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아랍어는 정교한 종합예술"

1천년 수사학·웅변술 토대, 19C 아랍 르네상스서 '현대 버전'으로

2008-12-30     에드워드 사이드 | 철학자

  아랍어를 어떻게 말하고 쓸 것인가? 이 질문이 정작 위험한 것은 토착민들까지 쓰고 있는 이 언어의 체험과 무관한 이념적 요인들 때문이다. 필자는 아랍어가 본질적으로 무시무시하고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표현할 것이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 터번을 쓴 악당들이 피해자들에게 가학적인 즐거움을 만끽하며, 성마른 말투로 퍼붓던 1940~50년대 헐리우드 스크린 장면이 한 몫을 했다. 최근에는 미국 언론들이 모든 아랍인들과 테러리즘이 관련 있는 것처럼 묘사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알고 보면 전통 아랍 문학의 수사학과 웅변술은 1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알-자히즈와 알-주르자니 등 바그다드 작가들은 수사학과 웅변술, 그리고 비유(트로프, tropes)1)들을 이해하기 위해 믿기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놀라울 만큼 첨단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은 일상 쓰는 아랍어가 아닌 고전 문어체 아랍어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왜냐 하면 코란 이후에 생긴 모든 것들이, 고전 아랍어로 쓰인 코란을 자신들의 언어적인 뿌리와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체와 문학 버전이 일치하는 현대 유럽어 사용자들에겐 코란의 고전 아랍어가 결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란의 회화적 권위는 상실됐다.

 이집트 방언, 아랍 세계 널리 확산
모든 아랍인들은 지역과 나라에 따라 상당히 다른 방언을 사용한다. 필자는 팔레스타인, 레바논 그리고 시리아에서 주로 사용하던 방언을 혼용하던 집안에서 자랐다. 이들 세 방언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주민은 베이루트나 혹은 다마스 주민과 구분됐지만, 이들 모두는 별로 어렵지 않게 서로 소통이 가능했다.
필자는 카이로 소재 학교에 다녔고,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이집트 방언도 아주 유창하게 했다. 이집트 방언은 필자가 집에서 배운 다른 방언들보다 훨씬 빠르고 우아했다. 더욱이 이집트어가 더 광범위하게 쓰였다. 거의 모든 아랍 영화, 라디오 드라마 및 텔레비전 연속극들이 이집트에서 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집트 사투리는 전 아랍 세계 주민들에게 익숙했다.
1970년~1980년대에 석유 붐을 타고 아랍 각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을 주도하며, 이번에는 고전 아랍어가 사용됐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들은 한없이 지루했다.  차라리 가장 졸속으로 제작한 이집트 연속극 '무살살'이 고전 아랍어로 가장 훌륭하게 제작했다는 최고의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모든 방언 중에서 유일하게 이집트어만 성공적으로 확산됐다. 따라서 마크렉2) 사투리와 마그레브 사투리는 그 차이가 너무 커서 필자는 알제리 사람이 하는 소리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이라크 사람이나 심지어 누가 강한 걸프 억양으로 말해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나 TV뉴스는 걸프에서 모로코까지 모든 아랍 세계가 이해할 수 있도록 고어를 '현대화 버전'으로 바꿔 사용했다. 토론, 다큐멘터리, 회의, 세미나,  모스크의 설교와 민족주의 회합 연설에서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시민들 간의 일상적인 만남에서도 '현대화 버전'을 쓰게 했다.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고전 아랍어'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라틴어가 유럽 방언처럼 쓰였고, 고전 아랍어는 일반적인 문어체로 생생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수많은 방언들 가운데, 이집트 방언을 제외하곤 자신의 국가를 넘어 유통된 적이 결코 없다. 게다가 이들 방언들은 광대한 고전 '프랑스 언어'3) 문학을 소유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지역'작가들도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곤, 방언보다는 현대화된 고전 아랍어를 쓰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교육받은 사람은 두 언어를 확실히 구분해서 사용했다.
물론 두 언어는 흔히 글자가 동일하고, 어순 또한 같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전 아랍어, 혹은 표준어 버전은 지역과 지방 사투리들의 흔적을 모두 잃어버려 그 뜻과 발음이 달라지기도 했다. 표준어 버전은 마치 고음을 내는 악기처럼 신중하게 변조되고, 고음 처리 되어, 가공할 만큼 부드러워졌다. 그 소리들은 대단한 웅변술을 만들어낸다. 그처럼 올바르게 사용된 고전 아랍어는 상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언어다. 정확한 표현력과 한 단어 속에 다양한 글자를 쓰는 놀라운 방식 등으로 사물을 뚜렷이 구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아랍어로 가장 현대적인 책을3) 저술한 야로슬라프 스테크비치의 말처럼 고전 아랍어는 아랍 문화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탁월한 언어다. 그는 고전 아랍어를 '비너스'에 비유했다. "이 비너스가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 태어나서, 역사와 세월의 힘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지켰다"고 극찬한 것이다. 그는 또 "서구의 학생들에게 아랍어는 거의 수학 수준의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세 자음의 완벽한 어간 시스템, 그들의 기본적인 의미와 함께 증가된 동사의 형태들, 동사적 명사와 분사들의 정확한 형식, 이 모든 것들의 명료함, 논리, 시스템, 추상,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고전 아랍어의 서체 또한 보기 좋다. 그래서 명백한 논증보다는 장식이나 '아라베스크'에 더 가까운 매우 복잡한 종합 예술이다.

