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제약회사의 얼룩진 연대기
백신개발에서 밀려난 프랑스 사노피의 추락
코로나 팬데믹 사태 2년, 전 세계의 코로나 백신 접종 횟수는 100억 건을 넘어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현재까지 승인한 백신은 총 10종으로, 해당 백신을 개발한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다국적 제약회사 사노피(Sanofi)는 상당한 규모의 정부 지원을 받고도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노피 직원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나를 포함해, 프랑스 국민 모두가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보건 관련 연구혁신부문의 재정규모가 30년 전을 기점으로 계속 감소해왔고, 결국 자국산 백신 생산이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8일, 알자스 지역을 찾은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의 발언이다. 카스텍스 총리는 “더 이상은 어렵다. 다시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라며, “앞으로 보건혁신기구를 신설하겠다. 의약품 생산 시설도 다시 국내로 이전해야 한다. 이것은 제약 주권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사노피 측이나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이 씁쓸한 현실은 사노피 직원들에게 닥친 상황과도 맥을 함께한다.
사노피의 직원규모는 프랑스 국내만 따져도 약 2만 5,000명, 전 세계 글로벌 지사들을 합치면 총 10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직원들이 끊임없는 구조조정, 전 영역에 걸친 아웃소싱 확대, 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인사배치 등으로 의욕을 잃은 상태다. 특히 연구개발 관련 부서 직원들은 회사가 각 개인의 전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내리는 비정상적인 결정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소아백신 및 독감백신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사노피는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모았고, 보건위기에 처한 여러 국가들의 지원을 우선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었다. 특히 미국 보건당국과의 협력은 2020년 2월 18일 시작됐는데, 약 3개월 후인 5월 13일에는 전년도 9월에 취임한 사노피의 폴 허드슨 CEO가 백신 개발 완료시 생산량을 미국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영국 출신의 허드슨 CEO는 미국 정부가 이번 백신 연구에 투자를 감행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누구나 자유롭게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타협 불가능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프랑스는 사노피 본사의 소재지이며, 프랑스 국내 기관투자자가 소유한 지분도 15%에 달한다. 이튿날 허드슨 CEO는 미개발된 백신을 생산하기까지는 “리스크를 분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리스크 관련 보상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었다.
그리고 2020년 여름, 사노피는 영국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손을 잡고 미국, 영국, 유럽연합과 차례로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다. 특히 유럽연합과의 계약에서는, 3억 회분의 백신을 제공하는 대신 사노피의 유럽 내 연구·생산 능력 강화를 위한 유럽재정 지원이 조건으로 제시돼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에 개발도상국을 위한 백신 저가공급 및 특허공유 등이 조건으로 붙지는 않는다. 당시 사노피는 두 종류의 백신 개발을 계획 중이었다. 미국, 유럽연합과의 계약은 두 종류 중 곤충세포에서 생산하는 재조합 단백질 기반 백신(바이러스 단백질 조각을 사용하는 방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GSK는 면역증강제, 즉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의 면역반응을 강화하는 보조첨가물질 공급을 담당한다.
해당 백신은 본래 2020년 2분기에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제3상 임상시험을 시작해 그 결과가 성공적일 경우 2021년 초부터 연간 10억 회분을 목표로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관련 부서 소속의 한 직원은 “무슨 수로 그렇게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반 백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사노피는 2019년 항암 면역치료제 개발을 위해 8,000만 유로 상당의 지분을 투자한 적 있는 독일의 바이오엔텍(BioNTech)과 이번 백신 개발에서도 협력하기를 원했으나, 바이오엔텍은 화이자(Pfizer)와 손을 잡았다. 결국 사노피는 파트너십의 규모를 줄여 트랜스레이트바이오(Translate Bio)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양사는 2020년 말을 목표로 접종량을 결정해줄 제1상 임상시험을 개시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중단되고, 혜택은 계속되고
사노피 그룹이 20여 년 전부터 변화를 거듭하며 ‘사노피 파스퇴르’(사노피 그룹의 백신사업부)에 나타난 괄목할만한 특징 중 하나는, 감염병 전반에 대한 백신개발에는 더 이상 주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이름을 쓰는 프랑스의 또 다른 연구기관 ‘파스퇴르 연구소’가 백신의 보편화를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다. 사노피 파스퇴르는 현재 수익성이 높은 분야의 백신만 연구 중이며, 아예 자체적인 연구를 포기하고 타사에서 이미 개발을 진행 중인 백신 제품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한국 SK바이오사이언스와의 폐렴구균 백신 공동개발도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회사 내부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전혀 다른 부서로 재배치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심혈관질환 전문 연구진이 해고당하는 대신 종양치료제의 이상반응을 기록하는 업무에 배치되는 식이다.
실제로 사노피는 약 15년 전부터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 금융자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일으킨 것이다. 사노피에서는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총 3,565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그 중 연구직 수가 무려 2,814개다. 그럼에도 회사는 2010년 이후로 발레리 페크레스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이 마련한 정책 덕분에 의약정책투명성연구소(OTMEDS)로부터 매년 1억 5,000만 유로 상당의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혜택을 꾸준히 받고 있다.
게다가, 사노피 측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전략 컨설팅에 따라 코로나 팬데믹의 도래와 함께 또 한 번의 고용보호계획(PSE, 프랑스에서는 50인 이상 기업이 대규모 해고를 하려면 반드시 고용보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역주)을 준비 중이다. 연구개발분야 일자리 수백 개가 또 다시 사라질 운명인 것이다. 또한 컨설턴트들은 고수익성 영역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 제품, 현장, 직무들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사노피는 이전 구조조정에서 감염성 질환 치료제(항생제, 항바이러스제, 항기생충제 등)만 담당하는 지사를 분리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한 자사 직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어 컨설턴트가 작성한 여러 수치들과 비교표를 내세워 인력감축 및 아웃소싱을 정당화하고 있다.
