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코플랜스, 육체의 카니발

2022-01-28     티보 크루아시 l 작가・연출가

12월 24일, 수많은 인파가 백화점에 몰려드는 시간, 미술관의 한적함을 느끼며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에서 존 코플랜스(1920~2003)의 사진들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코플랜스의 사진들 사이를 여유로이 거닐고, 그의 육체 조각들 속에 몰입하는 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무덤 같지는 않을까’라고 예상했던 전시는 오히려 코플랜스 프로젝트의 젊은 생명력과 변화의 힘이 넘쳐났다. 전시 큐레이터, 예술 잡지 <아트포럼> 공동 창간인, 미국 미술관 관장 등을 거쳐 60세의 나이에 뒤늦게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예술가에게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역설이다. 그런데 이런 늦은 방향 전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가짜 은퇴? 두 번째 인생? 골치 아픈 문제들이 사라진 것 같은 순간에 갖는 마지막 휴식? 아마도 세 가지가 조금씩 다 해당될 것이다. 코플랜스는 “노화는 내게 일어났던 일 가운데 가장 멋지다. 처음으로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했으니까.(1) 

 

육체가 품고 있는 세상을 조명

이런 자유, 시・공간의 정복을 이뤄내기까지 그에게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광활한 이 세상을 모험하면서가 아니라(미국으로 이민 간 영국인으로서, 그는 많은 곳을 여행했다) 무한히 작은 우리라는 존재로 돌아가, 육체의 표면을 떠돌아다니면서 말이다. 코플랜스는 1984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 발, 다리 등 자신의 신체를 사진으로 남겼다. 얼굴은 예외로, 어느 사진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에게 조명을 비추고 포즈를 취한 뒤, 보이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탐험하고, 육체가 품고 있는 세상들을 찾아 나섰으며, 달이나 화산의 풍경에 버금가는 육체의 지질학적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코플랜스는 가장 미세한 디테일을 추적하고 그 디테일을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내보이면서 비율을 변화시켰고, 기준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웅장한 느낌의 작품 <뒤로 기대기, 세 개의 패널, 왼쪽>(1990)에서 그의 등은 가파른 산맥이자, 체모의 숲에 침식당한 광야가 됐고, 둔부의 주름은 동굴의 시작인 듯 신비로운 굴곡을 드러냈다. 2m 50cm길이의 작품 <두 발, 다섯 개의 패널>(1988)은 각질이 일어나고 거친, 소금기를 머금어 마치 바닷가 같은, 포개진 두 발의 옆모습을 보여준다. <발, 정면>(1984)은 좀 더 작은 크기의 작품으로 도심 공간을 연상시킨다. 발끝으로 선 채 렌즈를 마주한 두 발은 작품 대부분의 영역을 차지하며 지평선을 가로막고, 가느다란 틈새에 자리한 하늘은 두 발을 기이한 형태의 고층 건물로 분리한다. 

 

“내 가슴은 17세기의 얼굴”

인화된 사진이 크든 작든, (폴립티크나 프레스코화처럼) 하나이든 여러 개의 패널이든, 코플랜스의 작품들은 그의 육체가 드러내는 입체감, 굴곡, 빛의 그라데이션 등 사진으로서의 특징을 감상하게 해준다.(2)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은 모두 흑백사진의 규칙을 벗어나지 않고, 피부는 끊임없이 뉘앙스를 달리한다. 반짝이거나 금속성을 띄거나 은빛을 내거나 푸르스름하거나 잿빛이거나 흐릿하거나 회색빛이거나 어둡거나 그을렸거나 검게 탔거나 검다. 독특하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모든 색과 기원, 시대의 육체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뉘앙스의 팔레트인 셈이다.

그런데 만약, 코플랜스가 옷을 벗음으로써 위장을 하고, 무(無)로 가장을 하고, 스스로 나체라는 가면을 썼다면? 익살스러운 연기자가 나이라는 눈속임, 육체라는 가식을 찬양하고 기이한 정체성의 콘셉트를 승화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코플랜스 작품 시리즈의 제목(<자화상>)이 가진 불변성과 상반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육체의 정체성이다.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움직임’이며, 이 움직임은 냉정한 객관성과 ‘노쇠함’에 대한 고증에 집중한 코플랜스의 때로는 너무 진지한 접근 방식을 깨뜨린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작품이 내포한 유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털이 불규칙한 상반신을 찍은 사진 <몸통, 앞>(1984)을 소개하며 “내 가슴은 17세기의 얼굴을 그린 것이다”라고 말했다.(3) 석회질처럼 하얗게 된 먼지투성이 발을 엇갈리게 놓은 <교차된 발>(1985)을 통해서는 이 발들은 “돌과 비슷하며, 아마도 중세시대 십자가 처형의 파편일지도 모른다. 못만 없을 뿐”이라고 말했다.(4) <손등 No.1>(1986)은 “손을 웃게 만들고 싶은” 어린이 같은 마음에서 태어났고, 툭 튀어나온 주름을 입술 모양으로 포착한 것은 스스로를 다시 나타나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5) 카메라의 기능 덕분에 얻게 된 유머러스한 성형수술인 셈이다!

