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와 알제리, 팽팽한 힘겨루기
월드컵을 앞두고 전쟁론 불사까지
알제리와 모로코가 서로 무관심 속에 공존하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린 듯하다. 1975년 이후 끝없이 지속되는 서사하라 영유권 문제가 마그레브 지역 내 두 중량급 국가의 관계를 또 다시 악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강화한 것 역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상 알제리 정부는 이스라엘을 자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 국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아프리카 10개국 국가대표팀이 11월에 열릴 카타르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손에 쥐기 위해 최종 예선전을 치를 예정이다. 천만다행으로 알제리와 모로코 양팀은 같은 강팀(같은 포트)에 속해 있어, 최종 예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열성 축구팬에서 축구에 심드렁한 일반인까지, 양국 국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하다. 덕분에 2020년 12월 이후 양국 간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감정이 악화되거나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나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됐다.
1962년 알제리 독립 이후, 양국의 관계는 좀처럼 맑게 갠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쉼 없는 불신이 반복됐다. 각종 국경 분쟁(1963년 10월 ‘모래 전쟁(Sand War)’의 기원이 됐다)과 서사하라 영유권 문제(모로코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토. 알제리도 자민족을 위해 ‘폴리사리오 전선, 사귀아 엠 할라와 리오 데 오로의 해방을 위한 대중 전선’을 지지하며 서사하라 자결권을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하자고 요구하고 있다)는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왔다. 또한 양국의 갈등으로 1989년 2월 마라케시에서 결성된 마그레브지역 경제협력체, 아랍마그레브연합(UMA)의 발전이 저해되고, 사실상 이 기구가 빈껍데기로 전락했다.
1991년 9월,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전선 간 정전선언이 체결됐지만, 40년째 사하라의 상황은 전혀 진척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먼저 모로코 왕국이 비교적 광범위한 자치권을 허용(물론 자국 주권은 유지하는 조건이었다)하는 ‘절충안’을 제안했지만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알제리가 퇴짜를 놨다. 1982년 알제리 정부는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이 아프리카통일기구(OAU, 아프리카연합(AU)의 전신)의 일원이 되도록 힘을 보탰고, 2년 뒤 이에 불만을 품은 모로코가 기구에서 탈퇴하며 양국은 갈등을 빚었다(모로코 정부는 2017년 1월 다시 아프리카연합(AU)에 재가입했다).
냉전에서 전쟁위협 까지 험악해져
가장 중대한 사안인 사하라 영유권 문제 외에도 양국 간 갈등 요소는 수두룩하다. 먼저 알제리 정부는 자국 국경 지대에서 밀수와 마약 거래가 성행하는 데도 팔짱끼고 방관하는 모로코 정부에 불만이 깊다. 반면 모로코는 1994년 알제리가 육로 국경을 폐쇄한 뒤로 국경 재개방 논의에 나서지 않는 것은 모로코 왕국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한다. 전통적으로 알제리 서부 진입로 역할을 해온 모로코 동부 지방들의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심산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냉전 속 평화를 이어가던 두 라이벌 국가는 최근 전쟁론을 불사할 정도로 관계가 험악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24일, 람탄 라맘라 알제리 외무장관은 공식적으로 모로코와 전격 단교를 선언했다. 2020년 12월 20일 촉발된 갈등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중재 하에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자 그 대가로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해줬다. 사실상 이스라엘은 그간 알제리가 모든 외교 관계 수립을 거부하며 적대국으로 간주해온 나라였다.
공식적으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긴 했지만, 트럼프 정권의 결정은 알제리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의미했다. 더욱이 바이든 정부마저 전 정권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모로코와 미국, 이스라엘의 관계가 한층 더 돈독해지자(설상가상 알제리는 사헬 지역 문제 등 다양한 문제로(1) 프랑스와도 관계가 틀어진 상태였다) 알제리 정부가 느끼던 기존의 고립감은 한층 더 깊어졌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기점으로 촉발된 알제리의 외교적 고립은 2019년 히라크 민중 봉기로 절정에 달했다. 이에 더해 20여개 아랍·아프리카 국가들마저 서사하라에 영사관과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자, 알제리는 외교무대에서 철저히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사건이 알제리 지도층의 분노에 불을 댕기는 직격탄이 됐다.
첫째, 모로코 정부가 이스라엘 개발 페가수스 스파이웨어를 사용해 알제리 인사 6,000명 이상의 통신을 감청해온 사실이 폭로됐다. 고위 정치인에서 군인, 정보기관 수장, 고급관료, 해외 주재 외교관, 여야를 총망라한 정치운동가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전방위적으로 자행됐다.(2) 하지만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스파이웨어가 사찰에 동원된 사실이 더욱 사태를 악화시켰다. 게다가 지난해 8월 12일 카사블랑카를 공식 방문한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발언도 알제리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나세르 부리타 모로코 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알제리가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스라엘이 아프리카연합(AU)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게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면서 “알제리의 역내 역할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쯤 되면 알제리 정부도 자국 국경에 대한 ‘노골적 위협’을 비판하기에 충분했다. 모로코와 단교를 선언한 알제리 라맘라 외무장관은 “1948년 이래로 이스라엘 정부의 일원이 다른 아랍국가 땅에서 또 다른 아랍국가를 상대로 위협적인 발언을 하는 건 처음 들어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모로코를 방문한 가운데 11월 24일 양국이 안보조약을 체결하자, 알제리의 불신은 더욱 극에 달했다.
