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와 전쟁 사이의 우크라이나 혼란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러시아의 속셈

2022-03-02     엘렌 리샤르 외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 개시를 선언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공격을 시작해 국제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푸틴은 앞서 우크라이나의 두 분리주의 지역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로써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존성을 침해하고 서구의 대(對) 러시아 제재의 악순환을 가속화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금수 및 금융거래 제한 조치를 강력히 예고해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만일 푸틴이 침공한다면, 5분 내에 자판기 음료 하나 뽑아 마시기도 힘든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2021년 12월 말, 키예프를 방문한 세스 몰턴 민주당 하원의원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러시아는 서방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계속 압력을 행사 중이다.(1) 이에 미국은 전면적인 경제전 위협으로 대응하고 있다. 2월 초, 민주당 의원들은 (불확실한 위협에 대한 대응이기 때문에) 국제관계에서는 이례적인 개념인 예방적 제재가 담긴 법안(2)을 상정했다. 이 법안은 “상황이 격화”될 시 러시아 주요 은행의 달러화 및 국제은행간통신망(SWIFT) 사용을 금지하는 효력을 발생시킨다.

SWIFT는 전 세계 대부분의 은행 간 거래용 금융 통신망이다. 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상품의 대(對)러시아 수출을 금지하고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도 차단할 것이다. 이 모든 조치가 실행되면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지역의 군사적 혼란 초래, 미국 대선 개입, 사이버 공격 등의 이유로 미국이 2014년 이후 러시아에 11차례 부과한 제재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수백 명의 러시아 국민 및 단체 추방, 대(對)이란 제재와 유사한 경제적 봉쇄가 뒤따를 것으로 예측된다.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경제적 압력을 가한 국가는 미국만이 아니다. 국제관계사에서 이런 사례는 넘쳐난다. 1806년, 나폴레옹은 영국을 상대로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남부 연합파에 속한 주를 상대로 해상봉쇄령을 발령했다. 분쟁의 전 단계인 경제적 압력 행사는 대개 분쟁 발발 후에도 유지된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의 경제력을 자각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이런 유형의 대응이 전쟁을 대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 협상에서 윌슨 대통령은 “이처럼 평화롭고, 고요하고, 치명적인 경제적 조치를 선택하면 무력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경제적 압력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는, 그리 끔찍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근대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같은 시기, 국제관계를 교화하기 위한 상임 기구 하나가 창설됐다. 국가 간 분쟁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제재하는 권한을 가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다. 그러나 나치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침략 행위로 연맹의 제재권은 애초부터 유명무실해졌다. 1945년, 이런 제재에 대한 구상은 국제연합(유엔)헌장에서 부활했다. 헌장 제 2조는 국가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수립하고 무력 사용을 금지한다. 평화가 위협받거나 깨졌을 경우 유엔은 특별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분쟁 종식을 위한 제재를 채택할 권한을 부여한다. 

헌장 제 41조는 또한 채택 가능한 제재를 “경제 관계와 철도, 항해, 항공, 우편, 전신, 무선통신 및 이외의 다른 교통·통신 수단을 전부 또는 일부 중단 혹은 외교관계 단절”로 명시한다. 그러나 이 범위가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재의 범위는 경제(무역 또는 금융), 군사(무기 금수), 외교, 문화 및 스포츠 분야까지 확대됐다. 약소국보다 특히 강대국이 주로 사용하는 관행인 제재를 관리하기 위해 유엔이 고심한 흔적이다.