 

육체가 자유롭게 쏟아낸 불꽃놀이

 

 

코플랜스 작품의 형태들은 너무도 암시적이라서, 한 작품에서 다른 무한한 작품들을 연상하게 되고, 그래서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초현실주의 조합(한스 벨머의 사진, 달리의 그림), 베케트의 광대들,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 보디 아트의 실험들, 공허함, 해부도, 고대 조각술, 이집트 또는 선사시대 부족 예술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코플랜스에게 그의 ‘일인극’을 관통하는 영향력의 확산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사진들을 위해 포즈를 취할 때면, 나는 과거에 잠식당한다. 거울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떨어진 앨리스의 경험을 연상하게 된다. 아무런 소품도 이용하지 않은 채, 흰색 배경 앞에 포즈를 취하고는 뭐가 어떻게 되는지 이해할 틈도 없이, 나는 꿈속으로 빠져든다. (……) 시간을 여행하는 능력이 고갈될지, 어떤 이미지들이 나오게 될지 나는 전혀 짐작할 수 없다.”(6) 그의 설명대로라면, 각각의 사진은 자기 자신의 몸속(기억, 무의식, 환상)으로 낙하하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그의 몸이 지니고 있으며 그를 능가하고 그가 ‘여행’하는 세상의 과거로 낙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코플랜스의 사진 기록은 그의 생애 끝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감동적이다. 사진들은 노년을 마지막이 아닌, 육체가 수많은 특징들을 자유롭게 쏟아내는 불꽃놀이로 만든다. 육체를 앞서고 범람하며, 따르는 수많은 특징들을 말이다. 결국,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작품들이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도록 형식을 추방하고, 작가로부터 독립된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에 갇히지 않는 존재 즉, 단순한 세상의 지점들이자, 육체를 넘어서고 육체가 절대 다스릴 수 없는 이야기의 매개물인, 다른 존재들의 육체에서 육체로 작품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동시대성을 외치는 이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한 시인 말라르메의 판단은 또 한 번 옳았다.(7) 

 

 

글·티보 크루아시 Thibaud Croisy 
작가, 연출가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전시회 인용 및 다음에서 발췌: Christopher Lyon, ‘Seeing from Inside : John Coplans on “A Body of Work”,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Members Quarterly]’ New York, n°47, 1988 봄. 프랑스어 번역본은 Jean-François Chevrier의 『John Coplans — Un corps 존 코플랜스 - 육체』(Le Point du Jour, 2021)에 소개 됨. 
(2) 이건 아마도 나이든 육체가 가진 특권일지도 모른다. 코플랜스는 ‘형태의 미화’를 보여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반대되는 관점을 취한다. “난 형태의 미화에 반대한다”라고 코플랜스는 강조했다. “나는 내 추함이 가진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토록 추한 사진들을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하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은 유토피아이다. 나는 카메라를 사용해 진실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의 고전적인 규칙 뒤에 나를 숨기지 않는다.” in. ‘John Coplans à Marseille 마르세유의 존 코플랜스’, <르몽드>, 1989년 8월 19일.
(3) 전시회 인용 및 다음에서 발췌: Christopher Lyon, ‘Seeing from Inside...’, op. cit.
(4) Ibidem.
(5) 전시회 인용 및 다음에서 발췌:  Jean-François Chevrier, 『Une autre objectivité 또 다른 객관성』, Idea Books, Milan,1989. 장프랑수아 슈브리에에 따르면, 코플랜스는 먼저 자기 몸의 이미지를 그린 다음, 영상 피드백으로 조수의 촬영을 이끌었다. 눈이 멀게 된 이후에는, 그림을 통해 사진을 시각화하는 방법에 전적으로 의존했을 것이다.
(6) 전시회 인용 및 다음에서 발췌: 『A Body : John Coplans』중 ‘My chronology’, New York, Power House Books, 2002.
(7) Stéphane Mallarmé, 다음에서 인용: Jean-François Chevrier, 『Les relations du corps 육체의 관계』, L’Arachnéen, Pari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