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흔들리는 프랑스 대선
지난 5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감내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은 어떤 실질적인 성과도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그럼에도, 마크롱이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해 보인다. 먼저 극우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지율(약 30%)을 보여주고 있지만, 두 후보로 세가 갈렸다. 둘 중 누구도 현 대통령 마크롱을 이길 수는 없을 듯하다. 반면, 이미 수많은 지지자를 결집한 마크롱은 우파 부르주아 보수 유권자의 표도 상당수 흡수했다. 또한, 좌파세력은 존재감을 발휘하기에는 너무나 세가 약화됐다.(1)
그도 그럴 것이 지난 5년, 그럭저럭 좌파 세력을 형성해온 각종 정당들은 정년 연장, 경제개발 계획, 에너지믹스(전력을 어떤 방법으로 생산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역주) 내 원자력 비중, 제5공화국 체제, 유럽 연방주의, 대미 동맹관계,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같은 중대한 문제에 대해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을 보여주는 데 그쳤으니 말이다.
사실 이런 세력구도는 쉽사리 깨어질 것 같지 않다. 설령 4월 10일, 장뤽 멜랑숑이 대선 2차 결선 투표에 진출(과거 그가 속한 정치 진영의 후보들 중 아무도 이루지 못한 성과)하게 될지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하튼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마크롱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올린 지난 5년의 우울한 국정성적표 보다는, 그가 기울인 외교적 노력에 프랑스인들이 이목을 더 많이 집중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재산세 철폐, 법인세 감면, 친기업적 노동정책과 이를 규탄하는 노란조끼를 향한 강경진압 등으로 서막을 올린 마크롱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사실상 마크롱이 이번에 내건 두 가지 중대 조치(62세에서 65세로 정년 연장, 능동적 연대수당(RSA) 수혜자에게 주 15시간 이상 노동 의무화)는 앞으로 한층 우경화될 국정 노선을 예고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조치는 어떤 시급한 재정적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정년 연령이 지난해 고용주들이 요구한 기준(64세)보다 1년 높다. 한편 집권층이 ‘정의실현과 구매력 향상을 위한 조치’라고 소개한 두 번째 조치는 값싼, 무료에 가까운 노동력을 확보할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구인난이 발생해도 임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재발생하는 데도 적절한 소득 지원책이 병행되지 못한다면, 결국 대다수 국민의 구매력은 저하되고 말 것이다. 사실상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정책이 어떻게든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이 이윤을 보전할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맹렬히 수호하는 파리 증시(CAC 40) 상장 40대 기업은 2021년, 무려 1조 6,000억 유로에 달하는 기록적인 수익을 달성했다.
마크롱이 거부한 물가 통제 조치는 비로소 기업이 운송비, 원자재비, 전쟁 여파로 인한 시장 축소 등 각종 확대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대책이다. 물론 이 경우 주주 배당금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아니다.
고통은 결국 서민층의 몫?
만일 마크롱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아마 서민층은 맨 뒷전 신세가 될 것이다. 노란조끼 운동과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마크롱의 자유주의 정책 중 일부의 실행을 잠시 연기시켰다. 그러나 투표라는 안전장치가 부재하고, 다시금 마크롱이 의회 다수를 장악한다면, 자유주의 정책의 질주를 제어할 브레이크는 없을 것이다. 돌발적인 충돌 외에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돌발적인 충돌 가능성은, 오늘날 점점 확대되고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를 보자. 아직 러시아의 침공이 낳은 재앙에 대해 온전히 파악할 인물이 없다. 가장 큰 희생자는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해방하러 왔다”라는 한 군대에 의해 희생양 신세가 됐다. 그 다음 희생자는 러시아 국민이다. 그들은 반체제 인사에 대한 탄압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정권과 우크라이나 최전선에서 입은 막대한 군사적 피해, 운동선수·예술가·마스터카드 고객·넷플릭스 가입자는 물론 심지어 외국의 러시아 식당경영자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보이콧 및 제한조치에 더해, 각종 서방의 제재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만일 서방의 목표가 ‘크렘린궁의 주인’을 그 국민과 구분하는 데 있다면, 집단처벌은 결코 적합한 수단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참사의 여파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 두 교전국은 현재 세계 최대 밀 생산국으로, 전 세계 식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14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은 향후 ‘기아 폭풍과 세계 식량 시스템의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국제사회를 향해 경종을 울렸다.