하지만 진영 간 경쟁은 유엔 규정 밖에서 벌어졌다. 1950년, 미국은 다자간수출통제조정위원회(COCOM) 설립을 주도했다. 파리 주재 미국 대사관에 본부를 둔 이 비공식기구는 군사 및 민간분야 제품과 기술의 공산권 수출을 막기 위해 설립됐다. 미국은 쿠바(1962년 이후), 베트남(1975~1994년, 무기 금수는 2016년 해제), 북한(1950년 이후)에도 숨통을 죄는 전략을 사용했다. 아랍 산유국이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을 상대로 석유 수출을 중단한 것도 이 시기다. 유엔 안보리의 다자주의적 제재 채택은 상징적 경우로 국한됐다. 196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정권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1977년 확정), 1966년 남로디지아(현 짐바브웨) 백인 정권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을 제재한 무기 금수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이른바 ‘제재의 10년’이 시작됐다. 유엔 안보리가 이 기간 동안 채택한 제한 규정은 13개 이상이다. 1990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쿠웨이트 합병 당시 대(對)이란 금수조치, 1993년 두 차례 항공기 테러(1988년 로커비와 1989년 니제르)에 연루된 무아마르 카다피 치하의 리비아를 상대로 한 금수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이 조치들은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다. 리비아는 책임을 인정했고(1999년),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했으며(2003), 국제조사에 협력하기로 동의했다. 당시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미국은 안보리를 우회해 제재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1918~1998년, 미국 정부는 115차례에 걸쳐 제재 대상국과의 무역을 제한했다. 이 중 64차례가 1990년대에 벌어졌으며 대부분은 일방적인 조치였다. 1997년, 세계인구의 절반이 미국의 통제 하에 살았다.(3) 1990년 8월 6일 이라크에 부과된 유난히 강력했던 무역, 금융, 군사 금수조치는 전환점이 됐다. 유엔 안보리가 승인한 ‘제1차 걸프전’ 이후 10년간 이어진 이 조치는 이라크 경제를 붕괴시켰다. 제재를 교묘히 피해가며 밀수로 이득을 취한 정권은 더 공고해졌으며 식량과 의약품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이로 인해 50만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1996년, 메들린 올브라이트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 대사는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제재”라고 평가했다. 

유엔 사무차장과 이라크 인도주의 활동 조정관이었던 데니스 할리데이는 이를 “한 사회 전체에 대한 파괴”라고 비난하며 1998년 사임했다.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제재하는 금수조치를 필요악으로 환영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경우처럼 보편적인 금수조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재의 타격을 먼저 입는 것은 표적인 지도자보다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경제 제재가 군대 파견보다 덜 치명적이라는 인식도 깨졌다. 이런 비판은 새로운 범주를 발전시켰다. 소위 ‘표적’ 혹은 ‘지능적’ 제재가 해당한다. 일례로 특정 범주의 제품(석유, 다이아몬드, 목재, 무기)을 겨냥하고 생필품(식품, 의약품)은 제외하는 방식이다. 유엔 안보리는 이제 일반 국가들이 양자관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식처럼 국제적 소요 및 범죄에 책임이 밝혀진 민간단체 및 개인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1998년, 안보리는 시에라리온 군부와 앙골라 완전독립연맹(UNITA)의 지도부뿐만 아니라 그 측근들까지 해외자산을 동결하고 특정국가 입국을 금지했다. 이 같은 개별조치는 처음에는 예외적으로만 적용됐으나, 2001년 9·11 사태 이후 알카에다 수뇌부 추적과 테러자금 조달 퇴치를 위해 일반화됐다. 개별조치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의 합의 도출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국가원수, 장관, 군인, 정보기관 수장, 혹은 경찰, 군벌, 밀수업자를 겨냥한 이 같은 다자적 개별조치가 가장 많이 적용된 대륙은 아프리카다(수단, 케냐,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등). 

