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를 휩쓰는 무자비한 기업들

가족 농장에서 국제 기업까지

2022-01-28     뤼실 르클레르 l 기자

유럽 연합에서 UN까지, 모든 기관들이 지속 가능한 가족농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거대한 농산물 가공기업들의 범람으로 가족농업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토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 이들 기업의 이야기는 개발도상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들의 토지 독점은 프랑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2016년 4월, 중국의 농산물 가공 전문기업 ‘리워드’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리워드’의 토지 매입으로 프랑스 농업자원 보호 시스템의 결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갑부 후커친의 회사는 앵드르와 루아레 지역의 곡물 경작지 1,700ha를 손에 넣었는데, 이는 일반 농장 평균 면적의 20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곳에서 생산된 프랑스산 밀가루는 중국의 제과업체 ‘셰 블랑딘(Chez Blandine)’에 공급됐다. ‘리워드’는 2019년 파산했지만, 리워드의 프랑스 자회사는 파산 절차를 교묘히 피해 여전히 농장을 운영 중이다. 이 일로 농업 분야의 거대한 변화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 새로운 투자자의 유형은, 경작지 독점이 빈곤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대기업에 점령당한 프랑스 농장들

그 뒤에는 토지 시장 내 영향력 다툼이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기업들은 생산자들보다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들은 판매에 그치지 않고, 생산공정 전반을 통제하고자 농업에 진출했다. 농학자 쥬느비에브 응귀옌과 프랑수아 퓌르세글에 따르면, 변화의 시작은 20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 다른 분야들을 통합하는 이런 수직적 통합(기업이 공급망을 소유하는 것-역주)방식은 수평적 통합방식에 밀려났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두 농학자는 “농장도 다른 산업체들처럼, 하나의 사업체가 됐다”라고 판단했다. 2017년, 두 학자는 새로운 농업 자본주의를 다룬 저서에서(1) “기업 형태의 농장이 전체 농장의 10%, 고용의 28%, 표준 총생산의 30%를 차지한다”라고 추산했다. 여기서 ‘기업’은 넓은 의미에서 가족 농장이나 생산 조합들도 포함한다. 

그러나, 대기업이 관리하는 전형적인 지주회사 유형의 기업들의 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통계 자료가 부족해서다. 따라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농장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1998년, 드넓은 경작지와 자연공원으로 유명한 카마르그 지역에서 유럽 최대 규모의 쌀 판매업체 유리콤이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프랑스 농장을 인수했다. 유리콤의 이탈리아 모기업은 40여 국가와 거래하는 거대 기업이다. 유리콤의 농장에 들어서면, 끝없이 이어지는 벼 재배지 앞으로 거대한 농장이 보인다. 이 농지가 유리콤 소유라는 표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지만, 유리콤은 포르생루이뒤론 지방에만 1,300ha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 곳곳에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의 농지와 곡식은 인기가 높다. 다른 국가들보다 환경 및 사회 기준이 엄격하므로, 프랑스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국제 시장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기 때문이다. 유리콤은 카마르그에서 재배된 쌀이 ‘지리적 표시 보호(PGI)' 인증을 받은 시점에 농지들을 사들였다. PGI 인증은 소비자들에게 원산지 및 각종 농업 규정(농약 사용 금지 조항은 미포함)을 준수한 생산품을 인증해 주는 제도다. 

기업이 토지를 직접 소유할 경우, 크게 세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는 다른 생산자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급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소비자들의 가변적인 요구에 대처하기가 수월해진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농부, 조합, 도매상 등에 드는 중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400년 농민투쟁, 그 성과는 어디로?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생산원가를 낮추고자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 중 하나가 국가지원금이다. 수직적 통합을 공고히 해주는 국가지원금을, 유리콤도 받고 있다. 공동농업정책(PAC)에 따라 프랑스의 농장 한 곳당 지원금 평균이 약 3만 유로까지 올랐던 2020년, 유리콤은 68만 유로의 지원금을 받았다.(2) 유럽 시스템은 농지 통합에 제한이 없다. 따라서, 땅을 많이 소유할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PAC는 원래 농부들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다. 그러나 이제, PAC는 농부들이 아닌, 농업관련 기업 모델의 범람과 그들의 농지 장악을 돕고 있다. 새로운 농장들에서는 고학력자인 농업 매니저들이 농장 노동자들을 관리한다. 유리콤이 운영하는 카마르그의 농장에서도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카마르그에서 500km 이상 떨어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본사에서 재배 계획, 설비, 시간표 등 모든 결정을 내린다. 

