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좌파의 몰락과 정치 노선 대립

2022-01-28     페터 발 l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교수

선거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못하고 패배하는 경우는 완전한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좌파당(링케)이 4.9%라는 처참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완전한 실패를 맛봤다. 특별 규정이 아니었다면 의사당 내에서 자리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총 득표수에서 5%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전체 299개 선거구 가운데 최소 3곳 이상에서 과반을 얻은 정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규정 덕분이다.

사실 좌파당의 침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09년 선거에서는 12%, 2017년에는 9.2%라는 득표율을 겨우 유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는 2017년에 획득한 430만 표의 절반 정도인 230만 표를 얻었을 뿐이고,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의원 수도 전체 736명 가운데 60명에서 39명으로 줄었다. 

이런 몰락은 전후 수없이 실패를 경험한 독일 ‘좌파 중의 좌파’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다. 1956년, 서독에서 공산당이 해산된 이후, 좌파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1983년이 돼서야 환경·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녹색당이 좌파 감수성을 드러내며 의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녹색당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신자유주의 내각과 함께 연립 정부를 구성했고(1998~2005), 199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독일의 참전을 이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좌파, 동베를린의 상징적인 선거구 패배  

2007년, 이런 폐허 속에서 좌파당이 등장했다. 녹색당의 새로운 정책 방향에 실망한 노조원 및 옛 사회-민주주의자들 그리고 동독의 지배 정당을 계승한 민주사회당(PDS) 등 상반되는 두 세력이 통합해 하나의 새로운 정당을 설립한 것이다. PDS당은 2005년 선거에서 통일 이후 최초로 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PSD당이 뿌리를 두고 있는 옛 동독 지역의 지지 덕분이었다(1). 좌파당은 좌파 진영의 공백을 채우며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런 기세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좌파당은 하나씩 보루를 잃어갔다. 동부 지역에서는 10년 사이에 득표율이 20%에서 9.8%로 반토막이 났고, 길게 줄지어 선 주택 단지와 거대한 ‘우주인 거리’로 유명한 동베를린의 마르잔, 헬러스도르프 같은 상징적인 선거구에서는 지난 9월, 우파에 승리를 넘겨줬다. 이 지역은 2001년에는 녹색당이 51%를 득표했던 곳이었다. 

좌파는 왜 패배할까? 먼저, 인구통계와 관련된 이유를 들 수 있다. 통일을 경험했던 포스트 공산주의의 핵심 유권자들이 나이가 들고, 그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좌파가 더는 동부 지역 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민들의 이익을 중점에 두면서 새로운 반체제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사람들이 좌파에 불만족하는 분명한 이유도 존재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30년이 흘렀지만, 생활수준, 급여, 연금 등 여러 면에서 불평등이라는 철의 장막이 여전히 드리워 있다. 하지만 2000년대와는 다르게, 좌파당은 베를린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의 행정부에 참여하고 있고, 튀링겐주의 주지사는 좌파당 소속이다. 이제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좌파의 동부 요새들에서 불만에 찬 주민들의 표를 손에 넣고, 반동적인 반대파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청년층 표심 

지난 9월 선거는 좌파당에게 까다로운 문제를 안겼다. 선거 운동에서 사회 보장 문제를 경제, 노동, 환경, 기후 문제보다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실업자, 취약 계층 및 저임금 노동자들로 구성된 전통적인 사회 지지층으로부터 외면당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2) 또한, 2017년 선거에서 수많은 청년층의 표를 얻었던 브레멘과 함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세대의 표심이 변화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고학력 유권자들이 당의 새로운 지지 기반을 형성할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도시의 청년층은 오히려 녹색당이나 자유민주당(FDP)에 표를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좌파당이 잃어버린 청년층 표심 가운데 삼분의 일 가까이는 사회민주당(SPD)이 가져갔다. 사회민주당은 오래도록 지속된 경제 위기를 겪으며, 슈뢰더 총리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워버리는데 성공했고,(3) 최저임금을 현행 9.82유로에서 12유로로 올리자고 제안하며 좌파당의 텃밭에서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변화는 노조원들의 투표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017년, 노조원 11.8%가 좌파에 투표했던 반면 지난 9월 선거에서는 6.6%만이 좌파에 표를 던져 링케 당은 AfD(12.2%)와 FDP(9%)보다 뒤쳐지는 결과를 얻었다.

모든 정치적 몰락에는 조직의 내부적 원인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좌파당도 예외가 아니다. 새 공동 대표인 자닌 비슬러와 주자네 헤닝벨소는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임명되는 바람에 인지도가 거의 없었고, 보건 위기로 인한 지침 때문에 선거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8월 말 의회에서 벌어진 촌극은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에 대한 연방 방위군의 참여 여부를 놓고 벌인 투표에서 일부 의원은 찬성을, 일부는 반대를 또 다른 의원들은 기권을 한 것이다. 또한, ‘연립 정부 구성에 참여할 경우 상당한 양보를 하겠다’는 의견을 당 차원의 논의도 투표도 거치지 않은 채 발표했다는 사실 역시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난민 위기때 갈라진 당내 노선 

