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가 말하는 미학과 사상

2022-03-02     기욤 퐁뒤 l 작가

문학 작품에서 진보적인 접근법이 무엇인지 정의하려는 시도는 이제 드문 일이 됐다. 요즘에는 진보 문학을 주제에 따라 분류하곤 하지만, 과거에 루카치 죄르지는 사뭇 고무적인 길을 개척했다.

 

현존하는 문학 비평을 읽으면 작가의 정치적 입장이 작가가 그려내는 수많은 주제를 판가름하는 척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리의 부르주아 집단은 우파로, 현대의 서민 계급과 그들이 겪는 애환은 좌파로 분류하며, 한편에는 프랑스의 작가 필리프 솔레르를, 다른 한편에는 공쿠르상 수상작가 니콜라 마티외를 배치하는 식이다.

그래서 문학계에서 진보주의 작가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제에 따른 이분법적 해석은 형식뿐 아니라 서사 기법에 대한 논의마저 차단한다. 서사 기법은 ‘왜, 그리고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20세기 문학의 정치화에 비옥한 토양이 됐고, 진보 문학과 당대의 핵심 주제였던 마르크스주의 문학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그런 면에서 루카치 죄르지(1885~1971. 헝가리에서는 성이 앞에 위치하지만, 나중에 유럽사회에서 게오르그 루카치로 불리었다-역주)는 비록 사후 50주년에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으나, 우리에게 굵직한 시사점을 남겼다.(1) 루카치는 독일어권 헝가리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러시아 혁명 이후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한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그는 1919년에 헝가리 혁명에 참여해 1956년 혁명정부의 문교부 장관을 지냈으며,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주요 사상가로 꼽힌다. 오늘날 지식계 풍토에서 루카치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별로 후하지 않다. 오랜 망명 생활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주의를 수용하고 사회주의 진영을 옹호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루카치는 저명한 철학자들(프리드리히 셸링,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나치즘에 이바지한 독일의 비합리주의 역사를 조명했다.(2) 미학에 있어서는 일찌감치 자칭 전위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입장에 섰고, 표현주의 서정시뿐 아니라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나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구현한 새로운 서사 기법 또한 비판했다. “전위주의와 표현주의 문학은 개인의 주관적 의식과 경험에 치중해 현실을 파편적으로 그려내며, 등장인물과 그들이 속한 세상의 관계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소설의 특징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편, 부르주아 소설의 위대한 작가들(오노레 드 발자크, 레오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이 표방한 타당성과 사실적인 서사의 장점은 높이 샀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19세기의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면서 20세기의 예술과 이론적 혁신을 옹호하던 이들은 루카치를 구시대적인 독단주의자로 치부했다. 

 

노동계급의 서사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탄생

하지만 1930년대 초부터 1961년(그의 명저 『미학』이 출판된 해)에 걸쳐 무려 30여 년간 발전시킨 루카치의 사상은 그가 전위 문학을 두루 비판했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논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3) 루카치의 연구물에는 낭만주의를 추구했던 젊은 시절과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던 시기에 품었던 의문이 담겨 있다. 세계대전 이전에 루카치는 동시대인이자 명사들(에른스트 블로흐, 막스 베버, 게오르크 지멜)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바로 특징 없는 대도시와 동일시되는 ‘근대성’, 기교적이고 무심한 ‘합리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루카치는 근대정신의 계보와 극복의 단서를 문학 속에서 찾았다. 그렇게 해서 루카치는 1916년에 자신의 젊은 시절 작품 『소설의 이론』을 출판했지만, 훗날 역사적 관점이 배제됐고 다소 유물론적이라는 이유로 해당 글을 부정했다.(4)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마르크스주의에 집중하면서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해석을 달리했다. 이때부터 루카치는 모더니즘의 실리주의적이고 기교적인 정신을 구현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부르주아 계급이라고 봤다. 아울러 부르주아의 사상을 ‘현상의 실재를 알 수 없는 영역에 두고 보편적인 형이상학적 원리를 따르는 이율배반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1918년 유럽이라는 배경에서 루카치는 역사적 현실에 근거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야말로 부르주아의 사상의 관념적 한계를 극복할 해법이라고 믿었다. 루카치에 따르면, 노동계급은 집합적 조직인 당을 통해 보편적 현상과 그 원칙에서 벗어나 변혁의 주체로 거듭나는 존재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변혁한 인류가 이뤄낸 참된 역사의 출현이었다. 그는 이런 노동계급의 서사로부터 문학의 새로운 조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1934년 소련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정식화되자 루카치는 이 장르의 개념에 수긍하기는 했지만, 1920년~1930년에 채택된 한 가지 특징에 대해서만큼은 비판적이었다.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문학과 문학의 정치적 역할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쟁이 촉발돼 다음과 같이 중요한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학 형태가 혁명에서 탄생했는가? 혹은, 부르주아적인 문화유산이지만 진보적 발전의 잠재력을 생각해 최대한 많은 사람이 누리도록 해야 하는가?’(5) 이에, 루카치는 “현실에 대한 서사는 현실의 모방이 아니다. 전위주의자들의 일방적인 주관성과 자연주의자들의 ‘사물화(réification)’ 경향에 맞서 개인과 세계의 상호작용 형태의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루카치에게 진정한 서사란 개인이 처한 환경에 맞서는 모습을 시험대에 놓인 영웅들이 행동하고, 그 행동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진일보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처럼 서사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 중심성은 화자의 관점을 정의한다. 호머에서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고전 속에 묘사된 세계는 과거에 인간에 의해 형성돼 궁극적으로 미래의 행동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저장고다.(6)