법적 테두리는 여전히 모호하다. 재판과 실질적인 이의 제기 가능성 없이 개인에게 제재가 내려진다.(4) 이들의 측근 및 가족도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될 수 있다. 불행히도 이들과 이름이 같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유럽인권재판소와 유럽연합(EU) 사법재판소는 법적 절차 보장의 부재를 꾸준히 지적했다.(5) 미국과 EU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아무 관련 없는 러시아 과두 정치인들을 제재했을 때처럼 자의적인 제재가 판을 친다. 잘 언급되지 않는 또 다른 변화도 제재의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인권침해, 그리고 비민주적으로 간주되는 일부 정권에 대한 논쟁의 부상이다. 1960년대 말 이 같은 우려가 표명된 조치가 전 세계 제재의 20% 미만에 해당했던 반면, 2019년에는 42% 이상으로 증가했다. 무엇보다 세계 평화와 안전 보장이 목표인 안보리가 이와 같이 우려만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1994년 5월 17일, 안보리는 대(對)르완다 무기 금수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르완다의 ‘상황’(‘학살’, ‘인종 간 폭력’, ‘난민’)을 ‘역내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2011년에는 대(對)리비아 무기 금수조치를 결정하기 위해 민간인 탄압 위험을 내세웠다. 리비아의 경우 국제적 군사 개입도 승인했는데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6) 특히 이런 이유를 내세우는 것은 미국과 EU다. 1974년 말, 미국은 소련의 이민정책 자유화를 미국의 차관 허가와 최혜국 대우 조건으로 규정한 잭슨-바닉 수정안을 채택하며 포문을 열었다. “대외정책과 국내정책을 독창적으로 연계시키며 인권과 무역 사이에 (...) 조건부 관계”가 최초로 성립됐다.(7) 

미국은 2012년이 돼서야 ‘마그니츠키법’ 채택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정상화했다. 미 의회는 러시아를 국가차원에서 언급하지 않은 채 인권침해를 저지른 러시아 국민 처벌 가능성을 보장한다는 조건 하에 이 법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임기 중인 2017년에는 ‘글로벌 마그니츠키법’이 채택됐다. 후임 대통령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된 이 법은 제재 범위를 부패 행위까지 포함해 전 세계로 확대했다. 현재 1,623쪽에 달하는 미국의 제재 대상 리스트에는 개인 및 단체 3만 7,000항목이 올라있다.

 

미국을 따라 백마 탄 기사를 자처한 EU

유럽공동외교안보정책(CFSP)을 수립한 마스트리흐트조약(1992)와 리스본조약(2007) 체결 이후 EU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제재를 부과했다. 이처럼 EU는 “인권, 민주주의, 법치 및 굿 거버넌스(능력있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참여로 결합된 새로운 국정운영체제)”(8)를 표방한다. 미국을 모방해 인권을 침해한 개인을 처벌할 새로운 도구인 유럽판 ‘마그니츠키법’도 만들었다. 2021년 3월 22일, EU 이사회는 이 법에 근거해 러시아, 중국, 북한, 리비아, 에리트레아, 수단 국적의 개인 28명 및 단체 4개를 대상으로 제한 조치를 채택했다. EU는 순진하게도 미국을 따라 백마 탄 기사의 역할을 자처한다. 이런 EU의 태도에는 모순이 있다. 서구는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다양한 강도의 제재를 무분별하게 가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부터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했다. 2016년, 이를 규탄하는 안보리 결의안이 최초로 채택됐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재를 피해가고 있다. 

차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EU 내부에서는 대(對)러시아 입장 설정을 둘러싼 논쟁으로 수사학 잔치가 벌어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예방적)제재 리스트에서 노르트스트림2를 제외할 수 없다”라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듯했으며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파트너와 함께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내일의 세계를 건설하길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EU 행정부 수반인 그녀가 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체 파트너 중에는 왕정 산유국(카타르), 매우 권위적인 터키의 우방이자 독재국(아제르바이잔), 군부 집권국(이집트)이 속해 있다.