“농민들에게 주어져야 할 결정의 자유를, 토지 소유주들의 지시가 가로막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농민의 정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다수 농민노조 ‘전국농민조합연맹(FNSEA)’의 앙리 비페레 부대표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4개 주요 농민 단체가 모두 같은 입장을 취한다. 이런 식으로 농장들이 기업에 계속 통합되면, 농민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농산물 가공기업들은 가격 횡포 때문에 이미 여러 번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의사결정권과 부까지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최근의 사태는, 에밀 졸라가 그의 소설에 담아낸, 땅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400년 투쟁에 역행하며, 그들이 더디게 쟁취한 승리에 의문을 던진다.(3)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린 SAFER

투자자들은 왜 농지로 향했을까? 농업 분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를 겪고 있다.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해도 손에 쥐는 것은 월 수백 유로의 소득과 산더미 같은 빚밖에 없다. 농민들 사이에 불안이 확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본이 환영받지 않을 리 없다. 정부의 보호막도 유명무실하니 말이다. 

프랑스에서 농지를 매입하려면, 해당 지역 SAFER(Société d’Aménagement Foncier et d’Etablissement Rural)의 보증을 받아야 한다. SAFER는 농업부와 재정경제부 산하에 있는 농촌건설토지정비회사로, 전국에 26개 지부가 있다. 정부가 토지거래 과정에 개입해 국민들의 농업 진출, 특히 청년 영농인의 육성을 촉진하려는 취지에서 1960년에 비영리 목적으로 설립된 주식회사다. SAFER의 주업무는 원래 농지 구획정리 사업이었으나, 1990년대부터 공익사업 분야가 확대돼 농촌개발과 자연환경 보전 업무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SAFER의 임무는 점점 본래의 취지에서 멀어지고 있다.(4) 2019년 사르트에서는 농산물 가공기업인 ‘플뢰리 미숑’이 SAFER의 토지 매입 허가를 받고 20ha의 토지를 취득했다. 3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직영 돼지 사육 농장을 운영하려는 목적이었다. 2020년에는 샤넬 그룹에서 자사 향수 제조용 꽃 재배를 위해 그라스 지역의 평야 8.5ha를 취득했는데, SAFER는 이를 막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사례에 관한 의견을 듣고자 SAFER 전국 연합(FNSAFER)의 에마뉘엘 이예스트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답변이 없었다. 독립 농장 모델을 지속시키고자 설립된 SAFER가 이제는 기업들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SAFER가 이렇게 변질된 것은 자금 문제 때문이다. 설립 당시인 1960년대만 하더라도 SAFER는 운영 자금의 80%를 국가에서 지원받았다. 그러나 2017년, 지원금의 규모는 2%로 급감하며 예산에서 국가지원금의 비중은 사라졌고, 현재 대부분의 수익은 SAFER가 주관하는 거래에서 나온다. 안정적인 재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토지 판매를 지속적으로 부추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푸아티에 대학교에서 농업법을 가르치는 브누아 그리몽프레스 교수는 “이들의 행동은 그들에게 주어진 공익임무에 어긋난다”라고 말했다.

2021년 2월 토지 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도 이렇게 평가했다. “SAFER는 개인이 운영하는 가족농장 모델을 기반으로 구축된 보호장치이므로, 기업형 농장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5) 프랑스 유효 경작지의 약 1/3을 운영하는 이런 기업형 농장에도 장점은 있다. 최적화된 관리, 단계적 전달 등이 그것이다. 국회의원들도 이런 장점들을 인정하는 한편, “이런 장치들이 점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악용된다”라고 지적했다.

 

‘공공의 공간’ 토지는 아직도 먼 이야기 

기업형 농장들의 욕구를 막을 정치적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영향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특히 아쿠아랑드의 사례는 그 규모 면에서 놀랍다. 프랑스에서 푸아그라, 훈제 연어, 송어, 해산물 분야 1위 업체인 라베이리 파인 푸드의 자회사 아쿠아랑드는 10여 개 지방에서 37개의 양식장을 운영하는 등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양식장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경제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업형 농업도 유례없는 집중화를 야기한다. 아울러 또 다른 전환점이 다가왔다. 농민의 1/4이 60세 이상이고, 이들은 향후 3년 안에 퇴직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1억 6,000만 농민들이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대규모 승계가 예정된 것이다.

