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허상을 뒤집어쓴 영국의 복권사업

2022-01-28     루시 엘벤 l 작가

영국 국영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4,500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벼락을 맞거나, 소행성과 충돌할 확률보다도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국 국민의 약 70%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주기적으로 복권을 구매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복권 열풍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시국가를 책임질 공직을 제비뽑기로 결정했다. 투표는 재산의 규모와 언변의 유창성을 기준으로 권력이 배분되기에 귀족에게 유리한 제도였지만, 제비뽑기는 ‘표현의 자유(이세고리아)’에 기초한 ‘법 앞의 평등(이소노미아)’을 보장하도록 고안된 제도였다. 제비뽑기는 파벌주의, 부정부패, 상류정치계급의 형성 위험을 낮춰주는 한편, 끝없는 선거조작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무엇보다 조금 더 형평성 있는 자원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해줬다. 성년이 된 아테네의 자유시민은 누구나 공직에 오를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을 누렸다. 비록 사회의 모든 계급이 이 ‘민주적인’ 추첨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직을 운명으로 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이고, 투표로 선출하는 것은 과두주의적으로 간주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번갈아 피지배자가 됐다 지배자가 됐다 하는 것이 바로 자유의 한 형태”라고 일갈했다.

 

“복권을 살 때마다 영국이 승리한다”

오늘날 영국국영복권(National Lottery)을 구매하는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비록 그들의 최대 목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추첨이 가지는 평등의 의미와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여러분이 복권을 살 때마다 영국이 승리한다.” 전 세계 최초로 민영화를 추진한 영국국영복권의 공식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내걸려 있다. 영국국영복권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5개 다국적기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 ‘캐멀롯 그룹’이다. 캐멀롯 그룹은 각각의 복권추첨기계마다 기네비어·멀린·엑스칼리버 같은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유명한 이름들을 붙였다. 마치 ‘복권을 구매하는 자가 운명이 점지한 자가 맞다면, 바위에 꽂힌 검을 뽑고 왕좌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본래 영국은 3세기 가까이 복권사업을 금지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1698년 법률에 의거해 군자금을 마련하거나, 기념물과 자선사업에 필요한 재원조달 목적에서만 일부 공공복권사업을 허용했다. 그러다 훗날 민영복권사업이 본격적으로 허용된 것은 1934년에 이르러서였다. 그것도 엄격한 규제 하에서만 실시됐다. 1990년대 초 영국국영복권이 처음 설립됐을 때, (영국 국교회의 주교들을 포함해) 사행산업의 규제가 철폐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비난이 거세어 사업 추진자들은 소리 없이 몸을 낮춰야 했다. 

대외 홍보 때에도 캐멀롯 그룹은 어떻게든 ‘갬블링’(도박)이란 단어를 쓰지 않으려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고, 돈을 거는 행위가 더 이상 죄, 무분별함, 연약함이 아니라, 이타주의, 더 나아가 애국심을 보여주는 행위라는 식으로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1978년 빅터 로스차일드 경이 처음으로 ‘좋은 대의를 위한 복권(lottery of goods causes)’이란 이름을 붙였던 아이디어가 국영복권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로써 영국인들은 손쉽게 돈을 벌고 싶은 꿈이 아니라, 사회 재분배 계획에 참여한다는 믿음을 갖고 국영복권을 사기 시작했다.

1992년 훗날 영국의 총리가 된 존 메이어 후보는 “국민의 삶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복권 모델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복권 수익의 일부를 자선사업이나 예술·스포츠·문화재 등에 할당하는 한편, 각종 밀레니엄 기념사업에도 투자하는 방안이었다. 오늘날 복권기금 재분배 현황을 따져 보면, 전체 기금의 60%가 예술·스포츠·문화재 사업에 엇비슷한 비율로 각기 배분되고 있고, 나머지 40%가 의료·교육·환경 등 이른바 ‘좋은 대의’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캐멀롯 그룹은 자신들의 후한 인심이 빚어낸 결실을 자랑스레 떠벌리기에 바쁘다. 캐멀롯 그룹의 공식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정신 건강을 주제로 한 각종 토론회나 운동선수들이 동원된 어머니 날 기념행사, 각종 영화 시상식 등 국영복권이라는 ‘풍요의 뿔(Cornucopia)’이 이뤄낸 온갖 아름다운 풍경들이 줄줄이 펼쳐져 있다. 2,200만 시청자가 TV 화면을 통해 제1회 국영복권 추첨식을 지켜본 1994년 이래, 국영복권은 공공사회지출을 민간자선사업으로 대체해도 큰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국가재정 조달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박애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시스템의 첨병으로 자리 잡았다.