백마 탄 기사를 자처하려면 흠잡을 곳이 없어야 한다. 일례로, 미국에 쫓겨 영국 교도소에 수감된 내부고발자 줄리언 어산지는 이상적인 정치적 망명 후보자였다. 하지만 EU 회원국 중 기꺼이 그에게 망명을 허가한 나라는 없다. 이민 위기에 직면한 EU 27개 회원국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을 더 이상 준수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EU 이사회 의장국 임기가 시작될 무렵,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EU 내부에서의 공적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9) 18개의 인권관련 국제조약 중 5개만 비준한 미국도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서구가 모든 독재정권을 공평하게 제재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자체적인 제재 체재를 해당 시점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해 적용한다. 인도는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며 2018~2020년 135억 달러에 달하는 일련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미국은 인도에 적성국가 제재법(CAATSA, 2017년 채택)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 법은 러시아 국방 분야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을 처벌하는 법이다. 인도를 반(反)중국 동맹에 가담시키고자 미국은 인도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유럽 기업들에 더욱 엄격했다. 2019년 미국 재무부는 25개의 유럽 기업에 1조 2,88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영국 스탠다드차터드(UK’ Standard Chartered) 은행은 특히 대(對)이란 금수조치 위반으로 6억 5,700만 달러,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딧(UniCredit) 은행도 같은 이유로 6억 1,10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EU의 제재, 허울뿐인 존재를 입증

미국이 흔히 자국의 이익 보호를 위해 활용하는 제재는 EU에서는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 국제적 성격보다 내부적 성격이 더 강한 역할이다. 실제로 제재는 “EU 대외정책이 보유한 유일한 강제수단”이다.(10) 따라서 EU의 제재는 국제무대에서 EU가 단결된 것처럼 보이게 해주고 도덕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긴 조치들을 통해 허울뿐인 존재를 입증하는 상징적 역할이 크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자칭 그의 경쟁자 후안 과이도가 대립한 분쟁에서, 미국 편에 선 EU 회원국은 한목소리로 “민주주의가 기회를 놓쳤다”라고 개탄했다. 

2019년 EU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표적 제재와 무기 금수조치를 확정하기 위해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체포와 박해를 두려워하고 있다”(11)라는 과장된 이유를 내세웠다. 이처럼 EU는 논점선취의 오류(논점을 근거 없이 선점하는 것. 논리학 용어–역주)를 범할 뿐만 아니라 평화와 안보 관련 기본 쟁점에서도 여전히 분열된 모습을 보인다. 발트해 연안국과 폴란드는 지리적, 역사적 이유로 러시아와의 대결을 부추긴다. 반면 이들보다 실용적인 독일은 자국의 천연가스 공급을 더 중시한다. 

 

제재에 반격을 하고 나선 러시아 

제재의 제도화는 때때로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2021년, 2022년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처럼 제제 대상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더 높아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제재를 받는 국가가 반격에 나서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러시아의 행보가 전형적인 예다. 장기적인 제재에 노출될 것을 예상한 러시아는 제재에 적응하고 심지어 제재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는 유럽, 북미, 호주, 노르웨이산 농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이 보호무역주의적 조치의 효과로 국내 농산물 생산이 증가했다. 2020년, 러시아산 농산물은 천연가스를 뛰어넘어 수출액 300억 달러라는 새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로써 생산수단을 공동화했던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는 농산물 순수출국으로 등극했다.(12) 

러시아는 달러화와 미국이 지배하는 금융시스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에 대한 공격을 막고자 국내 총생산의 1/3에 달하는 준비금을 축적했다. 2018년부터 러시아 중앙은행은 신흥 강대국 중 최초로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했고, 이 중 일부를 중국 국채로 대체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중국 국채의 주요 매입국으로 부상했다. 러시아는 서구발 금융 불안정화로부터 자국 은행 시스템을 보호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서구의 금융 통신망인 SWIFT에서 퇴출당한 러시아는 2015년 자체 금융 통제망 ‘SPFS’와 국내 결제용 은행카드인 ‘Mir’를 출시했다. 2021년 기준 러시아 국민 87%가 Mir 카드를 발급받았지만, 사용 비중은 전체 카드 거래의 1/4에 그친다. 러시아 중산층은 해외에서도 사용 가능한 서구의 카드를 여전히 선호하기 때문이다.(13)