 '해방과 세속화' 상징, 표준 아랍어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며칠 동안, 아랍 알-자지라 위성 채널엔 미국의 미디어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토론과 취재 기사들이 소개됐다. 이는 그 내용과는 별도로 그 자체로서 충격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 등 과격 분자들을 비롯한 패널들은 아주 까다로운 질문에도 높은 수준의 웅변술로 처리하는 특징을 보여줬다. 빈 라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분명 그것이 그가 지닌 영향력이다. 또한 소수의 문제이긴 하지만, 비 아랍인인 부르하누딘 랍바니와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등과 같은 아프가니스탄 정치 지도자들은 아랍 사투리를 습득하지 못한 채, 고어를 아주 편하게 구사했다.
우리가 오늘날 현대 표준 아랍어(고전 아랍어)라고 부르는 언어는 정확히 14세기 전에 코란에 쓰였던 언어는 아니다. 그 언어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심지어 딱딱해 보여, 일상생활에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근대 산문에 비하면, 코란의 언어는 낭송시처럼 보인다.
근대의 고전 아랍어는 19세기 말, 십 수 년 동안 진행된 나다(Nahda) 또는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근대화 과정의 산물이다. 그것은 주로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의 남성 그룹(기독교인들이 많았다.)의 업적이었다.
이들은 7세기의 고유 통사론을 조금 단순화하고 수정해서 아랍어를 아랍화 하는 방식으로 아랍어를 바꿔 나갔다. 가령 고전 아랍어에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던 '기차', '회사', '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같은 단어를 소개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광대한 언어 자원 속에서 단어를 찾아내 기술적인 문법 과정인 알-키아스(Al-quiyas) 유추법을 적용했다. 또 새로운 어휘를 강제로 적용시켰으며, 그것들이 대략 현재 고전 표준 언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나다'는 종교 텍스트로부터 해방을 이끌었고, 아랍인들이 말하고 쓰는데 있어 새롭게 세속주의를 도입시켰다. 아랍어 문법은 언어가 너무 정교하고 매력적이어서, 고학년 학생들이 한층 손쉽게 배운다. 왜냐 하면 고학년 학생들이 미묘한 문법의 논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집트, 튀니지, 시리아, 레바논과 버몬트 등의 언어 학원에선 비 아랍인들에게 최고의 아랍어 교육을 하고 있다.

 정치·학문 등의 공식 언어로 부상
1967년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은 필자가 멀리서나마 정치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었다. 그때 무엇보다도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우리가 아랍 사투리라고 부르는 대중의 언어인 '아메야'로 정치를 하지 않고, 엄격하고 공식적인 '포샤'나 혹은 고전 아랍어로 한다는 것이었다. 곧 필자는 사람들이 정치 분석을 하는 만남과 회의에서도 이들 언어를 사용하며, 그것들이 사실보다 훨씬 깊이가 있어 보인다는 것도 깨달았다. 필자는 크게 실망은 했지만, 이는 사실 당시의 마르크스 용어와 아랍해방운동이 특별히 교감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계층과 물질적 이득의 묘사, 자본과 노동 운동 묘사들이 아랍화되고 긴 독백으로 처리되어, 대중보단 세련된 투사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필자와 교류하는 사이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가말 압델 나세르와 같은 유명 지도자들은 자신들 만큼 교육을 잘 받은 마르크스주의자들 그 누구보다 사투리를 잘 구사했다. 특히 나사르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포샤'의 소리 문구를 섞어가며 이집트 방언으로 연설을 했다. 반면 아라파트는 아랍의 웅변술이 극적인 어조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평균 이하의 웅변가란 평판이었다. 발음의 오류, 망설임과 어색하기만 한 완곡한 표현들이 교육을 받은 자들 귀에는 '도자기 가게에 들어가 산책하는 코끼리'를 연상시켰다.
카이로에 있는 '알-아자르'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 중 하나이다.  이 대학은 이슬람 정통의 산실이기도 하다. 총장은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종교적 권위를 지닌 수니파 교도다. 주로 코란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지식을 가르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해석, 성문법, 하디스4), 언어, 문법 등의 모든 교과는 코란과 관련이 있다.
'알-아자르'에서는 숙달된 고전 아랍어로 아랍인과 다른 무슬림들에게 이슬람 교육을 시키고 있다. 코란을 두고 무슬림들은, 마호메트에게 계시의 시리즈를 통해 '강림'한 창조되지 않은 창조주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란의 언어는 신성하다. 이 언어는 사용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과 패러다임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규칙과 패러다임들은 교조적이어서 코란의 언어를 모방할 수는 없다.

