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균형주의
우크라이나 전쟁 오랫동안 과거의 이미지로만 여겨졌던 핵폭탄의 버섯구름은 이제 가능성 있는 미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지정학, 과거의 기억, 이데올로기를 동기로 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난민 발생과 제재 부과로 이어졌고 대부분의 유럽인이 잊고 있던 전쟁 상황으로 유럽을 몰아넣었다. 독일은 재무장을 예고한 반면 유럽연합(EU)은 유럽의 종주국 미국을 너무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독립성을 추구할 계획이다.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국가들은 동맹국 러시아와 교역 상대국 서구와의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 중이다. |
지난 3월 14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 보좌관의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중국 지도자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미국이 유럽에 정신이 팔린 이때, 숨통이 좀 더 트이리라는 중국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양제츠(杨洁篪)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의 회동 전날, 정보기관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인용해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원조를 제공할’ 것이라는 내용의 외교문서를 발표했다.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파괴 무기를 보유했다”라던 주장만큼 터무니없는 정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전 세계 언론이 앞다퉈 이 의혹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에, 해당(혹은 유사한) 논평가들은 중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계기로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령 논평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러시아의 군사적 실패와 대대적인 대 러시아 제재 탓에 중국의 야욕은 수그러들었을 테지만, 중국 당국에 더 시급한 문제는 따로 있다. 중국 국무원 참사실 산하 상하이 공공정책연구소의 후웨이(胡伟) 부원장(1)은 당국의 정책에 대해 놀랄 만큼 비판적인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 내에서 다수가 지적하는 가장 심각한 결과는 ‘전쟁으로 전 세계 반서방 세력이 크게 약화하는 것’이다.”(2) 미국의 강권을 견제하려면 동맹은 아니라도 우호 관계가 절실한 이때, 중국으로서는 암울한 전망인 셈이다.
2022년 3월 2일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은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아니, 만장일치는 어림도 없는 결과였다. 결의에 찬성한 국가가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거부표를 던진 국가의 인구 비중은 전 세계 인구의 51%에 달했다. 아시아에서는 각각 5만 5,000명과 2만 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일본과 한국을 포함해, 필리핀, 캄보디아 등의 국가가 서방 진영을 택했다. 이런 상황은 일본에 기회를 안겨줬다. 1945년부터 러시아에 의해 불법 점거돼 있다고 주장해온 남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영유권 분쟁을 재점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3) 여당인 자민당에서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에 핵무기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더 이상 논의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에서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가 미국 주도의 핵 공유 체제에 참여해 핵무기를 자국 내에 배치하고 있다.”(4)
중립을 택한 인도, 이에 관대한 미국
기권표를 던진 35개국 중에는 아시아의 두 열강, 인도와 중국도 포함돼 있다. 양국 지도자들은 거의 같은 이유로 어느 쪽에도 서지 않았다. 인도 정부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했고, 중국 정부는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다시 시작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양국 모두 ‘주권 존중’과 ‘유엔 헌장 원칙에 따른 영토 보전’을 촉구했다.(5) 그렇게 두 국가는 1955년에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인도 총리와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반둥 회의에서 채택한 평화적 공존의 주요원칙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인도와 중국이 궤를 같이하는 부분은 딱 여기까지다.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중국과 인도의 경쟁 구도는 변함이 없다.