한편 기후 부문도 암울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군비증강 계획은 에너지나 재생 불가능한 부품의 소비(미군이 생산하는 온실가스량만 해도, 포르투갈이나 스웨덴 같은 한 국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량 수준이다)를 급격히 확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시에는 화석연료 생산을 줄이기 위해 전 세계가 뜻을 모아 협력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난민·기아·기후 문제부터 핵전쟁 악화 가능성까지,(올리비에 자젝의 ‘핵전쟁의 위협’ 기사 참조) 현재 전 세계가 겪는 우울증은 악화될 요소가 수두룩하다. 현재 세계는 아직 팬데믹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날 인류는 “희망이라는 백지수표를 발행하고” 있다.(2) 현대 역사에서 전례가 드물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초래한 기원을 되짚어보는 것은 단순히 현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인간은 언제나 사건이 터지면 과거 자신의 경고가 얼마나 옳았는지 증명하려는 강한 유혹에 시달린다. 여하튼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를 침략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미테랑, “내가 곧 억지력이다!”
핵전쟁 비화 가능성이 상존하는 모든 전쟁에서, 대개 권력은 한 인물의 손에 집중돼 있기 마련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역시 과거 “바로 내가 억지력”이라며, “모든 것을 국가수반이 결정한다”고 잘라 말했다. 잠시 쿠바 미사일 위기를 되돌아보자. 당시 미국을 이끈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는 1962년 10월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모두가 훌륭한, (미국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14인 가운데, (...) 6인은 그 중 누구든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면 지구를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3)
22년이나 러시아를 이끈 인물(2008~2012년에는 총리로 활동)인 푸틴이 우크라이나 정복을 위해 군사 파병을 결정했다면, 그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사실 푸틴 본인도 이 문제에 대해 종종 발언했던 만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지 모른다. 현재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동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립한다.
먼저, 러시아 대통령이 NATO가 기존의 약속과 달리 자국 국경 가까이 동진해오는 데 대해 진지하게 안보 보장 요구를 했지만 서구가 이를 무시해서 행동에 나섰다는 설이다. 다음은, 서방이 푸틴의 계속되는 침략 행위를 방임하자, 이에 고무된 푸틴이 서방의 무관심을 틈타 과거 러시아의 세력권을 회복하기 위한 팽창정책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전자는 방어의 논리, 후자는 설욕을 향한 욕망론에 해당한다. 두 가지 가설이 전혀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로 본지에서 거론하는 전자의 주장이 수많은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다면, 반대로 신자유주의 세력이 선호하는 두 번째 가설은 독재자들의 행동양태와 관련한 심리학적인 사변을 토대로 한다. 게다가, 베르나르앙리 레비 같은 지정학에 정통한 역사가들이 평소 즐겨 사용하는 익숙한 비유법(히틀러, 뮌헨협정, 처칠 등)에도 기대고 있다.
이 낯익은 비유법은 이미 걸프 전쟁(1991년), 코소보 전쟁(199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리비아 전쟁(2011년) 등을 합리화하는 근거로도 이용된 바 있다. 심지어 조지아, 시리아, 우크라이나에 대해 단호한 군사적 대응에 나서지 않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그들이 내세우는 기본적인 가설은 어떤 기자도 쉽게 쓸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요컨대, 서방의 적이 정도를 벗어나는 순간, 즉시 상응하는 ‘처벌’을 가하지 않으면, 결국 더 큰 침략을 부추기는 꼴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달걀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식의 논리는 결코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과 같은 국가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는, 분명 미국이 러시아 국경지대로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NATO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강력한 이웃국을 억지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적 수단을 갖추도록 허용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다. 신보수주의 성향의 논평가 브뤼노 테르트레의 분석처럼, 그와 반대되는 가설은 심지어 “탈식민주의 사상(4)의 극단에 자리한, 죄의식으로 점철된 ‘서방의’ 서사”에서 비롯된 주장에 불과하다고 볼 것이다.
서방의 착각과 실패
한편 미국의 입장을 살펴봐도, 펜타곤의 영향을 받은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과 버락 오바마(바이든은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을 지냈다) 정부를 향해 “너무 소심하고, 너무 굼뜨고, 너무 뒤늦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이 열거하는 실책 리스트에는 시기상조였던(무려 20년 후였는데도) 아프가니스탄전 종전 결정과 시리아 참전 거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한 서구의 단호한 대응 부재, 충분치 않은 국방 예산(7,680억 달러)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미국이 석유 및 가스에 대해 누리던 패권을 약화시킨 환경 규제까지 포함된다.
