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화, 평화를 위한 무기

2022-04-04     필리프 데캉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서구가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전쟁을 종식시키고 러시아 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NATO 가입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립국 지위는 그 이후 협상에서 취약해 보일 수 있지만, 평화로운 공존과 자율적인 결정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세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유일한 정치적 해법은 평화회복이다. (...) 이 조약은 인도차이나 국가들의 민족 자결권과 중립성을 수립하고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각국의 일은 각국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1966년 9월 1일 프놈펜 연설에서 샤를 드골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반대하며 이런 해법을 제시했다. 이 해법으로 9년간의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이후, 1992년 봄 러시아 군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몰도바는 이 해법을 선택했다. 몰도바는 헌법에 ‘영구적 중립국’ 명시를 결정했고, 1994년 7월 채택했다. 몰도바는 정권교체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중립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이웃 국가 우크라이나는 여당이 바뀌면서, 소련 붕괴 후 맺은 동맹 문제에 대해 갈등하게 됐다.

1992년 5월, 크름 반도의 첫 번째 독립선언에 대응해 우크라이나는, 열흘 후 타슈켄트에서 체결한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집단안보조약 가입을 거부했다. 한편 크름 반도의 독립선언은 제도적 타협으로 종결됐다. 1996년 조지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는 EU와 근접해지려는 포부를 가지고 민주주의와 개발을 위한 기구(각 국가의 이니셜을 딴 GUAM)를 창설했다. 

2003년 11월 조지아에서 일어난 장미 혁명과 2004년 11월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선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에 대항하는 오렌지 혁명이 일어난 이후,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NATO에 가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2008년 4월 독일과 프랑스는 두 국가의 가입일 지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반대했다. 2010년 2월, 다시 대통령에 오른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반대로 중립국 법안을 채택하도록 했고, 모든 군사 연맹 가입을 금지시켰다. 

 

중립국은 스스로 방어할 역량을 갖춰야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탄핵된 후, “매우 중대한 여러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됐다”라고 NATO는 인정했다.(1) 2014년 10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중립국 법안을 파기했고, 2017년 6월 새로운 법안을 채택했다. 새 법안은 국가 안보와 대외정책을 위한 전략적인 노선으로 NATO와 EU에 가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런 목표는 2019년 수정된 헌법에서도 나타난다.(2) 중립국으로 돌아가려면, 헌법을 수정할 수 있는 절대 과반의 의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헌법 수정은 돈바스 공화국 특별 지위 부여를 포함한 강력한 탈중앙 집권화를 선택하는 것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럽 강대국들 사이의 전쟁터가 돼버린 완충국 상황에 놓인 국가들은 가끔 중립을 선택했다. 벨기에는 독립하면서, 1831년 11월 15일 체결한 런던 조약으로 ‘독립국이자 영구적인 중립국’이 됐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프러시아, 러시아가 이 조항을 넣음으로써 벨기에는 80년간 평화를 유지했다. 특히 1870년의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 연루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1815년 11월 20일 체결된 파리 조약으로 ‘스위스는 영구적인 중립국’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덕분에 스위스는 2세기 동안 전쟁을 겪지 않았다.

20세기까지 중립국의 권리는 관례의 영역에 해당했다. 1907년 10월 18일 헤이그 조약에는 약소국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테두리가 제시돼 있다. 중립국은 다른 국가와의 분쟁에서 군사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대신에 영토 보존을 보장받는다. 중립국은 전쟁당사국에 어떤 인적, 물리적 자원도 지원하지 않으며, 영토와 영공에서 자원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중립국은 모든 공격에 맞서 스스로 방어할 군사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런 대외정책 도구는 영구적일 수도, 특별한 분쟁의 경우 일시적일 수도 있다.

 

중립은 비동맹이 아니다

중립은 비동맹과는 분명히 다르다. 비동맹은 냉전시대에 거대 양 진영의 영향력과 논리에서 벗어나려던 수많은 약소국들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인도의 네루의 공동 선언에서 시작된 비동맹운동(NAM)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회원국들을 구속하지 않으며, 중립국은 거의 없다. 

현재 비동맹의 유일한 유럽 회원국인 벨라루스 또한 역설적이게도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가입했다.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덕분에 러시아 군대는 벨라루스의 영토를 거쳐 키이우로 이동했다. 몰타와 키프로스는 비동맹운동을 탈퇴하고 EU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는 비동맹운동의 옵서버로 남아있다. 유고슬라비아의 후신인 세르비아는 중립을 선택했다.