언론은 이런 현실을 가리고 있다. FNSAFER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외국인 인수자의 비율은 2%에 불과했다.(6) 토지독점은 프랑스 내부의 문제인 것이다. 모르비앙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1위 감자칩 판매 업체 알토, 타른에서 활동하는 화장품 기업 피에르 파브르 같은 국내 기업 또는 지역 기업들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회계 감사원장은 총리에게 보낸 회계질의서에서 “농업 기업의 토지거래 확산으로 인한 영향에 대해,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7) 기업의 토지 거래액은 2018년에만 약 11억 유로로, 전체 농지 거래 중 18%에 달했다.  

프랑스 국회는 회계감사원의 압력에 밀려 결국 2021년 12월 13일 ‘기업체를 통한 농지 접근 규제를 보장하기 위한 긴급조치’에 관한 법을 채택했다. 법률 시행과 함께 SAFER는 도지사의 권한 하에 새로이 통제권을 갖게 됐고, 도지사는 다음 두 상황에 대한 승인 책임을 지게 됐다. 가족 구성원이 운영을 조건으로 농장을 승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농장 판매 시 기업의 지분이 40% 이상일 경우, 기업이 농장 인수 후 소유하게 된 전체 면적이 지역별로 설정한 ‘중대한 확장’기준을 넘어서고, 지역 내 평균 유효 경작지 면적의 1.5배 이상일 경우다.

그러나 이 법은 여러 예외사항을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정 부분에서는 효과가 미비하다. SAFER는 “일자리 창출 규모, 경제·사회·환경적 성과”를 고려해 ‘영토 개발’을 평가해야 한다. 정부가 하나의 ‘단계’로 제시하는 이 법은 농업 단체들이 원하는 주요 토지법을 대체할 수 없다. FNSEA는 농민들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내부 반성’이 필요하며 “토지를 다른 방식으로 분배하기 위해 공공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MODEF(Le Mouvement de Défense des Exploitants Familiaux, 가족농장 경영자(농민)를 보호하기 위해 1959년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역주)’는 “토지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소득과 상관관계를 고려해 농지 가격을 정하는 법”을 요구한다.

2018년 12월 출범한 국회 진상조사단은 독립된 행정 당국에 위임하는, 보다 집중된 농지 규제 장치의 설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럽 집행위원회에서도 농민에 대한 선매권, 토지 소유 규모 상한선 설정, 투기 방지 조치 등 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허락했다. 그러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정의했듯, 토지를 ‘공공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대기업에 대항하려는 의지와 광범위한 문제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공공의 공간’이란, 사전적 의미처럼, 모두의 결정에 의해 보존 및 활용되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글·뤼실 르클레르 Lucile Leclair
기자. 저서로 『Hold-up sur la terre 땅을 습격하다』(Seuil, Paris, 2022년 2월 출간 예정)가 있다.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François Purseigle, Geneviève Nguyen, Pierre Blanc, 『Le Nouveau Capitalisme agricole. De la ferme à la firme 새로운 농업 자본주의. 농장에서 농업 기업까지』, Les Presses de SciencePo, 2017.
(2) www.telepac.agriculture.gouv.fr 
(3) Émile Zola, 『La Terre 대지』, Fasquelle Éditeurs, 1887.
(4) Lucile Leclair, ‘La bagarre de l’hectare 헥타르의 결투, 프랑스의 농지 대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7월호, 한국어판 2019년 9월호.
(5) 기업체를 통한 농지 접근 규제를 보장하기 위한 긴급조치에 관한 3853호 법안 제안 이유서, 2021년 2월 9일
(6) ‘Le Prix des terres. L’essentiel des marchés fonciers ruraux en 2017 토지 가격. 2017년 농촌 부동산 시장의 핵심’, FNSAFER, Paris, 2018년 5월. 
(7) ‘Les leviers de la politique foncière agricole 농지 정책의 지렛대’, 총리에게 보내는 회계 감사원장의 회계 질문서, 회계 감사원, Paris, 2020년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