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두지배 겨눈 주먹질, 필리핀 ‘복서 의원’의 야망

2011-11-11     다비드 가르시아

세계권투평의회(WBC) 슈퍼웰터급 타이틀 보유자인 매니 파퀴아오는 ‘빈곤 퇴치’를 외치며 필리핀 정치계에 입문했지만, 그의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란 링 위에서 상대 선수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필리핀 지배권력은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이 권투선수와 연합을 꾀하고 있다.

산과 열대림으로 둘러싸인 필리핀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마을 탱고. 2500명 남짓한 주민이 사는 이곳 바랑가이(1)는 미국 스포츠 언론이 지난 10년 동안의 최고 권투선수(Fighter of the Decade)로 선정한 매니 파퀴아오가 7살부터 17살까지 살던 곳이다. 사랑가니주 탱고 바랑가이장(長)인 에드윈 파칼도는 “파퀴아오의 가족은 빈곤층 중에서도 가장 가난했고, 대나무로 만든 집은 언제 쓸려 내려갈지 몰라 불안했다”고 회상했다. 운동선수 같은 풍채를 띠고 콧수염이 덥수룩한 30대의 파칼도는 노점상 앞에 자리잡고 앉아 죽마고우의 성공을 극찬했다. 8개 체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 보유자이자 매년 4천만 달러의 수익으로 운동선수 중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부유한 ‘팩맨’(파퀴아오의 별명)은 몇 해 전 정계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위대한 챔피언 ‘팩맥’의 정계 입문

지난해 32살의 사랑가니 출신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파퀴아오는 링 위에서보다 정치에 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셰인 모슬리와의 시합 전날 한 인터뷰에서 파퀴아오는 “어릴 때 나는 먹고살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시합은 링 위에서의 결투가 아니라 조국의 빈곤 퇴치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2) 현재 필리핀에서는 국민의 3분의 1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다. 파퀴아오는 권투 글러브를 끼고서도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파칼도는 “파퀴아오는 부자가 된 이후에도 자신이 자란 곳을 잊지 않았다. 탱고로 돌아와 환호하는 주민들에게 100페소와 200페소짜리 지폐를 나누어 주었다”고 말했다.

파퀴아오는 정치에 미숙했지만  필리핀 정치 세계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의 베니토 림 정치학 교수는 “필리핀이 독립한 이후(3) 필리핀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급급했고, 장기적 정치계획이나 국가 발전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파퀴아오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퀴아오는 마치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전문구처럼 빈곤 퇴치 의지만 되풀이할 뿐 그에 대한 세부적 구상은 공개하지 않았다. 무상교육과 공중보건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개혁 예산을 뒷받침할 자금의 출처를 비롯해 개혁안의 자세한 윤곽을 밝히지 못했다.

무상교육·공중보건 개혁 주장

하지만 파퀴아오는 가장 단시간에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방법을 일찍이 파악했다. 2007년  고향인 제너럴산토스의 시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파퀴아오는 자서전에 “나는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진 필리핀 가문의 현지 여성 사업가에게 완패했다”고 기술했다.(4) 림 교수는 “유력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실제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는 지지자를 응집할 능력을 갖춘 현지 정치인사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세현장에 동원된 운동원들에게 일당을 주고 식사와 음료도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림 교수는 “이것이 민주주의가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빈정거렸다. 

당선 위해 과두지배 세력과 손잡아

‘필리핀 민주주의’는 60여 개 유력 가문의 지배를 받고 있다. 미국 기자이자 매니 파퀴아오 평전(5)의 저자인 개리 앤드루 풀은 “필리핀의 정치가문은 권력을 넘겨주기 거부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유지한다”고 분석했다. 파퀴아오는 자신의 이례적인 인기와 막대한 재력으로도 필리핀의 막강한 과두지배체제에 맞서기엔 역부족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 재출마한 파퀴아오는 치옹비안 가문의 로이 치옹비안에 맞서 도밍게즈 가문과 연합했다. 다시 말해 파퀴아오는 사랑가니주 과두지배 세력 중 한 가문과 손잡고 다른 가문과의 경쟁을 선택한 것이다.

주지사 비서실장 핑 이브라힘은 “사랑가니주는 르네 도밍게즈와 매니 파퀴아오가 함께 통치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부자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묻자, 이브라힘은 웃음을 터뜨리며 “모르겠다. 하지만 돈도 없으면서 정치인이 되려는 것은 허무맹랑한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런 면에서 파퀴아오는 운이 좋았다. 필리핀에서 갑부 순위 31위의 알칸타라 도밍게즈 가문은 야망을 실현시킬 만큼의 재력을 갖추고 있다. 도밍게즈 가문은 가문 소유의 제너럴산토스공항 747ha 땅을 정부에 ha당 연 1페소의 이용료만 받고 헐값에 임대해주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랑가니주의 실업률은 65%까지 치솟았다. 

초라한 성적표, 그러나 대권 야망

파퀴아오가 전향했다는 의혹은 그의 주변 인물들을 보면 해소된다. 파퀴아오는 자신이 지지한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집권 당시(2001~2010)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자 2010년 대선 때는 다른 인물인 파퀴아오 빌라와 손을 잡았다. 파퀴아오의 보좌관인 마이클 브렌트 에반겔리오는 “누군가 파퀴아오를 이용하려 해도 파퀴아오는 결코 부자들이 자신을 수단화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끝까지 빈곤 퇴치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출마 야망도 거침없이 밝히는 파퀴아오의 지금까지의 성적은 초라하다. 공적 자금으로 지원한 병원 건축 사업은 사기업의 관리를 받고 있고, 사랑가니주의 학교에 컴퓨터 2천여 대를 지원한 곳은 파퀴아오의 스폰서인 휼렛패커드다. 과연 ‘공·사의 연합’과 파퀴아오의 자선 정신이 필리핀 과두체제를 KO시킬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다.


글. 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언론인)

번역. 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1) 필리핀의 최소 행정단위로서 규모에 따라 지구, 마을 또는 구역을 의미한다.
(2) <AFP>, 2011년 5월 6일.
(3) 필리핀은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했다.
(4) Manny Pacquiao, <Pacman>, Anvil Publishing, 마닐라, 2010.
(5) Gary Andrew Poole, <Pacman: Behind the Scenes with Manny Pacquiao-the Greatest Pound for Pound Fighter in the World>, Da Capo Press, 케임브리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