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공감과 연대를 부추긴다

10월호, ‘부족한 탈세계화, 계급투쟁, 국제연대’ 를 읽고

2011-11-11     김진수

2008년 대학을 졸업한 나는, 영국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사회과학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경제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나를 유럽으로 이끌었다. 나는 배낭여행과 잠깐 동안의 프랑스 체재 경험으로 유럽이라는 지역에 막연한 기대감을 품었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마인드를 기른다’는 정의 내리기조차 힘든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려면 다양한 언어 기반의 국가 집합체인 유럽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했다.

세계화 모범 사례로 평가받던 EU

영국에 머물렀던 2008년 초부터 2011년 10월까지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좋지 않다고 해야 할지)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는 금융위기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브러더스의 몰락, 그리고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발 금융위기까지 모두 겪었다. 비유럽인 유학생으로서 다양한 경제적·정치적 변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던 학생에게는 유럽, 유로존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지역적·정치적·경제적 구조물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때 유럽연합(EU)이라는 거대한 지역적·정치적·경제적 공동체는 1980년대 이래 진행돼온 ‘세계화’ 움직임의 가장 긍정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적 배경을 가진 국가들이 제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아픈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도 ‘통합’한다는 데 세계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며 지켜보았다. 그런 기대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가 많은 것을 가져다줄 거라는 희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유럽은 세계화라는 패러다임이 가져다줄 수 있는 최악의 결과만 보여주고 있다.

국가 간의 장벽을 철폐해 하나의 지구가 되려던 거창한 세계화의 슬로건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장벽만 없앤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 결과 금융자본의 대공세 앞에 국가와 대중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의 총본산’이라는 미국에서도 금융자본이 초래한 서브프라임 위기와 리먼 사태 등을 뒷감당하느라 어마어마한 세금이 들어야 했다. 영국에서도 스코틀랜드 은행의 모기지 부분을 담당하던 할리팩스(Halifax)가 도산하는 바람에 500억 파운드의 공적자금을 들여 로이드 은행으로 넘기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많은 영국의 서민층은 파산했거나,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수많은 시민이 부담을 나누어야 했고, 노동계급의 안정성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임금상승률은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심화되고, 누적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재정으로 경기가 위축되어 다시 그 영향이 시민에게 돌아오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각국은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위기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결을 도모하는 대신, 이민자와 외국인에게 정책적 압박을 가해 자국 시민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 같다. 내가 영국에 처음 입국한 2008년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취업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었다. 이를 통해 영국인과 외국인의 역랑을 균형 있게 산업 전반에 투입하는 시스템을 보유했지만, 2009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 기회는 일부에게만 제한되었고, 올해부터는 모든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과정 종료 뒤 자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심지어 외국인 학생들의 파트타임 취업까지 제한하면서 사회가 점점 보수화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를 국가주의로 은폐

또한 내국인 학생의 수업료를 3배 인상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웨스트민스터 앞에서 대규모 학생시위를 촉발시켰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대규모 추방과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각국의 이런 움직임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이민자, 외국인, 학생계층을 타격해 정권 유지를 도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초국적 금융자본의 붕괴는 한 나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여러 국가에 영향을 주어 전세계적인 공황과 사회구조의 보수화로 이어지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자본 흐름이 자유로워지면 부국의 부가 빈국에 흘러들어 양쪽이 공존공생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최근 J. 브래드포드 들롱 교수나 누리엘루 비니 교수의 글을 보면, 이들은 과거의 예측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세계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막상 정부 차원의 대응책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이런 국가 차원의 방향성 상실은 결국 최근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에서도 벌어진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항한 민중들의 시위와 연대를 이끌어냈다. 뚜렷한 정치적 목적이 없기에 비록 조직력은 약하지만, 전세계 다수의 대중이 세계화·불평등·환경 문제 등을 실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본다.

나는 자본주의 자체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를 운용하는 방식은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거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것은 정부가 아닌 개인과 일반 대중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실제로 세계화는 정부의 활동 반경을 상당부분 제약했고, 정부도 다국적기업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압박과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대중은 다르다. 세계화의 큰 산물 중 하나인,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 범세계적 정보 교환은 세계 각계각층의 대중에게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화’가 어느 한 나라 한 지역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고,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공감과 연대를 통한 문제제기와 해결 노력이 좀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세계 각국은 보호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서도 더욱 강력한 이민자정책과 복지정책의 축소, 보호무역 부활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저임금노동자와 이민자들을 대립시켜 각국 지배세력에게 정치적 반사이익을 거두게 할지는 모르겠다. 장기적으로도 최근 일어난 세계적 연대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의 가시화, 긍정적 신호

그러나 금융자본의 붕괴로 인한 전세계적 위기가 세계 시민사회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위기로 많은 국가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경제의 운용방식을 새롭게 재편하고, 부의 불평등을 개선하며, 시민 개개인의 다양한 연대로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심판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해, 우리 아이들 세대가 좀더 긍정적인 꿈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진수 (독자·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