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주의에 작별을 고함

2022-01-28     앙토니 뷔를로 l 정지학자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에 등장하는 갈릴레오는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한 나라’라고 말했다. 어쩌면, 역사학자 클로드 마조릭은 마지막 작품(1)을 쓸 때 갈릴레오의 대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혁명을 소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쓴 역사학자이자 혁명 연구 분야의 베테랑이며 마르크스주의자임을 후회한 적이 없는 클로드 마조릭은, 전통적으로 전면에 배치된 영웅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간추려 집필 작업을 하기로 했다. 

에세이 형태인 저자의 이번 저서에는 거대한 사회 집단, 장기적인 역학, 구조적 모순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혁명’이라는 사건은 몇 가지 연대기로 간단하게 언급된다. 혁명을 주도한 인물들은 혁명의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그려진다. 자잘한 디테일은 생략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이런 대담한 방식은, 메시지를 생생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주의와 이별을 고하는 다른 방식도 있다. 전기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위대한 혁명가에게 전설과 환상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다. 혁명가들의 본 모습이 종종 왜곡되는 이유가, 바로 이 전설과 환상에 있기 때문이다. 장 폴 마라(Jean Paul Marat, 1743~1793)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마라는 범죄자, 사기꾼, 실패한 작가, 기회주의와 광신주의에 사로잡혀 민중의 폭력성을 자극하는 잔혹한 선동가, 마치 그랑 기뇰(Grand Guignol;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살인이나 폭동 등을 다룬 전율적인 연극)같은 이미지로 그려졌다. 

미국 작가 클리포드 D. 코너는 마라를 이런 이미지들에서 끌어내, 한층 입체적인 인물로 그렸다.(2) 코너의 작품 속 마라는 시간의 기준에 따른 과학자, 동맹과 타협할 수 있고 극단적이지 않은 정치인, 교묘하면서도 일관된 정치적 사고를 지닌 언론인, 항상 독자들과 부딪힐 준비가 돼 있으며 대중에게 끝없이 훈계하고 비판적인 통찰력을 보이는 예언자로 그려진다. 

세르주 비앙시는 『당통』(3)의 절반에 달하는 분량을 영웅화 과정에 할애한다.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흐너부터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 폴란드 감독 안제이 바이다까지 영웅화 과정을 통해 코르들리에 클럽(마라, 당통 등이 창시한 대중적 정치 클럽)의 당통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했다. 당통을 신화 속에서 끌어내야, 진정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카멜레온 같은 정치인’으로 통하던 당통의 궤적을 냉철하게 따라가면, 외길이나 고결함을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야닉 보스크와 마크 벨리사도, 나폴레옹 드 보나파르트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씌워진 신화와 마주하며 영웅담에 매혹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 두 역사학자의 저서(4)는 전작 『집정부』(5)와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번 책에서도 두 저자는 개인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권력 시스템에 주목하며 정치 질서(권력분산, 다양한 형태의 국민 통제, 공공 공간의 탈정치화)가 탄생해 특정한 사회질서(위계질서 복귀와 통합, 지주 엘리트층의 지배)를 형성한 과정을 묘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남자가 제국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영구적인 정치 및 사회 모델이 형성되는 과정을 접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해 열린 나폴레옹 사망 200주년 행사를 들 수 있다. 이는 두 세기가 지난 지금도 나폴레옹의 추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글·앙토니 뷔를로 Antony Burlaud
번역·이주영


(1) Claude Mazauric, 『1789. Sur la Révolution de France, Au diable vauvert 1789. 프랑스 혁명에 관해, 아주 멀리』, Vauvert, 2021. 
(2) Clifford D. Conner, 『Marat. Savant et tribun 마라. 학자와 재판관』, La Fabrique, Paris,  2021. 
(3) Serge Bianchi, 『Danton. Histoire, mythes et légendes 당통. 역사, 신화, 전설』, Ellipses, Paris, 2021. 
(4) Marc Bélissa, Yannick Bosc, 『Le Consulat de Bonaparte. La fabrique de l’État et la société propriétaire 보나파르트 영사관. 국가의 설립과 지주 사회』, La Fabrique, Paris, 2021. 
(5) Marc Bélissa, Yannick Bosc, 『Le Directoire. La République sans la démocratie 집정부. 민주주의가 없는 공화국』, La Fabrique, Pari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