 필자, 고전 언어와 방언 혼용
60년 전, 우리는 웅변가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쏟아내는 말 만큼이나 그들이 수정한 언어에 대해 끊임없이 평가를 했다. 20년 전, 필자가 카이로에서 아랍어로 첫 연설을 마친 후, 필자의 부모님이 다가와 참으로 형편없는 웅변에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제가 한 말은 이해하셨죠?" 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책과 철학의 민감한 사안을 이해했을지 걱정이 앞서 여쭤본 것이었으

* 에드워드 사이드는 누구인가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1948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강점되자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한다. 그는 카이로의 빅토리아 고등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퇴학당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의 청교도 기숙학교인 마운트 허먼스쿨로 전학한다. 하버드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는 컬럼비아 대학의 영미 비교문학 담당 교수로 뛰어난 업적을 보였다. 그는 명저 <오리엔탈리즘>(1978)에서 서구 사회가 창출해낸 동양에 대한 오랜 편견과 허위의식을 드러냈으며, 그후 <문화와 제국주의>(1993), <박탈의 정치학>(1994),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2001) 등 20여권의 저술을 통해 문학이론가, 문명비평가로서 현대 서구 사회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사이드는 2003년 백혈병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기까지 줄기차게 지식인들의 현실 안주와 비겁함을 공격했다.

나, "아무문제 없었지. 하지만 넌 웅변도 연설도 부족했지"라는 조롱 투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 힐책은 아직도 필자가 공개적으로 말할 때면 따라 다닌다. 필자는 웅변술이 뛰어난 웅변가로 스스로를 변신시킬 능력이 없다. 그저 실용주의 방법으로 혼합된 결과물인 고전 언어와 방언을 섞어 구사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지적했듯, 필자는 롤스로이스를 소유했지만, 폴크스바겐을 몰고 싶어 하는 사람과 닮았다.
최근 10년에서 15년 사이에서야 필자는 가장 정제가 잘 된 아랍 산문이면서, 가장 아랍적인 색채를 잘 표현한 책을 발견했다. 이는 한 번도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소설가들(비평가들이 아닌), 예를 들면, 엘리아스 코루리나 가말 알-기타니가 저술한  책들이었다. 생존하고 있는 두 위대한 시인, 아도니스와 마흐무드 다르위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자 매우 수준 높은 랩소디적 송가를 써서, 수많은 청중들을 환희와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들이 구사하는 산문은 날카로운 면도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도구처럼 보인다. 그들의 언어적 지식은 너무나 크고 자연스럽다. 그들의 글과 말은 웅변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그들은 결코 긴 단어나 수사를 반복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필자는 아랍 국가(식민지 체제와 반대 개념)의 학교 시스템 속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탓에 의식적으로 고전 아랍어 문구를 명확하게 제대로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아스러운 언어를 구사하기란 항상 어렵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 |조은섭


 

1) 수사를 통해 단어와 표현의 본래의 의미를 비틀어 놓는 방식.
2) 마크렉(Machrek)은 마그레브(Maghreb) 즉, '지다'의 반대 뜻으로 '뜨다' 혹은 '해 뜨는 동쪽'을 의미하는 오리엔트 아랍어다.
3) 이탈리아어와 가까운 혼합된 언어로서써 수세기동안 모든 지중해 연안에서 국적이 다양한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 사이에서 쓰인 언어. 
4) <재적응.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시> 인디에나 대학 프레스. 블루밍턴, 1994년.
5) 마호메트와 그의 동료들의 말과 행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