“미국이 그런 훌륭한 카드를 희생시키다니, 푸틴도 자못 놀랐을 것이다”라고 이라크 전쟁의 설계자인 칼 로브는 분석했다. 사실상 칼 로브는 자신이 계획한 범죄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범죄의 여파를 분석하는 데 유능한 인물이다.(5) 여하튼 서방의 실책은 NATO를 확대한 것이 아니라, 조지아·시리아·크림반도 등에 푸틴이 군사개입하는 것을 두 손 놓고 방임한 데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니 푸틴이 굳이 “우크라이나 국경 앞에서 멈춰 설”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프랑스 사회당의 지지에 힘입어 유럽연합 의원에 당선된 라파엘 글뤼크스는 자문한다. 이어 그는 일찌감치 이런 경고도 날렸다. “러시아 정권의 전문가들이 발트해 국가의 지도를 펼쳐 놓고 미래 침공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6)
사실 글뤼크스만이 정녕 진실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감에 넘쳐 떠드는 것이야말로 미디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아니던가. 본디 매파의 담론은 반박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좀 더 일찍 또는 세게 쳤다면, 오늘의 패배는 승리가 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해왔으니까 말이다. 설령 자신들의 무모한 모험이 파국으로 치달을지라도, 승리하기도 전에 항복한 저 ‘뮌헨협정 체결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모험을 감행한 자들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 할 것이다. 가령 저들에게 러시아가 베를린·런던·파리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해보라. 저들은 “당신은 러시아가 키이우를 폭격할 것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응수할 것이다. 저들의 눈에 크렘린궁의 선전자로 비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러시아를 포식국가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오늘의 비극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순응주의에 함몰된 미국의 기자와 전문가들조차 부시 행정부가 2008년 불장난을 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당할 경우 결코 그들을 보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크라이나에 NATO 가입의 환상을 안겼다. 그것은 매우 부주의한 행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 해인 2007년, 뮌헨 국제안보회의에서 푸틴은 “우리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데, NATO가 러시아 국경 가까이 무력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라며 불안감을 표시했다.
강대국은 당연하게도 자국 세력권의 방위를 때로는 무력을 사용해 지켜내야 할 자국의 안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2월 10일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도 이 점을 지적했다. “러시아가 푸틴처럼 부패한 독재가 통치하는 국가가 아니더라도, 미국처럼 이웃국의 안보 정책에 우려하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만일 멕시코가 적들과 군사동맹을 맺는다면, 그것을 미국이 좌시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런 의문을 품는 국가나 민족은 그밖에도 많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인의 불행에 대해 무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구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략’의 전과자인 서구인들이 오늘날 그 범죄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이 위선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들어보자. 당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중 15개국이 이라크 침공에 힘을 보탰다. 심지어 우크라이나마저 부시 대통령의 감사를 기대하며 동참했다.
윤리적 열정은 위험천만한 나침반이다. 끝없는 탈출과 파괴의 이미지는 복수와 극단주의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경쟁적인 대결 논리는 경제·군사 제재조치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또다시 새로운 제재조치를 발표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결코 바그다드·베오그라드·가자·트리폴리 등과 동급이 아니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을 것이다.
핵 이빨을 가진 종이호랑이, 미국
물론 푸틴이 던진 학살의 주사위는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예상보다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고, NATO는 주군 미국의 뒤에 다시 대열을 촘촘히 정비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훨씬 강력한 제재조치에 직면했으며, 외교적 위상도 영구적으로 실추됐다. 급기야 한 서방의 종교인이 “미국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라고 일갈한 1956년 마오쩌둥의 진단을 러시아에 적용하며, 러시아의 항복을 요구하기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이는 당시 중국 주석의 전략적 모험주의에 대해 소련의 지도자들이 내놓은 반박논리를 무시하는 처사다.
미 제국주의라는 종이호랑이는 핵 이빨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63년 6월, 한 유명한 연설에서 존 케네디는 말했다. “핵강국은 자국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이익을 수호하면서도, 적이 치욕적인 패배와 핵전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대결만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를 되찾지도, NATO에 가입하지도 못할 것이다. 한편 러시아도 서방이 일부 제재조치를 해제하는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영토 정복을 포기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제재조치 해제는 우크라이나 희생자들의 입장에서 분명 불공정하고, 엄청난 양보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침공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푸틴에게 전략적 패배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
사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제적인 차원의 안보 보장과 관련국 국민들 간 합의만 이룰 수 있다면, 충분히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국민에게 저항을 독려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 저항은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가장 필수불가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러시아와 대화하고, 러시아와 함께 미래를 건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은 결코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자, 우리의 지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현 위기는 미 정부로서는 희소식에 가깝다. 영악한 지략가 푸틴이 마침내 네오콘의 오랜 염원을 풀어주지 않았는가. 미국의 편에 서서 하나로 똘똘 뭉친 구대륙은 국방비에 돈을 쏟아부으며(미국산 무기 구입을 위해),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오랜 의존관계를 벗어나 점차 텍사스와 애팔래치아로 눈을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국가이자, 자국의 국경이 아닌 대서양 건너편 전쟁을 구경하는 입장인 미국으로서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며 허풍을 떨 여유가 있다.
