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에마뉘엘 그라의 <민중(Un peuple)>에 관하여

2022-03-02     티보 엔느통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정치를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반드시 정치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2월 23일에 개봉한 영화 <국민(Un peuple)>을 만든 에마뉘엘 그라 감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에마뉘엘 그라 감독은 2018년 11월부터 6개월 동안 프랑스 파리 남서쪽에 있는 도시 샤르트르에서 로터리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인 ‘노란 조끼 운동’을 영화의 주제로 다뤘다. 이 영화는 노란 조끼 운동이 진행된 지난하고도 험난했던 시간, 조직화 과정, ‘중앙(공권력과 도심부, 점점 더 삼엄해진 경찰의 수도 통제)'에서 쏟아진 비난 등, ‘코뮌’의 축소판인 ‘노란 조끼 운동’의 인상적이면서 놀라운 진행 과정을 추적한다. 에마뉘엘 그라 감독의 연출은 과거에 노란 조끼 운동을 다룬 다른 영화보다 부쩍 짙은 정치색을 띤다. 그 이유는 감독의 (긍정적인 의미의) 민중주의에 대한 열망이 다른(저널리즘적, 정치적, 영화 기법적) 특징보다 더 두드러지게 표현됐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오프 스크린(off-screen)으로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드론으로 촬영된 초반 첫 몇 분 동안에 카메라는 로터리를 중심으로 차량이 오가는 도심 풍경을 훑는다. 유류세 대상인 휘발유, 즉 화석 연료로 달리는 차들이 길을 지난다. 노란 조끼 운동은 바로 이 유류세 인상 때문에 일어났다. “넌 겨우 기름값 몇 푼 때문에 시위를 해.” 노란 조끼 운동 초기에 장거리 트럭 운전사 코프 존슨이 노래한 곡의 가사다.

화석 연료에 의존해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오로지 대형 프랜차이즈 헬스장 트레드밀 위에서만 두 발로 달린다. 차량이 지나는 로터리의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며, 새로운 우정에 흠뻑 취하거나 내적 갈등에 괴로워한다. 자신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모든 이들이 겪었던 보편적인 삶의 애환을 겪는다. 이 영화가 노란 조끼 시위의 기록물 이상의 의미를 띠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데만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에 담긴 시위대의 경험담은 다채로운 인물들을 그저 나열한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심히 구성한 결과물이다. 로터리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도 개인의 사사로운 문제를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뉴스 채널에서 ‘돌발 사건’에 집착하며 똑같은 말만 재탕, 삼탕으로 반복하고, 진압경찰(CRS)이 노란 조끼 정국의 분수령이 된 개선문 시위 당시에 폭력적인 진압을 일삼는 동안 시위대는 서로 단단히 연계된 힘과 항거의 용기를 보여줬다.

일부 분석에서 강조한 것처럼 시위대의 발언에는 노란 조끼 운동의 몇 가지 특징이 담겨 있다. 여성들의 존재가 두드러졌고, 생필품 가격 인상 중단과 같이 서민 계급을 대변해야 할 진영이 간과한 요구 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기존의 조직 체계는 거부했지만, 활동의 방향을 결정하고 계획을 세웠고, 참가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자체 조직을 구성했다.(1) 시위대는 정치의 미덕을 재발견하고, 상점 관리자의 멱살을 잡지 않으려고 치미는 분노를 꾹 참는다. “왜 차량 흐름을 막는 거죠?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조금씩 상황을 개선하려고 애쓰지만, 그리 녹록지만은 않아요. (...) 현 제도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절망의 수렁에서 관객들을 끌어내는 몽타주의 힘 

이날 저녁, 마을 회관에서 이 운동의 핵심 인물 제롬 로드리그의 주도로 열린 합동 토론회를 계기로 그동안 팽배했던 분노가 생산적인 에너지로 바뀌었다.(2) 이 자리에서 ‘전쟁 통에 기근을 경험한’ 농부 출신의 점잖은 노부인이 마이크를 잡고 무척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다. “마침내 민중 운동이 일어났네요! 민중 운동이 더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우리 세대가 보기엔 참 바람직합니다.” 참가자들은 서로 자축하고 활기를 북돋우면서, 더 과감히 움직이고 힘의 균형을 대폭 바꿔 놓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새벽부터 회합해 ‘통행료 무료화’ 시위를 준비하기로 한다. 하지만 정작 약속 시각에 때맞춰 나온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시위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때로는 포기하기도 한다. 그라 감독은 자칫 무겁게 경직되기 쉬운 전투적인 시위대의 순간순간에 곡을 붙여 담백하게 표현해냈다.

함께 투쟁하고 싶게 만드는(피해 가고 싶게 만들기도 하는) 멋진 영상을 보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드디어 영화를 마무리하는 편집의 순서가 왔다. 감독은 몽타주를 통해 ‘절망의 수렁에서 관객들을 끌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가장 의욕적인 인물들이 절망하는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비추면서, 반란에서 혁명으로 넘어가는 데 부족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부족한 정치적 조처와 너무도 막강한 경찰 권력이 그 이유였다(물론 요인은 그 밖에도 더 많다). 어쩌면 감독은 파리 거리의 부서진 로터리에서 일어난 집단행동에 대해 더는 할 말이 없어질 순간이 오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자기 행동에 대한 일종의 최종 변론이랄까? 이 영화의 정치적 특징은 감독의 참여적 관찰자 시점에서 진행되는 느린 전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지 연설 현장을 보여주거나, 유권자를 만나거나, 경찰의 폭력성을 드러내려고 로터리로 카메라를 들고 나간 것은 아니다. 감독은 민중이라는 대상을 설정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민중의 한 명이 될지, 혹은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사람으로 남을지를 생각해 보게 해 준다. 

 

 

글·티보 엔느통 Thibault Hennet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Les deux jambes du militantisme 투사의 다리’, ‘La puissance insoupçonnée des travailleuses 여성 노동자들의 놀라운 힘’, ‘Femmes “gilets jaunes” en première ligne 일선에 선 여성 노란 조끼 시위대’, ‘Si les classes populaires étaient écoutées 서민 계층의 말을 들었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6월, 2019년 1월 및 11월, 2022년 1월, 특집 기사 ‘Pourquoi la gauche perd 좌파가 패배하는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년 1월. 
(2) 제롬 로드리그는 2022년 2월 12일에 파리에서 ‘자유 호송대(convoi de la liberté)’ 불법 집회 조직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이로 인해 ‘노란 조끼’에 대한 비판이 코로나 봉쇄 반대에 대한 비판과 뒤섞이는 양상을 보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