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전례 없는 평화적 동맹
인도 케랄라 주, ‘아시아의 스칸디나비아’
힌두교 근본주의자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지휘 아래, 이슬람교도들은 색출돼 공격당하고 종교 간 폭력이 인도 전체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인도 케랄라 주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니캅을 착용한 여성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케랄라는 공산당 집권 지역이다. 공산당과 이슬람 원칙주의자들이 동맹이라도 맺은 것일까?
니캅을 쓴 세 여인이, 버스정류장의 거대한 체 게바라 포스터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을 감고, 손도 장갑으로 가린 채 두 눈동자만 드러낸 모습이다. 망치와 낫이 새겨진 서른 개의 붉은 공산당기가 버스정류장 부스에서 그들 머리 위로 나부낀다.
여기는 어디인가? 사우디아라비아? 쿠바섬? 둘 다 아니다. 여기는 인도 남부의 케랄라다. “눈만 드러내는 니캅이나 얼굴만 드러내는 퍼다를 착용한 여성들이 15~20년 전부터 보였습니다.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케랄라 출신의 젊은 사회학자인 엠에스 비자크가 설명했다. 그는 케랄라 지역 이슬람교인들의 정체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케랄라의 중심지인 티루바난타푸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삭발을 하고, 헐렁한 초록색 튜닉에 가죽샌들 차림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에는 이슬람교도들이 화려한 색상의 사리를 입거나 중간 길이의 튜닉과 헐렁한 바지, 레깅스 차림의 츄리다르를 입고 터텀이라 불리는 긴 유색 천으로 머리를 덮곤 했습니다. 사리를 입은 여성들은 옷자락 끝으로 머리카락을 대충 가리곤 했지요.”
‘빈곤과의 전쟁’을 벌이는 공산당
케랄라의 주민은 약 3,300만 명, 이슬람교도 비율(27%)은 인도 전역 평균(14%)의 2배에 달한다. 대부분이 수니파인 이들 이슬람교도들은 북쪽 말라바르 지역의 상당수 도시에서 주민들의 과반수를 차지한다. 주민의 18%를 차지하는 기독교인 또한 인도의 다른 지역들(2%)보다 많다. 16세기 무굴 제국의 침입으로 개종한 인도 북부지역과는 달리, 케랄라의 이슬람교도들은 페르시아만의 아랍 상인들이 말라바르 해안에 와서 향신료를 구입했던 선지자 모하메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려한 색상의 의복이 일상화된 국가에서 검은색 옷차림의 여성들을 보는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게다가 케랄라는 인도의 28개 주 중 유일하게 공산당이 집권하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도로, 교차로, 번화가 등 어디에서나 공산당의 붉은 깃발이 나부낀다. 수백만 개의 깃발, 과거 공산당 집권자들의 흉상, 발리우드 영화 포스터 풍의 신임 공산당 지도부 포스터들, 원형 교차로 중심에 세워진 붉은 금속 망치와 낫 조각품들, 그리고 구소련 시절 러시아만큼 많은 마르크스-엥겔스-레닌 트리오 초상화들! 먼 곳을 응시하는 체 게바라를 찍은 알베르토 코르다의 유명한 사진까지.
1957년, 상당수의 힌두교도 농민들 덕분에 선거에서 당선된 공산당은 민주적으로 정권을 잡은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농민들은 계속 공산당을 지지했다. 공산당은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봉건제도를 무너뜨렸다. 대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해, 상당수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준 것에 대해, 농민들은 지금까지도 고마워한다. 그때부터 케랄라 주정부는 인도공산당(CPI-M, 마르크시스트)이 이끈 연합과 중도좌파인 인도국민회의가 이끈 다른 연합이 시계처럼 정확하게 교대로 정권을 잡았다. 이후 2021년 4월 선거에서 CPI-M이 유일하게 연속 재임에 성공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속한 인도인민당(BJP)으로 구현된 극우 힌두교도들이 폭넓게 장악한 인도에서, 케랄라는 힌두교 운동의 흐름과 반이슬람주의에 저항하는 마지막 보루다.(1)
케랄라 주정부는 거의 무료로 식량을 배급받을 수 있는 카드를 배포하고 교육과 건강 영역에서 국가 평균(일당 700루피/8유로)의 2배에 달하는 최저임금을 구축하며, ‘빈곤과의 전쟁’에 몰두하는 공산주의 정책을 시행했다. 오늘날 케랄라주는 문맹퇴치(96.7%, 국가평균 77.7%), 평균수명(77.3세, 국가평균 70.8세) 등에서 인도 내 최고의 결과를 거뒀다.