알제리 분노에 불을 지핀 두 번째 사건은 7월 13~14일 오마르 힐랄레 주UN 모로코 대사가 뉴욕에서 열린 비동맹운동 회의 중, “용맹한 카빌리족은 그 누구보다 온전한 자결권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는 요지의 글을 배포하고 벌어졌다. 알제리 역시 사라위족의 민족자결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모로코가 카빌리족의 독립을 지지하며 알제리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정당 ‘카빌리 자결운동’(MAK)의 신념에 떡하니 힘을 실어준 것이다. 알제리 정부의 입장에서 상황은 명백했다. 모로코는 미국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며 어깨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알제리 정부가 공식 성명을 통해 지적한 불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여름, 90명의 인명을 앗아간 알제리 북부 지대를 휩쓴 산불이 실은 모로코 정부의 배후로 MAK 분리주의 세력이 벌인 소행이라는 비난이었다. 알제리 정부는 MAK와 모로코 정부에 책임을 돌린 덕에 내부적으로 국경 위협론에 힘을 싣고, 히라크로 상징되는 알제리 민중 저항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교적인 측면에서 이런 비난은 정권 홍보에 전혀 득이 되지 않았다. 가령 프랑스 언론은 알제리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페가수스 스파이웨어를 동원한 사찰 같이,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알제리의 불만은 한층 더 철저히 무시됐다. 비록 야당 인사를 포함한 수많은 알제리인이 이 같은 대대적인 사찰 행위를 전쟁 동기가 될 수도 있는 엄중한 사안으로 간주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일단 모로코 정부는 알제리의 단교 선언 이후 신중모드를 취했다. 모로코 정부는 알제리의 단교 결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전적으로 부당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모로코 외무장관은 공식 성명을 통해 알제리의 비판은 “사태를 악화시키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심지어 말도 안 되는 핑계”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모로코 왕국은 언제까지나 알제리 민족의 신뢰할 만한 충실한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는 안심의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모로코 정부는 그저 두 손 놓고 사태를 방관하기보다는 최대한 국익을 챙기기 위해서 움직였다. 먼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모로코 왕국의 외교관들은 사하라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을 따르도록 유럽, 그 가운데서도 특히 스페인을 집중적으로 압박했다. 1월 15일, 부리타 외무장관은 “유럽이 이제 그만 안전지대에서 나와, 미국의 적극적 행보를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모로코의 사회당 출신 전직 장관은 비로소 “트럼프 대통령이 사하라의 모로코 주권을 인정한 것은 모로코 왕국에게 크나큰 승리”라고 자평했다. 사실상 “알제리는 과거에는 동구권, 현재는 러시아와 돈독한 관계인 반면, 모로코는 언제나 군사적으로 미국의 동맹이 되어왔음에도, 지금까지 미국은 사하라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항상 중립적인 자세를 고집해 왔다”는 설명이었다.
한편 힐랄레 주UN 모로코 대사는 정부의 요청으로 발언을 철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의 압박모드를 더욱 고수했다. 그는 11월 초 유엔총회 제4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모로코령 사하라를 둘러싼 역내 분쟁의 촉발과 지속은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사법적 인도주의적 측면 등 모든 측면에서 알제리에게 최고의 책임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모로코는 사하라에 속하고, 사하라는 모로코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발언은 과거 모로코인 35만 명이 모로코 영유권을 주장하며 서사하라를 향해 행진했던 ‘녹색 행진’ 46주년을 맞이해 모하메드 6세 국왕이 TV 기념 연설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국왕은 “예나 지금이나 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은 어떤 흥정의 대상도 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일말의 타협 의사가 없음을 알제리에 시사했다.
알제리의 단교선언
하지만 모로코 왕국 역시 일부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지난 6월 10일, 유럽의회는 모로코가 '자국 국경 및 이민자 통제'를 유럽연합 회원국을 상대로 한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악용하는 데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같은 결의안은 모로코 정부가 스페인에게 미국의 행보를 뒤따르도록 압박할 요량으로 양국이 국경을 접한 스페인령 세우타에 모로코인 수천 명이 유입되도록 방치한 사건을 계기로 채택됐다. 이어 9월 29일, 유럽사법재판소가 유럽이사회의 두 결정에 대해 효력 정지 판결을 내렸다. 첫째, 모로코산 제품에 대한 유럽연합의 특혜관세를 조정하기로 한 유럽연합과 모로코 간의 협정이었고, 둘째, 지속가능한 어업 부분에 대한 양국의 파트너십 체결이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두 경우 모두에서 사하라와 그 영해를 협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한편 그보다 더 심각한 굴욕은 폴리사리오 전선이 “국제적으로 서사하라 민족의 대표로 인정되는 한”, 당연히 폴리사리오 전선이 서사하라의 대표자 권한에 따라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온당한 권한을 누린다”는 판결이었다.