 

“제재에 마약처럼 중독돼 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자국을 향한 제재를 ‘국제사회’, 즉 유엔에 강력히 항의한다. 이때 중국은 러시아를 지지한다. 드미트리 폴리안스키 유엔 주재 러시아 대표부 차석은 2022년 2월 6일 안보리에서 벌어진 언쟁에서 “오직 안보리의 제재만이 합법”이며 “전 세계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못 박았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 역시 “일방적인 강제 조치는 (...) 힘의 균형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선언했다. 장쥔 대사는 또한 제재를 부과하는 국가들이 제재에 “마약”처럼 중독돼 있다며 “즉시 중단”을 촉구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국내문제 내정불간섭 원칙(유엔헌장 제 2조)을 내세운다. 이 점에서 중국은 크림반도 합병 인정을 거부하는 일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양국이 제재 원칙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1971년부터 대만을 인정하는 국가와 무역 관계를 제한했다. 러시아도 2015년 러시아 항공기가 시리아 국경에서 터키군에 격추당한 이후 터키를 상대로 전세기 운항을 중단하고, 비자를 부활시켰으며, 과일과 채소 금수조치를 취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은 일방적인 조치를 대놓고 취하기보다 비공식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러시아는 제재 대응책으로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이유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내세웠다. 수도 빌뉴스에 (타이베이 대표부가 아니라) “대만 대표부” 개설을 허가한 리투아니아를 세관 수입국 목록에서 삭제한 중국의 대응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호주를 상대로는 14개 항목의 불만 사항을 제기하며 좀 더 공식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 사이 호주산 섬유, 와인, 석탄은 중국 국경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처럼 러시아와 중국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양국이 부과한 제재와 관련된 사건(채택, 철회, 연장, 사법적 결정)은 2020년 전체 사건의 4%에 불과해, 미국(53%)과 확연한 격차가 있다.(14) 양국의 신중함은 경제적 현실로도 설명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화가 없다. 미국이 자국의 제재 체제를 전 세계에 강요할 수 있는 이유는 달러화 사용 금지로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위협은 러시아와 중국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2015년 90%에 달했던 양국 간 무역 달러화 결제 비율은 2020년 46%로 감소했다. 23개의 러시아 은행은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에 연결돼있다(반면 SPFS 연계 중국 은행은 한 곳뿐이다). 하지만 거래량이 SWIFT의 0.3%에 불과한 CIPS는 하나의 대안일 뿐 SWIFT를 위협하는 경쟁자는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유럽은 무력감에 빠져있는 듯하다. 2018년 미국이 이란과의 핵 합의에서 탈퇴했을 때 EU는 별 대응 없이 이를 수용했다. 브뤼셀에 본사를 둔 SWIFT는 유럽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2차 제재를 우려해 이란 은행을 즉시 차단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대(對)이란 무역의 연속성 보장을 위해 ‘특별 수단’을 마련했다.

하지만 2020년 3월에 겨우 첫 거래에 성공했다. 이마저도 미국 법이 허가하는 의료 장비였다. 이론적으로는 이 메커니즘으로 석유를 수입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미국이 승인하는 예외의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어쨌든 이란산 석유를 구매하겠다는 유럽 기업은 없다. 이란산 석유를 운송할 의향이 있는 몇 안 되는 해운 업체의 화물 보증을 보험사가 거부하기 때문이다.