 

복권사업에 고심했던 대처 총리

2020년 4월, 캐멀롯 그룹은 코로나 팬데믹 여파를 해소하기 위해 6억 파운드를 지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기금의 절반은 ‘커뮤니티 펀드’에 편성해, 푸드뱅크나 1인 가구 고립 해소 대책, 한 마디로 각종 약자를 위한 지원책에 투자하기로 했다. 정작 정부는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급식 지원을 끝내 외면하는 상황에서, 한 스코틀랜드 무료 식사 지원 단체는 복권기금으로부터 1만 파운드 재정을 확보했다.

사실 마거릿 대처는 집권 중에 ‘좋은 대의를 위한 복권’에 그다지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철의 여인’은 영국공공의료시스템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재원만은 복권사업의 수익으로 조달하는 방안에 대해 잠시 고심했다. 그녀는 이런 계획을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당시 대처 총리는 이런 선택에 대해 사행산업에 대한 윤리적인 반감 때문이지, 결코 탈국영화 원칙에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는 정부가 사행산업을 장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도 복권수익을 통한 NHS의 재정 조달의 망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였다. 캐멀롯의 사업기간이 만료되는 2023년 국영복권 사업자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대부호 리처드 데스몬드는 현재 의료자선사업 관련 51개 복권사업을 호령하고 있는, 건강복권(Health Lottery)이란 이름의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건강복권 외에도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경쟁자 중에는 브리티시 텔레콤이나 자선단체 베르나도스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이탈리아 베팅업체 시살(Sisal), 체코 복권사업자 사스카(Sazka), 인도업체 수갈 앤 다마니(Sugal & Damani) 등이 있다.

 

“자선사업은 결코 목적이 아니다”

본래 영국국영복권은 예산삭감으로 약화된 사회복지시스템을 보조할 버팀목으로 구상된 것은 아니었다. 1995년 하원에서 복권사업과 복지 연계 방안에 대해 논의할 때에도, 한 장관은 본래 복권이 “결코 자선사업에 활용될 목적으로 고안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인정했다. 복권에 박애주의 기능을 결합하기로 한 정치적 결정은 복권에 또 다른 혁신적인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바로 예술 후원과 문화재 보존 사업 지원이 그것이었다. 

1970년대 말, 로스차일드 경은 “부의 축적이 점차 어려워지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민간후원의 역할을 복권사업이 보완하기를 기대했다. 특히 당시는 귀족 가문이 소유한 성에 관한 문제가 도마에 오르던 시절이었다. 로스차일드의 한 친척이 사망한 뒤 고인이 소유한 멘트모어 성을 정부가 매입하기를 거부하면서, 성에 보관된 예술품이 모조리 해외 투자자에 팔리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캐멀롯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미지를 구현하며, 복권을 영국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고 선전하는 홍보 전략에 열을 올리는 한편, 본래 복권사업의 영역에도 충실했다. ‘좋은 대의’라는 명분에 맞는 자선단체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뒷전 신세였다. 또한, 국영복권이 지원하는 사회복지프로그램의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다는 영국인이 전체 국민의 81%에 달했다.(1) 자선·의료·교육·환경 부문에 대한 예산지출도 기껏해야 ‘좋은 대의’(문화재가 단독으로 20% 예산을 독점했다)에 할당된 총예산의 40%, 영국국영복권이 올린 총 수익 대비 25%에 불과했다. 

심지어 국가문화재관리기금은 주로 윈스턴 처칠의 상속인들이 고인의 편지를 보존하는 사업 등에 쓰일 뿐이다. 2018년 다수의 의원이 자선과는 전혀 거리가 먼 캐멀롯의 사업실태를 비판했다. 캐멀롯의 총 수익은 무려 112%나 껑충 뛰었는데도, 자선사업에 대한 투자는 기껏해야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펩시+퓨리나+코카콜라+네슬레+캐드버리+워커스