알제리의 단교 선언 이후에도 양국은 힘겨루기를 지속했다. 먼저 9월 22일, 알제리 영공에 대한 모로코 항공기의 출입이 금지됐다. 이어 10월 31일 알제리 정부는 1996년 이후로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가스를 공급해오던 마그레브 유럽가스관(GME) 밸브를 잠가버렸다. 이로써 모로코는 국내 수요의 97%를 차지하는, 약 10억m³ 에 가까운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는 사태에 처했다. 반면 알제리 정부는 마드리드에는 알제리와 스페인을 직통으로 잇는 메드가즈 가스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스관의 최대 공급 용량은 80~100억m³에 불과했다. 이에 부족분은 LNG 수송선을 통해 액화천연가스 형태로 공급하겠다고 알제리 정부는 약속했다. 이처럼 스페인은 양국의 협공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처했다. 먼저 모로코는 이민이라는 무기를 통해 스페인이 기존의 입장을 꺾고 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하도록 압박했다. 그런가하면 알제리는 가스 공급을 무기로 스페인이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순간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편 사하라의 안보 상황도 점차 악화됐다. 2020년 11월 13일 모로코군이 서사하라 남단 게르게라트 완충지대에 대한 군사작전에 돌입하면서 오랜 현상유지 상태가 깨졌다. 결국 폴리사리오 전선도 1991년 정전협정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11월 19일, 폴리사리오 전선의 지도자 브라힘 갈리는 “사라위족이 용단을 내렸다. 무장투쟁부터, 전 영토에 대한 사라위공화국의 주권 수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적법한 수단을 동원해 그동안 우리가 정당하게 펼쳐온 이 해방전을 더욱 강화하기로 주권적 결정을 내렸다”고 선언했다. 물론 모로코가 장악한 사하라 영토에서 정말로 폴리사리오 전선이 대규모 전투를 치를 능력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거나 개전 선언은 양국의 긴장상태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더욱이 사하라 지역의 치안 불안은 이미 알제리까지 피해를 입히고 있다.
독립전쟁 개전 기념일이자, 알제리가 가스 금수 조치를 발표한 다음날인 11월 1일, 주에라트에서 우아르글라로 향하던 알제리인 민간 화물트럭 운전사 3명이 모리타니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폴리사리오 전선이 장악한 비르 라흘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날아든 드론 폭격에 희생된 것이다. 이틀 뒤, 알제리 대통령은 즉각 격앙된 반응으로 응수했다. ‘모로코 점령군’을 거세게 비난하며, 이러한 ‘테러행위’는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마그레브인은 이라크-이란 사태 기억해야”
현 국면은 종국에 알제리와 모로코 간 전쟁으로 비화될 것인가? 지난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전쟁 위험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먼저 알제리는 직업 군인 13만 명과 예비군 15만 명에 별도로 치안병력 19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모로코 왕국군 역시 31만 명의 군사와 15만 명의 예비군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군사력이 비등한 양국이 서로 대치하다보면, 결국 지난 10여 년 간 서로 국경을 맞대고 양국이 구축해온 압도적인 무기를 일부 혹은 전부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2010~2020년, 알제리는 군비 증강에 총 900억 달러를 지출했고, 모로코도 36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앞으로 몇 주 간 사태를 더 지켜봐야 양국의 관계가 호전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양국 지식인들의 공동 노력과 진정성 있는 중재가 없다면, 결국 사하라 사태는 양국의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크다고 많은 이들은 우려한다. 알제리의 시인이자 작가인 아민 칸은 이 문제와 관련해 “마그레브인들은 상호 파괴적인 결과를 자초한 이라크-이란의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3) “양국의 전쟁으로 득을 본 자가 과연 누구인가? 분명 이라크 민족도, 이란 민족도 아니었고, 심지어 양국 정부도 아니었다.”
글·라흐다르 벤시바 Lakhdar Benchiba
알제 특파원
오마르-로트피 라흘루 Omar-Lotfi Lahlou
카사블랑카 특파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Akram Belkaïd, ‘Entre Alger et Paris, crises et connivences(알제리와 프랑스, 과거사를 둘러싼 외교마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11월호·한국어판 12월호.
(2) ‘Projet Pegasus : l'Algérie très surveillée par le Maroc(페가수스 프로젝트 : 모로코의 밀착 감시를 받는 알제리)’, <Le Monde>, 2021년 7월 20일.
(3) Facebook, 2021년 1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