“우리는 아시아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입니다.” 티루바난타푸람의 발전연구센터(CDS) 소속 사회학자인 프라비나 코도트가 웃으면서 말했다. “공산당은 지방자치단체인 판차야트 제도 역시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판차야트는 주 발전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마을회의입니다.” 티루바난타푸람에서 만난 지리학자 스리쿠마 차토파디야가 덧붙였다.
공산당과 경쟁이라도 하듯, 20여 년 전부터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케랄라 북부지방에서 두드러진다. 이슬람 재단에 속한 사립학교들도 급성장했다. 비종교 학문과 종교 학문 모두를 가르치는 상당수의 이슬람교 대학에서 여학생들은 니캅을, 남학생들은 카미(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튜닉)와 흰 스컬캡을 착용해야 했다.
걸프 지역에서 번 돈으로 사는 사람들
이런 변화는 20여 년 전에 시작됐으며, 특히 10년 전부터는 신속히 진행됐다. 이슬람교도들, 비이슬람교도들 모두 변화의 원인을 ‘중동 걸프 지역의 영향’에서 찾았다. 아라비아반도 국가들(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로 일하러 떠난 케랄라 주민들은 근본주의 이슬람교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들로 하여금 헐렁한 검은 천으로 온 몸을 철저하게 가리도록 했을 것이다.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사립학교는 ‘중동 걸프 지역에서 온 돈’으로 급증했을 것이다. 걸프 지역 국가들의 몇몇 이슬람교 지도자들 혹은 이슬람 재단들이 이슬람교의 정통교리, 근본주의, 그리고 와하브교의 사고방식을 이행하도록 학교설립을 지원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50여 년간 케랄라 사회는 걸프 지역 국가로 상당수가 이주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1960년대 말, 아라비아반도 지하의 석유발견 이후, 케랄라 주민들은 아랍의 신생 부국들의 인력 요청에 최초로 응답했습니다.” 이주 현상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아킬 찬가일이 설명했다. 50년 후, 그 영향은 막대해졌다. 걸프 지역 국가에서 일한 적이 있는 구성원이 1명도 없는 가구는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인도 인구의 3% 미만에 불과한 케랄라 주민들은 걸프 지역에서 인도출신 노동자의 50%를 차지했다. 그들은 대부분 아랍 에미리트와 사우디아리비아로 갔다. 티루바난타푸람 국제이주발전연구소(IIMD) 소장인 이루다야 라얀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이 남성이고 평균 8년에 이르는 대대적인 이주에 따른 소득이 매년 케랄라 국내총생산(GNP)의 20%를 차지했다. 덕분에 이슬람교인들 주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힌두교도들과 기독교도들 또한 이주 현상에 동반했다. 케랄라 전역의 부유한 주택의 놀라운 증가가 이를 보여준다. 아킬 찬가일은 이렇게 말했다. “4가구 중 1가구는 걸프 지역에서 번 돈으로 산다.”
이슬람교도 전체를 강성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BJP가 끊임없이 반복하는 ‘종교적 세뇌’라는 설명은 사실상 이주민들의 실제 삶의 여건들을 철저하게 살펴본다면 크게 설득력이 없다. 그들은 걸프 지역 주민들과 거의 접촉이 없이 살아간다. 특정 구역에서 그들끼리 살며, 걸프 지역 주민들이 드나드는 이슬람 사원에서 금요일에 진행되는 아랍어 설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두바이 소나푸르의 대규모 노동자 숙소에는 다양한 국적(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이주노동자들이 수천 명 있었다. 아랍 에미리트의 보안당국의 주의 깊은 감시 하에 파키스탄 출신의 이맘(이슬람교 지도자)이 우르두어로 설교했다. 인도의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우르두어를 할 수 있지만, 케랄라 지역민들은 지역 언어인 말라얄랸어만 할 줄 안다.