서방 언론은 인도가 중립 카드를 선택한 배경에 오랜 비동맹 외교 전통이 있으니, 찬사는 아니더라도 충분한 명분이 된다고 봤다. 반면 중국의 중립은 러시아에 대한 동조로 해석했다. 인도의 기권표는 쉽게 이해되며, 이에 미국 지도자도 보기 드문 관용을 보여준다. “인도-러시아 관계가 미-러시아 관계와 다르다는 점은 주지하는 바이기에, 괜찮다.” 네드 프라이스(Ned Price) 국무부 대변인이 밝혔다.(6) 반면,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이 러시아에 제재의 탈출구를 제공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7)
물론 시진핑 주석이 우크라이나 침공 며칠 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전략적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성명을 발표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도와 러시아의 관계도 중러 관계 못지않다. 인도 역시 러시아와 군사, 우주, 무역 협력 등 전방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고 합동 군사 훈련을 시행하고, 무기 수입의 58%를 러시아에 의존한다(이스라엘과 미국에서 수입되는 무기 비율은 각각 15%, 12%). 러시아의 크름반도 강제 병합 이후, 2018년에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는 러시아산 첨단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 공급에 관한 협정을 체결해 지난해부터 무기를 조달받고 있다. 평소 다른 국가에 대한 금수 조치 단행을 신속히 결정해온 미국도 인도에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가 특수한 상황 탓에 기권표를 던지긴 했지만, 중국의 힘을 견제하려는 진영에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기지개를 켠 중국, 다음 행보는?
러시아 측 주장대로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표현을 써오다가 러시아의 ‘침공’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중국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푸틴 동지’의 환심을 사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라는 자국의 지위를 굳히기 위해서라도 국제 ‘안보와 거버넌스 구조’를 바꿔 놓겠다는 야심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두 교전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은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최대 교역국(총수입의 14.4%, 수출의 15.3%)이다. 다만 양국의 교역 규모(2021년 기준, 200억 달러)는 중-러 교역 규모(1,460억 달러)의 1/7(200억 달러 대비 2021년 1,46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2021년 6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략적 동반자 협정’에 서명하고 유라시아 지역 신실크로드 사업에서 우크라이나가 중추적 역할을 맡기로 했다. 따라서 중국이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중국은 경제적 이유(밀, 군비 등)와 에너지 공급 때문에 미국의 요구대로 러시아를 포기하고 싶지도, 포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교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수입량의 3%, 수출량의 2%에 불과하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단절되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다.
중국 정부를 움직이는 우선적인 요인은 지정학적 이유다. 유엔총회 표결에서 드러났듯이 일부 아프리카, 유라시아, 아시아 국가가 서방에 반대 의사를 표시한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 진영’을 선택할 리는 만무하다. 중국은 미국의 대응 전략과는 대조적인 자국의 3불(不) 원칙(동맹을 체결하지 않고, 외부 세력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으며, 제삼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에 기초한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중국 당국이 미국의 대응 전략을 비난하는 가운데,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華春瑩)은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에 미국의 대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미국이 러시아와의 약속을 깨고 다섯 차례에 걸쳐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감행했고 최첨단 전략무기를 러시아의 문턱에 배치했다. 강대국을 궁지에 몰아넣은 결과를 미국은 예상하지 못한 것인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동 왕국에 대항해 인도-태평양 동맹 강화와 세력 확장을 꾀하던 시기에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에만 연연하지는 않았다.
중국은 미국의 전략이 공격적이라고 평가했고, 미국과 달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를 오가며 조정자 역할을 자청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분쟁을 효과적으로 중재할 국가는 진정한 중립국으로서 우크라이나 주권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8) 그 국가는 과연 어디겠는가?
중국 정부는 대러시아 제재에는 반대했지만, 신실크로드 사업의 하나로 설립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지난 3월 3일에 러시아, 벨라루스와 관련된 거래를 중단하기로 했다. 상하이에 있는 신개발은행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역시 같은 결정을 내렸다. 며칠 후 다수의 경제지가 중국이 러시아 항공사에 예비 부품 공급을 거부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9) 러시아로서는 큰 장애가 되지 않는 상징적인 차원의 정치 압력일 뿐이다. 루블과 위안화 간 환전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강대국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공조를 강조하며 균형 잡기를 시도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화상으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유럽연합, 러시아, 미국, 나토가 평등한 대화를 전개해나가기를 바란다”라며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10)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세계 공동의 국제적이고, 협력적이며, 지속 가능한 안보’가 실현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바와 같이 ‘이 전쟁의 가장 큰 승자가 중국(<Le Figaro>, 2022년 3월 8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시진핑 주석의 위업인 실크로드 사업(유라시아를 통해 유럽을 잇겠다는 구상)이 위기를 맞았고, 미국을 견제하는 균형추로서 유럽연합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시진핑 주석의 희망도 위태로워 보인다.