영국국영복권이 번영하게 된 배경에는 국가가 국민의 더욱 풍요롭고, 인간적인 삶을 위해 사회 부문 투자를 충분히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술과 스포츠 부문에 대한 투자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개 위원회가 예술 및 스포츠에 대한 지원 대상을 결정하도록 용인하는 모델은 결코 유일한 방법도, 최선의 방법도 아니다. 오늘날 정부는 점차 재정지원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1960년대 수많은 위대한 예술과 음악을 탄생시킨 것은 국가지원의 힘이라고 여긴다. 가령 국가가 주는 실업수당 덕분에 비틀즈나 더 클래시 같은 음악가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탈리 올라 기자는 저서 『훔칠 수 있는 만큼 훔쳐라』에서 1990년대 사회복지개혁 이후 문화 창작이 소수 엘리트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상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문화 분야에 미친 심대한 영향을 분석했다. 특히 그녀는 서민층이 예술 창작 부문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요컨대, 초자본주의(Hypercapitalism) 사회에 맞춰 개발된 영국의 복권사업모델은 과거 고대 아테네에 있었던 제비뽑기 시스템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진 셈이다. 영국국영복권은 사회의 민주적 요소를 확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누구에게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가 전혀 없는 소수의 개인에게 수십억 파운드의 기금을 배분할 전권을 쥐어주고 있다. 국영복권과 정부가 맺은 계약은 이례적이다. 의원들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이 ‘좋은 대의’를 선택할 권리를 전적으로 유력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쥐어주고 있다. 더욱이 복권사업 자체도 절대적 독점권을 누린다.

물론 개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국영복권에 의한 재분배의 수혜가 노동자계급의 일원(복권종이에 6개 숫자를 표기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도 수혜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계급효과와 관련해, 복권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내 부유한 사람들의 힘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대개 사행산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일반 노동자이고, 고위간부급은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숱한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질수록 복권 구매 경향은 낮아진다. 신뢰할 만한 정확한 통계수치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거나 캐멀롯 그룹은 영국인의 70%가 복권을 즐긴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과장된 수치다. 그럼에도 복권이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행산업이라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상 영국에서 복권은 펩시, 퓨리나, 코카콜라, 네슬레, 캐드버리, 워커스의 수익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2017년 복권구매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60세 이상 구매자가 37%, 50~59세가 41%, 18~24세는 3%에 그쳤다. 특히 캐멀롯은 코로나 펜데믹 위기가 발생하고 첫 6개월 동안 전년 대비 무려 39%가 증가한 자그마치 16억 2,000만 파운드의 기록적인 온라인 매출을 달성했다. 행운을 비는 손가락 모양의 마스코트로 상징되는 소형 복권판매점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조차, 영국국영복권은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사회학자 엠마 케이시의 연구에 따르면, 복권의 구조는 노동자계급에 속한 여성들의 물질적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 조사대상 여성들이 설명하고 있듯이, 노동자계급에 속한 여성들은 대개 복권을 걱정거리를 잊게 해주는 현실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간과 가정생활과 경제상황에 딱 맞는 취미생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2000년대 초 복권 구매에 지출한 평균 예산은 2.66 파운드인 반면, 빙고 게임에 쓴 지출액은 8.5 파운드에 달했다. 비록 복권은 당첨 가능성이 낮기는 해도, 금전적으로 큰 타격을 입히지 않는 윤리적이고도 책임감 있는 투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복권은“가정을 돌보는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동양태나 생활양식에도 잘 어울리는” 투자로 간주된다. 에마 케이시 앞에서 증언한 여성 복권 구매자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취미생활에 자긍심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복권 구매에 쓰는 껌값은 흔히 런던 밀레니엄 돔을 짓거나,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개축하기 위한 목적의 복권사업으로 상징되는 상류층의 낭비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한 음모’

한편 언론매체의 복권 관련 보도는 대개 사회집단 간 불신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각종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복권 당첨자의 인종에 포커스를 맞춘 외국인혐오주의적인 이야기를 주소재로 다루거나, 복권사업의 민족주의적 특성을 강조하는 데 열을 올린다. 때로는 여기에 계급 간 멸시를 한 스푼 끼얹기도 한다. 가령 서민층 출신의 당첨자는 언론에서 ‘로또 머저리’, ‘차브들의 왕’ 등으로 묘사된다.(2) 종종 행운의 당첨자에게 돌아간 재산은 영국왕실의 재산(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부유하다는 식으로)과 비교되며, 계급의 전복에 초점을 맞춘 보도도 성행한다.

