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망명객의 대만 회고록

2011-11-11     프랑수아즈 망갱

2012년, 대만에서는 총통 선거와 총선거가 동시에 실시된다. 바야흐로 선거의 해다. 대만 사회를 다룬 학술 연구서는 많이 나와 있지만, 교양 있고 점잖은 신사는 이런 연구서에 몰두할 시간이 없다고 쉽게 생각한다. 1972년 영어로 출간된 <펑밍민의 회고록>(1)은 대만 전문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포함된다. 펑밍민은 1996년 대만 총통 직선전에서 야당 후보로 출마한 인물이다. 회고록에서 펑밍민은 망명 초기부터 20년이 넘는 망명생활과, 1964년 포모사(2) 주민의 안녕을 위한 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과정을 들려주고 있다. 또한 체포된 펑밍민이 석방된 뒤에도 삼엄한 감시에 시달리다 결국 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밝혔다.

<펑밍민의 회고록>은 번역이 잘돼 있어 대만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 대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펑밍민의 개인적 에피소드는 단순히 책의 양념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대만 사회가 걸어온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펑밍민은 이 회고록을 집필하게 된 1964년의 에피소드, 자신의 개인적 가족사와 딜레마를 풀어놓는다. 펑밍민의 가족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승승장구했다. 특권을 누리던 지식인이었지만, 그는 끝없이 지배세력이 바뀌는 대만의 상황을 보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1945년 일본 제국 패망 뒤 중국의 통치 아래 들어가게 되었고, 본토 중국인과 대만 주민 간에 분쟁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대만은 중국의 지방으로 전락하지 않고 대신 독립을 주장하는 중국 국민당 세력의 수중에 들어갔다.

1990년 대만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포모사 주민의 안녕을 위한 선언에 나온 몇 가지 조항은 구시대적인 것이 돼버렸다. 하지만 대만의 지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외교 선언에 만족해야 할까? 최근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불고 있는 협력 바람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평화 유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까? 그러나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 본토의 요구는 결국 대만이 이룩해온 민주화 과정을 완전히 뒤엎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포모사 주민의 안녕을 위한 선언에 나온 논리들은 아직 그 힘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

점잖고 교양 있는 신사가 갑자기 다시 대만 문제를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미국의 조지 커가 1965년부터 집필한 책(3)을 추천한다. 조지 커는 펑밍민이 회고록을 쓰도록 독려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전쟁 부서에서 포모사의 전문가였던 조지 커는 일본 식민지이던 대만에 3년간 거주했고, 1947년 대만 부영사를 지냈다. 1947년 국민당 정부는 대만 원주민 학살을 자행했다. 이로 인해 대만의 엘리트들이 대거 목숨을 잃었고, 대만의 독립사상이 싹트게 되었다. 국민당의 만행을 기록한 부분은 울컥하게 한다. 조지 커는 이 비극적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미국 외교가 저지른 허점을 명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글. 프랑수아즈 망갱 Françoise Mengin

번역. 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식사하세요!>(2011) 등을 번역했다.

(1) 펑밍민, <자유의 맛: 어느 포모사 독립파의 회고록>, Ecitions René Viénet, Belaye, 2011.
(2) 포모사는 대만의 옛 이름이다.
(3) 조지 H. 커, <배반당한 포모사>, Ecitions René Viénet, Belaye,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