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오케스트라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출발

2022-01-28     피에르 랭베르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2021년 4/4 분기, 캘리포니아 항구 앞에 화물선 111척이 하역을 기다리며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하역이 밀린 컨테이너가 늘어나자, 백악관은 주 방위군을 투입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미국의 항만에는 수십만 개의 빈 컨테이너가 켜켜이 쌓여있지만, 아시아는 컨테이너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네덜란드산 전나무에 중국산 장식을 단 크리스마스트리의 운송비용은 2년 전보다 무려 10배에 달한다. 항공화물 운임지수(TAC 지수)도 급등했다. 평소 일 단위였던 배송 지연기간은 몇 주, 몇 달까지 늘어났다. 물류 대란에 따른 공급부족 품목에는 목재, 종이, 전자 부품, 의약품뿐 아니라 콘플레이크까지 포함됐다. 그 결과, 물가도 급등했다. 프랑스 기업의 55% 이상, 독일 기업의 75% 이상이 공급문제를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자유무역이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가 내려진 2020년 이후, 세계무역의 기반이 아슬아슬 흔들리고 있다. 1990년대부터 인건비가 낮은 국가로의 생산 이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축된 글로벌 공급사슬에 금이 갔다. 전염병의 대유행으로 현 무역체제의 민낯이 드러났다. 위기상황에서는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현실이다. 화학산업 없이는 시약 개발도 없고, 시약이 없으면 항체검사도 없다. 게다가, 아프리카로 공급되는 백신은 턱없이 부족하다. 2008년 경제위기에 이어 기후, 보건, 사회적 충격이 새로운 일상이 돼버렸다. 그 결과, 재지역화(Relocalization)를 고민하는 국가가 늘어났다. 

이 ‘혼돈의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세계무역기구(WTO)로서는 이런 고민 자체가 시련이다. 최근에는 ‘세계무역 보고서’가 발표돼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세 가지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째, 긴밀한 교역관계가 특징인 오늘날의 초연결 국제 경제망은 충격에 더욱 취약한 한편, 충격에 더욱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둘째, 무역통합 이전으로 회귀해 경제 회복력을 도모하려는 정책(생산시설 재배치나 자급자족 장려)은 자칫 역효과를 부를 수 있으며, 실제로도 경제 회복력을 저해한다고 알려져 있다. 셋째, 회복력을 높이려면 더 활발한 국제협력이 필요하다.”(1)

총 212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는 ‘회복력’이라는 단어가 총 738회 언급됐다.(2) 한때 소련의 궁핍과 물자부족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됐던 자유무역은, 이제 ‘토스터 하나 운송하기 어려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때, “자유무역이야말로, 시스템의 붕괴를 딛고 재기할 유일한 체제”라는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을 나온 세계무역기구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차마 반박하지 못하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편다. 

“충격이 가해지면 자유무역이 휘청일 수 있지만, 재지역화는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한편, 더 폭넓은 국제협력을 통해 굴레를 벗은 자유무역은 더 높은 ‘회복력’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중국의 초대 국가주석 마오쩌둥의 말처럼, “하늘 아래 혼란이 있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상황이 아니겠는가?”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2021년 세계무역 보고서, 경제 회복력과 무역 World Trade Report 2021. Economic resilience and trade’, 세계무역기구, 제네바, 2021.
(2) Evelyne Pieiller, ‘Résilience partout, résistance nulle part 넛지 유닛’과 회복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