초보자 수준의 실수, 사라진 자부심
반복적인 대규모 해고는 숙련된 능력을 갖춘 직원들을 계속해서 ‘자원봉사’직으로 내몰고 있으며, 그렇게 생겨난 공석을 채우거나 업무능력을 제대로 인계하는 사례 역시 전무하다. 특히 2003년 연구개발센터 폐쇄, 2013년 로맹빌 생산공장 폐쇄 당시에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었다. 현재도 2020~2021년 사이 천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2022년 말까지 364개가 더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직원들과 노조 측은 사측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으며, 전 영역을 아웃소싱하면서 적응시간도, 관리수단도 갖추지 않았다면서 비난하고 있다.
한편 2020년 말에 접어들면서 화이자와 모더나(Moderna)는 각각 자사에서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반면, 사노피와 GSK는 2020년 12월 11일 실망스러운 임상결과를 내놓았다. 제2상 임상시험의 마지막 단계에서 충분한 면역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접종자가 고령일 경우에는 면역반응은 더욱 미미했다. 올리비에 보질로 사노피 프랑스법인장은 “시간 단축을 위해 자사에서 시약을 직접 생산하는 대신 타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시약을 매입해 사용해야 했는데, 그로 인해 주사기에 담긴 항원량이 정밀하게 측정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세균학 전문가인 마리-폴 키니 박사는 이에 대해 “초보자 수준의 실수”라고 일침을 가했다. 사노피 노조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노동총연맹(CGT) 소속 교섭조정자인 장루이 페랑은 “백신의 항원농도가 낮았다. 즉, 항원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기술적인 실수나 표적 설정 단계에서 실수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숙련된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나. 항원량을 잘못 설정하다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규탄했다. 프랑스관리직총동맹(CFE-CGC)의 마튜 부티에 대표 역시 “항원 용량을 정확하게 통제하지 못한 것은 초보자 수준의 실수다. 아예 통제 단계를 건너뛴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일로, 대다수의 직원들은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한 직원은 “이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는데, 이제는 사노피 직원이라고 말하기 부끄럽다”라고 털어놓았다. 노조 측에서 해명을 요구했으나, 사노피 경영진은 변명만 반복하고 있다. 뒤이어 2021년 여름, 사노피는 트랜스레이트바이오(2021년 8월 사노피 가 27억 유로에 인수한 기업)와 공동으로 뛰어든 mRNA 기반 백신에 대한 제1·2상 임상시험(소규모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함)에서 긍정적인 중간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2차 접종 이후 2주 뒤 참가자의 91~100%에서 중화항체양전, 즉 항체 생성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부작용은 전혀 관찰되지 않았고, 내약성 프로필 역시 화이자, 바이오엔텍, 모더나 등 동일 타입의 다른 백신들과 유사했다. 보통 이 단계에 이르면 그 다음으로는 제3상 임상시험에 돌입해 보다 많은 참가자를 대상으로도 유효성이 있는지를 증명하고, 이 뒤에는 상용화 승인을 받는다.
그러나 2021년 9월 28일, 이들은 돌연 해당 백신의 개발 중단을 발표했다. 토마 트리옹프 사노피 글로벌 대표는 “mRNA 기반 코로나 백신을 더 개발하는 것은 필요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그보다는 다음 팬데믹 및 새로운 감염병을 대비해 프랑스와 유럽을 위한 mRNA 백신 무기고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하면서 “공중보건상 이제 새로운 mRNA 기반 코로나 백신은 필요하지 않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런 언급은 ‘공중보건’의 정의에서 다른 국가들을 배제하는 등 부유국, 즉 국민 대다수가 백신을 접종한 국가들이 지닌 편협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꼴이 됐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런 결정이 내려진 진짜 이유에 대해 의심의 목소리가 높다. ‘지불 능력이 있는’ 국가들의 백신 시장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스러운 지점이다.
한편 사노피가 주력으로 밀고 있는 재조합 단백질 기반 백신 개발은 계속해서 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는 임상시험을 위한 자재 생산 단계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한 탓이다. 사실 회사 내부에 임상시험 수행을 전문으로 담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과정 역시 아웃소싱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사노피 측은 해당 백신이 초기 접종 백신보다는, 임상시험이 비교적 수월한 추가 접종 백신 역할을 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회사 내부의 불만은 계속 커지고 있다. 구조조정을 비롯한 불합리한 회사 방침들에 억눌려 있던 직원들은 내부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회사가 취한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위험을 불러왔다. 지난 1월 중순, 허드슨 CEO는 일부 직원들의 비판은 비방에 불과하다며,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위협에 가까운 경고를 했다. “당사 직원 중 1/3은 회사의 도전을 지지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듯하다. 반면, 또 다른 1/3의 직원은 회사의 발전을 전혀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현재 당사는 이들을 모두 데리고 있을 수 없다. 이들은 차례로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카스텍스 총리는 2월 중순 “재전진이 필요한 시점임을 고려해 사노피에 대한 대규모 재투자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과연 그것이 제대로 된 진단일까? 자본화의 논리, 주주들의 만족만을 중시하는 논리는 우수한 직원들의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제 사노피 측이 제대로 해명할 차례다. 자사 직원들은 물론, 프랑스를 비롯해 각종 지원을 약속한 여러 국가들 앞에서 말이다.
글·마르고 뒤퐁 Margot Dupont
익명, 사노피 임원
번역·김보희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