 ‘우리와 같은’이라는 말은 사회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들과 같다는 뜻이다.
공항보다 유류가격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구축할 조직은 실질적인 삶, 즉 냉장고(식량지원), 교육(학교 보충의료보험, 학비 지원), 여가(영화, 공연, 서적, 여행 할인 등) 등을 생각하는 단체여야 한다. 노동운동은 과거에 수천 개의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여전히 위와 같은 활동이 남아있거나 그 활동이 다시 관심을 얻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시민 사회’, 즉 모든 종류의 ‘시민 이니셔티브’와 협회, 협동조합, 푸드 뱅크가 주도하고 있다.
위와 같은 유형의 프로젝트는 더 이상 (예전에 좌파 단체가 그랬던 것 만큼) 사람들을 열광시키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좌파 단체들은 노란 조끼 운동 이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뭉쳐 파리 공항 민영화 반대를 외쳤다. 그들은 ‘시민 발의 국민투표(RIP)’와 함께 전국의 모든 원형 교차로가 점거될 것이라는 사실이 노란 조끼 운동의 역사적 취지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파리 공항 민영화에 반대하며 원형 교차로를 점거한 이들 대부분이, 예전에 노란 조끼 운동을 위해 원형 교차로를 점거했던 이들이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어서 파리공항이 민영화가 돼도 별로 상관이 없지만, 유류가격이 올라서 더 이상 자가용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원형 교차로를 점거하려는 것이다.
선거 사회학에 따르면, 좌파에 투표하는 이들은 대부분 대학 학위가 있고, 상당한 수준의 문화 자본을 가진 이들이다.(8) 동일한 활동가들로 구성된 동일한 단체들이 최근 5G와 아마존에 반대하는 대규모 ‘대중’ 캠페인을 시작했지만, 생태학적 논거가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해 프랑스에서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위 조직들에는 여전히 반복해서 쓸 수 있는 ‘만트라’가 남아 있다. 프랑스에서 최근 총파업이 승리했을 때의 만트라다. 2009년에 LKP(과도한 착취에 반대하는 집단)는 프랑스 해외 주 과들루프에서 44일간 전면파업을 조직했다. 과들루프에서 시작된 파업의 불꽃은 가이아나와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로 확산됐고, 이곳에서도 바리케이트와 원형 교차로 점거가 시작됐다. 그 만트라는, 다름 아닌 유류가격이다.
글·피에르 수숑 Pierre Souchon
기자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항구적인 혁명(Révolution Permanente: 국제 좌파 언론 네트워크), 2019년 11월 20일, www.revolutionpermanente.fr
(2) ‘Contre le gouvernement des riches, bloquer l’offensive, taxer les profits, augmenter les revenus 부자들의 정부에 반대하며, 공격을 차단하고, 이윤에 세금을 물리고, 소득을 올리자’, NPA, Montreuil, 2018년 11월 13일.
(3) M. Fabrice Angeï, <Libération>, Paris, 2018년 11월 12일.
(4) ‘L’Avenir en commun. Le programme pour l’union populaire 공통된 미래. 민중연합을 위한 프로그램’,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 2021년 11월 18일.
(5) ‘Vivant.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biodiversité. Projet pour une République écologique 활기, 자유, 평등, 박애, 생물다양성. 녹색 공화국을 위한 프로젝트’, 유럽 생태 녹색당, 2020년 3월 16일.
(6) ‘Construisons la France en commun 공통의 프랑스를 만듭시다’, 프랑스공산당, 2020년 6월 12일.
(7) Dominique Esway, ‘Au moins dix milliards d'euros d'aides sociales ne sont pas réclamés 100억 유로 이상이 드는 사회복지사업을 요구한 적 없다’, <France Bleu>, 2018년 6월 15일.
(8) Étienne Girard, ‘Référendum ADP : qui a signé et qui s'en fout ? Sociologie du RIP 파리공항 관련 국민투표: 누가 서명했고 누가 신경 쓰지 않는가? 공동제안국민투표제도(RIP)의 사회학’, <Marianne>, Paris, 2019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