중립국들의 최대 목표는 종종 침해당하는 국가의 지위를 보장받는 것이다. 1798년 프랑스 군대는 오래된 전통을 고려하지 않고 스위스를 침략했다. 1914년 8월 2일 독일은 벨기에에 통행권을 요구하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틀 후, 빌헬름 2세의 군대는 벨기에에 들이닥쳤고, 룩셈부르크의 중립성 또한 침해당했다. 1831년 런던 조약의 보증국인 영국은 벨기에를 지원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독일은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유고슬라비아, 그리스와 동맹국인 이탈리아까지 수많은 중립국들을 거리낌 없이 침공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발트 국가들(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를 침공했고, 핀란드를 침략하려고 시도했다. 영국은 아이슬란드를 침공했다. 아이슬란드는 후견국인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중립국이다. 불가리아와 터키는 스스로 중립을 포기했다. 1878년 베를린 회담에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싶었던 불가리아는 1941년 추축국에 합류했다. 터키는 1945년 2월, 최후의 순간에 연합국을 선택했다. 1969년 미국이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폭격했고, 그 결과 두 중립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알려진 대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민주주의의 원칙과 타협 없이 중립을 지킬 줄 알았던 국가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스웨덴과 스위스가 그랬다. 아일랜드 내전이 상처만 남긴 채 끝난 것처럼 작은 전략적 이득이 아닌, 영토를 지키기 위해 스웨덴과 스위스는 군사력을 갖추었다. 스위스의 민병대는 무시 못할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은 이런 차원에서 2010년 폐지했던 징병제도를 2017년에 부활시켰다. 그리고 무기 생산에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냉전 시대 완충국이었던 핀란드와 오스트리아는 1950년대 초, 양대 진영으로부터 중립성과 군대를 인정받았다.

현실적으로 대외정책에서 약소국들은 중립국으로서 인구나 경제적 규모와 상관없이 외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전쟁의 위협을 감소시키면서 힘의 균형을 이루고 평화적인 공존을 추구하기 위해 약소 중립국들은 수많은 대화 가능성을 재개시켰다. 단지 큰 국가들 사이에서만은 아니었다. 특히 1973년 7월~1975년 8월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가 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긴장완화의 피날레는 주권, 국민의 권리, 영토보전 그리고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고 유럽의 지속적인 평화의 주춧돌을 마련하며 이뤄졌다.  

 

우크라이나는 스위스 같은 무장 중립국을 원해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된 후, 유럽안보협력회의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러시아로 이전하도록 요구했다. 세 국가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는 대신에, 러시아 영국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국경, 주권, 독립성을 지켜주기로 약속한 부다페스트 각서가 1994년 12월 5일 체결됐다. 왜 우크라이나가 오늘날 더욱 확실한 안전보장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가 요구하고 있는 비무장화와 영구적인 중립의 공존은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냉전시대의 종식 이후 투르크메니스탄, 몽골, 몰도바, 세르비아가 중립을 선택했지만, 중립국 지위는 여전히 저평가 받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립국 지위는 엄격히 군사적인 영역에 한정되며, 정치적으로는 매우 자유롭다. 예를 들어, 1995년 스웨덴, 오스트리아, 핀란드는 중립국임에도 EU에 가입할 수 있었다. 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는 NATO와 함께 공동 군사 훈련을 했고, 세르비아는 NATO와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함께 훈련했다. 또한 중립국도 UN 안전보장 이사회가 승인한 경우에는 군대를 포함한 강제적인 조치에 동참한다.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에 의해 진압된 이후, 러시아의 영토 확장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처럼 유럽에서 드높았던 적은 없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반작용으로 NATO에 대한 높은 호의를 불러일으켰다. 여론조사 결과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파란이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NATO 가입에 반대했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여론이 갑자기 NATO 가입에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보수당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냉정을 유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스웨덴의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사민당 총리 또한 야당의 호전적인 열기를 진정시켰다. “현 상황에서 스웨덴이 NATO 가입을 요구한다면, 긴장을 더욱 악화시키고 유럽을 한층 더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3) 그러나 핀란드와 스웨덴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점점 더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독일에 의해 우연히 드러났던 1940년 프랑스, 스위스의 사례와 유사한 비밀 지원을 포함한 협력임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기 얼마 전, 스위스의 미셸린 칼미 레이 전 대통령은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는 시기에 매우 대담한 제안을 했었다. 그녀가 주장하는 가치들을 달성하고, 전략적인 면에서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EU는 블록들 사이에서 비공격적, 독립적 태도를 취해야하며, 비동맹 중립이 돼야한다는 제안이었다.(4) 2019년 2주 동안 6만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 러시아 또는 대 중국과의 분쟁이 있을 경우, 대부분의 유럽인은 자국이 어느 쪽 편도 들기 원치 않는다고 한다.(5)

칼미 레이의 주장에 따르면, 중립은 스위스의 주들처럼 회원국 전체의 이익을 일치시킨다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할 이상적 도구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치적 군사적 강국이 되면 한 블록 또는 다른 블록에 굴복하지 않아도 된다. 압력에 저항하기 쉬워지며,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구실 뿐인 공식성명에 매몰되지 않아도 되며,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에 틀어박히지 않아도 된다.” 

레이의 설명대로라면, EU 가입을 원하고 나아가 스위스처럼 되기 원하는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한층 쉽게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글·필리프 데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우크라이나와의 관계』, NATO 홈페이지, 2022년 2월 25일.
(2) 2019년 2월 7일 헌법 수정안
(3) Reuters, 2022년 5월 9일.
(4) Micheline Calmy-Rey, 『Pour une neutralité active. De la Suisse à l'Europe 능동적인 중립을 위하여. 스위스에서 유럽까지.』, Savoir Suisse, 2021년.
(5) European Council for foreign relations, 2019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