한편 매우 합리적인 성격의 좌파 지식인층은 이 제도화된 ‘행운의 바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종종 그들은 복권을 사는 것을 ‘바보세’를 내는 것과 같다고 간주한다. 1996년 정치학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리뷰 오브 북스(Review of Books)>에 기고한 기사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한 음모’에서, “복권을 만들어냄으로써 국가는 어리석음이 죄악이 아니라 오히려 투자라고 간주하는 셈”(3)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 극작가 앨런 블리스데일도 <가디언>지의 지면을 빌려 복권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나는 매주 토요일 나이 든 노인, 너절한 행색의 사람, 절망에 빠진 이들이 인생의 유일한 탈출구를 찾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복권가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복권에 대한 윤리적 혐오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조지 오웰도 1949년 출간한 소설 『1984』 에서 사기와 다를 바 없는 복권에 대해 비슷한 시선을 드러냈다. “매주 엄청난 상금이 걸린 복권은 프롤레타리아가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유일한 대중 이벤트였다. (...) 복권은 그들의 즐거움이자, 어리석음이자, 진정제이자, 지적 자극제였다. (...) 실제로 복권사가 당첨자에게 지불하는 돈은 소액에 불과했다. 고액의 당첨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복권을 즐길 이유는 분명히 있다. 사회가 달콤하게 속삭이는 능력주의가 로또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이다. 멕시코 출신의 에세이스트 가브리엘 자이드가 기술하듯, “복권을 산다는 것은 신이 우리 삶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우리의 성공이 오로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는 나르시스적인 가설을 내던짐으로써, 신의 섭리에 접속하려는 시도와도 같다. 한 마디로 신의 은총이 인간의 능력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4) 

한편 우리가 ‘좋은 대의’에 관한 논의에서 종종 망각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1/4에 해당되는 청년들이 순전히 재미로 복권을 산다는 점이다. 또한, 가족 대대로 물려받은 습관 때문에 복권을 즐기는 청년도 약 1/4에 해당된다. 이렇게 알코올 중독이나 식습관처럼, 도박 중독도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학자들도 인정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긁는 복권은 훨씬 더 중독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하는 형태의 복권이다. 특히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도록 설계돼 있다. 일반 로또를 사는 고객에 비해, 긁는 복권을 사는 구매자들은 저소득 가정의 비중이 매우 높다. 또한 충동적으로 복권을 즐길 위험도 더 크다. 영국 정부는 특히 청년들이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팬데믹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 긁는 복권과 일반 종이로또를 구매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16세에서 18세로 상향 조정했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사회적 지형이 무색하게, 캐멀롯이 제안하는 복권의 세계관은 우스울 정도로 단순하다. 복권은 모든 사람이 균일한 욕망을 지닌 공동체에 입장해 참가자들이 평등에 입각해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려 한다. 하지만 잭팟(jackpot)은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환상에 기반한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최고의 순간은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는 것이지 않은가. 복권은 조금 더 평등한 사회라는 이상향을 구현하기는커녕, 오히려 한 개인이나 혹은 그 가족에게만 일확천금의 꿈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넉넉한 시간과 돈을 누리는 개인의 탄생은 결코 정치적 기획이 싹틀 가능성을 마련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집단적인 게임에 속하는 복권은 오로지 한 개인을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만을 목표로 한다.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던, 진짜 벼락을 맞던, 순전한 우연은 사실상 대상을 고립시킨다. 복권이라는 단어도 실은 누군가 별안간 엄청난 혹은 분에 넘치는 행운을 안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향한 사회의 두려움을 대신 표현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미국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그린카드 복권에 도전한다”라고 일컬어지고, 자녀를 위해 더 좋은 학군지를 찾아 이사를 떠나가는 사람들은 “우편번호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란다”라고 묘사된다. 

마리오 베네데티의 소설 『휴전』에는 동료들의 장난으로 복권에 당첨된 줄 착각하는 한 직장인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직장과 재산을 모두 다 잃고 마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체호프의 단편 『복권』에도 복권에 당첨됐다고 여기는 한 커플이 각자 돈을 독차지할 욕심을 부리다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셜리 존슨의 기발한 동명 단편소설 『복권』에서는 일반적인 복권의 구도가 완전히 뒤집힌다.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전통적으로 돌로 때려죽일 사람을 제비뽑기를 통해 정한다. 

“이건 공정하지 않아요. 전혀 옳지 않다고요.” 한 불운한 당첨자가 검은 점이 찍힌 종이를 손에 들고 저항한다. “그리고 이내 마을 사람들은 정해진 임무를 완수한다.” 

 

 

글·루시 엘벤 Lucie Elven
작가. 주요 저서로는 『약점(The Weak Point)』(Soft Skull Press·뉴욕·2021년)이 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Paul Bickley, 『The National Lottery : Is it Progressive?』, Theos, 런던, 2009년.
(2) Sandra Laville, ‘King of the chavs – the neighbour from hell or a polite and popular charity worker?’, Jason Deans, ‘Keith Allen tackes “Lotto lout” for Channel 4’, <The Guardian>, London, 각각 2005년 6월 9일, 7월 29일 기사
(3) David Runciman, ‘The plot to make us stupid’, London <Review of Books>, vol. 18, n° 4, 1996년 2월 22일.
(4) Gabriel Zaid, ‘Contra el mérito’, <Letraslibres>, n° 180, Coyoacán,  201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