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 현장 도네츠크에서 온 편지

2022-04-04     올레시아 올렌코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러시아판 편집장

“모든 이들이 최소한의 책임도 지기를 두려워한다”

우크라이나에서 격렬한 교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러시아판 편집장이 돈바스 지역 내 분리주의 공화국 도네츠크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2월 20일, 도네츠크에 도착했다. 나는 돈바스에서 민간인들이 겪는 참상을 기록하는 동시에, 미디어 히스테리에 변주를 얹고자 한다.

나는 현재 며칠 동안 임차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시내에는 더 이상 온수가 공급되지 않는다. 상수도 시설이 일부 파괴됐다고 한다. 이곳에서 물을 얻으려면 긴 줄을 서야 한다. 도네츠크는 비교적 고요하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주민들이 대거 피난을 떠났기 때문이다. 동원된 병사들이 몇몇씩 무리지어 국경으로 떠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돈바스는 러시아 땅”, “1943년의 승리를 다시 한번” 등 지난 애국 전쟁 당시의 슬로건을 담은 벽보가 도처에 걸려있다. 

거리와 시장에서 ‘민병대’가 징병연령대의 남성들을 붙잡는다. 우리가 타고 있던 차를 멈춰 세워 검문하기도 했다. 우리는 잠시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도망쳤다. 여성들은 남편과 아들의 외출을 막고 있다. 우리가 고용한 기사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onetsk People’s Republic, 이하 DPR) 국적자가 아님에도 한밤중에 징집됐다. 그후 다행스럽게도 그가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풀려났다”라고 알려줬다. 어떤 이는 당뇨병 환자임에도 전장에 나가야 했다.

정말 힘겨운 상황이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압박이 상당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기운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민영방송, 공식적인 기관, 기자, 자원자) 정보가 텔레그램(Telegram) 등을 통해 대량 확산되고 있다. 그중에는 거짓 정보도 상당하다. 따라서,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만 이야기하려 한다. 그래야만 내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이곳의 불안정한 분위기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당국에 대해 환상을 가진 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도착과 동시에 ‘군사령부’ 체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DPR로 넘어가려면 언론 취재권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취재 승인 서한에는 서류를 도네츠크에서 수령하도록 안내돼 있었다. 한편 국경에서 군인들은 이 서한이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서한을 보내주었던 담당자는 증빙사진을 보내줄 것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상사가 부재중이기 때문이었다. 상부에 수차례 전화를 시도한 후에야 겨우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도네츠크에서 의사를 취재하려면 보건부에 전화해야 했다. 부장 의사는 우리에게 해줄 수 있던 말이 고작 “다 제대로 작동한다”와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가 전부였다. 일반 의사가 우리의 질문에 답변하려고 하면, 부장의사가 기자 뒤에서 그에게 신호를 보내며 제지했다. 

 

부상자들, 파괴된 집, 아주 험난한 시절이 눈앞에…

폭격 당한 도네츠크 주변지역에서, 한 교수를 만났다. 그 교수는 우리와 인터뷰를 하려면 상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의 상사가 직접 정부 부처에 전화로 문의했으나, 인터뷰는 끝내 거절됐다. 이 교수는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학교 외의 장소에서 진행하고 익명을 보장해줄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우리는 DPR의 유일한 정당인 돈바스 공산당의 대표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절차를 강력히 비판하며 “모든 이들이 최소한의 책임도 지기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라고 소리 높였다.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상대는 민간인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말을 아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프랑스 출신 스나이퍼 등 몇몇 군인들의 증언을 얻어냈다. 

우리는 또한 접경지역 야시누바타(Yasynuvata)에 갔다. 돈바스 주민 중 전쟁범죄 희생자들의 증언을 담는 것이 목표였다. 러시아가 2월 21일 DPR을 인정하고 러시아군이 주둔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심정으로 버티고 있었다. 유엔, 유럽인권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에 여러 건의 민사소송이 제기됐다. 일부 기관은 소송 내용의 타당성과, 기관의 담당업무에 해당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소송의 절차상 피해자가 자국, 즉 우크라이나의 사법기관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점을 강조했다. 국경지대에 포격이 심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치고, 집이 부서지고, 폭발로 인해 마당에 생긴 웅덩이와 주변에 가득한 포탄 파편을 봤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DPR을 인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인지 묻자, 무역이 활성화되고 러시아 대사관이 생길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로스토프(Rostov)에 가지 않고도 러시아 여권을 훨씬 쉽게 발급 받을 수 있게 된다. 연금을 받을 때도 러시아 여권이 필요하다. 도네츠크 내에서 여러 격전지와 최근 다연장 로켓포의 공격을 받은 지역을 방문했다. 고를로프카(Gorlovka)와 자이체보(Zaitseve)에서는 피신해 있어야 했다. 시신들과 파손된 수력발전소가 있었다. 일요일에는 불과 이틀 전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진 데발트세베(Debaltseve)에 갔다. 다연장 로켓포 발사 지점에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다음에는 볼노바하(Volnovakha) 근처 교전장소 방향으로, 더 깊이 파고들려 한다.

이 편지에 모든 것을 다 기술하지는 않으려 한다. 내 감정도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앞으로 아주 험난한 시절을 겪게 되리라는 것이다. 

 

 

글·올레시아 올렌코 Olesya Orlenko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러시아어판 편집장

번역·안해린
번역위원