중국에서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평소 공산당 조직 내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는 논란이 이어지면서 침묵의 벽에 금이 가고 있다. 동계올림픽에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뽐낸 양국의 밀착 관계, 공동의 비전을 확인한 대대적인 성명 발표, 그리고 ‘한계가 없는’ 파트너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순간에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물론 ‘한계가 없는’ 양국의 파트너십이 곳곳에 명시된 공동 선언문에는 “양국 간의 강화된 전략적 파트너십은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제3국에는 우크라이나도 포함된다. 하지만 서방은 해당 문장의 앞부분만 기억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소외됐던 몇몇 중국 지식인들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중국에서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쑨리핑(孫立平) 전 칭화대 교수는 “러시아의 경제력은 광둥성 수준이며, 러시아와 지향점이 다른 전 세계 반러 동맹으로부터 중국이 소외될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11) 후웨이 부원장은 이미 6년 전부터 미국과의 대립을 불만스럽게 여겨온 재계의 일부 여론을 반영하듯이 “중국은 중립적인 자세를 버리고 세계적인 대세를 택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12) 물론 중국의 특정한 정책을 비난하는 후웨이 부원장의 기고문에는 시진핑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다소 거친 전략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금 맹렬하게 확산되고, 위태로울 정도로 경기마저 둔화하는 상황이다. 마오쩌둥 이후 전례 없던 3연임 장기 집권을 결정지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있는 중국의 일인자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인 셈이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중국어로는 부주임(国务院参事室公共政策研究中心副理事长,上海市公共政策研究会会长 : 국무원 고문실 공공 정책 연구 센터 부주임), 영어로는 Vice-chairman(Hu Wei is the vice-chairman of the Public Policy Research Center of the Counselor’s Office of the State Council)으로 소개돼 있다. 참고 링크: https://uscnpm.org/2022/03/12/hu-wei-russia-ukraine-war-china-choice/ (-역주)
(2),(12) Hu Wei, ‘Possible outcomes of the Russo-Ukrainan war and China’s choice’, <US-China perception Monitor>, Atlanta, 2022년 3월 12일.
(3) Kazuhiko Togo, ‘Kishida dumps Russia to back Washington on Ukraine’, <East Asia Forum>, Canberra, 2022년 3월 14일.
(4) Ken Moriyasu, ‘U.S. should abandon ambiguity on Taiwan defense: Japan’s Abe’, <Nikkei Asia>, Tokyo, 2022년 2월 27일.
(5) (인도) Shyam Saran ‘Implications of the Russia-Ukraine Conflict for India’, Asia Pacific Leadership network, Seoul, 2022년 3월 2일; (중국) ‘시진핑, 에마뉘엘 마크롱, 올라프 숄츠 화상 정상회담’, 중국 외교부, Beijing, 2022년 3월 8일.
(6) Teesta Prakash, ‘China is key to understanding India’s dilemma over Ukraine, <The Interpreter>, Sidney, 2022년 3월 9일.
(7) William Mauldin, ‘U.S. Looks to Make China Pay for Close Ties to Russia in Ukraine Crisis’,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22년 2월 27일.
(8) <환구시보>, Beijing, 2월 27일.
(9) <Agefi>, Paris, 2022년 5월 10일.
(10) 중국 외교부, Beijing, 2022년 3월 8일.
(11) David Ownby, ‘Sun Liping, Russia, Ukraine and the big picture’, <Reading the China dream>, 2022년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