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침묵은 부화되지 않은 발언

[연극] 침묵 속에서

2022-01-28     마리나 다 실바 l 연극평론가

포르투갈 예술 창작 분야는 코로나 팬데믹과 봉쇄조치로 큰 타격을 받고 다시 한번 구조적인 취약성을 드러냈다. 포르투갈에는 예술인 실업급여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연극계는 타격이 더욱더 컸는데, 배우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TV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다른 일까지 해야 했다. 

예술인 보호 장치가 거의 없는 포르투갈의 현재 상황은 에스타도 노보 독재 정권 말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다. “거의 50년간 나라가(연극이) 없었는데 그 후에 나라가(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1974년 4월 혁명 다음날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카를로스 포르투가 포르투갈의 상황을 연극계의 상황에 빗대어 했던 말이다. 연극계는 표현의 자유를 속박당하고 검열을 받으며 창작과 교육의 수단과 장소를 빼앗겼다. 그 당시 상황은 그라사 도스 산토스의 작품 『변질된 공연-1933년부터 1968년까지 살라자르 정권 하의 포르투갈 연극(Le Spectacle Dénaturé - Le Théâtre portugais sous le règne de Salazar:1933~1968)』 (CNRS, 2002)에서 볼 수 있다.

47년이 지난 후 루이스 미구엘 신트라, 호르헤 실바 멜루, 주앙 모타, 조아킹 베니테, 주앙 브리트스 등 반전위적인 대학 연극을 발전시킨 교육자들의 참여 덕분에 포르투갈 연극계는 대중들 사이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생명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극심한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포르투갈 문화부는 단순한 정부 사무국 중 하나로 축소됐다. 연극이란 연극표 판매에 좌지우지되는 상업 연극으로 한정됐으며 콩쿠르를 통해서 엄선된 몇몇 국립 극단과 민영 극단만 인정받는 상황 속에서 포르투갈 연극계는 어떻게든 타개책을 찾아야만 했다.

연극배우와 감독들은 눈앞에 놓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엄청난 적응력이 필요했다. 2014년부터 리스본 국립극단장을 맡았던 티아구 로드리게스는 아비뇽 페스티벌 감독으로 임명된 후 프라하 극장(Teatro Praga) 창립자인 페드로 페님에게 단장직을 넘겨줬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열악하고 낡았지만 유서깊은 리스본 국립극단을, 국제적인 작품을 위한 전용 공간 혹은 실험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연극 <침묵>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탄생했다. 세드릭 오랭과 길레르미 고메즈가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아미앵 문화의집 협력 아티스트인 세드릭 오랭은 <들뢰즈의 D(D comme Deleuze)>라는 연극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길레르미 고메즈는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배우 루이스 미구엘 신트라가 은퇴 전에 마지막으로 연출한 <햄릿>에서 햄릿 역할을 맡아 두각을 나타냈다. 고메즈는 포르투갈에서 현대 작가 작품 번역과 배급에 있어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호르헤 실바 멜루와 함께 일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테아트로 다 시다지 극단(Teatro Da Cidade)을 이끌고 있다. 오랭과 고메즈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기 때문에 연극 <침묵>을 위해서 공통된 언어를 정해야 했다.

작품의 큰 줄기가 정해졌다. 초연은 10월 초 리스본에 있는 도나 마리아 II 국립극장에서 열리기로 결정됐고, 이후 프랑스에서는 뱅센느에 있는 탕페트 극장에서 상연된 후에 프랑스 북부의 발랑시엔과 아미앵을 거쳐 다시 포르투갈에서 상연될 예정이다. 연극 <침묵>은 타니아 알베스, 테레사 코치뉴, 길레르미 고메즈, 조아오 라가르토, 마르셀로 우르게게 등 포르투갈 배우들이 출연하며, 배우들의 프랑스어 사용 빈도에 상관없이 포르투갈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가며 상연된다. 음악과 특유의 액센트도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연출을 겸하고 있는 두 배우, 오랭과 고메즈는 침묵에 대한 혹은 침묵의 부재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이미지 조합을 보여줘야 했다. 고메즈는 침묵에서 아줄레루(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역주) 아트를 연상했다. “이 연극은 침묵에 관한 것이다. 아줄레루라는 퍼즐에, 화가가 그려놓은 깨지기 쉬운 레이아웃에, 타일로 한장 한장 완성시키고자 하는 염원 속에 바로 이 연극의 핵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무대에서의 경험은 반복되는 듯 마는 듯 연속된 장면 속에서 만들어지며, 부조리와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 단절의 순간들은 음악과 심벌즈, 팡파르와 함께 영화적 오버랩 구성 속에서 나타난다. 관객마다 장면을 보고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큰 인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도시에서 길을 잃고 소음의 바다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어린 율리시스’는 사방에서 습격을 받고,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모든 종류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방법을 연구하다가 인간 혐오에 빠질 뻔 한다. 이후에 사춘기 아들의 무언증을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애를 쓰는 엄마가 등장한다. 하지만 엄마가 늘어놓는 불평을 듣다 보면 왜 아들이 침묵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필사적으로 아이를 가지려고 점쟁이를 찾아가는 어떤 부부 이야기다. 점쟁이는 아내에게 지나치게 지배적인 남편의 모습을 밝혀내고, 이를 본 관객들은 사실상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들 부부 가족을 보면,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와 딸이 활짝 웃지만 아버지가 나타나면 화기애애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겁주고 무섭게 하며 피하게 만든다. 또 어떤 여성은 직장에서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맡은 자신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는 남성 동료와 맞서게 된다. 배우들은 눈앞에서 역할을 바꾸고, 투명한 베일과 흰색 큐브가 놓인 단순한 무대 배경 속에서 진화한다. 그렇게 등장인물을 넘어서 그 인물이 나타내는 원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거리와 사무실과 집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간의 오해와 침묵이 폭로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소음과 분노가 표면으로 드러난다. 이 연극은 침묵이 ‘명상’보다는 ‘두려움’, ‘복종’과 관련 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어쩔 수 없는 침묵이든 강요된 침묵이든 모든 형태의 침묵을 깨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관계로 가득 찬 인간관계 구조를 끝내기를 요구한다. 발언을 방해받고 박탈당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침묵은 부화되지 않은 발언에 불과하다. 

 

 

글·마리나 다 실바 Marina Da Silva
연극평론가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연극 <침묵>, 프랑스어-포르투갈어 이중언어로 상연
- 2021년 10월 24일까지 탕페트 극장
- 2022년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페닉스 발랑시엔국립극장
- 2022년 3월 5일부터 6일까지 아미앵 문화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