그러나 이러한 최근의 사건들은 2019년부터 축적돼 온 가혹한 선거 결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당내 여러 파의 정치 노선 대립에 있다. 분열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5년 일명 ‘난민’위기 당시였다. 상당수의 당원들은 ‘모든 인류에게 개방된 국경’을 주장하는 2011년 당 정책에 따라, 독일 이민을 막는 문제들이 사라진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정착의 자유가 지속돼야 함을 요구했다. 그러나 또 다른 파에서는 ‘모두에게 개방된 국경’이라는 슬로건이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좌파당의 공동 원내 대표인 자라 바겐크네히트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당원 외에도 폭넓은 지지층을 보유한 이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과 지지자들은 국제법에 따라 난민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민에 대한 규제를 요구했다. 프랑스, 영국, 미국의 좌파 안에서도 비슷한 분열이 존재하지만, 독일 좌파의 분열은 동서 지역의 단절을 연상시킨다. 이민 정책에 대한 논의는 금세 방향을 잃고 변질됐고, 동료 당원들은 바겐크네히트를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에 빗대며 ‘국가 사회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18년, 바겐크네히트는 정당 경계를 뛰어넘는 정치 운동 단체인 아우프슈테헨(Aufstehen, 일어나라)을 출범시키고 좌파당의 경쟁 상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2019년 원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바겐크네히트 의원은 언론에 얼굴을 자주 비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이후 악화된 독일 여론은 좌파당에서 기인한다. ‘정체성 정치(성별, 종교, 장애, 인종, 문화, 계급 등 특정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배타적으로 집단의 권리만을 추구하는 정치-역주)’, ‘캔슬 컬쳐(유명인이나 공적 지위에 있는 인물이 논란을 일으켰을 때 SNS에서 그 인물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하는 문화 현상-역주)에 대한 논쟁으로 오염된 전략적 논의는, 도덕적 비난과 개인적 적대감만을 내세우고 제대로 된 분석과 대화를 해내지 못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편집자이자 미국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 독일어판 대표인 로렌 발호른은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정당 대회에서 도출된 핵심 메시지는 좌파당의 특수한 정치적 입장이나 선거 강령이 아니라, 새로운 지도부의 ‘다양성’ 및 이론의 여지가 없는 친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등 성소수자들을 합하여 부르는 단어-역주), 페미니즘, 반인종차별주의 특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가 좌파당의 직접적인 지지자들을 넘어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국민들이 좌파당에 표를 던질 이유를 주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4)

바겐크네히트도 2021년 4월 출간해 단숨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 『독선가들(Die Selbstgerechten)』을 통해 이런 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5) 저자는 유행에 민감하고, 대학 졸업장과 도덕을 중요시하는 생활 방식에 좌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유감스러워 하며, 좌파당의 사회적 기반이 무너지는 이유는 정당이 사회 문제 대신 정체성 정치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계급 차별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동일한 차별의 한 형태로 바라보는 교차적인 접근 대신, 페미니즘, 반인종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등을 포함하는 계급 문제를 보편적 다수와 개인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멈추지 않는 내부 파벌 

선거 몇 달 전에 출판된 이 책은 좌파당 내부 위기를 고조시켰고, 일부 당원들은 책의 저자를 당에서 제명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당원들은 유권자를 실망하게 만들었고, 내부 갈등은 당을 더욱 쇠약하게 만들었다. 기후 위기, 디지털 시대, 국제 세력 균형 변화 등에 맞서는 적절한 전략 수립 계획도 기약이 없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좌파당을 마비시켰던 혼란이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 독일 지부와 같은 다른 좌파 단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전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이 협회는 현재, 탈세계화를 구체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협회 내분을 건설적인 방식으로 극복하지도 못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좌파당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선거가 끝나고 석 달이 지났지만 내부 파벌들의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사회적’ 지향을 갖는 ‘운동가 좌파’들이 우세한 집행부는, 동부 출신의 ‘현실주의자들’과 바겐크네히트의 측근 의원들이 동맹을 맺은 교섭단체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독일 연방의회에서 가장 작은 교섭단체는 특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의 연정에 대항하는 유일한 좌파 야당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연립 정부의 구성을 보면, 좌파를 선호했던 슈뢰더 총리 시대의 연정이 떠오른다. 연립 정부에 자유민주당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현 정부의 모순점들을 더 강하게 드러내고, 정부가 사회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어들게 만든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시사하는 것처럼, 친환경적 정책 변화가 야기하는 사회적 영향은 상당한 파장을 부르고 있다. 이것이 좌파당에게는 기회일까? 

 

 

글·페터 발 Peter Wahl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교수. 저서로 『Gilets Jaunes – Anatomie einer ungewöhnlichen sozialen Bewegung』(Papyrossa-Verlag, Köln)등이 있다.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Peter Linden, ‘Ce nouveau parti qui bouscule le paysage politique alleman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5월호. 
(2) 출처: ARD/infratest dimap.
(3) Rachel Knaebel, ‘L’aubaine des sociaux-démocrates allemand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12월호.
(4) www.jacobinmag.com, 2021년 3월 14일.
(5) Sarha Wagenknecht, 『Die Selbstgerechten : Mein Gegenprogramm - für Gemeinsinn und Zusammenhalt』, Campus Verlag, Francf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