 

“EU의 강제조치는 외교에 해로워”

제재의 악순환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개인 제재의 낙인찍기적 성격과 서구에 의한 자의적인 제재 부과가 이미 경색된 국제 분위기를 더 악화시키지는 않는가? 제라르 아르노 전 프랑스 대사는 “일방적인 도덕주의에 기반한 갈등 조장 외교”(트위터, 2월 13일)를 규탄했다. 아르노 대사는 어느 정도의 현실주의를 옹호하며 “독재도 정당한 지정학적 관심사를 갖고 있다”(트위터, 2021년 12월 15일)라고 상기시켰다. 미국은 위구르족에게 자행된 범죄를 규탄하기 위해 베이징 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했다. 

그런데 이 결정이 미국이 옹호한다는 대의에 도움이 됐는가?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분쟁이 확산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올림픽 휴전은 우리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모색할 기회”라고 경고했다(트위터, 2022년 1월 28일). 유엔 총회는 1997년 9월 15일 열린 유엔 안보리 발언에서 제재는 다른 조치가 모두 실패했을 때 ‘최후’ 수단임을 상기시켰다.

아일랜드 출신 클레어 달리 유럽의회 의원은 “EU의 일방적인 강제 조치는 외교에 해롭다(...)”라고 평가하며 “다극적 맥락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패권 유지를 위한 무기일 뿐”(15)이라고 덧붙였다. 서구 의회가 이미 러시아에 대한 일련의 제재 재개를 준비 중인 지금, 러시아가 촉발시킨 위기는 공동 안보의 쟁점들을 너무 소홀했을 때의 위험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안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David Teurtrie, ‘Ukraine, pourquoi la crise,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2월.
(2) ‘Defending Ukraine Sovereignty Act of 2022’, 2022년 1월 13일.
(3) David Broder, ‘Give presidents a break on automatic sanctions’, <The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Neuilly-sur-Seine, 1998년 6월 24일. 
(4) ‘Les sanctions ciblées au carrefour des droits international et européen, 국제법과 유럽법의 교차점에 있는 표적 제재’ 좌담회 보고서, Grenoble, 2011년 5월 10일.
(5) 유럽사법재판소(CJCE) 판결 n°C-355/04, Segi, Araitz Zubimendi Izaga & Aritza Galarraga 대(對) EU 이사회, 2007년 2월 17일 ; CJCE 판결 n°C-415/05, Yassin Abdullah Kadi, Al Barakaat International Foundation 대(對) EU 이사회, 2008년 9월 3일. 
(6) ‘Origines et vicissitudes du devoir d’ingérence, 내정간섭 의무의 기원과 변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7) Peretz Pauline, ‘Un tournant humanitaire de la politique étrangère américaine? Carter et l'émigration des Juifs d'Union soviétique, 미국 대외정책의 인도주의적 전환점? 카터와 소련 유태인 이민’, <Revue d’histoire moderne et contemporaine>, Paris, n° 54, vol. 3, 2007.
(8) 가이드라인, EU 이사회  발표문, 2004년 6월 7일.
(9) ‘Recommandations d’Amnesty international à la présidence française du Conseil de l’Union européenne EU 이사회 의장국을 맡은 프랑스에 보내는 국제앰네스티의 권고문’, 2 2022년 2월 2일.
(10) Ramona Bloj, ‘Les sanctions, instrument privilégié de la politique étrangère européenne 제재, 유럽 대외정책의 선호 수단’, <Questions d’Europe> n° 598, 로베르 슈만 재단, Strasbourg, 2021년 3월 21일.
(11) 베네수엘라 상황에 따른 제한조치에 대한 유럽공동외교안보정책(CFSP) 결정 2017/2074을 수정하는 CFSP의 결정, 2021/276, EU 이사회, 2021년 2월 22일 
(12),(13) David Teurtrie, 『Russie : le retour de la puissance, 러시아 : 강대국의 귀환』, Armand Colin, Paris, 2022. 
(14) Ivan Timofeev, ‘Sanctions Against Russia. A Look into 2021’, Russian International Affairs Council, 모스크바, 보고서 n°65, 2021.
(15) <L’Humanité>, Paris, 2021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