 

예술작품은 인류의 여정을 기억하는 기억의 형태

반면에 자연주의 소설관을 확립한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에 대해서는 세상을 정적인 현실로 고착시키며 궁극적으로 영웅을 수동적인 본보기로 삼는 강력한 원칙을 표방한다고 비판했다. 주제의 측면에서 진보적이고, 문체의 측면에서는 보수적인 소설가 루카치에게 에밀 졸라가 정의하고 증명을 시도한 ‘유전 법칙’은 비판하기에 아주 적절한 예시였다. 한편,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정반대 편에 있는 특정 전위주의 작가들은 주관주의 형식을 통해 세상과 단절되고 다소 서정적인 내부 독백을 통해 영웅들의 모습을 그렸다. 루카치는 인간과 세상의 상호작용을 표현하는 서사에서 중요한 것은 고양된 영웅주의와 장엄한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무기력한 인물을 그려내는 이른바 ‘교조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교조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 변혁과 사회주의의 건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루카치는 논의를 고차원의 추상으로 끌어올리고 정치 일원주의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매우 보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루카치는 1961년에 출판된 『미학』에서 보편성으로의 상승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아울러 서사의 중요성을 더 이상 문학에 한정하지 않고 예술 분야 전반으로 확장했다. 사실 예술은 과학과 윤리, 종교와 더불어 지적 활동의 주요 영역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이 책에서 루카치는 주요 미학적 범주의 도식적 기원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미학의 본질적인 구조에 대한 정의도 시도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두 가지 대립에 직면했다. 첫째는 순수하게 객관적인(즉, 모든 인간의 주관이 배제된) 우주의 건설을 목표로 삼는 과학으로, 목표는 타당하지만, 단편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둘째는 주관성을 중시하는 종교다. 주관성의 중시라는 면에서는 예술의 세계관과 일맥상통하지만, 종교에서 정의하는 주관성은 초월적인 영역(세상을 창조한 신의 위격)에 있다. 루카치는 훌륭한 작품의 세계가 주체에 의해 성립되고 지배되어야 한다고 봤다. 이때의 주체는 인간이다.

예술은 세계를 ‘물신화(物神化)’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현실(상품, 화폐, 자본)이 인간의 관습에서 동떨어져 불변하는 듯이 보이는 물신 숭배의 개념을 설명했다. 루카치는 이 개념을 취하면서도 비판적 시각을 늦추지 않았다. 물신 숭배는 정치적으로 타파해야 하며, 다른 담론으로 반박하고, 물신을 숭배하는 인간의 현실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예술작품은 인류의 여정을 증명하는 기억의 형태로 표현되며, 인류는 작품 속에 투영된 모습을 통해 자기의식을 획득한다.

따라서 문학(보다 보편적으로는 예술)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으로 축소될 수 없는 특정한 정치적 사명을 띤다. 발자크의 작품에서뿐 아니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막심 고리키나 20세기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만 같은 소설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사회 변혁의 가능성과 그에 따른 다양한 양상이 그 예다. 이런 사명은 문학적 진실과 자전적 글쓰기에 대한 끝없는 논쟁에서 탈피하고, 문학이 직간접적인 증언의 집합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돌파해야만 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글·기욤 퐁뒤 Guillaume Fondu
작가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Lukács ’, 학술지 <악튀엘 마르크스(Actuel Marx) >, 파리, 2021년 3월. Thibault Henneton et Frédéric Monferrand, ‘Qui veut la peau de Georg Lukacs? 누가 루카치 죄르지를 모함했나?’, 2016년 11월 1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블로그, Contrebande.  
(2) Georg Lukács, 『La Destruction de la raison 이성의 파괴』, L’Arche, 파리, 1959 년; 『La Destruction de la raison. Nietzsche 이성의 파괴, 니체』, Delga, 파리, 2006년(총 세 권으로 구성); 『La Destruction de la raison. Schelling, Schopenhauer, Kierkegaard 이성의 파괴, 셸링,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Delga, 2010년; 『Heidegger et Hitler 하이데거와 히틀러』, Delga, 2017년.
(3) Georg Lukács, 『미학』, Éditions critiques, 파리, 2021년.
(4) Georg Lukács, 『소설 이론』, Denoël, 파리, 1963년. 
(5) Evelyne Pieiller, ‘Inventer la joie 환희의 창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6월.
(6) Georg Lukács, 『Raconter ou décrire 서사냐 묘사냐?』, Éditions critiques, 파리,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