“걸프 지역의 이슬람을 발견하면서 이주민들은 진정한 이슬람교를 발견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설교나 교리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엄격한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된 것은 눈으로 본 것 때문이었습니다.”라고 엠에스 비자크가 말했다. ‘중동 걸프 지역에서 온 돈’은 “주로 케랄라 이주노동자들이 모금한 돈입니다.” 프라비나 코도트가 정정했다. 사립학교와 이슬람 사원의 증가는 그곳에서 한 밑천 잡은 이주노동자들의 부의 산물이다. “건축을 위해 자선사업에 돈을 내는 것은 이슬람 이주노동자들의 특성입니다.” 그녀는 강조했다. 그러나 액수는 크지 않다. 더욱이 2008년 파키스탄에서 훈련받은 이슬람 과격단체가 자행한 뭄바이 테러(188명 사망) 이후, 외국인 투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크게 강화됐다.
걸프 지역 국가들의 소프트파워
케랄라의 식당가와 상가에 ‘아랍 요리’, ‘두바이 잡화점’, ‘쿠웨이트 안경점’과 같은 간판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데서 보이듯이, 걸프 지역과 그곳 풍습에 매혹되는 것은 걸프 지역 국가들의 소프트파워에서 유래한다. 지난 100년 이래로 최악의 홍수가 났던 2018년, 아랍 에미리트는 주택 재건축을 위해 케랄라 주민들에게 70억 루피(8,200만 유로)를 지원했다.(2)
이슬람교도들이 새롭게 자신들을 드러내는 것은 비록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일종의 극단화를 의미하는 다른 현상들을 동반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마그렙(아프리카 서북부 아랍국들)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매우 뚜렷하게 존재하는 신 청교도주의의 징후들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람/할랄(부정한 것/적법한 것), 음주, 매일 시행하는 기도 횟수, ‘모범적 행동(천국에 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행동들)’의 개수 세기 등에 대한 집착도 전혀 없다. “유일하게 나타난 현상은 30년 동안 5배로 증가한 메카 성지순례의 엄청난 증가입니다.” 케랄라 대학교 서아시아 학과의 역사학 객원교수인 아쉬라프 카다칼이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 이슬람교도들의 재정 증가에서 비롯됐습니다.”
카다갈에 따르면 이슬람이건 기독교건 간에 (힌두교는 교육영역에 거의 투자하지 않음) 종교재단 사립학교는 “초중고의 60%, 대학교의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정부 교육위원회에 의해 정해져 있고, 이를 따르도록 돼있다. 모든 졸업시험은 국립대학교가 진행하고, 학위는 정부가 수여한다.” 이슬람 사립학교에서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이고, 신이 창조한 게 아니라고 가르치는가? “물론입니다!” 코지코드의 캘리컷 대학교 사회학과 학과장인 엔피 하피즈 모하마드 교수가 대답했다. “다윈 진화론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이슬람 사립학교 재단은 학교에서 그것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학생들은 창조론을 학교의 종교수업 시간에서 배운다.
어떤 이들은 사립학교와 사립 대학교의 종교적 분위기를 높이 평가하지만, 부모들이 종교 때문에 자녀들이 다닐 학교를 선택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주된 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고국에 정착하면, 이주노동자들은 해외에서 번 돈을 자녀교육에 투자하기를 원한다. 새로운 학생들이 사립학교로 몰려든 것은 공립학교들이 그들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립교육 시장에 이윤과 사회적 명성을 추구하는 이슬람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의 투자가 쏟아졌다. “지난 20년간 설립된 학교들의 80%가 종교재단 소속입니다.” 카다칼이 강조했다. “게다가 사립학교는 공립학교보다 우수하다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엔피 하피즈 모하마드 교수가 말을 이었다. 소문에 근거한 이미지다.
