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리준 감독의 영화 <표류(Drifting)>와 아담 사우핑 웡 감독의 영화 <댄스스트리트(The Way We Keep Dancing)>(1)는 홍콩 일부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 두 젊은 감독의 영화는, 홍콩에서 최근 전개된 사회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2) 홍콩 시민들과 중국 본토와의 정치적 긴장상황과 명백히 일치한다.(3) 이 두 영화는 경계가 분명한 도시들과, 그 도시의 구역들에 깃든 편견을 보여준다. 두 영화 모두, 그림 같은 장면 따위에는 집착하지 않는다.
홍콩 영화감독 리준은, 감옥에서 막 나온 출소자가 재개발이 진행 중인 주변 지역의 노숙자들을 만나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는 이동성이 뛰어난 카메라를 사용해 절도 있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장면들을 담아냈다. 출소 환영 선물로 출소자의 허벅지에 마약이 주사된다. 그 직후, 경찰이 그가 있는 소파 위를 덮쳐 ‘주민들’을 내쫓고, 그들의 소지품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린다. 영화는 어떤 인위적 연출 없이 전개된다. 한편으로는 재개발지역에서 잠자리를 옮겨 다니는 이들의 삶을, 다른 한편으로는 권리를 인정받고 보상과 공식사과를 받기 위한 이들의 법적 투쟁을 다룬다. 영화는 금전적 보상은 할 수 있어도 사과는 할 수 없는 ‘사법기관’과 결정권자들의 폭력을 보여주며 끝난다.
진짜와 가짜
놀랍게도 아담 사우핑 웡 감독의 2020년 영화 <댄스스트리트>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다뤘다. 힙합 문화를 배경으로 한 경쟁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웡 감독의 2013년작 <광무파>의 상업적 속편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를 기대한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거대한 중국 시장의 문을 바로 닫아버릴 위험을 안고 있었다.
영화에서 부동산 컨소시엄이 낡은 서민 동네에 부유층을 겨냥한 새로운 테마 지구인 ‘힙 파크(Hip Park)’를 조성하기 위해 힙합 문화(그래피티, 랩 등)를 복원하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컨소시엄이 지역의 젊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에게 사업의 홍보 활동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면서 그 중 몇몇만을 부각시켜 그들 간의 내분을 조장하고 ‘진짜’ 아티스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들, ‘진짜’ 아티스트들은 회유당한 ‘가짜’ 아티스트들에 대항해 밤마다 소음을 만들어낸다. 결국 밴드의 래퍼는 어린 시절의 거침없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되찾아 아티스트로 부활한다. 영화는 래퍼가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힙 파크의 탄생축제를 규탄대회로 바꾸면서 끝난다.
아담 사우핑 웡 감독의 영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을 겪고 있는 뉴욕 워싱턴하이츠의 다문화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4) 미국의 존 추 감독의 뮤지컬 드라마 영화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5)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인 더 하이츠>에서 대규모 쇼 무대로 변모한 동네는, 땅값을 좀 더 끌어올렸지만 실속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동체 회복과 복권 당첨 스토리는 지역 주민 개개인의 삶을 형성한다. 이질감 속에서 생존하거나, 이질적으로 변모한 곳을 떠나거나.
<인 더 하이츠>보다 훨씬 안이한 방식으로 모두에게 회복력과 아메리칸 드림을 판매하는 영화가 있다. 카를로스 로페즈 에스트라다 감독의 2021년작 <서머타임(Summertime)>(6)이다. 이 달콤한 영화는 로스앤젤레스의 문화적 용광로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용광로의 사회적 다양성이 위협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지역 복원 정책이 임대료를 올리고,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서머타임>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모든 이들이 15분 간 리무진을 탈 권리를 누리며 마침내 도시의 야행성 파노라마를 즐기며 성찬식에 참여한다.
마지막으로, 니아 다코스타 감독의 2021년 영화 <캔디맨(Candyman)>(7)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에 주목한 이 감독은 장르 영화(판타지 슬래셔 영화)와 프랜차이즈(다코스타 감독의 <캔디맨>은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 소설을 버나드 로즈가 각색한 동명의 원작영화의 속편)를 통해 시카고의 대표적인 저소득층 주거지였던 ‘카브리니 그린’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보여준다.
이 주거지는 살인마 보기맨이 인구 구성을 바꿔버리기 전까지는 아프리카계 중산층 미국인들 사이에서 대단한 화젯거리가 됐던 곳이다. ‘캔디맨’이라는 괴물 같은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주택개발 사업의 “좋았던 시절”의 추억 대신, 그곳에서 인종차별적인 경찰들에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돌려준다.
글·장 모리스 로셰 Jean-Maurice Rocher
영화평론가
번역·김루시아
번역위원
(1) 첫 번째 영화는 2021년 9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4회 중국작가영화제에서 상영됐고, 두 번째 영화는 주로 홍콩 극장에서 개봉됐다.
(2) Martine Bulard, ‘Colère à Hongkong, poudrière géopolitique (한국어판 제목: 홍콩의 분노, 지정학적 화약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9월호.
(3) 대조적인 경우로 앤 후이 감독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홍콩의 사회문제를 시사하는 미묘한 멜로드라마를 제작했으나, 최근 중국 본토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회주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후이 감독은 최근 들어 홍콩이 직면한 사회문제는 외면한 채, 과장된 역사적 프레스코화 같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4) 2021년 6월 23일 프랑스 극장 개봉.
(5) 이와 같은 주제로 다른 구역을 다룬 작품으로 프레데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 잭슨 하이츠(In Jackson Heights)>가 있다.
(6) 2021년 9월 15일 극장 개봉.
(7) 2021년 9월 29일 극장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