자유 수호는 프랑스도 절실해
이토록 심각한 국제적 위기 사태가, 프랑스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진부한 선거전과 빈약한 여론조사 결과에 짓눌린 사회당과 녹색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멜랑숑 후보와 벌어진 격차를 좁힐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FI) 소속의 멜랑숑 후보는 푸틴 대통령의 침공 결정에 곧장 반기를 드는가 하면, 몇 주 뒤인 3월 20일에는 심지어 “러시아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 민족의 저항과 전쟁 및 독재에 맞서 싸우는 용맹한 러시아인”에 포커스를 맞춘 대규모 파리 전당대회를 기획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는 NATO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7)로 멜랑숑은 민주주의 국가들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안 이달고 후보의 표현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을 중국이나 러시아의 가신으로 삼으려 한다”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같은 날 인터뷰에서 안 이달고 사회당 후보는 멜랑숑 후보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유럽과 우리의 민주주의 모델에 맞서 기획하고 있는 일들을 애써 과소평가하며, 프랑스의 국익보다 푸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첩자”(8)라고 공격하기까지 했다.
한편 녹색당 후보 야닉 자도도 “멜랑숑은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없애려 한다”라고 날선 공격을 했다. 물론 대선전은 상황이 절박할수록 막장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치 의제를 지배할 경우, 후보들이 단일화하고 공동의 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반면, 우파와 극우파의 통합은 쉬워 보인다. 우파는 극우파의 치안 담론과 외국인 혐오주의를 널리 수용하는가 하면, 극우파는 우파의 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유사한 정책을 내걸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전망은 향후 공적 자유를 더욱 위태롭게 할 가능성을 높히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재임한 5년 동안 치안 불안정, 테러리즘, 코로나 위기, 전쟁에 대한 공포 등은 전제주의적인 대통령이 반민주적인 ‘충격 요법’을 손쉽게 실행하며 공포에 의한 통치를 하도록 부추겼다.(9) 코로나 위기는 질병과의 투쟁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 통제 조치를 일상화하는 데 기여했다.
급기야 지난 7월, 프랑스 권리보호관(2008년 헌법 개정에 의해 창설된 제도로, 행정기관에 대한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방어하는 일을 담당한다-역주)이 “민간인이 개인의 보건, 즉 신분을 통제하게 될 수 있다. 결국 한 국민이 다른 국민에 의해 통제받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문제의 조치는 결국 해제됐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조치들이 실행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을 통해 공적 자유가 침해될 때마다, 사람들은 점점 해당 조치에 무감각해지고 해당 조치를 영속화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신분을 공개해야 하고, 기차를 타려면 생년월일을 입력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경선’에 투표하려면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줘야 한다. 이 모든 일이 사실상 제5공화국의 가장 ‘반자유주의적인’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일상화됐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모든 정치논쟁은 이민과 치안 불안정 문제가 지배했다. 놀라운 점은 이런 주제를 내세운 대선 후보들이 모두 극우파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국가헌병대의 장갑차가 평화적 시위에 동원되는가 하면, 팔레스타인 지지단체가 해체되고, 리옹에 이어 툴루즈에서도 줄줄이 반(反)파시스트 단체가 해산 조치되며, 노란조끼 시위대가 경찰력과 법적 수단을 동원한 박해에 시달린다. 이렇게, 프랑스인의 삶은 점점 비상체제화되고 있다. 그러니 자유의 수호가 절실한 곳은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도 5년 전(마크롱과 마린 르펜이 2차 결선 투표에서 격돌) 장면이 재현된다면, 결국 우리는 아직도 자유 수호의 길에 오르지 못했음을 여실히 증명하게 될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Serge Halimi, ‘Pourquoi la gauche perd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1월호.
(2) Mouloudji의 노래, ‘Faut vivre(살아야 한다)’.
(3) Graham T. Allison, 『Essence of Decision.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Little Brown, 1971년.
(4) <Le Figaro>, 2022년 3월 19일.
(5) Karl Rove, ‘Zelenski Defines Courage in Our Time’, <The Wall Street Journal>, 2022년 3월 17일.
(6) <르몽드>, 2022년 3월 16일.
(7) Régis Debray, ‘La France doit quitter l'OTAN(프랑스는 NATO를 떠나야 한다)’, Gabriel Robin, ‘L'OTAN, donjon d'un autre âge(NATO, 지난 시대의 녹슨 울타리)’, ‘Jusqu'à quand l'OTAN?(NATO, 언제까지?)’, 각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3월호, 2019년 3월호, 2019년 11월호.
(8) <L'Express>, Paris, 2022년 2월 28일.
(9) ‘Feu sur les libertés 자유를 향한 공격’, <마니에르 드 부아르>, 제182호, 2022년 4/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