케랄라에서 유명한 이슬람 지식인인 엔피 하피즈 모하마드 교수는 비록 즉각적으로 감지하기는 어렵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염려한다. “새로운 세대들이 동일한 종교공동체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그들은 다른 종교를 직면하는 지적 경험을 할 수 없고, 이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상당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슬람 정체성과 테러의 연관성은?
우리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또 다른 징후에 대해 걱정했다. 모든 종교를 막론해서 해마다 수만 명이 참여하는 케랄라의 대형 수확 축제인 ‘오남’에 이슬람교도들의 참여가 저조했다. “힌두교 축제이니 이슬람 신도들에게 참여하지 말라는 몇몇 설교들이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전 UN 부사무총장이자 케랄라 지역구 국회의원인 샤쉬 타루어가 강조했다. “하지만 집권 BJP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정체성 강화와 테러 행위 사이에 관련성을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는 덧붙여 설명했다.
케랄라에는 이슬람 국가(IS)와 교류한 주민 수가 많은 편이지만, 그 수는 50명 정도에 불과하다.(3) “인도는 인구 대비 테러에 가장 적게 노출된 국가입니다.” 뉴델리 싱크탱크인 옵저버 연구재단(Observer Research Foundation) 연구원인 카비르 타네자가 말했다. “그리고 95%의 경우, 극단화는 인터넷을 통해 이뤄집니다.” 모든 이슬람 사원의 종교 지도자들은 지하디스트 범죄행위를 고발하는 케랄라 이슬람교 조직들에 소속돼 있다.
그들은 또한 인도사회민주당(SDPI)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것을 우려한다. 이들은 BJP의 반이슬람 공격에 대항하는 자기방어 행동을 권장한다. 심지어 그들은 2021년 12월 사건 등 몇몇 지역 지도자들의 살인사건에 연루돼 있다. “비록 SDPI가 판차야트(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는 다소간의 승리를 거뒀지만, 케랄라 주의회에서는 매우 미미한 성적(2021년 선거에서 0.4%)으로 거의 존재감이 없습니다.” 케랄라 이슬람에 대한 사회학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다얄 펠리가 상황을 전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니캅과 퍼다의 유행을 어떻게 생각할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종교나 옷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케랄라 북쪽 지역의 CPI-M 카누(Kannur) 분과 의장인 엠브이 자야라자가 유일하게 언급한 말이다. 이 분과는 공산당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분과들 중 하나다. 이슬람 사원과 이슬람 사립학교의 급격한 확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공산당 내의 페미니즘 조직인 아드와이(Adwai)의 활동가인 브이브이 프리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가 돕고 있는 가난한 마을의 여성들에게는 퍼다를 입느냐 입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고등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만약 교육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 니캅을 입어야만 한다면,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로이터 재단에 따르면 인도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들 중 하나인데, 니캅이 여성들을 보호하는 갑옷 역할을 한다고 몇몇은 강조했다.(4)
CPI-M에 있어서 이슬람교도들이 너무 종교적이라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구의 99%가 종교인인 인도에서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비록 그들이 힌두교도나 기독교도에 비해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지만, 케랄라의 이슬람교도들은 인도의 다른 지역보다는 나은 상황에 있습니다.” 아쉬라프 카다칼이 지적했다. “그들에게는 능력 있는 중산층과 다수의 대중매체가 있습니다. 가장 크게 성장한 기업의 운영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특히 영향력 있는 정당인 무슬림연맹(Indian Union Muslim League)은 국민의회당과 동맹을 맺고 있다. BJP가 거의 존재감이 없는 케랄라에서 - 12%의 지지층이 있으나 너무 분산돼 있고, 힌두교 민족주의자들인 BJP는 케랄라 의회에서 보유하고 있던 1석 마저도 2021년에 잃어버렸다 - 모든 것들은 공산당과 국민의회당이 결정한다.
“이들 두 정당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몇몇 이슬람교도들이 한 쪽을 우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역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모국 (Mathrubhunmi)>의 정치부 기자 비자얀 시케이가 설명했다. PCI-M의 중진이자 전 경제부 장관인 토마스 이삭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이슬람교도들의 29%가 공산당에 투표합니다. 그러나 지난 선거(2021년 4월)에서 이 수치는 39%까지 상승했고, 무슬림 연맹은 분노했습니다.” PCI(M)이 1957년 이후 처음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이슬람교도들 덕분입니다. 또한 코로나 사태 속 보건위기를 잘 관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신속한 이동제한 조치, 식료품의 무료 배급, 효과적인 병원 시스템 등).
“종교는 무산계급의 진통제”
철저한 공산주의자인 케랄라 주지사 피나라이 비자얀은 새로운 교육기관 설립식이나 종교회합의 개회사가 있을 때마다 대형 이슬람 재단들의 모든 초대에 응했다. 인도 헌법에서 정교분리원칙에 해당하는 세속주의는 국가 차원에서 종교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공기관들 같은 행정 영역에서 모든 종교적 실천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케랄라 공산당은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맞습니다. 칼 마르크스가 한 말이지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공산당 사무실에서 엠브이 자야라자가 응수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아편은 독약이 아니라 무산계급의 고통을 달래주는 진통제였습니다.” 그는 말라얄란어로 유명한 어구의 앞 문장을 암송했다. “종교는 매정한 세상의 영혼인 억압받는 피조물의 탄식이다.” 인도 사회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PCI-M에서도 무신론자는 드물었다. 몇몇 고위층들만 무신론자들이다.
그러면, 이슬람교도가 공산당에 투표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요!” 이 질문이 몰상식하다는 듯, 에이피 쿤하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퇴직한 노동조합원인 그는 우리에게 코지코드의 웅장한 16세기 이슬람 사원을 안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서 정치는 종교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일 5회 기도하고, 라마단 동안에 금식하고, 모든 이슬람 의식을 따릅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남자들은 이슬람 사원에 가고 여자들은 퍼다를 입고 외출한다. 이런 이슬람교도들의 어촌 마을, 포나니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청년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여유롭지 못합니다. 어떤 날은 500루피(약 6유로)를, 또 어떤 날은 1,000루피(약 12유로)를 법니다.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날도 많습니다. 수입은 물고기가 얼마나 잡히느냐에 달려있으니까요. 여기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산당에 투표합니다. 당신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대출이 필요하다면, 공산당이 도와줄 겁니다.”
지난 12월, 카누에서 열린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산당의 대형 집회에서 몸을 검은 천으로 감싼 여성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연설에 박수치는 모습은 그리 놀랄 풍경이 아니다. 사실 공산당의 주요 토대는 이슬람교도건 힌두교도건 간에 케랄라의 가장 빈곤한 계층이다. “매우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지지를 받는 무슬림연맹이 공산당이 종교에 반대한다는 사상을 전파하지 않는다면, CPI(M)은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젊은 연구자 다얄 펠리가 덧붙였다.
“공산당을 신뢰해요. 그들은 세속적이니까요”
최근 방글라데시로 불법 이민을 갔다고 추정되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해 인도 국적을 박탈하기 위해서 아삼에서 인구조사를 시행했을 때, 케랄라 주지사가 모디 총리의 정부에 대항해서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하자 공산당에 새로운 지지자들이 생겼다.(5) “저는 공산당을 신뢰합니다. 그들은 정말 세속적입니다.” 코지코드의 한 젊은 건축가가 단언했다. 이슬람교도들을 반대하는 BJP의 혐오정서를 고려했을 때, ‘세속적’이라는 단어는 이슬람교도들의 수호자라는 의미를 가지게 됐다. “반면, 델리의 의회 선거에서, 저는 국민의회당에 투표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적 차원에서 봤을 때 공산당은 BJP에 대항할 만한 역량이 없습니다.” 인도 의회 하원인 로크사바에서 PCI-M과 연맹 정당들은 케랄라에 할당된 20석 중에서 3석만을 차지한다. 반면 국민의회당은 15석, 무슬림연맹은 2석을 차지한다.
하나의 의문이 남아있다. 케랄라의 이슬람 가시화의 증가와 공산당의 지침 사이에, 물론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어떤 관련성이 있는 건 아닐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BJP가 인도 중앙정부에 집권하면서(2014년) 우리는 마치 2차 시민인 것처럼 대우받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인도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위협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코지코드의 퇴직한 노동조합원이 말했다. 작가인 샤히나 라픽(『가축』, Mathrubhumi Books, 2020)은 이런 두려움이 “더 멀리, 바브리 마스지드의 파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본다. 바브리 마스지드는 BJP의 지지자들인 힌두교 무리들에 의해 1992년 파손된 인도 북쪽의 매우 오래된 이슬람 사원이다.(6)
“여타 인도 다른 지역들에서와 같이 좀 더 숨죽이고 있는 대신에, 케랄라의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을 더 드러내놓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산당과 국민의회당 사이에서 진정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쉬라프 카다칼이 설명했다. “걸프 지역에서 가져온 돈이 있는 만큼, 그들은 이슬람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재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뉴델리의 ‘개발사회 연구센터’에서 정치학 연구자인 힐랄 아메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케랄라는 인도 내 문맹 퇴치율이 가장 높은 주입니다. 무엇보다 70여 년 전부터 공산당이 시행한 정책 덕분입니다. 이슬람교인들이 종교를 숨기지 않는 새로운 경향은 교육받은 젊은 케랄라 주민들이 인터넷과 영어 실력으로 전 세계 이슬람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이슬람 정보들이 이집트와 걸프 지역의 전도사들 덕분에 인터넷에 퍼져있다.
이슬람교도들의 커지는 존재감을 이슬람 극단화로 해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공동체의 조화’를 케랄라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보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이를 염려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다양한 종교 단체들 사이의 평화를 의미하고 모든 이들이 강조하는 ‘공동체의 조화’는 케랄라를 다른 주들과 구별시킨다. “케랄라에서는 길에서 이슬람교인들이 집단린치를 당하는 것과 같은 폭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엔피 하피즈 모하마드가 말했다. “하지만 세속주의에 반대하는 BJP의 공격에 세속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두 권의 책이 이미 프랑스어로 번역된 소설가 아니스 살림에 따르면, 문제는 이미 시작됐다.(7) “20년 전부터 저는 모든 사람들이 한층 더 종교적이 돼가는 것을 슬프게 확인했습니다. 힌두교도들은 더 힌두교도처럼, 이슬람교도들은 더 이슬람교도처럼, 그리고 기독교도들은 더 기독교도처럼 돼갔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것이 문제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들만의 종교공동체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될 겁니다. 나중에는 이로 인해 우리 공동체의 조화가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글·피에르 돔 Pierre Daum
기자, 특파원
번역·권정아
번역위원
(1) Naïké Desquesnes, ‘Lynchés au nom de la vache sacrée 신성불가침이라는 명목의 집단린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2월호.
(2) ‘UAE offers ₹700 crore in aid to flood-ravaged Kerala’, <The Hindou>, Chennai, 2018년 8월 21일.
(3) Kabir Taneja, Mohammed Sinan Siyech, ‘The Islamic State in India’s Kerala: A Primer’, <ORF Occasional Paper> 제 216호, Observer Research Foundation, Delhi, 2019년 10월.
(4) ‘Factbox: Which are the world's 10 most dangerous countries for women?’, Thomson Reuters Foundation, London, 2018년 6월 26일.
(5) ‘En Inde, la chasse aux ‘infiltrés’" ‘침입자’ 몰이 나선 인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3월호, 한국어판 2020년 8월호(한국어판 제목: ‘반이슬람 정책’ 강화하는 나렌드라 모디 정부).
(6) Wendy Kristianasen, ‘Plongée au cœur de l’Inde musulmane 이슬람·힌두 간 증오, 인도 '테러 천국'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1월호, 한국어판 2009년 2월호.
(7) Anees Salim, 『Vanity Bagh』, Actes Sud, 2015, 『Les Descendants de la dame aveugle 시각장애인 여성의 후손들』, Banyan,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